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따라잡기] 무너진 챔피언의 꿈! 23세 비운의 복서

입력 2010.07.22 (08:57)

수정 2010.07.22 (09:09)

<앵커 멘트>



권투 챔피언을 꿈꾸던 23살의 청년이 그 꿈을 영영 펼치지 못하게 됐습니다.



권투 유망주였던 배기석 선수가 치열한 경기를 펼친 뒤 혼수상태에 빠졌다가 영영 깨어나지 못했습니다.



앞서 비슷하게 세상을 떠난 김득구, 최요삼 선수가 떠오르지 않을 수 없는데요.



이재환 기자, 배 선수는 개인 사정도 참 안타깝네요.



<리포트>



네. 올해 23살의 배기석 선수는 생전에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온 청년가장이었다고 하는데요.



낮에는 공장에서 일을 하고 밤에는 권투 연습을 하면서 생활비와 동생의 학비를 충당하고 있었습니다.



평소 성실하고, 실력 있는 복서였기 때문에 이번 사고가 더욱 안타까웠는데요.



시합 전 급하게 체중 조절을 했던 것이 건강 상태로 연결됐고, 경기 전, 선수들의 몸 상태를 제대로 체크하지 않는 권투계 때문에 사고로 이어졌다는 지적도 있었습니다.



이번 사고로 챔피언이 되겠다는 청년의 꿈은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지난 17일, 충남 예산에서 열린 한국 슈퍼플라이급 타이틀 매치.



배기석 선수는 챔피언의 꿈을 위해 사투를 벌였습니다.



<인터뷰> 임정근(故 배기석 선수 코치) : “전에도 같은 선수와 시합했었는데, 졌어요. 그만큼 이번에는 더 열심히 했고, 그만큼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시합을 한 것이고...”



상대편 주먹에 맞아 눈이 찢어지고, 수차례 쓰러지기도 했지만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8회 KO패.



아쉽게 챔피언의 꿈은 다음으로 미뤄야 했습니다.



<인터뷰> 故 배기석 선수 동료 : “경기 도중에 버팅(서로 머리를 맞대는 기술)이 제일 심했어요. 우리가 일반 벽에 세게 박는 거랑 똑같은 거예요. (배기석 선수가) 원래 플라이급(50.8kg 이하)에서 슈퍼플라이급(52.16kg 이하)으로 체급을 올렸습니다. 그것도 무리가 많이 갔을 겁니다.“



그런데 대기실로 돌아온 배 선수가 갑자기 구토 증세와 두통을 호소했습니다.



시합 전 급하게 진행한 체급 조절과 힘든 경기 내용이 문제가 된 것입니다.



곧바로 병원으로 옮겼지만 의식불명상태에 빠졌는데요.



가족들은 그래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습니다.



<인터뷰> 배옥자(故 배기석 선수 고모) : “할머니하고 저하고 병실에 들어가니까 눈을 뜨고 있었는데, 오후에 들어가니까 눈을 감았더라고요. 그래도 젊으니까, 운동한 선수는 심장이 튼튼하다 그래서 (회복할 거라는) 기대를 걸고 있었어요.”



하지만 그 모습이 마지막이었습니다.



어제 새벽, 혼수상태에 빠진 지 나흘만에 숨을 거둔 것입니다.



사인은 뇌출혈! 그의 나이는 고작 23살이었습니다.



챔피언 벨트를 가져 오겠다던 배기석 선수의 갑작스런 사망 소식에 가족들은 비통함을 감추지 못했는데요.



<녹취> 주옥순(故 배기석 선수 외할머니) : “손바닥 내밀어 내 손바닥에 탁 치면서 ’이번에 (시합) 갔다 오면 맛있는 거 많이 해주세요’ 그래서 ’알았다, 많이 해줄게’ 이 말 밖에 안 했어요. 너무너무 안타까워요. 너무 불쌍해요.”



다섯 살 때 돌아가신 아버지와 집을 나간 어머니 대신, 팔순의 할머니와 남동생을 부양해 온 배기석 선수. 한 집안의 가장이었기에 가족들의 상실감은 더 컸습니다.



<인터뷰> 배기웅(故 배기석 선수 동생) : “항상 제 생각도 해주고, 집에 늦게 오면 전화해서 빨리 오라고 걱정 많이 했어요. (제가) 나쁜 길로 안 빠지게... 형이 아빠나 다름없어요.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그랬는데, 이렇게 돼서... 너무 빨리 간 게 안타까워요.”



