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 파는 소녀와 ‘부수적 피해’…방아쇠는 누가 당기나? [특파원 리포트]

입력 2023.11.01 (08:12) 수정 2023.11.01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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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론을 이용해 테러 조직을 사살하려 합니다. 하지만 폭발 범위 안에 빵을 파는 소녀가 나타납니다. 발사 버튼을 눌러야 할 드론 조종사는 주저하고, 아이를 폭발 반경 안에서 대피시키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2016년 개봉한 '아이 인 더 스카이(EYE IN THE SKY)'의 일부 내용입니다. 하늘에 있는 눈은 영화에 등장하는 각종 드론의 카메라를 상징하는 거겠죠. 드론 공격의 비정함을 다룬 영화는 여럿 있었지만, 이 영화는 생계를 위해 빵을 팔아야 하는 어린 소녀의 목숨을 살리는 게 우선이냐, 테러의 사전 방지냐를 두고 논쟁 거리를 던져줍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의 전쟁을 두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논쟁이기도 합니다. 어디까지가 이스라엘의 자위권이며, 어디까지가 비례적 대응이냐는 겁니다.

필립 라자리니 팔레스타인 난민 구호기구 사무총장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팔레스타인의 현실을 전하고 있다.필립 라자리니 팔레스타인 난민 구호기구 사무총장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팔레스타인의 현실을 전하고 있다.

현지 시각으로 10월 30일에 열린 긴급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는 팔레스타인 난민 구호기구 사무총장 필립 라자리니의 보고가 있었습니다. 이 자리에서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세이브더칠드런은 어제, 단 3주 사이에 3천2백 명의 아이들이 사망했다고 보고했습니다. 이는 2019년 이후 해마다 세계 분쟁 지역에 걸쳐 숨진 아이들의 숫자를 뛰어넘습니다. 부수적인 피해(Collateral Damage)라고 할 수 없습니다."

유니세프 소속의 캐서린 러셀도 이 자리에서 이렇게 밝혔습니다.

"3주 동안 3천4백 명 이상의 아이들이 죽었고, 6천3백 명 넘는 아이들이 다쳤습니다. 하루에 420명 이상의 아이들이 죽거나 다쳤다는 걸 의미합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가자 지구에 있는 21개 병원을 포함해 34개의 보건 시설이 공격받았습니다. 난민들의 피난처였는데 더는 기능을 할 수 없습니다."

영화에선 한 소녀의 생명을 두고 고민했는데, 현실에선 그렇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의 반격이 지나치다는 쪽의 의견은 이렇습니다. 10월 7일 하마스의 공격으로 1,400명 이상이 죽었고, 200 넘게 납치됐는데,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죽은 팔레스타인인들은 8천 명이 넘는다는 겁니다. 또 가자 지구 북부에서 남쪽으로 이주하라고 하고선 남부에도 공격을 가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즉각적으로 인도주의적 휴전을 해야 한다는 게 이들의 입장입니다.

즉각적인 인도주의적 휴전을 주장하는 쪽은 유엔 사무총장을 비롯해 세계보건기구 등 국제기구, 난민 구호 기구, 러시아, 중국, 중동 국가들입니다.

현지 시각 30일, 긴급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바실리 네벤쟈 러시아 대표가 발언하고 있다현지 시각 30일, 긴급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바실리 네벤쟈 러시아 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특히 미국에 대립각을 세우는 러시아의 발언은 이랬습니다.

"미국에 휴전을 반대하는 이유를 묻고 싶습니다. 우크라이나의 민간인 희생에 공감을 표하던 미국은 어디에 있습니까?"

하지만 미국의 입장은 움직일 기미를 보이지 않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금 휴전은 하마스만 이롭게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유엔에서의 입장도 마찬가지입니다. 휴전을 촉구하는 유엔 총회의 결의안에 대해서도 이런 의견을 밝혔습니다.

