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따라잡기] 시대의 큰 별 지다…끝없는 추모 행렬

입력 2009.02.18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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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전국이 고 김수환 추기경을 애도하고 있습니다. 김 추기경이 안치된 서울 명동성당에는 끝이 보이지 않는 추모 인파가 한파를 무색케 했습니다.

추모 분위기를 스케치해 봤는데요. 정지주 기자! 이른 아침에도 추모 열기가 대단 하더군요?


네. 19일 내일이죠, 입관 전까지는 매일 아침 6시부터 자정까지 일반인의 조문이 가능합니다.

평생을 사랑과 평화를 실천해 온 고 김수환 추기경의 마지막 모습을 보기 위해 지금까지 10만 조문객이 명동성당을 찾았습니다.

전국 곳곳에서 이어지고 있는 추모행렬을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고 김수환 추기경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명동 성당입니다. 조문객들로 길게 늘어선 줄이 끝이 보이질 않는데요. 성당 입구부터 퇴계로까지 2km가 넘게 이어진 줄에, 2시간 이상을 기다려야 할 정도였습니다.

이 조문 행렬은 영하의 강추위에도 늦은 밤까지 계속 됐는데요.



<인터뷰> 정돈 (신도) : "(줄이) 계성 초등학교 뒤까지... 하여간 거기서부터 여기까지 오는데 줄서 오는데 한 시간 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그런 심정이죠."

병상에서도 소박하고 간소한 장례를 당부했다는 김수환 추기경. 그 뜻에 따라 대성당 앞에는 그 흔한 장례 화환조차 전혀 찾아 볼 수 없습니다.

분향소도 따로 마련되지 않아 헌화 등의 의식 없이 묵념과 기도로 추모가 진행됐는데요. 유리 관 안에서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 평온한 표정으로 고이 잠든 김수환 추기경의 모습에 시민들, 깊은 슬픔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인터뷰> 박정순 (시민) : "마음이 너무 괴로워요... 조금 더 사시다 갔어야 되는데... 하늘의 별이 떨어진 것처럼 너무나 마음이 서글프고 괴롭습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안구 기증으로 사랑을 실천한 김수환 추기경. 고령인데다 백내장 수술 이력이 있어 이식이 가능할지 우려되기도 했지만, 검사 결과 환자 2명에게 이식할 수 있는 건강한 각막으로 판정됐습니다.

김수환 추기경을 추모하기 위해 이명박 대통령도 어제 오후 명동 성당을 찾았는데요. 지난 크리스마스에 고인을 뵌 것이 30여 년 인연의 마지막이 되었다며... 추기경을 잃은 것은 국가적인 큰 손실이라고 밝혔습니다.

김대중, 김영삼 전 대통령도 각각 방문해 민주화 운동의 정신적 지주였던 김수환 추기경을 회고했습니다.

<인터뷰> 김영삼 (前 대통령) : "내가 단식(투쟁)을 23일간 할 때 찾아 오셨어요. 김 총재가 죽고 나면 우리나라 민주주의를 누가 하냐고 살아야 한다고... 그 때 이 양반의 이야기가 23일의 단식을 끝내는 계기가 됐다는 거죠."

<인터뷰> 김대중 (前 대통령) : "한편으로는 슬퍼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그야말로 영광의 영생을 누릴 것을 믿고 추기경님을 보내고자 합니다."

각 여야 정치인들도 김 추기경의 선종에는 같은 마음으로 고인의 넋을 기렸는데요. 늘 약자의 편에 서서 실천하는 신앙을 보여준 김수환 추기경의 일생은 정치인들의 가슴에도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인터뷰> 고건 (前 총리) : "김수환 추기경께서는 우리 사회에서 드물게 온 국민으로부터 존경을 받는 국가적인 지도자셨다. 종교를 초월해서..."


