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사K] ‘병든 새우’① 죽어가는 새우…“어민들 뿔났다”

입력 2019.09.08 (09:00) 수정 2019.09.11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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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철을 앞두고 수확이 한창인 새우 양식장을 찾았다. 땀 흘린 여름을 보상받듯 풍작의 기쁨을 만끽하는 어민을 만났고, 갑작스레 찾아온 돌림병에 농사를 망치고 실의에 빠진 어민도 만났다.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질병이 어디서 어떻게 왔는지 알 수 없는데 정부는 대책도 마련하지 못하면서 보상마저 나 몰라라 한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KBS 탐사보도부는 수산생물질병 검역과 방역에 관해 지난 석 달여 동안 취재했고, 앞으로 한 주 동안 연속 보도한다.

■ 수확의 기쁨에도 마음 놓을 수 없는 이유

어망을 뚫고 오를 만큼 새우의 힘이 좋다. 길이는 한 뼘에 살도 꽉 찼다. 넉 달 키운 새우를 출하하는 날, 그물을 들어 올리는 새우 양식 어민 김광호 씨의 얼굴에 미소가 가시질 않는다. 올해 수확은 70톤을 예상한다.


"홀가분하고요. 기쁘기도 하고, 돈을 버는 것도 좋지만 이렇게 잘 키워냈다는 거,
건강한 새우를 길러냈다는 거 자체에 보람을 많이 느끼고, 또 그만한 보상도 따르기 때문에 좋습니다."
- 김광호 씨, 전라남도 신안군 새우양식 어민


한 해 작황은 새우의 생존율에 달렸다. 비바람 부는 날이면 뜬눈으로 밤을 지새울 때가 많다. 양식장에 산소를 공급하고 물을 순환시키는 수차가 멈추면 집단 폐사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수온이 오르는 한여름은 더 걱정이다. 부패한 사료가 내뿜는 독성에 새우가 떼죽음 당할 수 있고, 돌림병이 창궐해 한 해 농사를 망칠 수도 있다.

특히 지난해 여름을 떠올리면 지금도 아찔하다. 그때는 하룻밤 새 새우가 집단 폐사했다. 병든 새우를 다른 새우가 잡아먹는 공식(共食, Cannibalism) 현상이 벌어질 틈도 없었다. 물 위에 뜬 새우는 뙤약볕에 빨갛게 익어버렸다. '새우깡'처럼 말이다.

김광호 씨는 급성간췌장괴사병(Acute Hepatopancreatic Necrosis Disease), 이른바 '아펜드'로 추정했다. 주위 어민들로부터 병의 특징인 '새우깡' 얘기를 들은 적 있기 때문이다. 아펜드는 2016년부터 3년 동안 신안 지역을 중심으로 우리나라에서 유행한 신종 질병이다. 요즘 어민들이 가장 경계하는 돌림병이기도 하다.

■ 신종 새우 흑사병 '급성간췌장괴사병'

취재진은 아펜드에 관해 전문가 자문을 구했다. 부경대학교 김도형 교수와 경북대학교 한지은 교수가 자문했다. 김도형 교수는 2014년 한 국책연구를 총괄했다. 아펜드 등 새우를 수입할 때 유입될 수 있는 질병의 위험성에 관한 연구였다. 한지은 교수는 갑각류 질병 전문가다. 세계동물보건기구에서 전문연구원은 물론 갑각류 질병 진단 자문도 맡았다.


"아펜드는 초기에 조기치사증후군(Early Mortality Syndrome)이라고 불렸습니다.
새우가 어린 시기에 감염되면 30일 만에 대부분 폐사하는 것을 알려졌기 때문입니다."

- 김도형, 부경대학교 교수

"다른 세균과 다르게 독소를 방출하거든요. 독소가 간췌장을 망가뜨려서
새우가 밥을 먹지 못하기 때문에 장기가 비어있는 것을 관찰할 수가 있습니다."

- 한지은, 경북대학교 교수


아펜드는 세균이 내뿜는 독소가 원인이다. 독소는 새우의 소화기관인 간췌장을 공격해 먹이를 먹지 못하게 만든다. 새우가 사료를 먹으면 간췌장에 까맣게 가득 차는데, 사료를 못 먹다 보니 간췌장이 비어서 하얗게 되고, 쪼그라든다. 쉽게 말해 새우를 굶어 죽게 만드는 질병이다.

