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사 조작 가해자들, ‘훈장 취소’는 없었다

입력 2022.11.16 (21:36) 수정 2022.11.16 (2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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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과거사 진실 규명을 통해 '국가 폭력'으로 드러났지만 후속 조치는 뒤따르지 않는 실태, KBS가 집중 보도하고 있습니다.

오늘(16일)은 '가해자'들 얘기입니다.

고문 등으로 사건을 조작해놓고도 훈장이나 포상을 받은 사례가 취재 결과 최소 쉰 건 가까이 됩니다.

실상이 드러난 뒤에도 상과 훈장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사람도 많습니다.

먼저, 김성수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민주화 열기가 거세지던 1985년.

대학원생 김성만 씨는 집에 있다 안기부 요원들에게 끌려갔습니다.

해외 유학 중 북한 측과 접촉하지 않았느냐며, '간첩' 자백을 강요하는 고문이 두 달간 이어졌습니다.

[김성만/유학생 조작 간첩 사건 피해자 : "물 받은 상태에서 욕조 안에 집어넣고 그다음에 여기다가 이제 타월 같은 것 씌우는 거예요. 다시 끌고 와서 (조선노동당) 입당 원서를 쓰라는데 그렇지 않으면 똑같은 과정이 또 시작될 텐데…."]

김 씨를 포함해 유학생 4명이 무기징역과 사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이른바 '구미 유학생 간첩단'.

그러나, 36년 만인 지난해 대법원은 무죄를 선고했고, 고문으로 조작된 사건임을 인정했습니다.

KBS는 당시 수사에 참여했던 사람들을 추적하다, 그들이 상훈을 받은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안기부 수사서기관이었던 안 모 씨.

국가안전보장에 공을 세운 사람에게 준다는 '보국훈장 삼일장'을 받았습니다.

공적은 '학원 침투 간첩 양동화 등 검거 유공'.

양동화 씨는 김성만 씨와 함께 고문을 당했던 피해자들 중 한 명입니다.

이렇게 '유학생 간첩단' 사건 등으로 당시 상훈을 챙겼던 안기부 직원이 총 7명이었습니다.

[김성만/유학생 조작 간첩 사건 피해자 : "(안 모 씨는) 수사팀을 지휘하는 사람이죠. 한 사람당 3명, 4명씩 일선 수사관이 붙거든요. 그 사람들을 이제 다 이렇게 지휘하는 거죠."]

폭력과 조작으로 주어진 상훈은 진실이 드러난 이상 취소해야 마땅하지만, '잘잘못'을 바로잡는 그 작업 또한, 제대로 진행되지 않고 있습니다.

1970~80년대 서해 미법도 주민 여러 명을 간첩으로 몰았던 사건.

국정원 과거사위를 통해 진상이 규명됐고, 2019년 '상훈 박탈'로도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수사에 참여했던 인원 가운데 누구는 박탈되고, 누구는 그대로 유지되는 문제가 남았습니다.

[한홍구/전 국정원 과거사위 민간위원·성공회대 교수 : "(박탈 안 된)세 사람이 다 미법도 사건의 수사를 했던 사람인 건 확실합니다. 여기서도(국정원 과거사위 보고서) 보면 한○○ 주○○ 이○○ 으로 된 사람들이 이 사람들이 맞습니다."]

정부는 '과거사 조작'으로 주어진 상훈 내역을 따로 공개하지 않고 있습니다.

KBS가 취재로 파악한 것만 최소 49건으로 추정됩니다.

KBS 뉴스 김성숩니다.

[앵커]

이 가운데 정부가 상훈을 취소하겠다고 공언해놓고, 3년 동안 약속을 안 지킨 사례, 취재해봤습니다.

관련 부처와 기관들이 서로 떠넘기는 사이 일부 가해자들은 갖가지 특혜를 받고 있었습니다.

이어서 이윤우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리포트]

박정희 정부 때 농민들이 땅을 강탈당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구로공단 조성을 위해 농지를 강제로 빼앗았고, 소송으로 맞섰던 농민들은 '사기꾼'으로 몰아 처벌했습니다.

[한무섭/구로 농지 강탈 사건 피해자 : "하루아침에 땅을 뺏긴 거예요. 농사했던 농민들이 날벼락을 맞은 거죠."]

농민들을 범죄자로 꾸몄던 중앙정보부 직원 김 모 씨는 1970년 홍조근정훈장을 받았습니다.

