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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돋보기] ‘반미 항전’ 승부수 던진 중국…돌파구일까? 자충수될까?
입력 2019.05.21 (18:29) 수정 2019.05.22 (18:56) 글로벌 돋보기
[글로벌 돋보기] ‘반미 항전’ 승부수 던진 중국…돌파구일까? 자충수될까?
미국의 화웨이 공습 이후 중국 정부는 민족주의를 고취하는 방향으로 대미 전략을 급격히 선회하고 있다.

중국 CCTV 황금 시간대에 한국전쟁 중국 참전을 소재로 한 선전영화가 편성되는가 하면, 일본의 제국주의에 맞서 만든 노래를 개사한 대미 항전가(抗戰歌)까지 급격히 퍼지고 있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의 추가 관세 폭탄 투하로 무역전쟁은 사실상 재개됐고 미국의 대중 압박이 전방위로 확산하자 중국 관영매체들은 '인민 전쟁'을 선포했다.

항전 의지를 불태우는 중국의 행보는 자신감의 표현일까? 위기감의 발로일까?

트럼프, '中 기술 굴기'에 핵펀치 ... '서방-中 경제 통합' 해체 신호탄?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 폭탄을 또다시 투하한 데 이어 '2030년까지 미국을 꺾고 세계 최고 기술국이 되겠다'는 중국의 '기술 굴기'에도 핵 펀치를 날렸다. 지난 15일(현지시각)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하며 외국산 통신 장비 사용을 금지하는 행정명령을 내리면서 화웨이와 그 계열사 70여 곳을 거래 제한 기업 명단에 올린 것이다.

중국과의 거래만으로도 제재 대상이 될 수 있는 강력한 조치가 취해지자 구글에 이어 퀄컴, 인텔, 자일링스, 브로드컴 등 미국의 간판 반도체 기업들도 화웨이에 대한 부품 공급을 중단했다. 반도체가 공급되지 않으면 화웨이는 당장 통신장비와 스마트폰의 '두뇌'를 잃게 된다. 행정명령 대상에 구글까지 포함되면서 화웨이는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도 제대로 쓸 수 없게 됐다. 안드로이드 체계는 플레이스토어와 유튜브 등 핵심 애플리케이션을 탑재하고 있어 스마트폰의 '심장'으로 불린다. 때문에 구글의 조치는 삼성의 턱밑까지 추격하며 올해 세계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 1위를 노리던 화웨이에 심각한 타격을 줄 것으로 보인다. 시장조사업체 스트래티지 애널리틱스는 "미국의 제재가 계속되면 올해 화웨이의 폰 판매량은 애초 목표(2억 4,110만대)보다 1억 대가량 감소한 1억 5천만대 선으로 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화웨이도 결국, 미국의 제재를 받고 도산 위기까지 몰렸던 ZTE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미국의 화웨이 제재는 지금까지의 '중국 제재'와는 차원이 다르다.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최근 영국을 방문해 미국이 중국을 왜 손보려고 하는지를 명확히 설명했다. "중국은 서방과 경제적으로 통합된 새로운 부류의 독재주의"라고 일갈한 것이다. 영국 정부에 5G 통신망에 중국의 참여를 허용하지 말라고 촉구하면서 한 말이다. '화웨이와 거래하면 자국 기업에 대한 제재도 불사하겠다'는 미국의 결정은 미국 굴지의 기업과 중국 기업 간 연결고리를 끊어냄으로써 폼페이오 장관이 '서방과 경제적으로 통합된'이라고 표현한, 중국이 세계자본주의에 편입돼 쌓아온 탑을 해체하겠다는 의지로 봐도 무방할 정도의 강력한 카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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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이 "개발도상국으로 분류된 중국만 혜택을 본다"는 이유로 파리 기후협정을 탈퇴하고 WTO 무용론을 제기했던 것이나 북한과 이란, 베넬수엘라 등 중국이 지정학적 또는 전략적으로 지원해온 국가들을 전례 없이 압박해온 것도 결국 중국의 패권 도전을 막기 위한 전략의 일환이었음이 명확해지고 있다. G2 반열까지 오른 중국으로서는 '설마 했던 공격'이었을 것이다.

