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 우리은행에는 티나 톰슨(38)이 있었다.
여자프로농구 용인 삼성생명이 준플레이오프와 플레이오프를 거쳐 챔피언전까지 올라올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앰버 해리스(25)의 '원맨쇼'였다.
키 194㎝의 장신 해리스는 청주 국민은행과의 준플레이오프와 안산 신한은행과의 플레이오프에서 말 그대로 펄펄 날았다.
5경기를 치르는 동안 평균 30.4점을 넣었고 리바운드는 16.2개를 걷어냈다.
그러나 15일 강원도 춘천에서 열린 우리은행과의 챔피언결정전 1차전에서는 15점, 8리바운드에 그쳤다. 삼성생명 선수 중에는 득점과 리바운드 모두 최다였지만 플레이오프 활약에 비해서는 미미한 수준이었다.
해리스가 플레이오프 때 모습을 보이지 못한 이유는 바로 우리은행의 티나 때문이다.
해리스보다 13살이나 많은 티나는 미국여자프로농구(WNBA)에서 통산 득점 1위를 달리는 선수다. WNBA에서도 '전설'이라고 불리는 존재다.
반면 해리스는 아직 WNBA에서는 벤치 신세인 '초짜'다. 이런 이유로 정규리그에서도 해리스는 티나 앞에서는 좀처럼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했다.
이날 티나는 20점, 16리바운드, 5어시스트로 펄펄 날았다. 매 쿼터 5점씩 또박또박 넣으며 우리은행의 20점 차 완승을 이끌었다.
반면 해리스는 승부가 갈린 3쿼터에서 무득점으로 침묵하는 바람에 플레이오프의 상승세를 이어가지 못했다.
위성우 우리은행 감독은 "해리스에 대한 수비를 강조하자 티나가 '왜 그래야 되느냐'는 듯한 표정을 짓더라"고 전했다.
한 마디로 '미국에서 나보다 몇 수 아래의 선수인데 굳이 그럴 필요가 있느냐'는 듯한 자존심의 표현인 셈이다.
자칫하면 자만으로 넘어질 수도 있었지만 결과는 '티나가 그럴 만했다'는 쪽으로 나왔다.
티나는 경기를 마친 뒤 "상대보다 잘해야겠다고 의식하는 부분은 없다"며 "수비에 대한 욕심은 있지만 득점을 더 하겠다는 생각은 해 본적이 없다"고 말했다.
8살인 아들 딜런과 함께 인터뷰실에 들어온 티나는 "오늘 삼성생명 선수들이 체력적으로 지쳐 우리가 더 나은 경기를 했지만 2차전부터는 달라질 것"이라고 경계심을 내보였다.
티나는 격일로 열리는 챔피언결정전에 체력적인 부담을 느끼지 않느냐는 말에도 "훈련을 많이 했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베테랑의 여유를 보이며 우리은행의 통합 우승을 자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