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여섯 청년노동자의 죽음…故 김재순 씨 사망사고

입력 2020.06.0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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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여섯 청년노동자 김재순 씨의 죽음

광주지방고용노동청 앞에 설치된 故 김재순 씨의 분향소. 하얀 천막 안의 작은 제단이 전부지만, 그를 추모하는 시민들의 발걸음은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바나나 우유와 과자, 커피와 소주, 케이크에 핫바까지. 그 뒤로 김재순 씨의 영정사진이 보였습니다. 고작 스물 여섯. 죽음의 흔적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말간 얼굴이었습니다.

김재순 씨는 지난달 22일 광주 광산구 하남산단의 한 재활용업체에서 홀로 일하다 파쇄기에 끼여 빨려 들어가 숨졌습니다. 지적장애가 있는 재순 씨는 사고가 난 당일뿐 아니라 평상시에도 위험이 큰 파쇄 업무를 홀로 담당해왔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무엇이 스물여섯 청년 노동자의 죽음을 불러온 것일까요?

[연관기사] 스물여섯 청년의 죽음…“과실 아닌 사회적 타살”

'2인 1조' 원칙도, 파쇄기 안전수칙도 지켜지지 않아...명백한 '사회적 타살'


사고 당일, 김재순 씨는 혼자였습니다. 사고가 난 건 지난달 22일 오전 9시 45분쯤입니다. 폐기물이 수지 파쇄기에 걸리자 이를 제거하려던 김 씨가 중심을 잃고 미끄러졌습니다. 사고가 일어나고 20여 분 뒤 직장동료가 발견해 119에 신고했지만, 재순 씨는 이미 숨진 뒤였습니다. 2인 1조 원칙이 지켜져 누군가 기계를 멈춰줄 수만 있었다면 이토록 비극적인 죽음을 피했을 수도 있습니다.

파쇄기에 설치돼 있어야 할 안전장치도 부실했습니다. 관련법에 따라 파쇄기 투입 부에 덮개 등을 설치해야 하지만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안전 난간이나 추락방지 작업발판 역시 없었습니다. 비상시에 파쇄기의 작동을 중지할 수 있는 '비상정지 리모컨' 역시 지급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회사 측은 "평소 성실하던 재순 씨가 시키지도 않은 일을 하려다가 사고를 당한 것"이라며 재순 씨의 과실을 주장했습니다. 원래 파쇄업무 작업이 없었고, 함께 일하는 상사가 자리를 비운 사이 재순 씨가 혼자 그 일을 했다는 겁니다.

그러나 故 김재순 노동시민대책위원회가 사고가 나기 전 3일 치 CCTV를 분석한 결과, 재순 씨는 평소에도 홀로 위험한 파쇄기 위에서 일해온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사고가 나기 이틀 전 CCTV에서도 파쇄기를 능숙하게 조작하고, 파쇄기 위에 올라가 폐자재들을 모으는 모습이 포착됐습니다.

더군다나 김재순 씨는 지적장애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위험한 작업현장에서 보호받아야 할 사회적 약자였습니다. 하지만 김 씨를 지켜줄 안전장치는 그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유족과 노동조합이 명백한 '사회적 타살'이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입니다.

[연관기사] 故 김재순 씨, 위험 속 근무가 ‘일상’…“사회적 타살”

6년 전 사고에도…안전점검 '0'번


해당 업체에서 사고가 난 건 처음이 아니었습니다. 지난 2014년 60대 노동자가 목재파쇄기에 끼여 숨졌습니다. 6년 전 사고내용이 담긴 자료를 입수해 확인해 보니, 김재순 씨의 사망사고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파쇄기에 근로자가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는 덮개는 없었습니다. 비상시 작동을 멈출 수 있는 정지 장치 역시 미흡했습니다. 하지만 이후 해당 작업장에 대한 근로감독이나 안전점검은 단 한 차례도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2014년 사고 이후 별다른 산업재해가 없어서 점검 우선순위에서 제외됐기 때문입니다.

