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 쉬미항에서 1시간 정도 배를 타고 가면 닿을 수 있는 가사도.

항구에 들어서기 전부터 세차게 돌아가는 풍력 발전기 4기가 위용을 자랑하며 입도객들을 반긴다.

가사도항 초입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풍력 발전기와 태양광 패널들을 볼 수 있다.

풍력 발전기 사이로 보이는 널따란 태양광 패널들은 바다의 일렁임과 함께 섬을 온통 반짝거림으로 수놓는다. 2년 전 가사도에서는 볼 수 없었던 낯선 풍경이다.

갈등 시작

가사도는 친환경 에너지로 100% 에너지 자립을 실현했다.

가사도 발전소장 이영환(46) 씨와 이장 김계석(60) 씨는 최근까지도 사이가 좋지 않았다. 이장을 포함해 가사도 주민 모두가 육지에서 가전제품 하나를 들여오려면 발전소에 일일이 신고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마저도 허가를 잘 내주지 않아 다시 뭍으로 돌려보내기 일쑤였다. 전기 부족이 심각해질수록 주민들의 불만은 쌓여만 갔고 발전소장과의 갈등의 골도 깊어만 갔다.

가사도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이혜자(62) 씨는 "예전에 한 번 업소용 대형 냉장고를 주문했다가 발전소장이 달려와 말리는 바람에 그대로 다시 배에 실려 보낸 적이 있다"고 이야기했다.

2014년 9월까지만 해도 가사도는 100kW급 디젤 발전기 석 대로 섬 전체 전력을 의존해 왔다. 그나마 석 대 중 한 대는 예비용이라 가동할 수 없었고, 나머지 두 대도 안전 문제로 90% 이상 출력을 내기 어려웠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발전소장은 섬 내의 등대와 레이더기지, 주민들이 사용하는 전력량의 총합을 늘 제한할 수밖에 없었다. 주민들에게는 전등과 냉장고, TV 정도의 가전만이 허락됐고, 서로 더 많은 전기 용량의 가전제품을 쓰는지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하는 웃지 못할 일들이 벌어지기도 했다.

전복 양식 하고 싶어도 전기 없어 못해

가사도에 불어온
친환경 바람

그런 가사도에 2014년 10월 신재생 에너지가 찾아왔다. 풍력 발전기와 태양광 패널이 생기면서 가사도 주민들의 생활은 이전과 확연히 달라진 것이다.

자정이면 불을 꺼야 했던 예전과 달리, 이제는 신고하지 않고도 다양한 가전을 들여와 사용할 수 있게 됐고 전력 부족으로 포기했던 생업도 크게 확대될 수 있었다.

식당 주인 이 씨는 다시 냉장고를 샀고, 가사도 특산물인 톳을 양식하는 가구들은 수확한 톳을 말리는 데 필요한 건조기를 들여놓을 수 있게 됐다. 생 톳과 건조된 톳은 판매 단가 자체가 배 이상 차이가 난다.

신재생 에너지 덕분에 전기 충분히 쓸 수 있어

발전소장 이 씨는 당당하게 실시간 전력 생산과 사용량을 스크린에 띄운다. 디젤 발전기의 전력 생산량은 0kW. 전혀 발전을 하고 있지 않다는 얘기다.

햇빛이 잘 들고 바람이 적당히 부는 날이면 친환경 신재생 에너지만으로 섬 전체의 전력을 공급하고도 남는다.

37m 높이의 풍력 발전기 4기는 개당 100kW씩 모두 400kW의 전력을 생산해 내고 태양광 발전기 8곳이 공급하는 전력량도 최대 324kW에 이른다. 예전 평균 95kW로 제한했던 것에 비하면 디젤 발전기를 돌리지 않고도 8배 가까이 많은 전력을 생산해 낼 수 있게 된 셈이다.

가사도 디젤 발전소는 이제 예비용 자리로 물러앉아 노쇠한 몸을 편히 쉬일 수 있게 됐다. 그리고 '국내 첫 100% 에너지 자립'은 가사도 주민들의 자부심이 됐다.

마이크로그리드 시스템이란 에너지 저장 시스템(ESS, Energy Storage System)과 에너지 관리 시스템(EMS, Energy Management System)의 결합체다. 이 시스템 덕분에 섬의 신재생 에너지원을 이용해 만든 전력을 넘칠 때 저장해 두었다가 수요에 맞게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가사도보다 먼저 친환경 에너지 자립을 시도한 가파도의 경우, 비용과 기술 문제 등으로 마이크로그리드 시스템을 도입하지 못해 현재 에너지 자립률이 50%에 그치고 있다.

다시 기르게 된
톳과 전복

사용 가능한 전력량은 사실 그 지역 산업 발전과도 직결된다.

10여 년 전 가사도에는 전복 양식장 4곳이 새롭게 개설되려다 무산된 적이 있다. 전복 양식을 하려면 양식장 하나당 40kW의 전력이 필요한데 늘어나는 160kW의 전력을 기존 디젤 발전으로는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2009년에도 100kW의 전력을 필요로 하는 톳 가공 공장이 같은 이유로 들어서지 못했다. 이렇게 무산된 사업은 주민들에게 큰 실망감을 안겨줬다.

하지만 친환경 신재생 에너지와 마이크로그리드 시스템이 도입된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 가사도 발전소에서 20년째 근무 중인 발전소장 이영환 씨는 "신재생 에너지가 도입돼 전체 전력 용량도 늘었고, 마이크로그리드 시스템까지 있어 전복 양식이 가능해졌다"고 말했다. "2018년쯤에는 가산도산(産) 전복을 맛볼 수 있을 것"이라며 활짝 웃기도 했다.

에너지 저장 장치로 이제 전력 부족 걱정 없어

그린 에너지로
'그린 라이트'

디젤 발전을 멈추게 한 가사도의 에너지 자립은 가사도의 연료 사용과 온실가스 배출을 획기적으로 줄였다.

친환경 에너지 자립이 시행되기 전인 2013년 10월부터 2014년 9월까지 1년 동안 26만 리터였던 연간 연료 사용량은 이듬해 같은 기간 6만 리터로 1/4로 크게 줄었다. 탄소 배출 저감량도 연간 607톤으로, 소나무 9만 2천 그루를 심는 것과 같은 효과를 보았다.

에너지 자립이 가져다준 열매는 달고도 달았다.

에너지 자립,
평화를 가져오다

발전소장 이 씨와 이장 김 씨는 이제 더없이 막역한 사이가 됐다. 냉장고 하나를 가지고 옥신각신하던 갈등은 사라진 지 오래. 둘은 "변화가 시작된 지 2년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디젤 발전기만 사용하던 시절은 기억도 나지 않는다"고 입을 모았다.

전력 부하량이 출력량을 초과할까 전전긍긍하던 발전소장도, 가전제품 하나 제대로 들이지 못해 늘 불만이던 이장도 이제는 가사도에서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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