이 병은 전파속도도 빠르다. 바이러스성 질병과 달리 세균성 질병이어서 숙주 없이 물만으로도 전파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대표적인 바이러스성 질병인 흰반점병보다 더 위험한 돌림병으로 여겨진다.

김광호 씨는 아펜드 때문에 지난해 30% 정도 손해 봤다고 얘기한다. 머릿수로 보면 백만 마리쯤 된다. 매출로 보면 수억 원대다. 그렇지만 신고하지 않았다. 보상은커녕 보험도 안 되는데 신고해봤자 나머지 새우마저 이동제한에 묶여 수확할 수 없기 때문이다.

■ 신종 질병, 수입새우 타고 국경 넘는다

급성간췌장괴사병(이하 아펜드)은 2009년 중국에서 처음 발생했다. 이후 아펜드를 일으키는 세균은 새우 교역과 함께 전 세계로 퍼졌다. 말레이시아는 아펜드 때문에 양식 새우 생산량이 급감했다. 2010년 7만 톤이 2011년 4만 톤이 됐다. 멕시코도 2012년 양식 새우 생산량이 반 토막 났다. 자유무역이 소비자를 이롭게 할 동안 일부 양식어민은 돌림병의 희생양이 됐다.

세계동물보건기구는 2017년 아펜드를 감시대상 질병으로 공식 채택했다. 그러나 질병 목록에 올린 건 2015년이었고, 신고는 이듬해부터 이뤄졌다. 공교롭게도 신고를 시작한 2016년, 아펜드가 우리나라에 상륙했다. 전남 신안과 인천, 경기 평택 지역에서 집단 발병했고, 이후 매년 양식 어민을 괴롭히고 있다.

발병 현장을 조사했던 국립수산과학원(이하 수과원)은 질병이 어디서 왔는지 추적했다. 분석 결과 국내에서 아펜드를 일으킨 세균의 유전자는 중국, 베트남, 태국, 멕시코 등지에서 발견된 세균과 유사했다.

국립수산과학원이 유전자 분석을 통해 확인한 국내 급성간췌장괴사병 세균의 계통도 국립수산과학원이 유전자 분석을 통해 확인한 국내 급성간췌장괴사병 세균의 계통도

왼쪽 계통도에서 붉은색으로 표시된 9종이 외국에서 아펜드를 일으킨 세균이다. 분홍색으로 표시된 7종이 국내에서 같은 질병을 일으킨 세균이다. 이 세균들은 오른쪽 도표처럼 PirA와 PirB 독소를 내뿜는 유전자를 공통으로 갖고 있다.

■ 팔짱 꼈던 해양수산부, 발병 3년 만에 검역 추진

우리나라는 세계동물보건기구 질병 목록을 참고해 검역 대상을 지정한다. 이러다 보니 항상 한발 늦다. 돌림병이 유행하고 나서야 검역과 방역에 나선다는 뜻이다. 검역과 방역의 근거가 되는 질병 목록은 시행규칙만 바꾸면 되는 일이다. 발 빠르게 검역 대상에 포함했다면, 2016년부터 시작된 아펜드 유행도 막을 수 있었다.

게다가 앞에서 밝혔듯이 정부는 피해 보상도 안 했다. 법정 전염병이 아니므로 보상할 의무가 없다고 반박하겠지만, 법정 전염병을 지정하고 검역·방역할 책임은 정부에 있다. 결국, 해수부는 어민이 내리 3년 동안 피해를 보고 나서야 움직였다. 지난달 19일 아펜드를 법정 전염병은 물론 보상 가능한 살처분 대상에 포함하는 시행규칙 개정령안을 입법 예고했다.

■ 토착화된 새우 질병도 관리 필요

전염병 유입을 막는 검역과 유행을 막는 방역이 동시에 이뤄져야 질병 통제를 할 수 있다. 특히 방역의 시작은 신고다. 신고가 있어야 역학조사를 통해 원인이나 전파경로를 파악해 발병을 줄일 수 있다. 또, 신고가 있어야 피해 규모를 정확히 파악해 예산을 투입할 수 있다.

그래서 지난 7월 초 이홍완 씨는 자신의 양식장에서 발병한 흰반점병을 신고했다. 양식장에도 출입 통제선을 둘렀다. 그러나 질병 확산을 막기 위해 양심껏 신고한 대가는 가혹했다.


