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루고, 거짓 의혹도’…지연된 국가의 사과

입력 2022.09.28 (21:29) 수정 2022.09.29 (08:05)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앵커]

국가가 '가해자'로 밝혀졌지만 끝내 사과하지 않고 회피하고 있는 사건 연속 보도.

오늘(28일)은 1기 진실화해위원회의 사과 권고를 정부가 제대로 이행했는지 여부, 확인해 봅니다.

KBS가 취재해 봤더니 사과를 미뤄오거나 심지어 피해자에게 책임을 돌린 사례들이 여럿 확인됐습니다.

먼저, 김성수 기잡니다.

[리포트]

포승줄에 묶여 재판받는 5명, '문인 지식인 간첩단'이라고 불렸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35년 뒤, 조작·날조의 '피해자'였음이 드러납니다.

박정희 정권의 군 보안사가, 고문 등으로 꾸며냈던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30대 청년이었던 임헌영 씨는 어느덧 80대 노인이 됐습니다.

그 사이 1기 진실화해위원회의 사과 권고가 있었고, 그로부터 또 10여 년이 지나, 재작년쯤 전화 한 통을 받았습니다.

[임헌영/문인 간첩 조작 사건 피해자 : "'여기는 뭐 육군본부'라고 했던가, 뭐라고 하면서 '혹시 보안사에서 무슨 사건을 겪은 적이 있느냐?'"]

갑작스러운 전화는 다짜고짜 아픈 상처부터 헤집었습니다.

'왜 그러냐'고 묻자, 군은 '사과하려는 전화'라고 얼버무렸습니다.

[임헌영/문인 간첩 조작 사건 피해자 : "'그래서 어떻게 하란 말이냐' 그랬더니 그리고 끊었어요. 사과도 아니고 이것들이(군이) 또 무슨 조사를 하고 협박을 하나 그렇게 생각했죠."]

취재진은 정부가 이 사건의 이행 상황을 어떻게 기록했는지 찾아봤습니다.

"사과 방안에 동의하지 않아, 이행이 불가하다", 무언가 '피해자 탓'으로 돌리고 있었습니다.

[임헌영/문인 간첩 조작 사건 피해자 : "((정부에서는) 부동의해서 이행할 수 없었다.)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되는데요."]

이런 식으로 유야 무야 한 사건, 더 있었습니다.

1983년에 벌어진 재일동포 간첩 조작 사건.

'피해자가 해외에 있어 사과할 수 없다'는 게 공식 처리 결과인데, 국가가 만날 수 없다던 그 피해자들은, KBS 취재진의 수소문으로도 충분히 연락이 닿았습니다.

[김병진/재일동포 간첩 조작 사건 피해자 : "마지막에는 2019년 10월인가 11월에 한국에 갔었어요. 간첩이라고 잡아넣을 때는 해외 국민이라는 것을 빌미로 삼아서, 간첩으로 조작했는데, 이제 와서 해외 국민이니까 뭐 연락을 못 한다는 건, 말이나 되는 소리를..."]

의지만 있다면 누구든 찾아서 사과할 수 있었단 게, 당시 진실화해위 조사관의 말입니다.

[변상철/1기 진실화해위 조사관 : "보고서에 당시 저희가 조사했던 피해자들, 그 다음에 참고인들, 수사관들의 인적사항들을 다 기록해 놓아요. 저 정도 답변이라면 거의 저 서류를 조작한 것이라고 저는 생각을 할 정도예요."]

1기 진실화해위 권고 이행 현황에 '불가'로 적힌 과거사는 46건.

모두 군과 관련된 사건입니다.

KBS는 "이제라도 관계 부처와 협의해 사과 등의 이행 방안을 마련하겠단" 답변을 받았습니다.

권고가 나온 지 12년 만입니다.

KBS 뉴스 김성숩니다.

