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리포트] 다시 광장으로…70년 현대사와 함께

입력 2016.11.26 (21:31) 수정 2016.11.26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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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광장'의 사전적 의미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도시의 넓은 공터를 말합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고대 그리스에서 민주주의의 산실이 됐던 아고라, 프랑스 혁명의 발화점이 된 바스티유, 중국의 천안문 광장 등 단순한 물리적 공간을 뛰는 정치적 의미가 담겨있는데요,

특히 격동의 세월을 보낸 한국 현대사에서 광장의 의미는 더 각별합니다.

광복 이후 현대사의 주요 순간순간이 지금 촛불집회가 진행 중인 광장에서 이뤄졌고, 그 의미도 시대별로 달라졌는데요,

70년 한국 현대사를 묵묵히 지켜본 '광장'의 역사를 최진아 기자가 정리했습니다.

<리포트>

일제 강점 36년이 끝나던 날,

기쁨에 겨워 뛰쳐나온 사람들로 광장이 인파를 이룹니다.

부패한 정치권력에 맞서 떨쳐 일어난 4·19 혁명,

학생들은 광장에 모여 '민주주의'를 외쳤습니다.

<녹취> 대한 뉴스(1960년) : "1960년 4월 19일의 저 학생 의거, 4.19 학생 의거 후 내각책임제의 새 정권이 수립됐습니다."

엄혹했던 7, 80년대 권력자의 공간으로 변질된 광장에선 관제 행사가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1987년 6월, 100만 인파가 거리로 쏟아지면서 시청 앞 광장은 민주화의 성지로 떠올랐습니다.

<인터뷰> 서은호(경기도 용인/6.10항쟁 참가자) : "두려움도 있었고, 진압 방식이나 이런 데 있어서 상당히 좀 강압적이었지만 현재는 상당히 평화적이고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2000년대 광장은 축제와 소통의 공간으로 변모합니다.

월드컵 4강에 열광한 시민들로 광장이 붉게 물들고, 광우병 사태와 세월호 참사 앞에선 촛불이 켜지고 노란 리본이 내걸렸습니다.

최순실 게이트로 국정 농단의 실체가 드러난 2016년 11월, 광장은 분노한 시민들을 다시 불러모았습니다.

<인터뷰> 김남국(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 "공동체의 일을 놓고 대화하고 소통하고 뜻을 모아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는 광장의 주인, 주권자로 나서는 거죠. 그런 목소리가 백만이 모이는 국면들은 많지 않죠."

4차례의 촛불집회에 이어 또다시 모인 시민들,

현대사의 굴곡을 함께 했던 광장이 다시 역사의 한가운데에 섰습니다.

KBS 뉴스 최진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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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앵커&리포트] 다시 광장으로…70년 현대사와 함께
    • 입력 2016-11-26 21:31:52
    • 수정2016-11-26 21:5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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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광장'의 사전적 의미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도시의 넓은 공터를 말합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고대 그리스에서 민주주의의 산실이 됐던 아고라, 프랑스 혁명의 발화점이 된 바스티유, 중국의 천안문 광장 등 단순한 물리적 공간을 뛰는 정치적 의미가 담겨있는데요,

특히 격동의 세월을 보낸 한국 현대사에서 광장의 의미는 더 각별합니다.

광복 이후 현대사의 주요 순간순간이 지금 촛불집회가 진행 중인 광장에서 이뤄졌고, 그 의미도 시대별로 달라졌는데요,

70년 한국 현대사를 묵묵히 지켜본 '광장'의 역사를 최진아 기자가 정리했습니다.

<리포트>

일제 강점 36년이 끝나던 날,

기쁨에 겨워 뛰쳐나온 사람들로 광장이 인파를 이룹니다.

부패한 정치권력에 맞서 떨쳐 일어난 4·19 혁명,

학생들은 광장에 모여 '민주주의'를 외쳤습니다.

<녹취> 대한 뉴스(1960년) : "1960년 4월 19일의 저 학생 의거, 4.19 학생 의거 후 내각책임제의 새 정권이 수립됐습니다."

엄혹했던 7, 80년대 권력자의 공간으로 변질된 광장에선 관제 행사가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1987년 6월, 100만 인파가 거리로 쏟아지면서 시청 앞 광장은 민주화의 성지로 떠올랐습니다.

<인터뷰> 서은호(경기도 용인/6.10항쟁 참가자) : "두려움도 있었고, 진압 방식이나 이런 데 있어서 상당히 좀 강압적이었지만 현재는 상당히 평화적이고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2000년대 광장은 축제와 소통의 공간으로 변모합니다.

월드컵 4강에 열광한 시민들로 광장이 붉게 물들고, 광우병 사태와 세월호 참사 앞에선 촛불이 켜지고 노란 리본이 내걸렸습니다.

최순실 게이트로 국정 농단의 실체가 드러난 2016년 11월, 광장은 분노한 시민들을 다시 불러모았습니다.

<인터뷰> 김남국(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 "공동체의 일을 놓고 대화하고 소통하고 뜻을 모아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는 광장의 주인, 주권자로 나서는 거죠. 그런 목소리가 백만이 모이는 국면들은 많지 않죠."

4차례의 촛불집회에 이어 또다시 모인 시민들,

현대사의 굴곡을 함께 했던 광장이 다시 역사의 한가운데에 섰습니다.

KBS 뉴스 최진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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