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따라잡기] 의로운 희생도 차별?…홀대받는 금양호

입력 2010.04.08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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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천안함 실종자 수색에 나섰다가 침몰사고로 희생된, 어선 금양호 선원들을 아시죠. 의로운 희생이라 안타까움을 더했습니다.



2명이 사망하고 7명이 실종됐는데요, 희생된 이들의 빈소엔 적막만 흐르고 있습니다.



이민우 기자, 찾아오는 사람이 거의 없다구요?



<리포트>



모두 의로운 희생인데, 달라도 이렇게 다를 수가 있을까요. 똑같은 생명인데 죽음에도 차이가 있는 건가요.



오로지 먹고살기 위해 배를 탔던 이들입니다. 그러다 나라의 부름에 군소리 없이 거친 바다로 달려갔죠.



그렇게 숭고히 희생했습니다. 하지만 다들 모른척합니다. 수색은 하는지 마는지 보상은 있는지 없는지, 아무도 신경 안 씁니다.



왜 그런 거죠. 힘없는 사람들이라 그런 건가요.



구조작업 중 순직한 故한주호 준위의 빈소입니다. 수많은 시민들이 눈길과 발길을 보내며 그의 의로운 죽음을 아파했습니다. 국민적 애도 물결이었습니다.



안타까운 희생은 또 있었습니다. 천안함을 수색 중이던 금양 98호의 침몰, 2명이 숨지고 7명이 실종됐습니다.



숨진 선원, 김종평씨의 빈소입니다.



빈소에 적막감이 흐릅니다. 찾아오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인터뷰> 홍승옥(故김종성씨 지인): “(빈소에) 와보니까 많이 썰렁하네요. 마음이 안 좋아요.”



이렇게 쓸쓸한 빈소가 또 있을까요. 상주도, 목 놓아 우는 사람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혼인신고는 안 했지만 부인이나 다름없던 여인 홀로, 빈소를 지키고 있습니다.



<인터뷰> 이삼임(故 김종평씨 동거인): “이번에 (마지막으로) 배 타고, (일) 마치면 육지에서 국가 자격증 건축 (공부)하려고 했던 것 같은데... 눈물이 나오는 게 아니라, 충격으로 말도 안 나왔어요.”



그 옆에 또 다른 빈소. 인도네시아 선원 누르카요씨 빈소입니다. 실종된 한국 장병들을 수색하다 숨진 인도네시아인입니다.



영정만 있을 뿐, 텅 비어있습니다.



빈소 주변엔, 정치인들의 조화만 덩그러니 놓여 있는데요.



누르카요씨는 지난 2008년,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한국에 왔습니다.



<녹취> 금양호 관계자: “회사 들어온 지 한 2년 정도 됐어요. (여기) 오기 전에 부산에서도 한 4개월 (정도 있었어요.)”



타국에서 혼자 생활한 지 20개월여. 결국 싸늘한 주검이 돼, 고향으로 돌아가게 됐습니다.



<인터뷰> 故김종평씨 지인: “한 준위 돌아가셨을 때는 세상이 떠들썩하고, 대통령까지 다 오셨는데, 여기는 보시다시피 이렇게 한산하고...”



실종된 나머지 선원 7명은 아직도 차가운 바다 어딘가에서 떠돌고 있을지 모릅니다.



해군의 수색 작업에서도 차이가 있었습니다.



대형 크레인과 바지선 등이 투입된 천안함 인양 작업 현장. 그러나 금양 98호와 관련해서는 인양에 대한 논의조차 없습니다.



<인터뷰> 박갑서(금양 98호 선주): “선박을 인양한다는 것은 사실상 힘들어요. 비용문제도 그렇고 힘들어요.”



무엇보다도 안타까운 것은 금양호 선원들의 숭고한 희생이 사회적으로 주목받지 못하고 있는 차가운 현실인데요.



<인터뷰> 이원상(금양호 실종자가족대책위원회 대표): “한 사람이든 열 사람이든 어차피 목숨은 똑같은 겁니다. 이런 말도 나오더라고요. 천안함에 묻혀서 금양호가 홀대를 받고 있다, 생명은 똑같은 거 아닙니까. 그런데 (천안함 사고와는) 너무 대조적으로 (대응)하니까 화가 많이 나죠.”



그래서 소외된 약자를 대하는 우리 사회의 한 모습이 드러난 것 아니냐는 반성의 목소리도 있습니다.



