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년째 동거 중”…원전에서 ‘1.2㎞’

입력 2020.11.19 (16:35) 수정 2020.11.19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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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극 124개' 나온 한빛원전 3호기 재가동…안전? 위험?

한빛원전 3호기가 지난 14일 발전을 재개했습니다. 격납건물에 '공극', 즉 구멍이 발견된 바로 그 원전입니다. 원전 하면 떠오르는 둥근 지붕의 격납건물은 방사능 누출을 막기 위한 '최후의 보루'입니다. 그 보루에서 찾아낸 구멍은 124개. 일부 구멍에서는 기름도 나왔습니다. 콘크리트로 지은 격납건물에 균열이 있고 그 틈에서 샜다는 주장이 제기됐습니다. 구멍과 균열에 따른 불안감은 커졌습니다.

재가동은 2년 반 만에 이뤄졌습니다. 한국수력원자력은 "안전하다"고 말합니다. 구멍을 모두 보수했고 해외 시험기관 등을 통해 격납건물에 이상이 없다는 확인을 받았다고 밝혔습니다. 기름은 건설 당시 새어 나온 것으로 구조적 균열은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한빛원전(전남 영광군)한빛원전(전남 영광군)

탈핵 단체는 곧바로 반발했습니다. 보수했다지만 구멍이 계속 커질 수 있어 다시 가동을 멈춰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한수원과 용역 관계인 업체가 검증을 맡아 결과를 믿을 수 없다고도 말합니다. 지역 정치권도 목소리를 냈습니다. 전북도의회 한빛원전 대책 특별위원회는 원전 인근 주민들의 불안감을 해소하지 못한 채 재가동을 결정했다고 지적했습니다.

재가동 며칠 만에 최대 출력에 도달한 한빛 3호기처럼 안전성 논란도 뜨거워지고 있습니다.

원전은 '전남 영광'에 있는데 왜 전라북도가 불안해?

한빛원전은 전남 영광에 있습니다. 그런데 재가동에 반대하는 목소리는 전북에서도 나옵니다. 왜일까요?

한빛원전 방사선비상계획구역(파란선)한빛원전 방사선비상계획구역(파란선)

정부는 원전 반경 최대 30㎞ 안을 '방사선 비상계획구역'으로 정했습니다. 구역에 속한 지자체들은 원전 사고 대피 지침을 만들고 정기적으로 훈련을 해야 합니다. 원전과 가까운 만큼 더 위험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한빛원전은 전남과 전북의 경계 바로 옆에 있습니다. 전북에서도 고창군과 부안군 일부가 이 구역 안에 들어갑니다. 구역 내 전북도민은 6만5천 명. 전남 영광군 전체 인구보다 많습니다.

사고가 나면 전북 대부분 지역에 방사성 물질이 퍼질 거라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전북 정읍시 의뢰로 한국자치경제연구원이 진행했습니다. 사고 규모와 풍속 등을 최악으로 가정한 결과, 사고 3시간 뒤 한빛원전으로부터 50㎞ 떨어진 정읍에 방사성 물질이 도달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9시간 뒤에는 전북 전체를 뒤덮는다고 합니다.

한빛원전 방사성 물질 누출 모의 실험한빛원전 방사성 물질 누출 모의 실험

그렇다면 지원은 어떨까요? 원전 주변 지역 지원금은 영광군 87%, 고창군 13%로 분배됩니다. 한해 20~30억에 이르는 지역자원시설세는 원전 소재지가 아니라는 이유로 한 푼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불안은 '같이', 지원은 '따로'. 원전 주변 지자체의 현실입니다.

■원전과 2㎞ 떨어진 '고창 구시포'…"사고만은 없기를"

한빛 3호기 발전 재개 뒤 전북 고창군 구시포에 갔습니다. 한빛원전과 직선거리로 1~2㎞ 떨어진 곳입니다. 짙은 안개 속에서도 바다 건너 원전을 볼 수 있습니다.

