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증없는 뇌물사건’ 수사 힘들어질 듯

입력 2010.04.09 (16:16)

`진술 신빙성, 절차 정당성' 확보가 관건

뇌물수수 혐의로 기소된 한명숙 전 국무총리에게 무죄가 선고되면서 앞으로 뇌물사건 수사에서 공여자 진술의 신빙성과 절차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일이 수사기관의 중요 과제로 떠올랐다.

검찰은 이번 재판에서 한 전 총리에게 "5만달러를 전달했다"는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의 진술과 두 사람의 친분관계 등 여러가지 정황증거를 근거로 유죄를 확신했으나, 법원은 "곽씨 진술의 신빙성에 의심이 간다"며 피고인의 손을 들어줬다.

수사기관은 공여자의 자백을 뇌물수수 사건의 결정적인 증거로 간주해 왔으나 법원은 자백을 이끌어내는 과정의 공정성과 진술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일도 이에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점을 확인시킨 것이다.

정치인이나 고위 공직자를 상대로 한 뇌물 범죄는 대체로 눈에 띄는 물적 증거를 남기지 않아 다른 형사사건에 비해 뇌물 공여자나 전달자, 목격자 등 참고인의 진술에 크게 의존하는 편이다.

은밀하게 부정한 돈이 오가고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뇌물의 특성상 수표나 계좌이체 등 흔적이 남는 방식보다는 밀실에서 직접 현금을 전달하는 방식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검찰은 "곽씨가 한 전 총리에게 5만달러를 줬다는 일관된 진술은 살인 사건으로 치면 범행의 목격자를 확보한 것과 마찬가지로 확고부동한 증거"라고 자신했다.

그러나 곽씨는 처음에 "5만달러를 한 전 총리에게 직접 건넸다"고 했다가 재판이 시작되자 "돈봉투를 의자 위에 올려놨다"는 식으로 몇 차례 증언을 바꾸고 검찰 수사에 대한 두려움을 표시해 언행의 신빙성이 문제가 됐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수뢰자로 지목된 피고인이 수뢰 사실을 시종 부인하고 이를 뒷받침할 금융자료 등의 물증이 없으면 공여자의 진술에 신빙성이 있는지를 일차적 기준으로 삼는다.

이번 재판에서 검찰은 곽씨가 뇌물을 준 시점과 장소, 금액 등의 핵심 내용을 한결같이 진술한 이상 신빙성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강조했지만, 재판부는 검찰 조사의 적법성 등을 근거로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검찰 내부에서는 이번 재판을 계기로 뇌물사건 수사가 더욱 힘들어질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검찰의 신문을 일관되게 거부한 한 전 총리에게 무죄가 선고됨에 따라 뇌물사건 피고인들이 한결같이 진술거부권을 행사할지 모른다는 우려도 내놨다.

검찰은 뇌물 공여자의 진술 번복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 증거보전제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등의 개선책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검찰이 곽씨에 대해 심야조사를 강행한 것이 진술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는 점에서 수사 과정에서 피의자의 권리를 최대한 존중하는 태도를 보여 그동안 쌓인 불신을 극복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공직자 재산 등록 및 검증 시스템을 개선해 의심스러운 돈거래 흐름을 조기에 적발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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