<인터뷰> 박근혜 (한나라당 前 대표) : "마지막 전화를 드렸을 때도 나라 걱정을 많이 하셨고... 하늘나라에서도 나라 걱정, 국민 걱정 안하시도록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김수환 추기경을 애도하는 마음은 종파의 높은 벽도 허물었습니다. 불교와 개신교, 원불교 등 각 종교의 지도자들 역시 명동성당을 찾았는데요. 김 추기경이 타 종교에 대한 비판과 모함을 개탄하고, 종교 간의 대화와 화합을 위해 앞장섰던 진정한 성인이었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인터뷰> 지관 (조계종 총무원장) : "약한 국민들을 위해서 정신적 지주가 돼서 서로 사랑하고 서로 아끼고 평화롭게 살라고 늘 외쳤던 분입니다."

한편, 가수 인순이씨도 조문을 와 눈길을 끌었습니다. 명절 때면 김 추기경에게 세배를 갈 정도로 각별한 인연을 맺어왔다는데요. 늘 등을 다독여주며 격려를 아끼지 않던 고인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며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애도의 물결은 전국 각지로 퍼져 나갔습니다. 특히, 김 추기경이 지난 1951년 사제 서품을 받고 처음으로 성직자의 길로 들어섰던 대구 계산 성당에는 아침부터 밤까지 2천여 명이 넘는 조문객들의 발길이 이어졌습니다.

김수환 추기경의 어머니가 그를 위해 항상 기도했다는 성모당에는 추모의 촛불이 가득했고, 신도들은 추모 미사가 끝나고도 안타까운 마음에 차마 발걸음을 떼지 못했습니다.

<인터뷰> 이옥순 (신도) : "제일 높으신 어른 돌아가시니까... 마음이 너무 울적하고 밤새도록 추기경님 꿈만 꾸게 되더라고요."

<인터뷰> 김기원 (신도) : "(10년 전에) 추기경님이 모교인 군위 초등학교를 방문하셨어요. 어린 아이들 손을 잡고 같이 노시다가 넘어지실 뻔 까지 했어요. 그러면서도 하나 흐트러지지 않고 인자하신 모습으로 (아이들을) 쓰다듬고..."

김 추기경이 초등학교 시절을 보낸 경북 군위군 용대리에도 고인의 자취를 찾으려는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졌습니다. 몇 년 전 복원된 초가집에 분향소가 마련돼 추모객들을 맞았는데요.

종교 박해를 피해 천주교인들의 모여 살았던 이 마을에 순교자의 자손이었던 김수환 추기경의 아버지도 자리를 잡았습니다.

김 추기경은 5살 때부터 대구의 신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 유년 시절을 이곳에서 보냈다는데요. 주민들은 김 추기경과 그의 가족들이 생전에 보여줬던 참다운 신앙인의 모습을 회고하며 아쉬움을 달랬습니다.

<인터뷰> 박찬효 (주민) : "뭐 들은 이야기로는 일찍이 초등학교 1학년 때 아버님 여의시고 어머님이 아주 엄격하게 추기경님을 키우셨는데... 신앙생활에 조금이라도 흐트러짐이 있었다면 앞에 있는 버드나무 회초리까지 때려가면서 교육을 시켰다 이런 얘기도 들었어요."

<인터뷰> 이승훈 (주민) : "(군위 주민으로서) 어떻게 보면 자랑스러운 면도 있겠지만은 애도의 마음이 참 크죠. 저희들은 종교 신앙인으로서 정말 큰 별이라고 생각하죠. 편안한 안식을 취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고인의 시신은 오는 금요일 오전 10시, 명동 성당에서 장례미사를 마친 후, 경기도 용인의 천주교 성직자 묘지에 안장됩니다. 정부는 김수환 추기경 기념관을 건립할 뜻이 있음을 내비쳤고 국민들도 장기기증과 봉사활동으로 고인의 정신을 잇겠다며 문의가 빗발치고 있다는데요.

