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전 서울대 교수가 11일 '새정치'의 깃발을 들고 82일만에 귀환, 그의 행보가 정치권의 '태풍의 눈'으로 떠올랐다.
지난 대선 과정에서 기성 정치권에 대한 혐오를 등에 업고 불어닥쳤던 '안풍'(안철수 바람)의 '재상륙'은 야권발(發) 정계개편과 나아가 기존 전체 여의도 정치지형의 지각변동으로 이어지는 메가톤급 충격파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조직법 개정안 협상의 장기 표류 등으로 정치권을 향한 여론이 따가운 가운데 그가 '틈새시장'을 파고들며 변화에 대한 열망을 담아낸다면 '쏠림 현상'이 가속화될 수 있다는 점에서 여야 모두 긴장하고 있다.
안 전 교수가 이날 귀국 기자회견에서 현 정치권을 '국민 위에 군림하고 편 갈라 대립하는 높은 정치'라고 에둘러 비판한 점이나 정치조직법 대치 및 정치쇄신 답보상태에 대해 답답함을 호소한 점 등은 향후 그가 여야 양쪽과 일정거리를 유지한 채 공간을 넓혀갈 것임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당장 민주당 등 야권은 극도의 위기감에 휩싸여 있다.
안 전 교수가 '샌프란시스코 구상'을 토대로 신당 창당 등 독자세력화의 신호탄을 쏘아올릴 경우 야권이 '빅뱅'의 소용돌이 속으로 급속도로 휘말리며 판 자체가 요동치는 등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안 전 교수는 이날 인천공항 기자회견에서 신당 창당에 대해 "아무것도 정해진 게 없다"며 당분간 4·24 재보선에 집중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러면서도 그가 "여러 좋은 기회에 뜻을 같이하는 분들과 함께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밝힌데 대해 정치권에서는 재보선 후 창당 가능성을 열어둔 것으로 해석했다.
특히 최근 일부 여론조사 결과 '안철수 신당'의 지지율이 민주당을 큰 차이로 따돌리며 새누리당에 이어 단숨에 2위에 뛰오르면서 민주당 내에서는 동요감이 적지 않다.
4월, 10월 재보선과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호남을 중심으로 이탈이 본격화된다면 야권 분열이 현실화되면서 민주당은 존립 자체가 위태로운 상황으로 몰릴 수밖에 없는 처지다.
안 전 교수를 축으로 한 원심력의 강화로 민주당이 자칫 분당 위기에 처할 수 있다는 경계감마저 돌고 있는 것도 이런 분위기와 무관치 않다.
이 때문에 민주당은 개혁 드라이브를 걸며 '안풍' 효과 차단에 나서려 하고 있지만 대선 패배 후 책임공방과 계파다툼에 매몰된 채 표류해온 지리멸렬한 현주소에 비춰볼 때 개혁 동력을 제대로 확보할 수
있을지에 대해선 회의감이 적지 않다.
새 지도부를 뽑을 5·4 전대 자체가 '안풍'에 가려 흥행에 비상이 걸린 가운데 '안철수 변수'가 전대 결과와 당내 세력구도 재편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새누리당은 안 전 교수에 거리를 두며 표정관리에 나섰지만 신경이 쓰이기는 마찬가지이다. 주목받는 대선주자급 야권 정치인의 조기등판이 여권으로서도 결코 달가운 일이 아닌 만큼 경계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더욱이 '안철수 신당'이 뜰 경우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선택했던 일부 중도·무당파를 흡수하면서 새 정부 출범 초기의 집권여당도 그 영향권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란 관측도 있다.
기존 야권세력 이외에 여권 내 일부 중도세력도 신당에 합류할 개연성을 닫을 수 없는 것 아니냐는 관측마저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으로서도 안 전 교수가 부담스런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게 정치권의 대체적 시각이다.
안 전 교수가 새 정부의 일방통행·독주에 목소리를 높이며 각을 세울 경우 부담요인으로 작용하면서 국정 정상화의 동력이 약화될 가능성마저 거론되고 있다.
그가 이날 미국 체류시 관람한 영화 '링컨'을 들어 반대파를 설득한 대통령의 리더십을 강조하며 박 대통령에게 '통합·소통의 정치'를 주문한 것도 눈여겨볼 부분이다.
노원병 보궐 출마를 시작으로 정치재개의 첫 단추를 끼운 안 전 교수의 조기 등판은 '미니 총선'으로 판이 커져버린 재보선 구도에도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당장 노원병은 안 전 교수는 물론 여야 정치권이 명운을 건 격전지로 부상하면서 선거 구도가 단순한 여야 대결을 넘어 복잡한 고차 방정식으로 변하게 됐다.
특히 그의 등장으로 새누리당의 '새 정부 일꾼론'과 민주당의 '정권심판론' 부각 시도가 흐트러지며 선거 프레임 자체가 새롭게 짜일 공산이 크다.
안 전 교수가 "정치공학적 접근은 하지 않을 생각"이라며 '기계적 단일화'에 선을 그은 가운데 진보정의당은 노회찬 공동대표의 부인인 김지선씨를 공천하면서 무엇보다 노원병 선거를 둘러싼 민주당 등 야권의 셈법은 복잡해질 대로 복잡해졌다.
당장 민주당은 "공당으로서 후보를 낸다는 입장에는 변함없다"는 원론적 입장에서 한발짝도 못나간 채 머리를 싸매고 있다.
자칫 야권 후보의 난립이 선거 전망을 어둡게 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야권 단일화 논의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를 여지를 차단할 순 없지만 현재로선 묘수를 찾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안 전 후보측은 이번 재보선에서 노원병에만 전력투구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으나 상황에 따라 부산 영도, 충남 부여ㆍ청양에도 후보를 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선거판의 유동성도 극대화되는 상황으로 전개되고 있다.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은 "현재로선 예단하기 어렵지만 '안풍'의 파괴력은 만만치 않아 보인다"며 "다만 '안철수 효과'가 위기감이 고조된 정치권의 변화를 어느 정도 이끌어낼지는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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