사고가 난 곳이 10인 미만의 영세한 사업장이다 보니 제도적 허점은 더 심각했습니다. 20인 이상 50인 미만 사업장의 경우 안전보건관리담당자를 선임하게끔 법이 개정됐지만, 이번 사고처럼 10인 미만의 영세사업장들은 이 의무에서도 제외된 겁니다.

영세사업장과 중·소 사업장에 대한 점검이 소홀한 가운데, 50명 미만 사업장의 산업재해 사망자는 오히려 늘었습니다. 지난해 산업재해 사망자는 855명으로 전년 대비 12% 감소해 통계 작성 이후 처음으로 8백 명대로 떨어졌지만, 50명 미만 사업장에선 164명으로 전년 대비 오히려 6%가량 늘었습니다.

[연관기사] 10인 미만 사업장 산업안전 점검 사각지대

"걱정하지 말라"던 아들...대물림된 산재 사고


故 김재순 씨의 가족들은 어려운 가정 형편상 뿔뿔이 흩어져 지내왔습니다. 재순 씨의 아버지는 큰아들인 재순 씨가 다섯 살 되던 무렵 집을 나섰습니다. 먹고 살기 위해서였습니다. 20년 넘도록 일을 찾아 전국을 떠도는 사이, 마음 편하게 아들 얼굴을 볼 수 없었다던 아버지. 지난해 9월, 광주에서 일하게 됐다는 재순 씨와의 전화통화가 마지막일 줄 꿈에도 몰랐습니다. 아버지는 그때 재순 씨에게 자신과 같이 살자고 제안했습니다. 하지만 재순 씨는 거부했습니다. "걱정하지 말고 열심히 살 테니 아빠도 건강 잘 챙기고 열심히 살아라."라는 아들의 말이 마지막 유언이 됐습니다. 아버지는 그때 재순 씨를 설득하지 못한 것이 두고두고 후회스럽습니다.


손등뼈가 툭 튀어나와 구부러진 손. 김재순 씨 아버지가 제재소에서 일하다 파쇄기 사고로 얻은 상처입니다. 아들마저 같은 사고로 일터에서 세상을 떠나게 될 줄 몰랐습니다. 자신이 겪은 고통 속에서 쓰러져 갔을 아들을 생각하면 억장이 무너집니다. 비정규직 노동자이자 산업재해 희생자인 김재순 씨의 아버지. 그는 일터에서의 사고는 절대 노동자 개인의 과실일 수 없다고 말합니다.

[연관기사] 청년 노동자 故 김재순씨 추모제 열려

'주변 챙기던 따뜻한 청년'...같은 죽음 막기 위해선?


재순 씨의 일터엔 재순 씨가 평소 몰던 굴착기만 남았습니다. 재순 씨의 굴착기 한쪽엔 먼지가 묻어 거뭇해진 노란색 세월호 리본이 걸려 있습니다. 재순 씨의 지인은 재순 씨가 쉬는 날이면 팽목항을 자주 찾았다고 전합니다. 식당을 운영하는 지인의 장사가 안될 때면, 먼저 술 한잔 하자며 위로를 건네기도 하고 윗사람들에게 예의 있게 행동했습니다. 본인도 어려운 형편이었지만, 주변 사람들을 더 챙기는 마음 따뜻한 청년이었다고 기억했습니다.


유족들은 더는 같은 죽음이 되풀이돼선 안 된다고 간절히 호소합니다. 노동계와 정치권에선 노동자 산재 사망을 초래한 기업을 처벌하는 '중대 재해 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광주시에서도 지역 내 노동자들의 산업재해를 예방할 수 있는 조례를 제정하려는 움직임이 시작됐습니다. 그동안 고용노동부의 일로 여겨졌던 것을 지자체가 직접 챙기겠다는 겁니다.

서울 지하철 구의역에서 안전문을 고치다 홀로 쓰러져 간 열아홉 살의 김 군. 태안화력발전소에서 혼자 설비를 점검하다 목숨을 잃은 스물넷의 김용균 씨. 그리고 파쇄기에 끼어 빨려 들어가 숨진 지적장애인 스물여섯 김재순 씨까지. 우리는 지금껏 너무나 많은 청년 노동자들의 허무한 죽음을 목격해왔습니다. 이제는 이 죽음의 고리를 반드시 끊어내야 할 때입니다.

