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권 42년 만에 벼랑에 선 카다피

입력 2011.02.21 (10:53)

시위 이후 대중 앞에 모습 드러내지 않아

중동.북아프리카에서 시작된 민주화 시위의 격랑이 리비아까지 당도한 가운데 무아마르 카다피 국가원수가 집권 42년 만에 가장 큰 난관에 봉착했다.

미국과 영국 등 서방 국가들과 오래전부터 척을 져 온 카다피지만, 특히 이번 민주화 시위 발생 직후 튀니지 및 이집트와는 반대로 무자비한 진압 방식을 택하면서 국내외에서 더 큰 공분을 사고 있다.

아랍민족주의자였던 이집트 전(前) 대통령 가말 압델 나세르를 롤모델로 삼아 자유장교단을 결성했던 카다피는 지난 1969년 친(親)서방 성향의 왕정을 무혈 쿠데타로 무너뜨리고 권력을 잡았다.

이후 1977년에는 사회주의와 이슬람주의, 범아랍주의를 융합한 '자마히리야(인민권력)' 체제를 선포하고 독특한 형태의 '인민 직접민주주의'를 구현하겠다며 의회 제도와 헌법을 폐기하고 전제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

리비아는 카다피 국가원수가 통치한 40여년 동안 각종 테러는 물론 반미(反美) 무장단체 지원 등으로 악명이 높았다.

특히 지난 1988년에는 영국 스코틀랜드 로커비 상공에서 270명이 탑승한 미국 팬암기를 폭파시켜 국제사회의 손가락질을 받았다.

이후 2003년에는 팬암기 사건 유족들에게 보상을 약속하는가 하면 대량살상무기(WMD) 포기를 선포해 서방과의 '화해 무드'에 돌입했다.

그러나 리비아와 국제사회와의 갈등은 이후에도 계속됐다.

지난 2008년에는 카다피 국가원수의 넷째 아들 부부가 스위스의 한 고급호텔에서 가정부를 폭행한 혐의로 체포된 사건과 관련, 스위스에 대한 석유 공급을 줄이는 등 보복 조치를 취하면서 스위스와 2년간 외교분쟁을 겪었다.

또, 2009년에는 스코틀랜드 자치정부가 리비아 유전 개발과 관련한 영국 기업의 로비설에 휩싸인 채 팬암기 폭파 사건 피의자를 석방하면서 미국이 이에 반발하기도 했다.

카다피는 이후에도 서방 국가는 물론 사우디 아라비아 등 친서방 아랍국가를 비판하며 자신이 '아랍권 리더들 중의 리더'라고 자칭해왔다.

그러나 그는 중동.북아프리카 민주화 시위의 영향을 받은 자국 시위대가 거리로 나선지 엿새가 된 20일(현지시각)까지 시위 현장에 민병대를 배치해 이들을 진압했을 뿐, 전처럼 자신만만한 태도로 대중 앞에 나서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카다피 정권이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고 국민의 요구를 수용하라는 국제사회의 권고에 귀를 기울이고 있지 않은 반면 42년간 압제에 질린 시민들은 목숨을 건 투쟁을 이어가고 있어, 리비아에서 커다란 유혈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이 작지 않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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