되살아난 중국의 '체제 수호' 본능 ... 한미령(限美令)·반미 선전영화까지

중국은 전자제품과 하이브리드 자동차 등에 사용되는 광물 원자재인 희토류를 미국에 대한 통상 보복 도구로 삼을 수 있음을 시사했다. 미국은 전체 희토류 수입의 3분 2 정도를 중국에서 수입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미국도 전 세계 3위 희토류 생산 국가이기 때문에 그 파급력은 지켜봐야 한다. 중국 입장에서 대미 관세 인상이나 미국 국채 매각 등 경제보복 카드는 위험 부담이 커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2년 전부터 국제통화기금(IMF)이 심각성을 경고해온 국가와 기업 부채 문제, 지속하는 위안화 가치 하락 등 수면 위로 떠오를 정도로 악화한 지표도 부담이다.

희토류 산업시설 시찰하는 시진핑 주석 희토류 산업시설 시찰하는 시진핑 주석

그런 만큼 중국은 당장 내부 결속 다지기에 주력하는 분위기다. 우선 미국이 지난 10일 2,000억 달러 규모의 중국산 상품에 대한 관세를 25%로 인상한 이후 중국의 관영 매체들이 앞장서 민족주의를 조장하고 나섰다. "끝까지 싸울 것이다. 5천 년 동안 온갖 비바람을 겪은 중화 민족이 어떤 상황인들 안 겪어 봤겠나?"라는 CCTV 메인뉴스 앵커의 멘트는 '중국이 앞으로 미국에 어떤 각오로 맞설 것인가'를 확실히 짐작하게 해줬다.

중국 당국의 반미 기조가 거세지면서 미국을 배경으로 한 TV 드라마 방영이 잇달아 취소되기도 했다. 지난 주말 저녁 동방 TV와 저장 TV 등은 '아빠 데리고 유학 가다'라는 드라마 대신 예고도 없이 다른 드라마를 방영했다. '아빠 데리고 유학 가다'는 아들과 함께 미국 유학을 떠난 아버지가 겪는 일들을 다룬 내용이다. 뉴욕을 배경으로 중국 변호사와 유학생 간 사랑을 다룬 '베이징에서 너를 기다려'도 방영이 중단됐고 동영상 플랫폼에서 방송될 예정이던 미국 드라마 '왕좌의 게임'도 방영이 연기됐다. 홍콩 명보는 2016년 사드 갈등으로 한국 연예인 출연과 한국 드라마 방영이 전면 금지된 '한한령(限韓令)'을 연상시킨다고 전했다.

반미 항전가 ‘무역전’ 동영상 캡처 반미 항전가 ‘무역전’ 동영상 캡처

‘무역전’ 영상 링크 (https://www.dailymail.co.uk/video/news/video-1928924/Video-Trade-war-song-goes-viral-China-showing-anti-sentiment.html)

CCTV의 경우 화웨이 제재 결정이 내려진 다음 날인 지난 16일부터 사흘 연속 황금 시간대(저녁 6시~) 6·25전쟁을 다룬 영화를 긴급 편성해 반미 감정을 자극하고 나섰다. 중국은 6·25전쟁을 미국에 맞서 북한을 지원한 전쟁이라는 의미로 '항미 원조 전쟁'이라고 부른다. "지금은 항미 원조 시대는 아니지만, 무역전쟁 배경 아래 '항미'는 여론의 주류가 되고 있다"는 CCTV의 영화 해설은 중국이 이것으로 무엇을 노리는지를 알려준다. 위챗 등 SNS에는 무역전(贸易战)이라는 제목의 대미 항전가까지 급속히 퍼지고 있다. 1960년대 항일가를 개사한 노래로 "무역전. 무역전. 난폭한 도전 두렵지 않아", "문제를 일으킨 장본인을 때릴 거야. 정신이 어지럽고 담이 떨릴 정도로 때릴 거야" 등이 가사의 주요 부분이다.

