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납 검출’ 걱정 없는 수도꼭지, 가능할까요?

입력 2021.03.25 (11:27) 수정 2021.04.09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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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수도꼭지 등 수도용 자재는 위생안전기준인 ‘KC인증’을 반드시 받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판매할 수 없습니다. 검사 대상에는 납과 니켈 등 중금속 12종이 포함됩니다.

KBS 탐사보도부는 KC인증을 통과한 수도꼭지에서 유해 중금속이 검출된다는 제보를 접수해 직접 정부 지정 검사 기관에 시험을 의뢰했습니다. 그 결과 실제로 납과 니켈 등 중금속이 기준치 이상 검출됐습니다.

<관련 기사>
* [탐사K] ‘KC 인증’ 수도꼭지에서 기준치 이상 납 검출
* [탐사K] 반복되는 수도꼭지 중금속 검출…못 믿을 KC 인증
* [탐사K] 물 온도 높으면 납 검출량↑…“먹는 물은 안전”

오늘은 마지막으로 잊을만 하면 터지는 ‘수도꼭지 중금속 검출 논란’의 근본적인 원인과 해결책을 짚어봅니다.


■ 수도꼭지에 꼭 ‘납’이 들어가야 하나요?

수도꼭지 같은 제품은 수돗물을 통해 인체와 바로 접촉하는데, 납 같은 유해 중금속은 넣지 않도록 규제하면 안될까?

수도꼭지 관련 취재를 시작했을 때 이런 의문이 들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제조 공정에 소량의 납은 필요합니다. 납이 제품의 ‘가공성’을 높이기 때문입니다. 납 함량이 많을수록 제품 가공이 쉬워진다는 건데, 다양한 모양으로 가공해야 하는 수도꼭지 제조 과정에서 꽤 중요한 부분입니다.

납 함량이 적으면 가공이 어려워지고, 불량품이 나오는 빈도도 높아집니다. 다시 말해 납을 많이 쓰면 ‘생산성’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이점은 또 있습니다. 납 함량이 많은 원재료일수록 가격이 저렴합니다.

물론, 이렇게 이점이 많지만 단점이 너무 강력한 것이 문제입니다. 납은 인체에 섭취량의 최대 10%까지 흡수되고 뼈와 혈액에 흡착될 위험도 있어 대부분 생활용품에 사용을 엄격하게 규제하고 있습니다.


■ 제조업체 대부분 영세 규모...“구조적 위험”

환경부 ‘물산업 통계조사 보고서’를 보면 국내 물산업 관련 제조업체의 90% 이상은 종업원 수 50명 미만입니다.

대부분 영세한 데다 ‘저가 입찰’을 위해 제조 단가를 낮춰야 하는 업체 입장에서는 KC 인증을 통과한 후, 납이 많은 저가 재료로 바꿔쓰고 싶은 유혹에 시달릴 수 있습니다.

게다가 수도꼭지 제조 업체들은 소기업의 여건상 별도의 품질관리 전문 인력을 두고 있지 않습니다. 또 생산 전 과정을 완전히 책임지지 못하는 업체들도 많습니다.

일반적으로 수도꼭지 제조 공정은 ‘주조→가공→연마→도금→조립’의 순서로 이뤄집니다. 여기서 일부 공정을 다른 업체에 맡기거나, 완제품에 들어가는 부품 중 일부만 직접 생산하고 나머지는 납품을 받아 최종 조립하는 업체들도 상당수입니다.

기준에 맞게 제조하려고 해도 중간에 일부 업체가 공정을 소홀히 하거나 불량 제품을 납품하면 문제가 생길 위험이 있다는 얘기입니다.

■ 결국에는 관리 감독…이번에도 현실의 벽

상황이 이렇다보니 결국엔 정부가 제도적으로 관리해야 합니다. 철저한 사후 관리도 필요합니다.