촬영기자:황종원/영상편집:신남규

[앵커]

‘권고 정상 추진’?…피해자는 “처음 듣는 말”

정부가 '정상 추진' 이라고 기록해 놓은 사건들도 있습니다.

사과를 했다는 뜻일텐데, 이 사과, 피해자들에게 제대로 전달됐을까요?

피해자의 말, 직접 들어보시죠.

최혜림 기자가 만나봤습니다.

[리포트]

5공화국 당시, 대전의 한 친목 모임을 '반국가단체'로 몰았던 '아람회' 사건.

훗날 수사 조작 사실이 드러나며 1기 진실화해위원회가 사과를 권고했고, 경찰은 이행했다고 밝혔습니다.

'정상 추진', 과연 사과는 정상적으로, 피해자들에게 전달됐을까요?

박해전 씨가 사과받아야 할 일은 41년 전에 벌어졌습니다.

[박해전/아람회 사건 피해자 : "검은 헝겊으로 눈을 가리고 한밤중에 지하실로 끌려갔는데 지하 여러 방에서 비명 소리가 막 들리는 거예요. 그들이 요구하는 대로 뭘 쓰라는 식으로 하면서 이제 무자비한 고문이 자행됐던 거예요."]

그에 대해 사과를 하겠다고 경찰이 연락해온 게 지난해 6월이었습니다.

전화를 걸어온 곳은 관할 경찰서.

'국가'가 할 사과를 일선 경찰서 차원에서 갈음하겠다는 말에, 박 씨는 거부 입장을 밝혔습니다.

그렇게 끝난 대화, 경찰은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겼습니다.

"관할 경찰서가 피해자에게 직접 사과했고, 거부한 피해자에게는 서장 명의의 서한을 전달했다", 끝내, 중앙 정부 차원의 사과는 없었습니다.

[박해전/아람회사건 피해자 : "우리들의 피맺힌 요구나 이런 것들에 대해서 어떠한 답변을 내놓지 않았습니다. 가해자 처벌, 피해자 원상회복, 재발 방지 대책, 이런 것들이 완벽하게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1970-80년대, 국가가 노조원들을 불법 체포하고 구금한 '청계피복노조' 사건.

역시 경찰은 사과 권고를 '정상 추진'했다고 적어 놨습니다.

피해자는 처음 듣는 말입니다.

[이숙희/청계피복노조 전 교선부장 : "국가가 제대로 사과를 한번 해줄까, 라고 기대를 했는데 그렇지 않았잖아요. 그래서 '우리는 여전히 그런 취급을 받고 살고 있구나' 그렇게 생각을 하죠."]

경찰은 '정상 추진'이라는 말이 권고를 '이행 중'이란 뜻이라면서 "지금까지 최선을 다해왔다"고 입장을 전했습니다.

[이명춘/1기 진실화해위 국장 : "당사자들만 힘들어하는 거죠. 국가는 이거의 중차대함을 일단 모르고, (피해자들은) 재심을 통해서 무죄를 받고 보상을 좀 받아도 찝찝해요. 고문(받았던 것)이 없어진 것도 아니고."]

부처 별로 흩어진 이행 사항들을 관리할 책임은 행정안전부에 있습니다.

행안부는 그동안 이행 내역을 공개한 적이 없는데, KBS와의 인터뷰에서 마찬가지로 '최선'을 언급했습니다.

[이상민/행정안전부 장관 : "사과받는 것에 대해서 거부하시는 분들이 좀 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부분들이 좀 미이행된 부분이 있고, 이러한 부분을 포함해서 저희가 조속한 시일에 다 완료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경주하고 있습니다."]

권고 이후에도 달라진 것이 없었던 12년, 과연 '최선'이라는 말로 설명될 수 있을까요?

피해자들은 언제 받을지 모를 국가의 사과, 아직도 기다리고 있습니다

KBS 뉴스 최혜림입니다.