블룸버그는 중국 정부가 오늘(21일)부터 연말까지 매일 아침 7시 관영 매체를 통해 중국 국가를 내보내기로 했는데 이는 건국 70주년을 기념한 국가 애국 교육의 일환이라고 보도했다. 또 10월 1일 국경절을 전후해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애국 테마 캠프를 실시하는 등 '인민전쟁'을 선포한 중국이 다양한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 내 출혈에도 거침없는 '반중' 노선 ... 야당도 지원 사격

반공영화까지 끄집어낸 걸 보면 중국도 얼마나 현실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시진핑 주석이 무역 협상에서 미국이 적당한 선에서 타협해줄 거라고 상황을 과소평가했던 것인지, 미국의 요구를 들어줬다가는 중국의 체제까지 위험해질 수 있다는 위기감을 느꼈던 것인지 알 수는 없다. 다만, 급변한 중국의 기류와 "협상이 결렬된 근본 원인은 미국이 극한적 압박을 통해 불합리한 이익을 실현하려는데 있었다"는 중국 외교부의 공식 논평은 후자 쪽에 가능성을 더해주고 있는듯하다.

미국이 중국에 원하는 건 '항복 문서 서명'이라는 사실은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에서도 드러났다. 그는 현지시각 19일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어떤 방식으로 무역합의가 이뤄지더라도 50대 50으로 대등한 내용이 담기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 일방에 유리한 협상을 추구하는 것이지 중국과 동등한 위치에서 협상할 뜻이 전혀 없다는 얘기다.

폭스뉴스와 인터뷰하는 트럼프 대통령폭스뉴스와 인터뷰하는 트럼프 대통령

하지만 무역전쟁이 격해지면서 나이키 등 170개 신발업체가 연간 8조 원이 넘는 소비자 추가 부담을 주장하며 대중 관세에서 제외해달라는 서명 운동에 나서는 등 미국 내 아우성도 커지고 있다. 지지 기반이었던 펜실베이니아와 위스콘신, 미시간 등 러스트 벨트 3곳에서 민주당의 유력 주자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에게 뒤처지는 것으로 나온 최근 여론조사 결과도 부담이다. 이는 무역 전쟁 여파에 따른 농민과 노동자 계층의 동요로 분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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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뼛속까지 반중'인 트럼프 대통령이 단기간 내 대중 압박의 고삐를 늦출 가능성은 현재로선 거의 없어 보인다. "중국에서 받는 관세 수입으로 150억 달러어치의 자국 농산물을 사들여 인도적 지원에 쓰겠다"는 지난 10일 트윗 글에는 그의 고민과 자신감이 동시에 담겨있다. 폭스뉴스 인터뷰에서는 "내가 부과한 관세 때문에 중국이 완전히 죽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참에 중국을 무릎 꿇려야 한다'는 분위기 형성에 민주당과 주류 언론이 가세한 것도 트럼프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다. 국경 장벽 이슈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격렬히 맞서온 척 슈머 상원 원내대표(민주당)는 중국 문제만큼은 "대중 압박을 강화해야 한다"며 정부와 보조를 맞춰왔다. 척 슈머 원내대표는 "최근 미국의 교통 기반 시설도 사이버 공격을 받았다"며 중국산 철도 사용도 재고해야 한다는 성명을 내기도 했다.

'미국산 불매운동' 번지나 ... '투키디데스의 함정'까지 치닫는 패권 전쟁

"중국 제품에 대한 관세 때문에 중국에 있는 기업들이 베트남을 비롯한 다른 아시아 국가들로 탈출하고 있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도 중국엔 부담스러운 대목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산이 비싸지면 중국산을 안 쓰면 된다"는 말도 했다. 또 미국 정부는 유럽과 일본산 자동차와 부품에 대한 관세 인상 결정을 6개월 연장했다. 대중 포위망을 구축하는데 협조를 얻기 위해 동맹국들에 보낸 유화 제스처다.

이런 미국에 대항한 중국의 노력도 효과를 보고 있다. 구글이 화웨이와의 일부 사업을 중단하자 중국 SNS에 '아이폰 불매'를 외치는 글이 폭주한 게 대표적이다. '일부 중국 회사들이 직원들에게 미국산을 사지 말라고 권고했다'는 내용의 글도 떠돌고 있다고 한다.

