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항쟁 20년, 그해 여름엔 어떤 일이

입력 2007.06.08 (2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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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시민과 학생이 한데 어울려 거리로 뛰쳐나왔던 87년 이맘때를 기억하십니까? KBS 9시 뉴스는 오늘부터 사흘간 스무돌을 맞는 6.10 항쟁을 돌아보겠습니다.

첫 순서는 그 시절을 누구보다 뜨겁게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철호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6, 70년대가 그랬듯 80년대가 돼서도 민주주의는 없었습니다.

권위주의 시대의 모순과 불합리는 쌓여만 갔고 87년 벽두에 고름은 터지고야 말았습니다.

<녹취> 강민창(당시 치안본부장) : "박종철로부터 사실을 알아내기 위한 위협 수단으로 동인의 머리를 한차례 잠시 넣었다가 내 놓았으나..."

스물 셋, 앳된 청년을 죽인 것도 모자라 은폐까지 하려 했던 정권, 그 순간 그들의 도덕성은 바닥을 쳤습니다.

<녹취> 박종철 어머니 : "종철아! 너의 원수는 어머니가 갚을 거다"

<인터뷰> 오현규 : "여러 반독재 반정부 세력들이 정부의 광폭한 탄압으로 침체돼 있었고 억눌려 있었는데. 고문 치사로 인해 국민적 호응을 얻으면서 시민운동으로 번져 나가는 계기가."

<녹취> "이렇게 살 수는 없다. 우리의 자유를 보장해라"

정권 퇴진의 목소리는 그동안 뺏겼던 대통령을 직접 뽑을 권리를 달라는 운동으로 번져 나갔습니다.

하지만 정권은 이른바 '호헌 조치'로 국민의 열망을 무시했습니다.

<녹취> 전두환(전 대통령/87년4월13일) : "본인은 임기 중 개헌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현행 헌법에 따라"

'넥타이 부대'라는 이름의 시위대가 가세한 것도 그즈음.

<녹취> "호헌 철폐 독재 타도"

최루탄으로 시위를 억누를 수 있다는 정권의 오만함은 또 한 명의 열사를 낳고 말았습니다.

<인터뷰> 이종창(연세대 도서관 사서) : "쓰러져 있는데 일단 안전한 곳으로 옮겨야 한다는 생각으로. 한편으로 기억하고 싶지만 기억하고 싶지 않은. 사회적으로는 의미있지만 저에게는 그런 인연이 아픈 기억이잖아요."

이한열 열사가 쓰러진 다음날, 체육관에선 정권 이양 절차가...

거리에선 6월 항쟁의 서막인 6.10 민주화 운동이 진행됐습니다.

도도한 강물 같은 역사의 흐름을 정권이 막아 내기엔 이미 늦은 상황이었습니다.

<녹취> 노태우(당시 민정당 대통령 후보/6.29 선언) : "사회적 혼란을 극복하고 국민적 화해를 이룩하기 위하여는 대통령 직선제를 택하지 않을 수 없다는"

6개월 동안 계속됐던 민주화의 열기는 정권이 굴복한 뒤 더 빛을 발합니다.

<인터뷰> 이애주(서울대 교수) : "죽어가는 나라, 죽어가는 민족의 본질을 다시 자유로, 시민의 살아 있는 정신으로 다시 찾은 계기라고 보거던요"

6월 한 달만 5백만 명 넘게 참여한 6월 항쟁.

한 명의 지도자가 이끈 게 아니라 이름 모를 민초들의 자발적 참여였기에 더욱 자랑스런 우리의 역사입니다.

KBS 뉴스 이철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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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월 항쟁 20년, 그해 여름엔 어떤 일이
    • 입력 2007-06-08 21:16:50
    뉴스 9
<앵커 멘트> 시민과 학생이 한데 어울려 거리로 뛰쳐나왔던 87년 이맘때를 기억하십니까? KBS 9시 뉴스는 오늘부터 사흘간 스무돌을 맞는 6.10 항쟁을 돌아보겠습니다. 첫 순서는 그 시절을 누구보다 뜨겁게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철호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6, 70년대가 그랬듯 80년대가 돼서도 민주주의는 없었습니다. 권위주의 시대의 모순과 불합리는 쌓여만 갔고 87년 벽두에 고름은 터지고야 말았습니다. <녹취> 강민창(당시 치안본부장) : "박종철로부터 사실을 알아내기 위한 위협 수단으로 동인의 머리를 한차례 잠시 넣었다가 내 놓았으나..." 스물 셋, 앳된 청년을 죽인 것도 모자라 은폐까지 하려 했던 정권, 그 순간 그들의 도덕성은 바닥을 쳤습니다. <녹취> 박종철 어머니 : "종철아! 너의 원수는 어머니가 갚을 거다" <인터뷰> 오현규 : "여러 반독재 반정부 세력들이 정부의 광폭한 탄압으로 침체돼 있었고 억눌려 있었는데. 고문 치사로 인해 국민적 호응을 얻으면서 시민운동으로 번져 나가는 계기가." <녹취> "이렇게 살 수는 없다. 우리의 자유를 보장해라" 정권 퇴진의 목소리는 그동안 뺏겼던 대통령을 직접 뽑을 권리를 달라는 운동으로 번져 나갔습니다. 하지만 정권은 이른바 '호헌 조치'로 국민의 열망을 무시했습니다. <녹취> 전두환(전 대통령/87년4월13일) : "본인은 임기 중 개헌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현행 헌법에 따라" '넥타이 부대'라는 이름의 시위대가 가세한 것도 그즈음. <녹취> "호헌 철폐 독재 타도" 최루탄으로 시위를 억누를 수 있다는 정권의 오만함은 또 한 명의 열사를 낳고 말았습니다. <인터뷰> 이종창(연세대 도서관 사서) : "쓰러져 있는데 일단 안전한 곳으로 옮겨야 한다는 생각으로. 한편으로 기억하고 싶지만 기억하고 싶지 않은. 사회적으로는 의미있지만 저에게는 그런 인연이 아픈 기억이잖아요." 이한열 열사가 쓰러진 다음날, 체육관에선 정권 이양 절차가... 거리에선 6월 항쟁의 서막인 6.10 민주화 운동이 진행됐습니다. 도도한 강물 같은 역사의 흐름을 정권이 막아 내기엔 이미 늦은 상황이었습니다. <녹취> 노태우(당시 민정당 대통령 후보/6.29 선언) : "사회적 혼란을 극복하고 국민적 화해를 이룩하기 위하여는 대통령 직선제를 택하지 않을 수 없다는" 6개월 동안 계속됐던 민주화의 열기는 정권이 굴복한 뒤 더 빛을 발합니다. <인터뷰> 이애주(서울대 교수) : "죽어가는 나라, 죽어가는 민족의 본질을 다시 자유로, 시민의 살아 있는 정신으로 다시 찾은 계기라고 보거던요" 6월 한 달만 5백만 명 넘게 참여한 6월 항쟁. 한 명의 지도자가 이끈 게 아니라 이름 모를 민초들의 자발적 참여였기에 더욱 자랑스런 우리의 역사입니다. KBS 뉴스 이철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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