훗날 진실화해위원회와 대법원, 두 곳에서 진실이 규명되자, 이 훈장에도 비판이 쏟아졌습니다.

2019년, 행정안전부는 서훈 취소를 위해 노력하겠다며 보도자료까지 배포합니다.

하지만 3년이 지난 지금 다시 확인해봤더니, 훈장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었습니다.

[한무섭/구로 농지 강탈 사건 피해자 : "장본인들이 조작해서 상을 받는다는 건 말이 안 되잖아요. 받은 상을 취소시키거나 박탈해야지 마땅한 거 아니겠습니까?"]

약속한 조치를 왜 이행하지 않았냐는 질의에, 행안부는 "상훈을 추천했던 국정원에서 취소 요청을 안 해서...", 라고 답했습니다.

이에 국정원은 "취소 권한이 있는 행안부가 독자적으로 할 수 있다"고 또 반박했습니다.

이렇게 정부 기관들에만 맡겨놨을 때 상훈 취소는 겉도는 일이 많다고, 진실 규명에 참여했던 조사관들도 토로합니다.

[변상철/1기 진실화해위 조사관 : "개인들 또는 시민단체들이 '그 공적조서가 잘못됐다'라고 문제 제기를 하고, (행안부)상훈과에서 반응을 해서 그걸 취소했던 것이지 기관의 요청에 의해서 취소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피해자들은 자신들을 고문하고 범죄자로 몰았던 가해자가 누구였는지에 대한 정보조차 제공받지 못해왔습니다.

그들이 훈장까지 받았다는 사실은 더더욱 모르고 살았습니다.

[박박/간첩 조작 사건 피해자 : "(사건 조작에 가담하고) 서훈을 받았다는 거를 몰랐거든요. 이때까지. 당연히 정부에서 움직여야 되죠. 서훈 명단에서 취소를 해야죠."]

훈장을 받은 가해자들 중 일부는 지금도 의료비 지원과, 취업 가산점, 자녀 교육비 지원 등을 받고 있습니다.

KBS 뉴스 이윤우입니다.

촬영기자:최석규 이제우 서다은/영상편집:황보현평 위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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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과거사 조작 가해자들, ‘훈장 취소’는 없었다
    • 입력 2022-11-16 21:36:22
    • 수정2022-11-16 22:14:43
    뉴스 9
[앵커]

과거사 진실 규명을 통해 '국가 폭력'으로 드러났지만 후속 조치는 뒤따르지 않는 실태, KBS가 집중 보도하고 있습니다.

오늘(16일)은 '가해자'들 얘기입니다.

고문 등으로 사건을 조작해놓고도 훈장이나 포상을 받은 사례가 취재 결과 최소 쉰 건 가까이 됩니다.

실상이 드러난 뒤에도 상과 훈장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사람도 많습니다.

먼저, 김성수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민주화 열기가 거세지던 1985년.

대학원생 김성만 씨는 집에 있다 안기부 요원들에게 끌려갔습니다.

해외 유학 중 북한 측과 접촉하지 않았느냐며, '간첩' 자백을 강요하는 고문이 두 달간 이어졌습니다.

[김성만/유학생 조작 간첩 사건 피해자 : "물 받은 상태에서 욕조 안에 집어넣고 그다음에 여기다가 이제 타월 같은 것 씌우는 거예요. 다시 끌고 와서 (조선노동당) 입당 원서를 쓰라는데 그렇지 않으면 똑같은 과정이 또 시작될 텐데…."]

김 씨를 포함해 유학생 4명이 무기징역과 사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이른바 '구미 유학생 간첩단'.

그러나, 36년 만인 지난해 대법원은 무죄를 선고했고, 고문으로 조작된 사건임을 인정했습니다.

KBS는 당시 수사에 참여했던 사람들을 추적하다, 그들이 상훈을 받은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안기부 수사서기관이었던 안 모 씨.

국가안전보장에 공을 세운 사람에게 준다는 '보국훈장 삼일장'을 받았습니다.

공적은 '학원 침투 간첩 양동화 등 검거 유공'.

양동화 씨는 김성만 씨와 함께 고문을 당했던 피해자들 중 한 명입니다.

이렇게 '유학생 간첩단' 사건 등으로 당시 상훈을 챙겼던 안기부 직원이 총 7명이었습니다.