영화 ‘어벤져스: 엔드게임’ 주인공들의 상하이 팬 미팅이 지난달 18일 8,5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영화 ‘어벤져스: 엔드게임’ 주인공들의 상하이 팬 미팅이 지난달 18일 8,5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하지만 블룸버그는 "세계적인 블록버스터 '어벤져스: 엔드게임'은 여전히 극장에서 상영되고 있으며 중국 박스 오피스 역사상 세 번째로 많은 수익을 올렸다"고 전했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미국 문화상품을 구할 수 있다"고도 했다. 미국식 문화와 상품에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져 있는 중국인들을 향한 '반미' 외침이 결과적으로 얼마나 위력을 발휘할지는 두고 볼 일이다. 무역전쟁 장기화로 경기 침체가 심화하면 중국의 극심한 빈부 격차를 감내하며 살아온 계층의 반발이 커질 수도 있다. 수십 년 동안 키워온 상대에 대한 영향력이 너무 큰 나머지 싸우기 버거운 사정은 중국도 미국도 마찬가지다.

그레이엄 앨리슨의 저서 ‘예정된 전쟁’ 표지 그레이엄 앨리슨의 저서 ‘예정된 전쟁’ 표지

그러나 미국은 '패권을 빼앗기지 않겠다'고, 중국은 '체제를 흔들면 싸우겠다"고 사활을 걸고 나섰다. 그레이엄 앨리슨 하버드대 교수는 지난해 낸 저서 <예정된 전쟁>에서 미국과 중국이 구조적으로 전쟁을 향해 하고 있다고 분석해 파장을 일으켰다. 역사적으로 신흥 세력이 지배 세력의 자리를 위협할 경우 전쟁으로 귀결된 경우가 많았다며 그가 논거로 제시한 화두인 '투키디데스의 함정'까지 국내외 언론이 인용하기 시작했다. 그만큼 경제 전쟁을 넘어 진짜 전쟁이 일어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마저 커지고 있는 것이다.

‘투키디데스의 함정’ 시사상식사전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3607270&cid=43667&categoryId=436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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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5.21 (18:29)
    • 수정 2019.05.22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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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화웨이 공습 이후 중국 정부는 민족주의를 고취하는 방향으로 대미 전략을 급격히 선회하고 있다.

중국 CCTV 황금 시간대에 한국전쟁 중국 참전을 소재로 한 선전영화가 편성되는가 하면, 일본의 제국주의에 맞서 만든 노래를 개사한 대미 항전가(抗戰歌)까지 급격히 퍼지고 있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의 추가 관세 폭탄 투하로 무역전쟁은 사실상 재개됐고 미국의 대중 압박이 전방위로 확산하자 중국 관영매체들은 '인민 전쟁'을 선포했다.

항전 의지를 불태우는 중국의 행보는 자신감의 표현일까? 위기감의 발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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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이 관세 폭탄을 또다시 투하한 데 이어 '2030년까지 미국을 꺾고 세계 최고 기술국이 되겠다'는 중국의 '기술 굴기'에도 핵 펀치를 날렸다. 지난 15일(현지시각)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하며 외국산 통신 장비 사용을 금지하는 행정명령을 내리면서 화웨이와 그 계열사 70여 곳을 거래 제한 기업 명단에 올린 것이다.