정부도 필요성을 알고 2014년부터 KC인증 제품에 대해 ‘정기 검사’와 별도로 ‘수시 검사’ 제도를 도입했습니다. 하지만 ‘생색내기’ 수준입니다. 지난해 수시 검사를 받은 KC 인증 수도꼭지는 13개에 그쳤습니다.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4년 간 수도용 제품 ‘수시 검사’ 예산은 매년 7억 5천만 원선, 그나마 올해는 소폭 늘어 8억 원입니다. 제품 한 개당 검사 비용은 수백만 원. 7억여 원으로 수도꼭지를 포함해 수도용 자재 전반을 검사해야 하니 대상이 제한될 수 밖에 없습니다.


환경부는 KBS 보도가 나간 뒤 즉시 보도자료를 내고 올해 안에 모든 수도꼭지 제품에 대해 검사를 진행하고, 수시 검사 예산을 늘려 내년부터는 대상을 전체의 30%까지 늘리겠다고 밝혔습니다. 늦었지만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 근본적인 해결책은? “납 함량 기준 낮춰야”

다만 검사 횟수를 늘리는 게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는 없습니다. 논란이 불거지면 대대적으로 검사하지만 해마다 이렇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수시 검사라는 건 수사기관의 압수수색처럼 기민하게 진행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따라서 검사용 제품과 시판용 제품을 따로 만드는 건 언제든 가능하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 얘기입니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크게 두 가지를 제안합니다.

우선 KC 인증 통과 후 기준에 맞지 않게 제품을 제조했다가 적발될 경우, 처벌을 강화하는 겁니다. 현재는 인증을 받은 후 수시 검사에서 ‘부적격’ 판정을 받으면 해당 제품은 ‘인증 취소’ 대상이 됩니다. 나아가 환경부장관은 문제가 된 제품의 수거를 ‘권고’할 수 있고, 업체가 이를 따르지 않을 경우 수거 ‘명령’을 내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조업체는 해당 제품에 대해 6개월만 지나면 재인증을 신청할 수 있고, 다른 생산 제품에 대해서는 인증 신청에 아무런 제한이 없습니다.

법을 강화해 여러 번 적발된 업체에 대해서는 향후 인증 신청을 못하도록 막거나, 심각할 경우 사업자 면허 등을 박탈하도록 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 지적입니다.


취재 과정에 만난 정부 기관 관계자들, 전문가, 업계 관계자들이 모두 동의한 해결책도 하나 있습니다. 아예 제품을 제조할 때부터 납 함량 기준을 강화해야 한다는 겁니다.

현재 국내에서 생산되는 수도용 제품 원재료의 납 함량 허용 기준은 3%입니다. 미국이나 일본, 타이완의 납 함량 기준은 0.25%입니다.


반면, 국내 수도용 자재 완제품의 중금속 검출 기준은 미국, 일본 등과 비교해 차이가 없습니다. 검출 기준을 애초에 외국 사례를 참고해 정했기 때문입니다.

정작 제조 과정에서 납 함량 허용 기준은 외국보다 높지만 검출 기준은 엄격하다 보니, KC 인증 시험만 통과한 후 납이 많이 든 저가 재료로 바꾸는 일이 생기고,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늘 있는 겁니다.

원재료 기준을 강화하면 영세한 제조업체들이 힘들어지지는 않을까요? “오히려 해법이 될 수도 있다”는 게 업계 얘기입니다. 저가 재료 사용이 아예 원천적으로 금지되면 제조업체로서도 ‘눈속임’, ‘저가 경쟁’을 하지 않을 거란 겁니다.

물론 제도를 뜯어고치는 게 간단한 일은 아닙니다. 법도 개정해야 하고, 환경부와 산업통상자원부 등 관계부처 협의도 필요합니다.