<인터뷰> 임선응(시민): “희생의 가치는 논할 수 없죠. 생존자를 (찾기) 위해, 위험한 바다에 들어갔다는 면에서 너무나 고귀하고 값진 일이기 때문에...”



금양호 선원들의 홀대받는 처지가 더 안타까운 건, 그들의 인생이 순탄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한 번 배를 타면 적게는 한 달, 많게는 6개월 이상을 바다에서 지내야 하는데요. 그래서 평범한 삶을 살기란 어렵습니다.



이들은 결혼도 하지 않고, 외로운 생활을 계속 해왔는데요.



<인터뷰> 이원상(금양호 실종자가족대책위원회 대표): “전부 부인이나 자식이 없는 상태로 가난하고 어렵게 사는 사람들이더라고요.”



생활터전에서 일어난 천안함 사고, 금양호 선원들은 돈 한 푼 받지 않고 수색 작업에 나섰습니다. 그리고 돌아온 것은 그들의 실종소식, 가족들의 슬픔은 컸습니다.



<인터뷰> 이원상(금양호 실종자가족대책위원회 대표): “아니길 바랐죠. 아니길 바랐는데... 처음에는 그래도 실종자라고 하니까 살아있지 않겠나, 죽었을 거라고 생각을 못했죠.”



수색작업에 동참하는 것을 자랑스러워했던 김재후 선장은 실종 다음날이 생일이었습니다.



<인터뷰> 김연순(금양호 단골식당 주인): “자기 생일이라고 맛있는 거 보내달라고 그럴 때가 많았어요. (그런데) 갑자기 이렇게 될 줄 생각지도 못했죠.”



정부는 지난 6일, 금양호 선원들에게 의사자 자격을 주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습니다.



<녹취> 보건복지부 관계자: “정부에서 예우를 하겠다는 말씀을 하셔서... 의사자 심의를 하려면 일단 유족이나 지자체에서 신청이 들어와야 합니다.”



금양호 선원 실종자 가족들은 어제 오후 해경 경비정을 타고 사고해역으로 출발했습니다.



그들의 희생은 외면받았지만, 가족들은 시신이라도 찾겠다며, 선체 인양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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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스따라잡기] 의로운 희생도 차별?…홀대받는 금양호
    • 입력 2010-04-08 08:5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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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천안함 실종자 수색에 나섰다가 침몰사고로 희생된, 어선 금양호 선원들을 아시죠. 의로운 희생이라 안타까움을 더했습니다.

2명이 사망하고 7명이 실종됐는데요, 희생된 이들의 빈소엔 적막만 흐르고 있습니다.

이민우 기자, 찾아오는 사람이 거의 없다구요?

<리포트>

모두 의로운 희생인데, 달라도 이렇게 다를 수가 있을까요. 똑같은 생명인데 죽음에도 차이가 있는 건가요.

오로지 먹고살기 위해 배를 탔던 이들입니다. 그러다 나라의 부름에 군소리 없이 거친 바다로 달려갔죠.

그렇게 숭고히 희생했습니다. 하지만 다들 모른척합니다. 수색은 하는지 마는지 보상은 있는지 없는지, 아무도 신경 안 씁니다.

왜 그런 거죠. 힘없는 사람들이라 그런 건가요.

구조작업 중 순직한 故한주호 준위의 빈소입니다. 수많은 시민들이 눈길과 발길을 보내며 그의 의로운 죽음을 아파했습니다. 국민적 애도 물결이었습니다.

안타까운 희생은 또 있었습니다. 천안함을 수색 중이던 금양 98호의 침몰, 2명이 숨지고 7명이 실종됐습니다.

숨진 선원, 김종평씨의 빈소입니다.

빈소에 적막감이 흐릅니다. 찾아오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인터뷰> 홍승옥(故김종성씨 지인): “(빈소에) 와보니까 많이 썰렁하네요. 마음이 안 좋아요.”

이렇게 쓸쓸한 빈소가 또 있을까요. 상주도, 목 놓아 우는 사람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혼인신고는 안 했지만 부인이나 다름없던 여인 홀로, 빈소를 지키고 있습니다.

<인터뷰> 이삼임(故 김종평씨 동거인): “이번에 (마지막으로) 배 타고, (일) 마치면 육지에서 국가 자격증 건축 (공부)하려고 했던 것 같은데... 눈물이 나오는 게 아니라, 충격으로 말도 안 나왔어요.”