중국과의 거래만으로도 제재 대상이 될 수 있는 강력한 조치가 취해지자 구글에 이어 퀄컴, 인텔, 자일링스, 브로드컴 등 미국의 간판 반도체 기업들도 화웨이에 대한 부품 공급을 중단했다. 반도체가 공급되지 않으면 화웨이는 당장 통신장비와 스마트폰의 '두뇌'를 잃게 된다. 행정명령 대상에 구글까지 포함되면서 화웨이는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도 제대로 쓸 수 없게 됐다. 안드로이드 체계는 플레이스토어와 유튜브 등 핵심 애플리케이션을 탑재하고 있어 스마트폰의 '심장'으로 불린다. 때문에 구글의 조치는 삼성의 턱밑까지 추격하며 올해 세계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 1위를 노리던 화웨이에 심각한 타격을 줄 것으로 보인다. 시장조사업체 스트래티지 애널리틱스는 "미국의 제재가 계속되면 올해 화웨이의 폰 판매량은 애초 목표(2억 4,110만대)보다 1억 대가량 감소한 1억 5천만대 선으로 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화웨이도 결국, 미국의 제재를 받고 도산 위기까지 몰렸던 ZTE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미국의 화웨이 제재는 지금까지의 '중국 제재'와는 차원이 다르다.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최근 영국을 방문해 미국이 중국을 왜 손보려고 하는지를 명확히 설명했다. "중국은 서방과 경제적으로 통합된 새로운 부류의 독재주의"라고 일갈한 것이다. 영국 정부에 5G 통신망에 중국의 참여를 허용하지 말라고 촉구하면서 한 말이다. '화웨이와 거래하면 자국 기업에 대한 제재도 불사하겠다'는 미국의 결정은 미국 굴지의 기업과 중국 기업 간 연결고리를 끊어냄으로써 폼페이오 장관이 '서방과 경제적으로 통합된'이라고 표현한, 중국이 세계자본주의에 편입돼 쌓아온 탑을 해체하겠다는 의지로 봐도 무방할 정도의 강력한 카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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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이 "개발도상국으로 분류된 중국만 혜택을 본다"는 이유로 파리 기후협정을 탈퇴하고 WTO 무용론을 제기했던 것이나 북한과 이란, 베넬수엘라 등 중국이 지정학적 또는 전략적으로 지원해온 국가들을 전례 없이 압박해온 것도 결국 중국의 패권 도전을 막기 위한 전략의 일환이었음이 명확해지고 있다. G2 반열까지 오른 중국으로서는 '설마 했던 공격'이었을 것이다.

되살아난 중국의 '체제 수호' 본능 ... 한미령(限美令)·반미 선전영화까지

중국은 전자제품과 하이브리드 자동차 등에 사용되는 광물 원자재인 희토류를 미국에 대한 통상 보복 도구로 삼을 수 있음을 시사했다. 미국은 전체 희토류 수입의 3분 2 정도를 중국에서 수입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미국도 전 세계 3위 희토류 생산 국가이기 때문에 그 파급력은 지켜봐야 한다. 중국 입장에서 대미 관세 인상이나 미국 국채 매각 등 경제보복 카드는 위험 부담이 커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2년 전부터 국제통화기금(IMF)이 심각성을 경고해온 국가와 기업 부채 문제, 지속하는 위안화 가치 하락 등 수면 위로 떠오를 정도로 악화한 지표도 부담이다.

희토류 산업시설 시찰하는 시진핑 주석 희토류 산업시설 시찰하는 시진핑 주석

그런 만큼 중국은 당장 내부 결속 다지기에 주력하는 분위기다. 우선 미국이 지난 10일 2,000억 달러 규모의 중국산 상품에 대한 관세를 25%로 인상한 이후 중국의 관영 매체들이 앞장서 민족주의를 조장하고 나섰다. "끝까지 싸울 것이다. 5천 년 동안 온갖 비바람을 겪은 중화 민족이 어떤 상황인들 안 겪어 봤겠나?"라는 CCTV 메인뉴스 앵커의 멘트는 '중국이 앞으로 미국에 어떤 각오로 맞설 것인가'를 확실히 짐작하게 해줬다.

중국 당국의 반미 기조가 거세지면서 미국을 배경으로 한 TV 드라마 방영이 잇달아 취소되기도 했다. 지난 주말 저녁 동방 TV와 저장 TV 등은 '아빠 데리고 유학 가다'라는 드라마 대신 예고도 없이 다른 드라마를 방영했다. '아빠 데리고 유학 가다'는 아들과 함께 미국 유학을 떠난 아버지가 겪는 일들을 다룬 내용이다. 뉴욕을 배경으로 중국 변호사와 유학생 간 사랑을 다룬 '베이징에서 너를 기다려'도 방영이 중단됐고 동영상 플랫폼에서 방송될 예정이던 미국 드라마 '왕좌의 게임'도 방영이 연기됐다. 홍콩 명보는 2016년 사드 갈등으로 한국 연예인 출연과 한국 드라마 방영이 전면 금지된 '한한령(限韓令)'을 연상시킨다고 전했다.

