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트라우마 자극’ 기습…이전과 무엇이 달랐나
입력 2023.10.13 (08:00)
수정 2023.10.13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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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무장 구조대원들이 11일(현지시간) 남부 크파르 아자 키부츠의 하마스 공격 현장에서 수색 작업을 벌이는 모습. 출처/AFP연합뉴스
가자지구를 둘러싼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무력충돌이 갈수록 심해지면서, 어린아이들까지 살해됐다는 흉흉한 소문마저 나돌고 있습니다.
'세계의 화약고'라 불린지도 오래된 지역인만큼, 하마스와 이스라엘의 갈등의 골 역시 깊고 그 역사 또한 짧지 않습니다.
하마스가 인근 이스라엘 마을을 공격하면 이스라엘이 이에 보복하는 상황은 늘 반복돼왔지만, 이번 무력충돌에는 사우디아라비아와 미국, 유엔까지 우려를 보내는 상황.
오랜 충돌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이번 무력 분쟁이 이전과 다르게, 국제사회에 큰 충격을 던진 이유를 국립외교원 교수들이 모여 설명했습니다.
■ 상징성마저 고려한 대규모 공격..."불길한 징조"
인남식 국립외교원 외교안보연구소 전략지역연구부장은 "이번 하마스 공격의 특성을 네 가지로 나눌 수 있다"며 " 입체성과 전격성, 잔혹성, 상징성"이라고 꼽았습니다.
입체성이란 전방위적이고 다양한 공격 수단을 활용했단 의미입니다. 하마스는 전과 달리 수천 발의 로켓포를 발사하며 대규모 공격을 감행했습니다.
이와 동시에 전동 패러글라이딩과 소형보트로 이스라엘을 침투하고, 드론 정밀 타격을 통해 스마트펜스 통제탑을 타격하면서 불도저로 철책을 해제하기까지 한 건 전방위적인 공격이 이뤄졌다는 걸 보여줍니다.
여기에 이스라엘이 사전 정보 없이 공격을 당했단 점도 달랐습니다.
'이스라엘 정보당국이 하마스의 전체 전력을 얕잡아봤다'는 분석이 우세한데, 하마스의 공격으로 통신망이 마비되면서 침투 장비를 사전에 알아차리지 못한 것이 충격을 더했습니다.
150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진 인질 납치는 하마스의 잔혹성을 부각시켰습니다.
이전까진 미사일이 오가는 일종의 '비대면' 전투였다면, 이젠 사람이 직접 개입해 얼굴을 마주하고 살상하는 일이 벌어진 겁니다.
마지막으로 주목할 건 하마스가 공격을 감행한 날이 '욤 키푸르' 50주년 기념일 다음날이었다는 점입니다.
욤 키푸르란 유대교의 종교축제일인 '속죄의 날'이라는 뜻이 있지만, 이스라엘에는 1973년 이집트와 시리아군이 기습 공격을 감행한 날로도 기억됩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패전 위기까지 몰렸다가 미국의 지원을 받아 영토를 잃는 것은 면했기에, 피습 트라우마가 국가 전체에 깊이 남았습니다.
그런 욤 키푸르 다음날인 안식일에 하마스가 공격을 한 건 이스라엘 국민들의 트라우마를 자극하는 한편 이번 대규모 공격이 이전처럼 우발적이고 즉흥적인 것이 아니란 점을 나타냅니다.
인 교수는 "기존 패턴에서 벗어난 공격은 16년 동안의 행보를 새로운 방향으로 트는 것이란 예측이 가능하다"며 "불길한 징조"라고 우려했습니다.
인남식 국립외교원 외교안보연구소 전략지역연구부장
■ '아랍 형제'-이스라엘 관계 정상화에 위기감...이스라엘 극우 행보에 자극받아
그렇다면 하마스는 왜 '이전과 다른' 공격을 감행하고 나섰을까.
인 교수는 " 팔레스타인 내부에서 하마스가 다시 힘을 얻을 수 있는 포석이 깔렸다"고 설명합니다.
이스라엘은 2020년 9월 아랍에미리트(UAE), 바레인 등과 수교를 맺는 등 아랍 국가와의 관계 정상화에 공을 들여왔습니다.