배 선수가 권투를 시작한 것은 초등학교 때부터.



친구들의 놀림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였습니다.



<인터뷰> 배옥자(故 배기석 선수 고모) : “친구들이 자꾸 때린다고 할머니께 얘기했는데, 할머니께서 ’내가 가서 뭐라 할까’ 하니까, ’그러면 할머니가 더 맞아요, 하지 마세요’... (친구들에게) 안 맞으려고 처음에 (권투를) 배우기 시작한 거예요. 엄마 아빠 없이, 할머니 밑에서 크다 보니까...”



하지만 권투에만 전념할 순 없었습니다.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서, 하루 10시간씩 선반기계공으로 일을 해왔는데요.



월급은 모두 생활비와 동생의 학비를 뒷바라지 했습니다.



18살 어린 나이에 프로 데뷔를 결심한 것도, 생계비 때문이었습니다.



바쁜 공장 일로 밤 늦은 시간에야 권투연습을 할 수 있었지만, 피곤함도 잊었습니다.



<인터뷰> 故 배기석 선수 숙모 : “많고 많은 것 중에 왜 권투를 하냐고 그랬더니, 본인은 그게 재미있대요. 재미있고 좋대요. 솔직히 마음이 아픈 것은 (기석이가) 운동만 하고 싶다는 말도 했었거든요. (우리가) 형편이 안 돼서, 못해주니까, 그리고 이렇게 가버리고 나니까 그게 제일 마음에 걸려요.”



배 선수는 자신의 개인 홈페이지를 통해 "난 할 수 있다"며 자신감을 북돋았고, 이번 경기를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반드시 이기겠다는 의지를 다지기도 했습니다.



최우수선수상을 받을 정도로 유망주였던 배기석 선수.



그의 죽음에 동료들도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인터뷰> 故 배기석 선수 동료 : “회사일 해가면서 밤늦게까지 연습하고... 무리가 있는데, 저한테 일하면서도 챔피언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고... ’(챔피언) 벨트 따서 부산 내려올게, 잘하고 올게’했는데... 아무 말 없이 이렇게 가버려서...”



<인터뷰> 임진욱(故 배기석 선수 동료) : “형도 선수고 저도 선수인데, 라이벌이 없어졌다고 해야 하나... 빈자리가 있는 것 같아요. 누가 있어도 기석이 형 자리는 채워 줄 수 없을 정도로...”



이번 배기석 선수의 사고로 복싱계는 충격에 휩싸였습니다.



지난 1982년 김득구 선수가 링에서 쓰러져 숨진데 이어, 2008년 최요삼 선수까지.



링의 사망 사건이 반복되면서, 선수들의 안전 대책에 문제가 있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인터뷰> 유명우(전 세계챔피언) : “선수 보호에 대한 대책이 최요삼 선수 사망사건 이후하고 별반 차이가 없어요. 프로선수라면 선수보호에 최우선을 두어야 하는데, 그조차 없다는 건, 위험에 항상 노출되는 안타까운 현실이...”



배기석 선수는 한 체급 위의 경기를 준비하기 위해 엿새 만에 체중 2Kg을 늘려야 했는데요.



그 때문에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았지만, 선수의 상태를 경기 전에 제대로 확인 하지 않아서, 사고가 벌어진 것이라고 복싱계는 지적했습니다.



그리고 구체적인 선수 보호 대책이 마련되지 않는 한, 이런 비극적인 사고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인터뷰> 유명우(전 세계챔피언) : “모든 선수에 대해서 CT촬영을 의무화하고, 병원진단서를 첨부시켜서 최소한 선수들이 위험에 노출되지 않게...”



최요삼 선수의 사망 사고 이후 선수 안전 대책이 강화됐다고는 하지만, 아직은 미흡한 수준입니다.



<인터뷰> 신용선(한국권투위원회/부회장) : “이 선수가 경기하기에 최상의 컨디션인가 하는 것을 (알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만들어야 하는데... 물론 그것도 쉬운 것은 아닙니다. 선수 보호를 위해서 어떻게 하면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을까 하는 대책을 깊이 검토하고 있습니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며 챔피언의 꿈을 키워온 23살의 프로복서 배기석 선수.



현재 복싱계에서는 유족들을 돕기 위한 모금운동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같은 사고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선수들의 안전 대책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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