고창 구시포에서 바라본 한빛원전고창 구시포에서 바라본 한빛원전

주민들과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한빛원전이 언제 가동을 시작했는지 정확한 연도까지 기억하는 '원전 박사들'이었습니다. 한빛 3호기 재가동에 관해 묻자 70대 주민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가동 안 해야 할 것을 가동해서 무슨 사고라도 나면 제일 먼저 피해 보는 것은 지역 주민 아닙니까." (고창 구시포 주민 박정수 씨)

식당을 운영하는 한 주민은 관광객이 줄어들까 봐 걱정이라고 털어놨습니다. 안 그래도 코로나19로 어려운데 안전성 논란에 휩싸인 원전까지 재가동해 피해를 볼까 걱정했습니다. 막연한 불안만이 아닙니다. 구시포 어민들은 실제 피해를 보고 있다고 말합니다. 3호기 재가동으로 원자로를 식힌 뒤 배출하는 바닷물, 즉 온배수가 늘면서 조금씩 살아나던 어장이 다시 망가지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바다) 온도가 높아지기 때문에 어류들이 다른 데로, 살 수 있는 공간으로 이동하겠죠. 그래서 그 자리는 황폐화가 될 수밖에 없다." (고창 구시포 어민 방채열 씨)

주민들은 전남 영광이나 전북 고창이나 원전을 마주 보며 사는 건 똑같은 데 지원이 다르다며 서운함을 감추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도 원전을 없애자는 건 아니라고 입을 모았습니다. 나라가 하는 일이니까 그러려니 받아들이며 산다고 말했습니다.

한 어르신에게 바라는 걸 물었습니다. 보상도 탈원전도 아니었습니다. "사고만은 없어야죠."
원전과 동거한 지 30여 년. 주민들은 그렇게 살고 있었습니다.

*함께 보기(KBS 전주방송총국은 한빛 3호기 재가동을 전후해 다양한 뉴스를 전했습니다.)

1. 한빛원전 3호기 재가동 임박…논란 가중(10/28)
2. “원전사고 때 정읍도 영향”…지원은 소외(10/28)
3. 원전 사고 때 편도 2차로로 차량 수천 대 대피?(10/29)
4. 전남 한빛원전 3호기 재가동…“여전히 불안” 반발(11/16)
5. 불안한 원전 주변 주민들…“사고만 안 나기를”(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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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년째 동거 중”…원전에서 ‘1.2㎞’
    • 입력 2020-11-19 16:35:01
    • 수정2020-11-19 16:37:41
    취재K

■ '공극 124개' 나온 한빛원전 3호기 재가동…안전? 위험?

한빛원전 3호기가 지난 14일 발전을 재개했습니다. 격납건물에 '공극', 즉 구멍이 발견된 바로 그 원전입니다. 원전 하면 떠오르는 둥근 지붕의 격납건물은 방사능 누출을 막기 위한 '최후의 보루'입니다. 그 보루에서 찾아낸 구멍은 124개. 일부 구멍에서는 기름도 나왔습니다. 콘크리트로 지은 격납건물에 균열이 있고 그 틈에서 샜다는 주장이 제기됐습니다. 구멍과 균열에 따른 불안감은 커졌습니다.

재가동은 2년 반 만에 이뤄졌습니다. 한국수력원자력은 "안전하다"고 말합니다. 구멍을 모두 보수했고 해외 시험기관 등을 통해 격납건물에 이상이 없다는 확인을 받았다고 밝혔습니다. 기름은 건설 당시 새어 나온 것으로 구조적 균열은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한빛원전(전남 영광군)
탈핵 단체는 곧바로 반발했습니다. 보수했다지만 구멍이 계속 커질 수 있어 다시 가동을 멈춰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한수원과 용역 관계인 업체가 검증을 맡아 결과를 믿을 수 없다고도 말합니다. 지역 정치권도 목소리를 냈습니다. 전북도의회 한빛원전 대책 특별위원회는 원전 인근 주민들의 불안감을 해소하지 못한 채 재가동을 결정했다고 지적했습니다.