반미 항전가 ‘무역전’ 동영상 캡처 반미 항전가 ‘무역전’ 동영상 캡처

‘무역전’ 영상 링크 (https://www.dailymail.co.uk/video/news/video-1928924/Video-Trade-war-song-goes-viral-China-showing-anti-sentiment.html)

CCTV의 경우 화웨이 제재 결정이 내려진 다음 날인 지난 16일부터 사흘 연속 황금 시간대(저녁 6시~) 6·25전쟁을 다룬 영화를 긴급 편성해 반미 감정을 자극하고 나섰다. 중국은 6·25전쟁을 미국에 맞서 북한을 지원한 전쟁이라는 의미로 '항미 원조 전쟁'이라고 부른다. "지금은 항미 원조 시대는 아니지만, 무역전쟁 배경 아래 '항미'는 여론의 주류가 되고 있다"는 CCTV의 영화 해설은 중국이 이것으로 무엇을 노리는지를 알려준다. 위챗 등 SNS에는 무역전(贸易战)이라는 제목의 대미 항전가까지 급속히 퍼지고 있다. 1960년대 항일가를 개사한 노래로 "무역전. 무역전. 난폭한 도전 두렵지 않아", "문제를 일으킨 장본인을 때릴 거야. 정신이 어지럽고 담이 떨릴 정도로 때릴 거야" 등이 가사의 주요 부분이다.

블룸버그는 중국 정부가 오늘(21일)부터 연말까지 매일 아침 7시 관영 매체를 통해 중국 국가를 내보내기로 했는데 이는 건국 70주년을 기념한 국가 애국 교육의 일환이라고 보도했다. 또 10월 1일 국경절을 전후해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애국 테마 캠프를 실시하는 등 '인민전쟁'을 선포한 중국이 다양한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 내 출혈에도 거침없는 '반중' 노선 ... 야당도 지원 사격

반공영화까지 끄집어낸 걸 보면 중국도 얼마나 현실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시진핑 주석이 무역 협상에서 미국이 적당한 선에서 타협해줄 거라고 상황을 과소평가했던 것인지, 미국의 요구를 들어줬다가는 중국의 체제까지 위험해질 수 있다는 위기감을 느꼈던 것인지 알 수는 없다. 다만, 급변한 중국의 기류와 "협상이 결렬된 근본 원인은 미국이 극한적 압박을 통해 불합리한 이익을 실현하려는데 있었다"는 중국 외교부의 공식 논평은 후자 쪽에 가능성을 더해주고 있는듯하다.

미국이 중국에 원하는 건 '항복 문서 서명'이라는 사실은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에서도 드러났다. 그는 현지시각 19일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어떤 방식으로 무역합의가 이뤄지더라도 50대 50으로 대등한 내용이 담기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 일방에 유리한 협상을 추구하는 것이지 중국과 동등한 위치에서 협상할 뜻이 전혀 없다는 얘기다.