촬영기자:송혜성 하정현/영상편집:강정희/그래픽:김지훈 채상우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미루고, 거짓 의혹도’…지연된 국가의 사과
    • 입력 2022-09-28 21:29:54
    • 수정2022-09-29 08:05:42
    뉴스 9
[앵커]

국가가 '가해자'로 밝혀졌지만 끝내 사과하지 않고 회피하고 있는 사건 연속 보도.

오늘(28일)은 1기 진실화해위원회의 사과 권고를 정부가 제대로 이행했는지 여부, 확인해 봅니다.

KBS가 취재해 봤더니 사과를 미뤄오거나 심지어 피해자에게 책임을 돌린 사례들이 여럿 확인됐습니다.

먼저, 김성수 기잡니다.

[리포트]

포승줄에 묶여 재판받는 5명, '문인 지식인 간첩단'이라고 불렸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35년 뒤, 조작·날조의 '피해자'였음이 드러납니다.

박정희 정권의 군 보안사가, 고문 등으로 꾸며냈던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30대 청년이었던 임헌영 씨는 어느덧 80대 노인이 됐습니다.

그 사이 1기 진실화해위원회의 사과 권고가 있었고, 그로부터 또 10여 년이 지나, 재작년쯤 전화 한 통을 받았습니다.

[임헌영/문인 간첩 조작 사건 피해자 : "'여기는 뭐 육군본부'라고 했던가, 뭐라고 하면서 '혹시 보안사에서 무슨 사건을 겪은 적이 있느냐?'"]

갑작스러운 전화는 다짜고짜 아픈 상처부터 헤집었습니다.

'왜 그러냐'고 묻자, 군은 '사과하려는 전화'라고 얼버무렸습니다.

[임헌영/문인 간첩 조작 사건 피해자 : "'그래서 어떻게 하란 말이냐' 그랬더니 그리고 끊었어요. 사과도 아니고 이것들이(군이) 또 무슨 조사를 하고 협박을 하나 그렇게 생각했죠."]

취재진은 정부가 이 사건의 이행 상황을 어떻게 기록했는지 찾아봤습니다.

"사과 방안에 동의하지 않아, 이행이 불가하다", 무언가 '피해자 탓'으로 돌리고 있었습니다.

[임헌영/문인 간첩 조작 사건 피해자 : "((정부에서는) 부동의해서 이행할 수 없었다.)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되는데요."]

이런 식으로 유야 무야 한 사건, 더 있었습니다.

1983년에 벌어진 재일동포 간첩 조작 사건.

'피해자가 해외에 있어 사과할 수 없다'는 게 공식 처리 결과인데, 국가가 만날 수 없다던 그 피해자들은, KBS 취재진의 수소문으로도 충분히 연락이 닿았습니다.

[김병진/재일동포 간첩 조작 사건 피해자 : "마지막에는 2019년 10월인가 11월에 한국에 갔었어요. 간첩이라고 잡아넣을 때는 해외 국민이라는 것을 빌미로 삼아서, 간첩으로 조작했는데, 이제 와서 해외 국민이니까 뭐 연락을 못 한다는 건, 말이나 되는 소리를..."]

의지만 있다면 누구든 찾아서 사과할 수 있었단 게, 당시 진실화해위 조사관의 말입니다.

[변상철/1기 진실화해위 조사관 : "보고서에 당시 저희가 조사했던 피해자들, 그 다음에 참고인들, 수사관들의 인적사항들을 다 기록해 놓아요. 저 정도 답변이라면 거의 저 서류를 조작한 것이라고 저는 생각을 할 정도예요."]

1기 진실화해위 권고 이행 현황에 '불가'로 적힌 과거사는 46건.

모두 군과 관련된 사건입니다.

KBS는 "이제라도 관계 부처와 협의해 사과 등의 이행 방안을 마련하겠단" 답변을 받았습니다.

권고가 나온 지 12년 만입니다.

KBS 뉴스 김성숩니다.