재가동 며칠 만에 최대 출력에 도달한 한빛 3호기처럼 안전성 논란도 뜨거워지고 있습니다.

원전은 '전남 영광'에 있는데 왜 전라북도가 불안해?

한빛원전은 전남 영광에 있습니다. 그런데 재가동에 반대하는 목소리는 전북에서도 나옵니다. 왜일까요?

한빛원전 방사선비상계획구역(파란선)
정부는 원전 반경 최대 30㎞ 안을 '방사선 비상계획구역'으로 정했습니다. 구역에 속한 지자체들은 원전 사고 대피 지침을 만들고 정기적으로 훈련을 해야 합니다. 원전과 가까운 만큼 더 위험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한빛원전은 전남과 전북의 경계 바로 옆에 있습니다. 전북에서도 고창군과 부안군 일부가 이 구역 안에 들어갑니다. 구역 내 전북도민은 6만5천 명. 전남 영광군 전체 인구보다 많습니다.

사고가 나면 전북 대부분 지역에 방사성 물질이 퍼질 거라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전북 정읍시 의뢰로 한국자치경제연구원이 진행했습니다. 사고 규모와 풍속 등을 최악으로 가정한 결과, 사고 3시간 뒤 한빛원전으로부터 50㎞ 떨어진 정읍에 방사성 물질이 도달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9시간 뒤에는 전북 전체를 뒤덮는다고 합니다.

한빛원전 방사성 물질 누출 모의 실험
그렇다면 지원은 어떨까요? 원전 주변 지역 지원금은 영광군 87%, 고창군 13%로 분배됩니다. 한해 20~30억에 이르는 지역자원시설세는 원전 소재지가 아니라는 이유로 한 푼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불안은 '같이', 지원은 '따로'. 원전 주변 지자체의 현실입니다.

■원전과 2㎞ 떨어진 '고창 구시포'…"사고만은 없기를"

한빛 3호기 발전 재개 뒤 전북 고창군 구시포에 갔습니다. 한빛원전과 직선거리로 1~2㎞ 떨어진 곳입니다. 짙은 안개 속에서도 바다 건너 원전을 볼 수 있습니다.

고창 구시포에서 바라본 한빛원전
주민들과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한빛원전이 언제 가동을 시작했는지 정확한 연도까지 기억하는 '원전 박사들'이었습니다. 한빛 3호기 재가동에 관해 묻자 70대 주민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가동 안 해야 할 것을 가동해서 무슨 사고라도 나면 제일 먼저 피해 보는 것은 지역 주민 아닙니까." (고창 구시포 주민 박정수 씨)

식당을 운영하는 한 주민은 관광객이 줄어들까 봐 걱정이라고 털어놨습니다. 안 그래도 코로나19로 어려운데 안전성 논란에 휩싸인 원전까지 재가동해 피해를 볼까 걱정했습니다. 막연한 불안만이 아닙니다. 구시포 어민들은 실제 피해를 보고 있다고 말합니다. 3호기 재가동으로 원자로를 식힌 뒤 배출하는 바닷물, 즉 온배수가 늘면서 조금씩 살아나던 어장이 다시 망가지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바다) 온도가 높아지기 때문에 어류들이 다른 데로, 살 수 있는 공간으로 이동하겠죠. 그래서 그 자리는 황폐화가 될 수밖에 없다." (고창 구시포 어민 방채열 씨)

주민들은 전남 영광이나 전북 고창이나 원전을 마주 보며 사는 건 똑같은 데 지원이 다르다며 서운함을 감추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도 원전을 없애자는 건 아니라고 입을 모았습니다. 나라가 하는 일이니까 그러려니 받아들이며 산다고 말했습니다.

한 어르신에게 바라는 걸 물었습니다. 보상도 탈원전도 아니었습니다. "사고만은 없어야죠."
원전과 동거한 지 30여 년. 주민들은 그렇게 살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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