폭스뉴스와 인터뷰하는 트럼프 대통령폭스뉴스와 인터뷰하는 트럼프 대통령

하지만 무역전쟁이 격해지면서 나이키 등 170개 신발업체가 연간 8조 원이 넘는 소비자 추가 부담을 주장하며 대중 관세에서 제외해달라는 서명 운동에 나서는 등 미국 내 아우성도 커지고 있다. 지지 기반이었던 펜실베이니아와 위스콘신, 미시간 등 러스트 벨트 3곳에서 민주당의 유력 주자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에게 뒤처지는 것으로 나온 최근 여론조사 결과도 부담이다. 이는 무역 전쟁 여파에 따른 농민과 노동자 계층의 동요로 분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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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뼛속까지 반중'인 트럼프 대통령이 단기간 내 대중 압박의 고삐를 늦출 가능성은 현재로선 거의 없어 보인다. "중국에서 받는 관세 수입으로 150억 달러어치의 자국 농산물을 사들여 인도적 지원에 쓰겠다"는 지난 10일 트윗 글에는 그의 고민과 자신감이 동시에 담겨있다. 폭스뉴스 인터뷰에서는 "내가 부과한 관세 때문에 중국이 완전히 죽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참에 중국을 무릎 꿇려야 한다'는 분위기 형성에 민주당과 주류 언론이 가세한 것도 트럼프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다. 국경 장벽 이슈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격렬히 맞서온 척 슈머 상원 원내대표(민주당)는 중국 문제만큼은 "대중 압박을 강화해야 한다"며 정부와 보조를 맞춰왔다. 척 슈머 원내대표는 "최근 미국의 교통 기반 시설도 사이버 공격을 받았다"며 중국산 철도 사용도 재고해야 한다는 성명을 내기도 했다.

'미국산 불매운동' 번지나 ... '투키디데스의 함정'까지 치닫는 패권 전쟁

"중국 제품에 대한 관세 때문에 중국에 있는 기업들이 베트남을 비롯한 다른 아시아 국가들로 탈출하고 있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도 중국엔 부담스러운 대목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산이 비싸지면 중국산을 안 쓰면 된다"는 말도 했다. 또 미국 정부는 유럽과 일본산 자동차와 부품에 대한 관세 인상 결정을 6개월 연장했다. 대중 포위망을 구축하는데 협조를 얻기 위해 동맹국들에 보낸 유화 제스처다.

이런 미국에 대항한 중국의 노력도 효과를 보고 있다. 구글이 화웨이와의 일부 사업을 중단하자 중국 SNS에 '아이폰 불매'를 외치는 글이 폭주한 게 대표적이다. '일부 중국 회사들이 직원들에게 미국산을 사지 말라고 권고했다'는 내용의 글도 떠돌고 있다고 한다.

영화 ‘어벤져스: 엔드게임’ 주인공들의 상하이 팬 미팅이 지난달 18일 8,5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영화 ‘어벤져스: 엔드게임’ 주인공들의 상하이 팬 미팅이 지난달 18일 8,5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하지만 블룸버그는 "세계적인 블록버스터 '어벤져스: 엔드게임'은 여전히 극장에서 상영되고 있으며 중국 박스 오피스 역사상 세 번째로 많은 수익을 올렸다"고 전했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미국 문화상품을 구할 수 있다"고도 했다. 미국식 문화와 상품에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져 있는 중국인들을 향한 '반미' 외침이 결과적으로 얼마나 위력을 발휘할지는 두고 볼 일이다. 무역전쟁 장기화로 경기 침체가 심화하면 중국의 극심한 빈부 격차를 감내하며 살아온 계층의 반발이 커질 수도 있다. 수십 년 동안 키워온 상대에 대한 영향력이 너무 큰 나머지 싸우기 버거운 사정은 중국도 미국도 마찬가지다.

그레이엄 앨리슨의 저서 ‘예정된 전쟁’ 표지 그레이엄 앨리슨의 저서 ‘예정된 전쟁’ 표지

그러나 미국은 '패권을 빼앗기지 않겠다'고, 중국은 '체제를 흔들면 싸우겠다"고 사활을 걸고 나섰다. 그레이엄 앨리슨 하버드대 교수는 지난해 낸 저서 <예정된 전쟁>에서 미국과 중국이 구조적으로 전쟁을 향해 하고 있다고 분석해 파장을 일으켰다. 역사적으로 신흥 세력이 지배 세력의 자리를 위협할 경우 전쟁으로 귀결된 경우가 많았다며 그가 논거로 제시한 화두인 '투키디데스의 함정'까지 국내외 언론이 인용하기 시작했다. 그만큼 경제 전쟁을 넘어 진짜 전쟁이 일어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마저 커지고 있는 것이다.

‘투키디데스의 함정’ 시사상식사전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3607270&cid=43667&categoryId=436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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