[김성만/유학생 조작 간첩 사건 피해자 : "(안 모 씨는) 수사팀을 지휘하는 사람이죠. 한 사람당 3명, 4명씩 일선 수사관이 붙거든요. 그 사람들을 이제 다 이렇게 지휘하는 거죠."]

폭력과 조작으로 주어진 상훈은 진실이 드러난 이상 취소해야 마땅하지만, '잘잘못'을 바로잡는 그 작업 또한, 제대로 진행되지 않고 있습니다.

1970~80년대 서해 미법도 주민 여러 명을 간첩으로 몰았던 사건.

국정원 과거사위를 통해 진상이 규명됐고, 2019년 '상훈 박탈'로도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수사에 참여했던 인원 가운데 누구는 박탈되고, 누구는 그대로 유지되는 문제가 남았습니다.

[한홍구/전 국정원 과거사위 민간위원·성공회대 교수 : "(박탈 안 된)세 사람이 다 미법도 사건의 수사를 했던 사람인 건 확실합니다. 여기서도(국정원 과거사위 보고서) 보면 한○○ 주○○ 이○○ 으로 된 사람들이 이 사람들이 맞습니다."]

정부는 '과거사 조작'으로 주어진 상훈 내역을 따로 공개하지 않고 있습니다.

KBS가 취재로 파악한 것만 최소 49건으로 추정됩니다.

KBS 뉴스 김성숩니다.

[앵커]

이 가운데 정부가 상훈을 취소하겠다고 공언해놓고, 3년 동안 약속을 안 지킨 사례, 취재해봤습니다.

관련 부처와 기관들이 서로 떠넘기는 사이 일부 가해자들은 갖가지 특혜를 받고 있었습니다.

이어서 이윤우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리포트]

박정희 정부 때 농민들이 땅을 강탈당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구로공단 조성을 위해 농지를 강제로 빼앗았고, 소송으로 맞섰던 농민들은 '사기꾼'으로 몰아 처벌했습니다.

[한무섭/구로 농지 강탈 사건 피해자 : "하루아침에 땅을 뺏긴 거예요. 농사했던 농민들이 날벼락을 맞은 거죠."]

농민들을 범죄자로 꾸몄던 중앙정보부 직원 김 모 씨는 1970년 홍조근정훈장을 받았습니다.

훗날 진실화해위원회와 대법원, 두 곳에서 진실이 규명되자, 이 훈장에도 비판이 쏟아졌습니다.

2019년, 행정안전부는 서훈 취소를 위해 노력하겠다며 보도자료까지 배포합니다.

하지만 3년이 지난 지금 다시 확인해봤더니, 훈장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었습니다.

[한무섭/구로 농지 강탈 사건 피해자 : "장본인들이 조작해서 상을 받는다는 건 말이 안 되잖아요. 받은 상을 취소시키거나 박탈해야지 마땅한 거 아니겠습니까?"]

약속한 조치를 왜 이행하지 않았냐는 질의에, 행안부는 "상훈을 추천했던 국정원에서 취소 요청을 안 해서...", 라고 답했습니다.

이에 국정원은 "취소 권한이 있는 행안부가 독자적으로 할 수 있다"고 또 반박했습니다.

이렇게 정부 기관들에만 맡겨놨을 때 상훈 취소는 겉도는 일이 많다고, 진실 규명에 참여했던 조사관들도 토로합니다.

[변상철/1기 진실화해위 조사관 : "개인들 또는 시민단체들이 '그 공적조서가 잘못됐다'라고 문제 제기를 하고, (행안부)상훈과에서 반응을 해서 그걸 취소했던 것이지 기관의 요청에 의해서 취소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피해자들은 자신들을 고문하고 범죄자로 몰았던 가해자가 누구였는지에 대한 정보조차 제공받지 못해왔습니다.

그들이 훈장까지 받았다는 사실은 더더욱 모르고 살았습니다.

[박박/간첩 조작 사건 피해자 : "(사건 조작에 가담하고) 서훈을 받았다는 거를 몰랐거든요. 이때까지. 당연히 정부에서 움직여야 되죠. 서훈 명단에서 취소를 해야죠."]

훈장을 받은 가해자들 중 일부는 지금도 의료비 지원과, 취업 가산점, 자녀 교육비 지원 등을 받고 있습니다.

KBS 뉴스 이윤우입니다.

촬영기자:최석규 이제우 서다은/영상편집:황보현평 위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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