"(아내한테) 미안하기도 하고, 자존심도 상하고 그러죠.
이런 피해를 보게 되면 막대한 재산 손실과 엄청난 절망을 안는데
최소한의 보상이라도 해줘서 극단적인 실망을 하지 않도록 해줬으면 좋겠네요."

- 이홍완 씨, 전라남도 신안군 새우양식 어민


취재진은 이 씨와 함께 봄에 20만 마리를 풀어놓은 못으로 갔다. 투망을 던져봤지만, 새우가 안 잡혔다. 서너 번 던졌더니 세 마리가 잡혔다. 평소 같았으면 최소 10배는 잡혔어야 했다.

이번에는 못 한가운데 관찰망을 들어 올렸다. 관찰망은 새우의 건강이나 발육 상태를 수시로 확인할 수 있게 만든 뜰채다. 새우가 관찰망 위로 모이도록 끼니때마다 먹이를 뿌려두는데, 거의 줄지 않았다. 관찰망 위 새우도 한두 마리에 불과했다.

봄에 2백만 마리 넘게 풀었는데 얼마나 수확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새끼새우를 사고, 사료를 먹이고, 전기에 쓴 돈을 고려하면 수억 원의 손실이 예상된다.

이런 상황에서 폐사를 신고하지 않았다면 이 씨는 손실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었다. 살아남은 새우만 수확한 뒤 팔았으면 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동제한 조치로 팔 수 있는 새우마저도 꺼내지 못해 손실은 늘고 있다.

신고하면 이 씨처럼 손실만 커지기 때문에 많은 어민들은 새우가 폐사해도 신고하지 않는다. 방역의 첫 단추부터 꿰지지 않는 셈이다. 따라서 양식 어민들은 방역을 강화하고 싶다면 최소한의 보상이나 보험 적용이라도 해달라는 입장이다.

■ "보상 안 되면 보험이라도" vs. "양식장 관리는 어민 책임이죠"

주무 부처인 해양수산부는 어민과 시각차가 컸다. 우선 흰반점병 같은 질병 관리는 일차적으로 어민 책임이라고 본다. 양식장이 대부분 개방돼 있어 질병을 옮길 수 있는 매개체를 통제하지 못하고, 종묘를 들여다 키울 때 건강한 새우를 가지고 왔는지 의심된다는 게 이유다. 해수부는 어민들이 질병 차단 노력을 기울여야 보상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지난달 8월 13일 정부세종청사에서 해양수산부 관계자를 만난 KBS 취재진지난달 8월 13일 정부세종청사에서 해양수산부 관계자를 만난 KBS 취재진

해수부는 또, 보험 적용도 검토해본 적 없다고 밝혔다. 양식어업재해보험 대상으로 넣어달라는 어민의 요청이 없었다는 게 이유다.

흰반점병, 급성간췌장괴사병 같은 수산생물질병 관리 책임은 해양수산부에 있다. 질병의 국내 유입을 막는 검역과 국내 유행을 막는 방역이 해수부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해수부가 어민 책임만 앞세우다 보니 피해는 계속되고 있다. 흰반점병은 2017년 이후에만 인천과 충남, 전북, 전남의 양식장 10곳에서 신고됐다. 양식 새우에서 발병한 것만 9곳이다. 신고하지 않는 어민이 많다는 점을 고려하면 피해 규모는 더 커질 수 있다.

■ 국경 넘은 전염병, 어떻게 양식장 파괴하나?

KBS 탐사보도부는 새우 전염병이 국내 양식장으로 유입되는 주요 경로 가운데 하나로 베트남에서 수입된 냉동새우를 지목하고, 추적했다. 수입 새우에 전염병을 일으키는 병원체가 있는 건 아닌지, 국내 양식장에서 발생하는 전염병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확인하는 게 목적이었다.