비록 추기경은 떠났지만, 그가 평생을 통해 보여준 사랑은 영원히 기억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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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스 따라잡기] 시대의 큰 별 지다…끝없는 추모 행렬
    • 입력 2009-02-18 08:4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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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전국이 고 김수환 추기경을 애도하고 있습니다. 김 추기경이 안치된 서울 명동성당에는 끝이 보이지 않는 추모 인파가 한파를 무색케 했습니다. 추모 분위기를 스케치해 봤는데요. 정지주 기자! 이른 아침에도 추모 열기가 대단 하더군요? 네. 19일 내일이죠, 입관 전까지는 매일 아침 6시부터 자정까지 일반인의 조문이 가능합니다. 평생을 사랑과 평화를 실천해 온 고 김수환 추기경의 마지막 모습을 보기 위해 지금까지 10만 조문객이 명동성당을 찾았습니다. 전국 곳곳에서 이어지고 있는 추모행렬을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고 김수환 추기경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명동 성당입니다. 조문객들로 길게 늘어선 줄이 끝이 보이질 않는데요. 성당 입구부터 퇴계로까지 2km가 넘게 이어진 줄에, 2시간 이상을 기다려야 할 정도였습니다. 이 조문 행렬은 영하의 강추위에도 늦은 밤까지 계속 됐는데요. <인터뷰> 정돈 (신도) : "(줄이) 계성 초등학교 뒤까지... 하여간 거기서부터 여기까지 오는데 줄서 오는데 한 시간 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그런 심정이죠." 병상에서도 소박하고 간소한 장례를 당부했다는 김수환 추기경. 그 뜻에 따라 대성당 앞에는 그 흔한 장례 화환조차 전혀 찾아 볼 수 없습니다. 분향소도 따로 마련되지 않아 헌화 등의 의식 없이 묵념과 기도로 추모가 진행됐는데요. 유리 관 안에서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 평온한 표정으로 고이 잠든 김수환 추기경의 모습에 시민들, 깊은 슬픔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인터뷰> 박정순 (시민) : "마음이 너무 괴로워요... 조금 더 사시다 갔어야 되는데... 하늘의 별이 떨어진 것처럼 너무나 마음이 서글프고 괴롭습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안구 기증으로 사랑을 실천한 김수환 추기경. 고령인데다 백내장 수술 이력이 있어 이식이 가능할지 우려되기도 했지만, 검사 결과 환자 2명에게 이식할 수 있는 건강한 각막으로 판정됐습니다. 김수환 추기경을 추모하기 위해 이명박 대통령도 어제 오후 명동 성당을 찾았는데요. 지난 크리스마스에 고인을 뵌 것이 30여 년 인연의 마지막이 되었다며... 추기경을 잃은 것은 국가적인 큰 손실이라고 밝혔습니다. 김대중, 김영삼 전 대통령도 각각 방문해 민주화 운동의 정신적 지주였던 김수환 추기경을 회고했습니다. <인터뷰> 김영삼 (前 대통령) : "내가 단식(투쟁)을 23일간 할 때 찾아 오셨어요. 김 총재가 죽고 나면 우리나라 민주주의를 누가 하냐고 살아야 한다고... 그 때 이 양반의 이야기가 23일의 단식을 끝내는 계기가 됐다는 거죠." <인터뷰> 김대중 (前 대통령) : "한편으로는 슬퍼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그야말로 영광의 영생을 누릴 것을 믿고 추기경님을 보내고자 합니다." 각 여야 정치인들도 김 추기경의 선종에는 같은 마음으로 고인의 넋을 기렸는데요. 