여기에 아랍의 맹주인 사우디아라비아가 이스라엘과 수교를 맺을 것이란 소식이 들린 게 불과 지난 8월.
팔레스타인으로서는 국제 사회에서 잊힌 채 아랍 형제들에게도 버림받을 수 있단 위기감이 짙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이스라엘 정부 내에서 '팔레스타인의 독립을 인정할 수 없다'는 극우 강경파들이 득세하면서 팔레스타인을 자극한 것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베잘렐 스모트리히 이스라엘 재무부 장관은 "팔레스타인 마을을 없애야 한다"거나, "팔레스타인 사람 같은 건 아예 없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망언에도 제대로 항의하지 않는 자치정부에 대한 박탈감과 실망이 커지고 있는데, 이를 하마스가 파고든 겁니다.
인남식 교수는 "하마스가 자신들이 팔레스타인을 대표할 수 있는 사람들이고, 이스라엘의 공세적인 행보에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웠다"며 "팔레스타인 대중의 지지를 목표로 했던 것이 이번 공격의 배경"이라고 말했습니다.
■ "이스라엘 당분간 공세적 보복 할 것" 전망
공격과 보복을 주고 받으며 사그라들었던 과거와 달리, 이번 분쟁에는 해결해야 할 문제가 적지 않습니다.
당장 가자지구에 억류된 인질 문제가 그렇고, 민간인 사상자가 날이 갈수록 늘고 있다는 점도 확전 가능성을 높이는 요인입니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상황에 교수들은 다른 전망을 했습니다.
인 교수는 "이스라엘이 하마스의 거점을 폭격하는 등 공세 수위를 높이다가, 1~2달이 지난 뒤 인질 협상에 들어갈 가능성이 있다"며 "압박을 통해 상황을 통제하며 포로 맞교환을 추진하는 '압박 시나리오'를 조심스럽게 점쳐본다"고 내다봤습니다.
반면 최우선 국립외교원 국제안보통일연구부장은 " 대규모 지상작전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이스라엘은 억제력을 회복하기 위해 보복을 통한 심리적 충격을 노리고 하마스를 궤멸하려 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습니다.
그러면서 "대규모 지상작전을 통해 가자지구에서 소탕작전을 벌이는 결과가 나올 것"이라며 "인도주의적 문제가 일어날 가능성도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군사충돌의 악순환이 벌어지면서, 이스라엘의 보복과 하마스의 강경 대응이 이어질 것이란 겁니다.
이근욱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역시 " 대규모 지상작전이 있을 것이란 전망에 동의한다"며 "이스라엘 내부에선 여기서 물러서면 안 된다는 의견이 있어 내부적 요인 때문에라도 보복에 나설 것"이라고 봤습니다.
이 교수는 "지상작전에 하마스가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양상이 달라진다"며 "민간인 피해 규모에 따라 이스라엘의 부담은 점점 커질 것"이라고 짚었습니다.
다만 세 전문가 모두 이스라엘이 당장 공세적인 보복에 나설 것이란 점에는 의견이 같았습니다.
(왼쪽부터) 이문희 국립외교원 외교안보연구소장, 인남식 국립외교원 외교안보연구소 전략지역연구부장, 최우선 국립외교원 국제안보통일연구부장
■ 요동치는 국제 정세...한국 입장은
유례없는 대규모 분쟁에 국제사회도 속내가 복잡합니다.
미국은 이스라엘을 지지하고 나서긴 했지만,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스라엘을 수교하게 해 바이든 정부의 중동 정책 성과로 내세우려던 목표가 무너지면서 자존심을 구기게 됐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 역시 팔레스타인 지지를 선언했지만 하마스의 무장 투쟁에 대한 부담감이 있는 데다 역내 불안정성이 더해지면서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의 개혁 비전에 방해가 될 것이란 우려가 대두됩니다.
지난 3월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의 국교 정상화를 중재하면서 자신감을 얻은 중국은 또다시 중재자를 자처하고 있는데, '주권 평등'과 '내정불간섭'을 강조해온 터라 섣불리 개입하기 쉽지 않은 상황.
