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가 주목’ 한국축구, 눈부신 성장

입력 2010.06.27 (07:03)

수정 2010.06.27 (09:29)

한국축구가 2010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에서 사상 첫 원정 월드컵 16강 진출이라는 유쾌한 도전에 성공했다.

비록 남미 강호 우루과이의 벽에 가로막혀 8강까지 나아가지는 못했지만, 원정 대회 출전 사상 처음으로 16강 진출을 이뤄내며 2002 한·일 월드컵의 4강 신화가 결코 운이 아니었음을 세계 축구계에 알렸다.

한국축구는 한·일 월드컵 이후 괄목할 만한 성장을 하면서 서서히 세계축구의 변방에서 중심으로 옮겨가고 있다.

나이는 어리지만, 일찌감치 해외에 진출해 경험을 쌓은 선수들이 많아졌고, 과학적인 조련과 아낌없는 투자 및 지원 등도 한국 축구의 성장에 한몫했다.

한국축구가 아시아를 넘어 세계무대에서도 주목받을 수 있게 된 배경을 살펴본다.

◇세대교체의 성공

2007년 12월 한국 대표팀 사령탑으로 선임된 허정무(55) 감독이 2년6개월 재임 기간 가장 심혈을 기울인 것 중 하나가 세대교체다.

한국은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4강까지 올랐다. 하지만 이후 4강 신화의 그늘 속에서 세대교체라는 당면 과제를 제대로 풀지 못했다.

허 감독은 2000년 시드니 올림픽을 앞두고 명지대에 재학 중이었던 무명의 박지성(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게 처음 태극마크를 달게 해 세계적 스타로 성장할 기회를 열어주는 등 선수를 보는 남다른 눈을 가졌다. 2002년 대표팀 막내였던 박지성은 어느덧 주장으로서 중추적 역할을 해내고 있다.

허 감독은 대표팀 감독으로 복귀한 뒤로도 `젊은 피' 수혈을 멈추지 않으며 대표팀의 체질 개선에 주력했다. 허 감독 부임 이후 A매치 데뷔전을 치른 선수는 무려 26명이나 된다.

현 대표팀의 가장 큰 장점도 성공적인 세대교체가 바탕이 된 신·구 조화다.

특히 미드필더 이청용(22.볼턴)과 기성용(21.셀틱) 등 대표팀에서도 주축 선수로 자리매김한 20대 초반의 기대주들은 한국축구의 4년 뒤를 더 기대하게 한다.

`블루 드래곤' 이청용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진출 첫해인 2009-2010 시즌 5골8도움을 올리며 `원조 프리미어리거' 박지성을 뛰어넘는 맹활약을 펼쳤다.

시즌 중간에 스코틀랜드 셀틱에 합류한 기성용은 벤치를 지키는 시간이 많지만, 대표팀에서는 이미 부동의 중앙 미드필더가 됐다.

이청용은 생애 첫 월드컵인 이번 남아공 대회에서도 아르헨티나와 조별리그 2차전(1-4 패) 및 우루과이와 16강전(1-2 패)에서 골 맛을 봤다. 기성용도 그리스와 1차전 및 나이지리아와 3차전에서 이정수의 득점을 배달하는 프리킥으로 16강행에 적지 않은 기여를 했다.

공격수 이승렬(21.서울)과 미드필더 김보경(21.오이타) 등 지난해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U-20) 월드컵 8강 주역도 이번 남아공 월드컵에 참가해 앞으로 한국축구의 미래를 짊어지고 나가는데 큰 자신이 될 경험과 자신감을 쌓았다.

◇과학적 조련

축구는 과학이 아니다. 하지만 과학은 축구의 수준을 높일 수 있다.

한국축구가 한일 월드컵을 기점으로 크게 달라진 점 중 하나가 과학을 제대로 활용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당시 거스 히딩크 대표팀 감독은 월드컵을 준비하면서 `트레이닝의 주기화 이론'에 따라 원하는 시기에 맞춰 선수들의 컨디션을 최고로 끌어올리기 위한 단계별 트레이닝 프로그램을 계획하고 실행했다.