그 결과 검사 대상 새우의 상당량이 바이러스와 세균, 기생충에 감염된 채 냉동된 사실을 확인했고, 이를 막기 위한 검역이 뚫려 병든 새우가 국내에 대규모로 유통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전문가들의 의견도 확보했다. 새우 질병의 인체 유해성은 아직 보고된 바가 없다. 그러나 국내 양식 새우에는 치명적이다. KBS는 내일 구체적인 검사 결과를 공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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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탐사K] ‘병든 새우’① 죽어가는 새우…“어민들 뿔났다”
    • 입력 2019-09-08 09:00:04
    • 수정2019-09-11 14:48:13
    탐사K
대하철을 앞두고 수확이 한창인 새우 양식장을 찾았다. 땀 흘린 여름을 보상받듯 풍작의 기쁨을 만끽하는 어민을 만났고, 갑작스레 찾아온 돌림병에 농사를 망치고 실의에 빠진 어민도 만났다.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질병이 어디서 어떻게 왔는지 알 수 없는데 정부는 대책도 마련하지 못하면서 보상마저 나 몰라라 한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KBS 탐사보도부는 수산생물질병 검역과 방역에 관해 지난 석 달여 동안 취재했고, 앞으로 한 주 동안 연속 보도한다.

■ 수확의 기쁨에도 마음 놓을 수 없는 이유

어망을 뚫고 오를 만큼 새우의 힘이 좋다. 길이는 한 뼘에 살도 꽉 찼다. 넉 달 키운 새우를 출하하는 날, 그물을 들어 올리는 새우 양식 어민 김광호 씨의 얼굴에 미소가 가시질 않는다. 올해 수확은 70톤을 예상한다.


"홀가분하고요. 기쁘기도 하고, 돈을 버는 것도 좋지만 이렇게 잘 키워냈다는 거,
건강한 새우를 길러냈다는 거 자체에 보람을 많이 느끼고, 또 그만한 보상도 따르기 때문에 좋습니다."
- 김광호 씨, 전라남도 신안군 새우양식 어민


한 해 작황은 새우의 생존율에 달렸다. 비바람 부는 날이면 뜬눈으로 밤을 지새울 때가 많다. 양식장에 산소를 공급하고 물을 순환시키는 수차가 멈추면 집단 폐사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수온이 오르는 한여름은 더 걱정이다. 부패한 사료가 내뿜는 독성에 새우가 떼죽음 당할 수 있고, 돌림병이 창궐해 한 해 농사를 망칠 수도 있다.

특히 지난해 여름을 떠올리면 지금도 아찔하다. 그때는 하룻밤 새 새우가 집단 폐사했다. 병든 새우를 다른 새우가 잡아먹는 공식(共食, Cannibalism) 현상이 벌어질 틈도 없었다. 물 위에 뜬 새우는 뙤약볕에 빨갛게 익어버렸다. '새우깡'처럼 말이다.

김광호 씨는 급성간췌장괴사병(Acute Hepatopancreatic Necrosis Disease), 이른바 '아펜드'로 추정했다. 주위 어민들로부터 병의 특징인 '새우깡' 얘기를 들은 적 있기 때문이다. 아펜드는 2016년부터 3년 동안 신안 지역을 중심으로 우리나라에서 유행한 신종 질병이다. 요즘 어민들이 가장 경계하는 돌림병이기도 하다.

■ 신종 새우 흑사병 '급성간췌장괴사병'

취재진은 아펜드에 관해 전문가 자문을 구했다. 부경대학교 김도형 교수와 경북대학교 한지은 교수가 자문했다. 김도형 교수는 2014년 한 국책연구를 총괄했다. 아펜드 등 새우를 수입할 때 유입될 수 있는 질병의 위험성에 관한 연구였다. 한지은 교수는 갑각류 질병 전문가다. 세계동물보건기구에서 전문연구원은 물론 갑각류 질병 진단 자문도 맡았다.


"아펜드는 초기에 조기치사증후군(Early Mortality Syndrome)이라고 불렸습니다.
새우가 어린 시기에 감염되면 30일 만에 대부분 폐사하는 것을 알려졌기 때문입니다."

- 김도형, 부경대학교 교수

"다른 세균과 다르게 독소를 방출하거든요. 독소가 간췌장을 망가뜨려서
새우가 밥을 먹지 못하기 때문에 장기가 비어있는 것을 관찰할 수가 있습니다."

- 한지은, 경북대학교 교수


아펜드는 세균이 내뿜는 독소가 원인이다. 독소는 새우의 소화기관인 간췌장을 공격해 먹이를 먹지 못하게 만든다. 새우가 사료를 먹으면 간췌장에 까맣게 가득 차는데, 사료를 못 먹다 보니 간췌장이 비어서 하얗게 되고, 쪼그라든다. 쉽게 말해 새우를 굶어 죽게 만드는 질병이다.