하지만 정말 필요한 일이라면, 이제 논의를 시작할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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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납 검출’ 걱정 없는 수도꼭지, 가능할까요?
    • 입력 2021-03-25 11:27:29
    • 수정2021-04-09 19:21:23
    취재후·사건후
수도꼭지 등 수도용 자재는 위생안전기준인 ‘KC인증’을 반드시 받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판매할 수 없습니다. 검사 대상에는 납과 니켈 등 중금속 12종이 포함됩니다.<br /><br />KBS 탐사보도부는 KC인증을 통과한 수도꼭지에서 유해 중금속이 검출된다는 제보를 접수해 직접 정부 지정 검사 기관에 시험을 의뢰했습니다. 그 결과 실제로 납과 니켈 등 중금속이 기준치 이상 검출됐습니다.<br /><br />&lt;관련 기사&gt;<br />* <a href="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144806">[탐사K] ‘KC 인증’ 수도꼭지에서 기준치 이상 납 검출</a><br />* <a href="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144809" target="_self">[탐사K] 반복되는 수도꼭지 중금속 검출…못 믿을 KC 인증</a><br />* <a href="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145808" target="_self">[탐사K] 물 온도 높으면 납 검출량↑…“먹는 물은 안전”</a><br /><br />오늘은 마지막으로 잊을만 하면 터지는 ‘수도꼭지 중금속 검출 논란’의 근본적인 원인과 해결책을 짚어봅니다.

■ 수도꼭지에 꼭 ‘납’이 들어가야 하나요?

수도꼭지 같은 제품은 수돗물을 통해 인체와 바로 접촉하는데, 납 같은 유해 중금속은 넣지 않도록 규제하면 안될까?

수도꼭지 관련 취재를 시작했을 때 이런 의문이 들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제조 공정에 소량의 납은 필요합니다. 납이 제품의 ‘가공성’을 높이기 때문입니다. 납 함량이 많을수록 제품 가공이 쉬워진다는 건데, 다양한 모양으로 가공해야 하는 수도꼭지 제조 과정에서 꽤 중요한 부분입니다.

납 함량이 적으면 가공이 어려워지고, 불량품이 나오는 빈도도 높아집니다. 다시 말해 납을 많이 쓰면 ‘생산성’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이점은 또 있습니다. 납 함량이 많은 원재료일수록 가격이 저렴합니다.

물론, 이렇게 이점이 많지만 단점이 너무 강력한 것이 문제입니다. 납은 인체에 섭취량의 최대 10%까지 흡수되고 뼈와 혈액에 흡착될 위험도 있어 대부분 생활용품에 사용을 엄격하게 규제하고 있습니다.


■ 제조업체 대부분 영세 규모...“구조적 위험”

환경부 ‘물산업 통계조사 보고서’를 보면 국내 물산업 관련 제조업체의 90% 이상은 종업원 수 50명 미만입니다.

대부분 영세한 데다 ‘저가 입찰’을 위해 제조 단가를 낮춰야 하는 업체 입장에서는 KC 인증을 통과한 후, 납이 많은 저가 재료로 바꿔쓰고 싶은 유혹에 시달릴 수 있습니다.

게다가 수도꼭지 제조 업체들은 소기업의 여건상 별도의 품질관리 전문 인력을 두고 있지 않습니다. 또 생산 전 과정을 완전히 책임지지 못하는 업체들도 많습니다.

일반적으로 수도꼭지 제조 공정은 ‘주조→가공→연마→도금→조립’의 순서로 이뤄집니다. 여기서 일부 공정을 다른 업체에 맡기거나, 완제품에 들어가는 부품 중 일부만 직접 생산하고 나머지는 납품을 받아 최종 조립하는 업체들도 상당수입니다.

기준에 맞게 제조하려고 해도 중간에 일부 업체가 공정을 소홀히 하거나 불량 제품을 납품하면 문제가 생길 위험이 있다는 얘기입니다.

■ 결국에는 관리 감독…이번에도 현실의 벽

상황이 이렇다보니 결국엔 정부가 제도적으로 관리해야 합니다. 철저한 사후 관리도 필요합니다.