이런 불편한 상황 속에서 우리 정부는 조심스럽게 하마스의 무차별 공격을 비난하는 성명을 냈지만, 눈에 띄는 행보는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인남식 교수는 "비극의 악순환을 막는다는 국제사회의 공조에는 가담한다는 원칙을 세우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할 수는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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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23-10-13 08:0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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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지구를 둘러싼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무력충돌이 갈수록 심해지면서, 어린아이들까지 살해됐다는 흉흉한 소문마저 나돌고 있습니다.
'세계의 화약고'라 불린지도 오래된 지역인만큼, 하마스와 이스라엘의 갈등의 골 역시 깊고 그 역사 또한 짧지 않습니다.
하마스가 인근 이스라엘 마을을 공격하면 이스라엘이 이에 보복하는 상황은 늘 반복돼왔지만, 이번 무력충돌에는 사우디아라비아와 미국, 유엔까지 우려를 보내는 상황.
오랜 충돌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이번 무력 분쟁이 이전과 다르게, 국제사회에 큰 충격을 던진 이유를 국립외교원 교수들이 모여 설명했습니다.
■ 상징성마저 고려한 대규모 공격..."불길한 징조"
인남식 국립외교원 외교안보연구소 전략지역연구부장은 "이번 하마스 공격의 특성을 네 가지로 나눌 수 있다"며 " 입체성과 전격성, 잔혹성, 상징성"이라고 꼽았습니다.
입체성이란 전방위적이고 다양한 공격 수단을 활용했단 의미입니다. 하마스는 전과 달리 수천 발의 로켓포를 발사하며 대규모 공격을 감행했습니다.
이와 동시에 전동 패러글라이딩과 소형보트로 이스라엘을 침투하고, 드론 정밀 타격을 통해 스마트펜스 통제탑을 타격하면서 불도저로 철책을 해제하기까지 한 건 전방위적인 공격이 이뤄졌다는 걸 보여줍니다.
여기에 이스라엘이 사전 정보 없이 공격을 당했단 점도 달랐습니다.
'이스라엘 정보당국이 하마스의 전체 전력을 얕잡아봤다'는 분석이 우세한데, 하마스의 공격으로 통신망이 마비되면서 침투 장비를 사전에 알아차리지 못한 것이 충격을 더했습니다.
150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진 인질 납치는 하마스의 잔혹성을 부각시켰습니다.
이전까진 미사일이 오가는 일종의 '비대면' 전투였다면, 이젠 사람이 직접 개입해 얼굴을 마주하고 살상하는 일이 벌어진 겁니다.
마지막으로 주목할 건 하마스가 공격을 감행한 날이 '욤 키푸르' 50주년 기념일 다음날이었다는 점입니다.
욤 키푸르란 유대교의 종교축제일인 '속죄의 날'이라는 뜻이 있지만, 이스라엘에는 1973년 이집트와 시리아군이 기습 공격을 감행한 날로도 기억됩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패전 위기까지 몰렸다가 미국의 지원을 받아 영토를 잃는 것은 면했기에, 피습 트라우마가 국가 전체에 깊이 남았습니다.
그런 욤 키푸르 다음날인 안식일에 하마스가 공격을 한 건 이스라엘 국민들의 트라우마를 자극하는 한편 이번 대규모 공격이 이전처럼 우발적이고 즉흥적인 것이 아니란 점을 나타냅니다.
인 교수는 "기존 패턴에서 벗어난 공격은 16년 동안의 행보를 새로운 방향으로 트는 것이란 예측이 가능하다"며 "불길한 징조"라고 우려했습니다.
■ '아랍 형제'-이스라엘 관계 정상화에 위기감...이스라엘 극우 행보에 자극받아
그렇다면 하마스는 왜 '이전과 다른' 공격을 감행하고 나섰을까.
인 교수는 " 팔레스타인 내부에서 하마스가 다시 힘을 얻을 수 있는 포석이 깔렸다"고 설명합니다.
이스라엘은 2020년 9월 아랍에미리트(UAE), 바레인 등과 수교를 맺는 등 아랍 국가와의 관계 정상화에 공을 들여왔습니다.