이 병은 전파속도도 빠르다. 바이러스성 질병과 달리 세균성 질병이어서 숙주 없이 물만으로도 전파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대표적인 바이러스성 질병인 흰반점병보다 더 위험한 돌림병으로 여겨진다.

김광호 씨는 아펜드 때문에 지난해 30% 정도 손해 봤다고 얘기한다. 머릿수로 보면 백만 마리쯤 된다. 매출로 보면 수억 원대다. 그렇지만 신고하지 않았다. 보상은커녕 보험도 안 되는데 신고해봤자 나머지 새우마저 이동제한에 묶여 수확할 수 없기 때문이다.

■ 신종 질병, 수입새우 타고 국경 넘는다

급성간췌장괴사병(이하 아펜드)은 2009년 중국에서 처음 발생했다. 이후 아펜드를 일으키는 세균은 새우 교역과 함께 전 세계로 퍼졌다. 말레이시아는 아펜드 때문에 양식 새우 생산량이 급감했다. 2010년 7만 톤이 2011년 4만 톤이 됐다. 멕시코도 2012년 양식 새우 생산량이 반 토막 났다. 자유무역이 소비자를 이롭게 할 동안 일부 양식어민은 돌림병의 희생양이 됐다.

세계동물보건기구는 2017년 아펜드를 감시대상 질병으로 공식 채택했다. 그러나 질병 목록에 올린 건 2015년이었고, 신고는 이듬해부터 이뤄졌다. 공교롭게도 신고를 시작한 2016년, 아펜드가 우리나라에 상륙했다. 전남 신안과 인천, 경기 평택 지역에서 집단 발병했고, 이후 매년 양식 어민을 괴롭히고 있다.

발병 현장을 조사했던 국립수산과학원(이하 수과원)은 질병이 어디서 왔는지 추적했다. 분석 결과 국내에서 아펜드를 일으킨 세균의 유전자는 중국, 베트남, 태국, 멕시코 등지에서 발견된 세균과 유사했다.

국립수산과학원이 유전자 분석을 통해 확인한 국내 급성간췌장괴사병 세균의 계통도
왼쪽 계통도에서 붉은색으로 표시된 9종이 외국에서 아펜드를 일으킨 세균이다. 분홍색으로 표시된 7종이 국내에서 같은 질병을 일으킨 세균이다. 이 세균들은 오른쪽 도표처럼 PirA와 PirB 독소를 내뿜는 유전자를 공통으로 갖고 있다.

■ 팔짱 꼈던 해양수산부, 발병 3년 만에 검역 추진

우리나라는 세계동물보건기구 질병 목록을 참고해 검역 대상을 지정한다. 이러다 보니 항상 한발 늦다. 돌림병이 유행하고 나서야 검역과 방역에 나선다는 뜻이다. 검역과 방역의 근거가 되는 질병 목록은 시행규칙만 바꾸면 되는 일이다. 발 빠르게 검역 대상에 포함했다면, 2016년부터 시작된 아펜드 유행도 막을 수 있었다.

게다가 앞에서 밝혔듯이 정부는 피해 보상도 안 했다. 법정 전염병이 아니므로 보상할 의무가 없다고 반박하겠지만, 법정 전염병을 지정하고 검역·방역할 책임은 정부에 있다. 결국, 해수부는 어민이 내리 3년 동안 피해를 보고 나서야 움직였다. 지난달 19일 아펜드를 법정 전염병은 물론 보상 가능한 살처분 대상에 포함하는 시행규칙 개정령안을 입법 예고했다.

■ 토착화된 새우 질병도 관리 필요

전염병 유입을 막는 검역과 유행을 막는 방역이 동시에 이뤄져야 질병 통제를 할 수 있다. 특히 방역의 시작은 신고다. 신고가 있어야 역학조사를 통해 원인이나 전파경로를 파악해 발병을 줄일 수 있다. 또, 신고가 있어야 피해 규모를 정확히 파악해 예산을 투입할 수 있다.