[연관기사] “제2 김재순 막는다”…광주시 조례 제정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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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6-08 08:00:38
    취재K
스물여섯 청년노동자 김재순 씨의 죽음

광주지방고용노동청 앞에 설치된 故 김재순 씨의 분향소. 하얀 천막 안의 작은 제단이 전부지만, 그를 추모하는 시민들의 발걸음은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바나나 우유와 과자, 커피와 소주, 케이크에 핫바까지. 그 뒤로 김재순 씨의 영정사진이 보였습니다. 고작 스물 여섯. 죽음의 흔적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말간 얼굴이었습니다.

김재순 씨는 지난달 22일 광주 광산구 하남산단의 한 재활용업체에서 홀로 일하다 파쇄기에 끼여 빨려 들어가 숨졌습니다. 지적장애가 있는 재순 씨는 사고가 난 당일뿐 아니라 평상시에도 위험이 큰 파쇄 업무를 홀로 담당해왔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무엇이 스물여섯 청년 노동자의 죽음을 불러온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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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인 1조' 원칙도, 파쇄기 안전수칙도 지켜지지 않아...명백한 '사회적 타살'


사고 당일, 김재순 씨는 혼자였습니다. 사고가 난 건 지난달 22일 오전 9시 45분쯤입니다. 폐기물이 수지 파쇄기에 걸리자 이를 제거하려던 김 씨가 중심을 잃고 미끄러졌습니다. 사고가 일어나고 20여 분 뒤 직장동료가 발견해 119에 신고했지만, 재순 씨는 이미 숨진 뒤였습니다. 2인 1조 원칙이 지켜져 누군가 기계를 멈춰줄 수만 있었다면 이토록 비극적인 죽음을 피했을 수도 있습니다.

파쇄기에 설치돼 있어야 할 안전장치도 부실했습니다. 관련법에 따라 파쇄기 투입 부에 덮개 등을 설치해야 하지만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안전 난간이나 추락방지 작업발판 역시 없었습니다. 비상시에 파쇄기의 작동을 중지할 수 있는 '비상정지 리모컨' 역시 지급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회사 측은 "평소 성실하던 재순 씨가 시키지도 않은 일을 하려다가 사고를 당한 것"이라며 재순 씨의 과실을 주장했습니다. 원래 파쇄업무 작업이 없었고, 함께 일하는 상사가 자리를 비운 사이 재순 씨가 혼자 그 일을 했다는 겁니다.

그러나 故 김재순 노동시민대책위원회가 사고가 나기 전 3일 치 CCTV를 분석한 결과, 재순 씨는 평소에도 홀로 위험한 파쇄기 위에서 일해온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사고가 나기 이틀 전 CCTV에서도 파쇄기를 능숙하게 조작하고, 파쇄기 위에 올라가 폐자재들을 모으는 모습이 포착됐습니다.

더군다나 김재순 씨는 지적장애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위험한 작업현장에서 보호받아야 할 사회적 약자였습니다. 하지만 김 씨를 지켜줄 안전장치는 그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유족과 노동조합이 명백한 '사회적 타살'이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입니다.

[연관기사] 故 김재순 씨, 위험 속 근무가 ‘일상’…“사회적 타살”

6년 전 사고에도…안전점검 '0'번


해당 업체에서 사고가 난 건 처음이 아니었습니다. 지난 2014년 60대 노동자가 목재파쇄기에 끼여 숨졌습니다. 6년 전 사고내용이 담긴 자료를 입수해 확인해 보니, 김재순 씨의 사망사고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파쇄기에 근로자가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는 덮개는 없었습니다. 비상시 작동을 멈출 수 있는 정지 장치 역시 미흡했습니다. 하지만 이후 해당 작업장에 대한 근로감독이나 안전점검은 단 한 차례도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2014년 사고 이후 별다른 산업재해가 없어서 점검 우선순위에서 제외됐기 때문입니다.