정부도 필요성을 알고 2014년부터 KC인증 제품에 대해 ‘정기 검사’와 별도로 ‘수시 검사’ 제도를 도입했습니다. 하지만 ‘생색내기’ 수준입니다. 지난해 수시 검사를 받은 KC 인증 수도꼭지는 13개에 그쳤습니다.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4년 간 수도용 제품 ‘수시 검사’ 예산은 매년 7억 5천만 원선, 그나마 올해는 소폭 늘어 8억 원입니다. 제품 한 개당 검사 비용은 수백만 원. 7억여 원으로 수도꼭지를 포함해 수도용 자재 전반을 검사해야 하니 대상이 제한될 수 밖에 없습니다.


환경부는 KBS 보도가 나간 뒤 즉시 보도자료를 내고 올해 안에 모든 수도꼭지 제품에 대해 검사를 진행하고, 수시 검사 예산을 늘려 내년부터는 대상을 전체의 30%까지 늘리겠다고 밝혔습니다. 늦었지만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 근본적인 해결책은? “납 함량 기준 낮춰야”

다만 검사 횟수를 늘리는 게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는 없습니다. 논란이 불거지면 대대적으로 검사하지만 해마다 이렇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수시 검사라는 건 수사기관의 압수수색처럼 기민하게 진행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따라서 검사용 제품과 시판용 제품을 따로 만드는 건 언제든 가능하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 얘기입니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크게 두 가지를 제안합니다.

우선 KC 인증 통과 후 기준에 맞지 않게 제품을 제조했다가 적발될 경우, 처벌을 강화하는 겁니다. 현재는 인증을 받은 후 수시 검사에서 ‘부적격’ 판정을 받으면 해당 제품은 ‘인증 취소’ 대상이 됩니다. 나아가 환경부장관은 문제가 된 제품의 수거를 ‘권고’할 수 있고, 업체가 이를 따르지 않을 경우 수거 ‘명령’을 내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조업체는 해당 제품에 대해 6개월만 지나면 재인증을 신청할 수 있고, 다른 생산 제품에 대해서는 인증 신청에 아무런 제한이 없습니다.

법을 강화해 여러 번 적발된 업체에 대해서는 향후 인증 신청을 못하도록 막거나, 심각할 경우 사업자 면허 등을 박탈하도록 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 지적입니다.


취재 과정에 만난 정부 기관 관계자들, 전문가, 업계 관계자들이 모두 동의한 해결책도 하나 있습니다. 아예 제품을 제조할 때부터 납 함량 기준을 강화해야 한다는 겁니다.

현재 국내에서 생산되는 수도용 제품 원재료의 납 함량 허용 기준은 3%입니다. 미국이나 일본, 타이완의 납 함량 기준은 0.25%입니다.


반면, 국내 수도용 자재 완제품의 중금속 검출 기준은 미국, 일본 등과 비교해 차이가 없습니다. 검출 기준을 애초에 외국 사례를 참고해 정했기 때문입니다.

정작 제조 과정에서 납 함량 허용 기준은 외국보다 높지만 검출 기준은 엄격하다 보니, KC 인증 시험만 통과한 후 납이 많이 든 저가 재료로 바꾸는 일이 생기고,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늘 있는 겁니다.

원재료 기준을 강화하면 영세한 제조업체들이 힘들어지지는 않을까요? “오히려 해법이 될 수도 있다”는 게 업계 얘기입니다. 저가 재료 사용이 아예 원천적으로 금지되면 제조업체로서도 ‘눈속임’, ‘저가 경쟁’을 하지 않을 거란 겁니다.

물론 제도를 뜯어고치는 게 간단한 일은 아닙니다. 법도 개정해야 하고, 환경부와 산업통상자원부 등 관계부처 협의도 필요합니다.

하지만 정말 필요한 일이라면, 이제 논의를 시작할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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