그래서 지난 7월 초 이홍완 씨는 자신의 양식장에서 발병한 흰반점병을 신고했다. 양식장에도 출입 통제선을 둘렀다. 그러나 질병 확산을 막기 위해 양심껏 신고한 대가는 가혹했다.


"(아내한테) 미안하기도 하고, 자존심도 상하고 그러죠.
이런 피해를 보게 되면 막대한 재산 손실과 엄청난 절망을 안는데
최소한의 보상이라도 해줘서 극단적인 실망을 하지 않도록 해줬으면 좋겠네요."

- 이홍완 씨, 전라남도 신안군 새우양식 어민


취재진은 이 씨와 함께 봄에 20만 마리를 풀어놓은 못으로 갔다. 투망을 던져봤지만, 새우가 안 잡혔다. 서너 번 던졌더니 세 마리가 잡혔다. 평소 같았으면 최소 10배는 잡혔어야 했다.

이번에는 못 한가운데 관찰망을 들어 올렸다. 관찰망은 새우의 건강이나 발육 상태를 수시로 확인할 수 있게 만든 뜰채다. 새우가 관찰망 위로 모이도록 끼니때마다 먹이를 뿌려두는데, 거의 줄지 않았다. 관찰망 위 새우도 한두 마리에 불과했다.

봄에 2백만 마리 넘게 풀었는데 얼마나 수확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새끼새우를 사고, 사료를 먹이고, 전기에 쓴 돈을 고려하면 수억 원의 손실이 예상된다.

이런 상황에서 폐사를 신고하지 않았다면 이 씨는 손실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었다. 살아남은 새우만 수확한 뒤 팔았으면 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동제한 조치로 팔 수 있는 새우마저도 꺼내지 못해 손실은 늘고 있다.

신고하면 이 씨처럼 손실만 커지기 때문에 많은 어민들은 새우가 폐사해도 신고하지 않는다. 방역의 첫 단추부터 꿰지지 않는 셈이다. 따라서 양식 어민들은 방역을 강화하고 싶다면 최소한의 보상이나 보험 적용이라도 해달라는 입장이다.

■ "보상 안 되면 보험이라도" vs. "양식장 관리는 어민 책임이죠"

주무 부처인 해양수산부는 어민과 시각차가 컸다. 우선 흰반점병 같은 질병 관리는 일차적으로 어민 책임이라고 본다. 양식장이 대부분 개방돼 있어 질병을 옮길 수 있는 매개체를 통제하지 못하고, 종묘를 들여다 키울 때 건강한 새우를 가지고 왔는지 의심된다는 게 이유다. 해수부는 어민들이 질병 차단 노력을 기울여야 보상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지난달 8월 13일 정부세종청사에서 해양수산부 관계자를 만난 KBS 취재진
해수부는 또, 보험 적용도 검토해본 적 없다고 밝혔다. 양식어업재해보험 대상으로 넣어달라는 어민의 요청이 없었다는 게 이유다.

흰반점병, 급성간췌장괴사병 같은 수산생물질병 관리 책임은 해양수산부에 있다. 질병의 국내 유입을 막는 검역과 국내 유행을 막는 방역이 해수부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해수부가 어민 책임만 앞세우다 보니 피해는 계속되고 있다. 흰반점병은 2017년 이후에만 인천과 충남, 전북, 전남의 양식장 10곳에서 신고됐다. 양식 새우에서 발병한 것만 9곳이다. 신고하지 않는 어민이 많다는 점을 고려하면 피해 규모는 더 커질 수 있다.

■ 국경 넘은 전염병, 어떻게 양식장 파괴하나?

KBS 탐사보도부는 새우 전염병이 국내 양식장으로 유입되는 주요 경로 가운데 하나로 베트남에서 수입된 냉동새우를 지목하고, 추적했다. 수입 새우에 전염병을 일으키는 병원체가 있는 건 아닌지, 국내 양식장에서 발생하는 전염병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확인하는 게 목적이었다.

그 결과 검사 대상 새우의 상당량이 바이러스와 세균, 기생충에 감염된 채 냉동된 사실을 확인했고, 이를 막기 위한 검역이 뚫려 병든 새우가 국내에 대규모로 유통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전문가들의 의견도 확보했다. 새우 질병의 인체 유해성은 아직 보고된 바가 없다. 그러나 국내 양식 새우에는 치명적이다. KBS는 내일 구체적인 검사 결과를 공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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