여기에 아랍의 맹주인 사우디아라비아가 이스라엘과 수교를 맺을 것이란 소식이 들린 게 불과 지난 8월.
팔레스타인으로서는 국제 사회에서 잊힌 채 아랍 형제들에게도 버림받을 수 있단 위기감이 짙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이스라엘 정부 내에서 '팔레스타인의 독립을 인정할 수 없다'는 극우 강경파들이 득세하면서 팔레스타인을 자극한 것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베잘렐 스모트리히 이스라엘 재무부 장관은 "팔레스타인 마을을 없애야 한다"거나, "팔레스타인 사람 같은 건 아예 없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망언에도 제대로 항의하지 않는 자치정부에 대한 박탈감과 실망이 커지고 있는데, 이를 하마스가 파고든 겁니다.
인남식 교수는 "하마스가 자신들이 팔레스타인을 대표할 수 있는 사람들이고, 이스라엘의 공세적인 행보에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웠다"며 "팔레스타인 대중의 지지를 목표로 했던 것이 이번 공격의 배경"이라고 말했습니다.
■ "이스라엘 당분간 공세적 보복 할 것" 전망
공격과 보복을 주고 받으며 사그라들었던 과거와 달리, 이번 분쟁에는 해결해야 할 문제가 적지 않습니다.
당장 가자지구에 억류된 인질 문제가 그렇고, 민간인 사상자가 날이 갈수록 늘고 있다는 점도 확전 가능성을 높이는 요인입니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상황에 교수들은 다른 전망을 했습니다.
인 교수는 "이스라엘이 하마스의 거점을 폭격하는 등 공세 수위를 높이다가, 1~2달이 지난 뒤 인질 협상에 들어갈 가능성이 있다"며 "압박을 통해 상황을 통제하며 포로 맞교환을 추진하는 '압박 시나리오'를 조심스럽게 점쳐본다"고 내다봤습니다.
반면 최우선 국립외교원 국제안보통일연구부장은 " 대규모 지상작전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이스라엘은 억제력을 회복하기 위해 보복을 통한 심리적 충격을 노리고 하마스를 궤멸하려 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습니다.
그러면서 "대규모 지상작전을 통해 가자지구에서 소탕작전을 벌이는 결과가 나올 것"이라며 "인도주의적 문제가 일어날 가능성도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군사충돌의 악순환이 벌어지면서, 이스라엘의 보복과 하마스의 강경 대응이 이어질 것이란 겁니다.
이근욱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역시 " 대규모 지상작전이 있을 것이란 전망에 동의한다"며 "이스라엘 내부에선 여기서 물러서면 안 된다는 의견이 있어 내부적 요인 때문에라도 보복에 나설 것"이라고 봤습니다.
이 교수는 "지상작전에 하마스가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양상이 달라진다"며 "민간인 피해 규모에 따라 이스라엘의 부담은 점점 커질 것"이라고 짚었습니다.
다만 세 전문가 모두 이스라엘이 당장 공세적인 보복에 나설 것이란 점에는 의견이 같았습니다.
■ 요동치는 국제 정세...한국 입장은
유례없는 대규모 분쟁에 국제사회도 속내가 복잡합니다.
미국은 이스라엘을 지지하고 나서긴 했지만,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스라엘을 수교하게 해 바이든 정부의 중동 정책 성과로 내세우려던 목표가 무너지면서 자존심을 구기게 됐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 역시 팔레스타인 지지를 선언했지만 하마스의 무장 투쟁에 대한 부담감이 있는 데다 역내 불안정성이 더해지면서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의 개혁 비전에 방해가 될 것이란 우려가 대두됩니다.
지난 3월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의 국교 정상화를 중재하면서 자신감을 얻은 중국은 또다시 중재자를 자처하고 있는데, '주권 평등'과 '내정불간섭'을 강조해온 터라 섣불리 개입하기 쉽지 않은 상황.
이런 불편한 상황 속에서 우리 정부는 조심스럽게 하마스의 무차별 공격을 비난하는 성명을 냈지만, 눈에 띄는 행보는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인남식 교수는 "비극의 악순환을 막는다는 국제사회의 공조에는 가담한다는 원칙을 세우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할 수는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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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혜림 기자 gaegul@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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