사고가 난 곳이 10인 미만의 영세한 사업장이다 보니 제도적 허점은 더 심각했습니다. 20인 이상 50인 미만 사업장의 경우 안전보건관리담당자를 선임하게끔 법이 개정됐지만, 이번 사고처럼 10인 미만의 영세사업장들은 이 의무에서도 제외된 겁니다.

영세사업장과 중·소 사업장에 대한 점검이 소홀한 가운데, 50명 미만 사업장의 산업재해 사망자는 오히려 늘었습니다. 지난해 산업재해 사망자는 855명으로 전년 대비 12% 감소해 통계 작성 이후 처음으로 8백 명대로 떨어졌지만, 50명 미만 사업장에선 164명으로 전년 대비 오히려 6%가량 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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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하지 말라"던 아들...대물림된 산재 사고


故 김재순 씨의 가족들은 어려운 가정 형편상 뿔뿔이 흩어져 지내왔습니다. 재순 씨의 아버지는 큰아들인 재순 씨가 다섯 살 되던 무렵 집을 나섰습니다. 먹고 살기 위해서였습니다. 20년 넘도록 일을 찾아 전국을 떠도는 사이, 마음 편하게 아들 얼굴을 볼 수 없었다던 아버지. 지난해 9월, 광주에서 일하게 됐다는 재순 씨와의 전화통화가 마지막일 줄 꿈에도 몰랐습니다. 아버지는 그때 재순 씨에게 자신과 같이 살자고 제안했습니다. 하지만 재순 씨는 거부했습니다. "걱정하지 말고 열심히 살 테니 아빠도 건강 잘 챙기고 열심히 살아라."라는 아들의 말이 마지막 유언이 됐습니다. 아버지는 그때 재순 씨를 설득하지 못한 것이 두고두고 후회스럽습니다.


손등뼈가 툭 튀어나와 구부러진 손. 김재순 씨 아버지가 제재소에서 일하다 파쇄기 사고로 얻은 상처입니다. 아들마저 같은 사고로 일터에서 세상을 떠나게 될 줄 몰랐습니다. 자신이 겪은 고통 속에서 쓰러져 갔을 아들을 생각하면 억장이 무너집니다. 비정규직 노동자이자 산업재해 희생자인 김재순 씨의 아버지. 그는 일터에서의 사고는 절대 노동자 개인의 과실일 수 없다고 말합니다.

[연관기사] 청년 노동자 故 김재순씨 추모제 열려

'주변 챙기던 따뜻한 청년'...같은 죽음 막기 위해선?


재순 씨의 일터엔 재순 씨가 평소 몰던 굴착기만 남았습니다. 재순 씨의 굴착기 한쪽엔 먼지가 묻어 거뭇해진 노란색 세월호 리본이 걸려 있습니다. 재순 씨의 지인은 재순 씨가 쉬는 날이면 팽목항을 자주 찾았다고 전합니다. 식당을 운영하는 지인의 장사가 안될 때면, 먼저 술 한잔 하자며 위로를 건네기도 하고 윗사람들에게 예의 있게 행동했습니다. 본인도 어려운 형편이었지만, 주변 사람들을 더 챙기는 마음 따뜻한 청년이었다고 기억했습니다.


유족들은 더는 같은 죽음이 되풀이돼선 안 된다고 간절히 호소합니다. 노동계와 정치권에선 노동자 산재 사망을 초래한 기업을 처벌하는 '중대 재해 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광주시에서도 지역 내 노동자들의 산업재해를 예방할 수 있는 조례를 제정하려는 움직임이 시작됐습니다. 그동안 고용노동부의 일로 여겨졌던 것을 지자체가 직접 챙기겠다는 겁니다.

서울 지하철 구의역에서 안전문을 고치다 홀로 쓰러져 간 열아홉 살의 김 군. 태안화력발전소에서 혼자 설비를 점검하다 목숨을 잃은 스물넷의 김용균 씨. 그리고 파쇄기에 끼어 빨려 들어가 숨진 지적장애인 스물여섯 김재순 씨까지. 우리는 지금껏 너무나 많은 청년 노동자들의 허무한 죽음을 목격해왔습니다. 이제는 이 죽음의 고리를 반드시 끊어내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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