촬영기자:황종원/영상편집:신남규

[앵커]

‘권고 정상 추진’?…피해자는 “처음 듣는 말”

정부가 '정상 추진' 이라고 기록해 놓은 사건들도 있습니다.

사과를 했다는 뜻일텐데, 이 사과, 피해자들에게 제대로 전달됐을까요?

피해자의 말, 직접 들어보시죠.

최혜림 기자가 만나봤습니다.

[리포트]

5공화국 당시, 대전의 한 친목 모임을 '반국가단체'로 몰았던 '아람회' 사건.

훗날 수사 조작 사실이 드러나며 1기 진실화해위원회가 사과를 권고했고, 경찰은 이행했다고 밝혔습니다.

'정상 추진', 과연 사과는 정상적으로, 피해자들에게 전달됐을까요?

박해전 씨가 사과받아야 할 일은 41년 전에 벌어졌습니다.

[박해전/아람회 사건 피해자 : "검은 헝겊으로 눈을 가리고 한밤중에 지하실로 끌려갔는데 지하 여러 방에서 비명 소리가 막 들리는 거예요. 그들이 요구하는 대로 뭘 쓰라는 식으로 하면서 이제 무자비한 고문이 자행됐던 거예요."]

그에 대해 사과를 하겠다고 경찰이 연락해온 게 지난해 6월이었습니다.

전화를 걸어온 곳은 관할 경찰서.

'국가'가 할 사과를 일선 경찰서 차원에서 갈음하겠다는 말에, 박 씨는 거부 입장을 밝혔습니다.

그렇게 끝난 대화, 경찰은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겼습니다.

"관할 경찰서가 피해자에게 직접 사과했고, 거부한 피해자에게는 서장 명의의 서한을 전달했다", 끝내, 중앙 정부 차원의 사과는 없었습니다.

[박해전/아람회사건 피해자 : "우리들의 피맺힌 요구나 이런 것들에 대해서 어떠한 답변을 내놓지 않았습니다. 가해자 처벌, 피해자 원상회복, 재발 방지 대책, 이런 것들이 완벽하게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1970-80년대, 국가가 노조원들을 불법 체포하고 구금한 '청계피복노조' 사건.

역시 경찰은 사과 권고를 '정상 추진'했다고 적어 놨습니다.

피해자는 처음 듣는 말입니다.

[이숙희/청계피복노조 전 교선부장 : "국가가 제대로 사과를 한번 해줄까, 라고 기대를 했는데 그렇지 않았잖아요. 그래서 '우리는 여전히 그런 취급을 받고 살고 있구나' 그렇게 생각을 하죠."]

경찰은 '정상 추진'이라는 말이 권고를 '이행 중'이란 뜻이라면서 "지금까지 최선을 다해왔다"고 입장을 전했습니다.

[이명춘/1기 진실화해위 국장 : "당사자들만 힘들어하는 거죠. 국가는 이거의 중차대함을 일단 모르고, (피해자들은) 재심을 통해서 무죄를 받고 보상을 좀 받아도 찝찝해요. 고문(받았던 것)이 없어진 것도 아니고."]

부처 별로 흩어진 이행 사항들을 관리할 책임은 행정안전부에 있습니다.

행안부는 그동안 이행 내역을 공개한 적이 없는데, KBS와의 인터뷰에서 마찬가지로 '최선'을 언급했습니다.

[이상민/행정안전부 장관 : "사과받는 것에 대해서 거부하시는 분들이 좀 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부분들이 좀 미이행된 부분이 있고, 이러한 부분을 포함해서 저희가 조속한 시일에 다 완료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경주하고 있습니다."]

권고 이후에도 달라진 것이 없었던 12년, 과연 '최선'이라는 말로 설명될 수 있을까요?

피해자들은 언제 받을지 모를 국가의 사과, 아직도 기다리고 있습니다

KBS 뉴스 최혜림입니다.

촬영기자:송혜성 하정현/영상편집:강정희/그래픽:김지훈 채상우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