늘 약자의 편에 서서 실천하는 신앙을 보여준 김수환 추기경의 일생은 정치인들의 가슴에도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인터뷰> 고건 (前 총리) : "김수환 추기경께서는 우리 사회에서 드물게 온 국민으로부터 존경을 받는 국가적인 지도자셨다. 종교를 초월해서..." <인터뷰> 박근혜 (한나라당 前 대표) : "마지막 전화를 드렸을 때도 나라 걱정을 많이 하셨고... 하늘나라에서도 나라 걱정, 국민 걱정 안하시도록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김수환 추기경을 애도하는 마음은 종파의 높은 벽도 허물었습니다. 불교와 개신교, 원불교 등 각 종교의 지도자들 역시 명동성당을 찾았는데요. 김 추기경이 타 종교에 대한 비판과 모함을 개탄하고, 종교 간의 대화와 화합을 위해 앞장섰던 진정한 성인이었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인터뷰> 지관 (조계종 총무원장) : "약한 국민들을 위해서 정신적 지주가 돼서 서로 사랑하고 서로 아끼고 평화롭게 살라고 늘 외쳤던 분입니다." 한편, 가수 인순이씨도 조문을 와 눈길을 끌었습니다. 명절 때면 김 추기경에게 세배를 갈 정도로 각별한 인연을 맺어왔다는데요. 늘 등을 다독여주며 격려를 아끼지 않던 고인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며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애도의 물결은 전국 각지로 퍼져 나갔습니다. 특히, 김 추기경이 지난 1951년 사제 서품을 받고 처음으로 성직자의 길로 들어섰던 대구 계산 성당에는 아침부터 밤까지 2천여 명이 넘는 조문객들의 발길이 이어졌습니다. 김수환 추기경의 어머니가 그를 위해 항상 기도했다는 성모당에는 추모의 촛불이 가득했고, 신도들은 추모 미사가 끝나고도 안타까운 마음에 차마 발걸음을 떼지 못했습니다. <인터뷰> 이옥순 (신도) : "제일 높으신 어른 돌아가시니까... 마음이 너무 울적하고 밤새도록 추기경님 꿈만 꾸게 되더라고요." <인터뷰> 김기원 (신도) : "(10년 전에) 추기경님이 모교인 군위 초등학교를 방문하셨어요. 어린 아이들 손을 잡고 같이 노시다가 넘어지실 뻔 까지 했어요. 그러면서도 하나 흐트러지지 않고 인자하신 모습으로 (아이들을) 쓰다듬고..." 김 추기경이 초등학교 시절을 보낸 경북 군위군 용대리에도 고인의 자취를 찾으려는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졌습니다. 몇 년 전 복원된 초가집에 분향소가 마련돼 추모객들을 맞았는데요. 종교 박해를 피해 천주교인들의 모여 살았던 이 마을에 순교자의 자손이었던 김수환 추기경의 아버지도 자리를 잡았습니다. 김 추기경은 5살 때부터 대구의 신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 유년 시절을 이곳에서 보냈다는데요. 주민들은 김 추기경과 그의 가족들이 생전에 보여줬던 참다운 신앙인의 모습을 회고하며 아쉬움을 달랬습니다. <인터뷰> 박찬효 (주민) : "뭐 들은 이야기로는 일찍이 초등학교 1학년 때 아버님 여의시고 어머님이 아주 엄격하게 추기경님을 키우셨는데... 신앙생활에 조금이라도 흐트러짐이 있었다면 앞에 있는 버드나무 회초리까지 때려가면서 교육을 시켰다 이런 얘기도 들었어요." <인터뷰> 이승훈 (주민) : "(군위 주민으로서) 어떻게 보면 자랑스러운 면도 있겠지만은 애도의 마음이 참 크죠. 저희들은 종교 신앙인으로서 정말 큰 별이라고 생각하죠. 편안한 안식을 취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고인의 시신은 오는 금요일 오전 10시, 명동 성당에서 장례미사를 마친 후, 경기도 용인의 천주교 성직자 묘지에 안장됩니다. 정부는 김수환 추기경 기념관을 건립할 뜻이 있음을 내비쳤고 국민들도 장기기증과 봉사활동으로 고인의 정신을 잇겠다며 문의가 빗발치고 있다는데요. 비록 추기경은 떠났지만, 그가 평생을 통해 보여준 사랑은 영원히 기억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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