히딩크 감독은 2002년 초 미국에서 열린 골드컵 때 대회 기간임에도 강도 높은 웨이트트레이닝을 실시해 비난을 받으면서도 "이 시기에는 이 훈련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흔들리지 않았다.

이러한 뚝심은 결국 그해 여름 월드컵 본선에서 태극전사들이 `강철 체력'을 바탕으로 세계 강호들을 잇달아 무너뜨리고 4강까지 올라서는 원동력이 됐다.

허정무호의 훈련 프로그램도 크게 다르지 않다.

당시 히딩크 감독을 도와 대표 선수들의 체력훈련 프로그램을 실행한 레이몬드 베르하이옌 체력담당 트레이너가 현 허정무호에서는 피지컬 코치로 일하면서 선진 트레이닝 기법으로 태극전사들을 조련해왔다.

대표팀 체력훈련 프로그램은 빠른 회복에 중점을 두고 경기 방식(small game) 위주의 훈련으로 철저하게 훈련장 안에서 이뤄지는 것이 특징이다.

대한축구협회는 또 대표팀이 소집훈련을 시작한 지난달 중순부터 `무선 경기력 측정 시스템'이라는 첨단장비를 가동했다. 선수들의 체력 및 경기력 향상을 위해 훈련 시 무선 송수신기의 신호를 사용해 선수 개개인의 체력 및 전술 수행 능력을 실시간 측정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남아공에 와서도 계속 활용했다.

이번 남아공 월드컵에서 한국은 아르헨티나와 조별리그 2차전을 해발 1천753m의 고지대인 요하네스버그에서 치렀다. 대표팀은 고지대 적응을 위해 해발 1천200m대의 루스텐버그에 베이스캠프를 차렸다. 남아공으로 들어오기 전 마지막 전지훈련도 역시 해발 1천200m대의 오스트리아 노이슈티프트에서 진행하면서 시차 및 고지대 적응에 주력했다.

파주NFC(대표팀트레이닝센터)에서 훈련할 때는 해발 1천300∼3천m 상황에 맞춰 산소량을 조절할 수 있는 일명 `저산소방'을 운용했고, 선수들에게 산소마스크를 지급해 일상생활 속에서도 고지대 환경에 적응할 수 있도록 세심한 배려를 기울였다.

◇선진적 지원

한국축구의 성장을 이야기할 때 대한축구협회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

정몽준 국제축구연맹(FIFA) 부회장 겸 전 협회장이 취임한 1993년 452개였던 축구협회 등록팀 수는 700여개로 불어났고, 등록 선수도 약 1만 명에서 2만2천명으로 배 이상 늘었다.

6개 팀이 뛰었던 프로 리그는 올해 강원FC의 가세로 15개 팀이 참가한다.

재정 자립에도 성공해 협회 1년 예산 규모는 1992년 35억 원에서 올해는 900억 원을 넘을 정도로 커졌다.

한·일 월드컵 개최로 축구 인프라 구축도 속도를 냈다.

4강 신화의 요람이 된 파주NFC가 2001년 완공됐고 천안과 목포, 창원 세 곳에는 축구센터가 들어섰다.

축구회관, 월드컵기념관도 건립됐다.

이번 대회 한국 선수단에는 대규모 지원 스태프가 동행했다.

이들은 23명의 태극전사가 월드컵 무대에서 최상의 경기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의무와 행정, 전력분석, 장비, 통역 등 다양한 분야에서 지원 업무를 했다.

지원스태프의 `맏형'으로 1994년부터 대표팀 선수들의 재활과 부상 치료에 전념해온 최주영(58) 재활팀장부터, 생업을 접고 한 달 넘게 선수들의 건강과 부상 관리에 힘써온 송준섭 주치의(유나이티드병원 원장), 선수들의 입맛을 책임진 김형채 조리장, 상대국 전력 탐색에 필요한 경기 자료를 제공하는 김세윤 비디오분석관 등 누구 하나 16강 진출의 주역이 아니라고 할 수 없다.

협회는 또 16강 진출 시 선수 1인당 최고 1억7천만 원의 푸짐한 포상금 지급을 일찌감치 결정해 선수들의 사기를 높였다.

지원팀의 헌신적인 노력과 축구협회의 아낌 없는 투자가 없었더라면 사상 첫 원정 16강 진출은 요원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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