그 옆에 또 다른 빈소. 인도네시아 선원 누르카요씨 빈소입니다. 실종된 한국 장병들을 수색하다 숨진 인도네시아인입니다.

영정만 있을 뿐, 텅 비어있습니다.

빈소 주변엔, 정치인들의 조화만 덩그러니 놓여 있는데요.

누르카요씨는 지난 2008년,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한국에 왔습니다.

<녹취> 금양호 관계자: “회사 들어온 지 한 2년 정도 됐어요. (여기) 오기 전에 부산에서도 한 4개월 (정도 있었어요.)”

타국에서 혼자 생활한 지 20개월여. 결국 싸늘한 주검이 돼, 고향으로 돌아가게 됐습니다.

<인터뷰> 故김종평씨 지인: “한 준위 돌아가셨을 때는 세상이 떠들썩하고, 대통령까지 다 오셨는데, 여기는 보시다시피 이렇게 한산하고...”

실종된 나머지 선원 7명은 아직도 차가운 바다 어딘가에서 떠돌고 있을지 모릅니다.

해군의 수색 작업에서도 차이가 있었습니다.

대형 크레인과 바지선 등이 투입된 천안함 인양 작업 현장. 그러나 금양 98호와 관련해서는 인양에 대한 논의조차 없습니다.

<인터뷰> 박갑서(금양 98호 선주): “선박을 인양한다는 것은 사실상 힘들어요. 비용문제도 그렇고 힘들어요.”

무엇보다도 안타까운 것은 금양호 선원들의 숭고한 희생이 사회적으로 주목받지 못하고 있는 차가운 현실인데요.

<인터뷰> 이원상(금양호 실종자가족대책위원회 대표): “한 사람이든 열 사람이든 어차피 목숨은 똑같은 겁니다. 이런 말도 나오더라고요. 천안함에 묻혀서 금양호가 홀대를 받고 있다, 생명은 똑같은 거 아닙니까. 그런데 (천안함 사고와는) 너무 대조적으로 (대응)하니까 화가 많이 나죠.”

그래서 소외된 약자를 대하는 우리 사회의 한 모습이 드러난 것 아니냐는 반성의 목소리도 있습니다.

<인터뷰> 임선응(시민): “희생의 가치는 논할 수 없죠. 생존자를 (찾기) 위해, 위험한 바다에 들어갔다는 면에서 너무나 고귀하고 값진 일이기 때문에...”

금양호 선원들의 홀대받는 처지가 더 안타까운 건, 그들의 인생이 순탄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한 번 배를 타면 적게는 한 달, 많게는 6개월 이상을 바다에서 지내야 하는데요. 그래서 평범한 삶을 살기란 어렵습니다.

이들은 결혼도 하지 않고, 외로운 생활을 계속 해왔는데요.

<인터뷰> 이원상(금양호 실종자가족대책위원회 대표): “전부 부인이나 자식이 없는 상태로 가난하고 어렵게 사는 사람들이더라고요.”

생활터전에서 일어난 천안함 사고, 금양호 선원들은 돈 한 푼 받지 않고 수색 작업에 나섰습니다. 그리고 돌아온 것은 그들의 실종소식, 가족들의 슬픔은 컸습니다.

<인터뷰> 이원상(금양호 실종자가족대책위원회 대표): “아니길 바랐죠. 아니길 바랐는데... 처음에는 그래도 실종자라고 하니까 살아있지 않겠나, 죽었을 거라고 생각을 못했죠.”

수색작업에 동참하는 것을 자랑스러워했던 김재후 선장은 실종 다음날이 생일이었습니다.

<인터뷰> 김연순(금양호 단골식당 주인): “자기 생일이라고 맛있는 거 보내달라고 그럴 때가 많았어요. (그런데) 갑자기 이렇게 될 줄 생각지도 못했죠.”

정부는 지난 6일, 금양호 선원들에게 의사자 자격을 주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습니다.

<녹취> 보건복지부 관계자: “정부에서 예우를 하겠다는 말씀을 하셔서... 의사자 심의를 하려면 일단 유족이나 지자체에서 신청이 들어와야 합니다.”

금양호 선원 실종자 가족들은 어제 오후 해경 경비정을 타고 사고해역으로 출발했습니다.

그들의 희생은 외면받았지만, 가족들은 시신이라도 찾겠다며, 선체 인양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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