"터무니없으며 규탄받아 마땅합니다. 하마스 행동이 유엔 총회에서 비난받지 않은 것은 비양심적입니다. 몇몇 국가들이 하마스의 폭력행위를 암묵적으로 지지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충격적이고 소름 끼쳤습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미국의 입장은 소수입니다.

지금까지 유엔 안보리에서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의 전쟁과 관련해 가장 많은 지지를 받았던 결의안은 10월 의장국이 브라질이 제안한 것이었습니다. 현지시각으로 10월 18일에 투표에 올렸는데, 12개국이 찬성했습니다. 하지만 미국의 거부권 행사로 채택이 불발됐습니다. 이스라엘의 자위권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지 않다는 이유였습니다. 미국의 맹방인 영국도 거부권을 행사하지는 않았습니다.

현지 시각 30일 린다 토마스-그린필드 미국 유엔 대사가 유엔 안보리에서 미국의 입장을 밝히고 있다.현지 시각 30일 린다 토마스-그린필드 미국 유엔 대사가 유엔 안보리에서 미국의 입장을 밝히고 있다.

미국은 그러면서도 인도주의 국제법 준수를 간과하고 있는 건 아니라고 강변하고 있습니다.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에게 국제법 준수를 촉구했고, 구호 지원을 강화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또 하마스가 병원 지하에 군사 기지를 운영한다고 해서 이스라엘에 민간인 피해의 책임이 면제되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휴전은 안 되지만 일시적 전투 중단은 가능하다는 입장입니다.

하지만 미국 정부의 일관된 이스라엘 지지 때문일까요? 미국 내에선 이스라엘 지지에 대한 비판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미국 곳곳엔 하마스에 납치된 사람들의 사진이 들어간 포스터가 붙어 있습니다. 처음엔 그러려니 했는데, 이젠 이 포스터가 또 다른 갈등의 불씨를 가져오고 있습니다. 이 포스터를 훼손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SNS 영상> 하마스에 의한 납치 피해자를 알리는 포스터를 제거하는 모습과 이를 비판하는 촬영자의 목소리가 담겨 있다

포스터를 찢는 행위를 두고 '반유대주의'라는 비난이 터져 나오고, "포스터 자체가 갈등을 유발하니 제거할 뿐 하마스 지지는 아니"라는 반박도 있습니다. 때론 이스라엘을 지지하지 않으면 '하마스 지지'나 '반유대주의'로 받아들여 지기도 하는 분위기입니다. 포스터를 찢는 영상이 유포된 한 치과 의사는 병원에서 직장을 잃었습니다. 중립 지대는 없고 중립을 원하면 입 닫고 행동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현지 시각 24일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이 안전보장이사회에서 휴전을 촉구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현지 시각 24일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이 안전보장이사회에서 휴전을 촉구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이 유엔 안보리에 나와서 하마스와 이스라엘의 행동을 모두 비판하면서도 "이번 일은 진공 상태에서 일어난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가 이스라엘의 거센 반박에 해명해야 했던 일도 있습니다.

다시 전쟁에서의 민간인 피해에 대해서 말하자면, 마크 웰러 케임브리지대학교 국제법 교수는 이코노미스트지에서 기고문을 통해 인도주의 법의 첫 번째 원칙이 전투원과 민간인을 구별하고 민간인 보호를 보장할 의무를 갖는다고 설명했습니다.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공격 금지에는, 민간 지역에 대한 무차별 공중 폭격도 포함된다고 말했습니다. 또 예상되는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군사적 이익에 비해 우발적인 민간인 생명 손실이 과도할 경우 작전을 실시해서는 안된다고 명시돼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마크 웰러 교수의 이코노미스트지 기사 원문>

현지 시각 24일 엘리 코헨 이스라엘 외교장관이 유엔 안보리에서 납치된 어린이들의 사진이 담긴 팻말을 들고 있다.현지 시각 24일 엘리 코헨 이스라엘 외교장관이 유엔 안보리에서 납치된 어린이들의 사진이 담긴 팻말을 들고 있다.

이스라엘 외교장관은 유엔 안보리에 나와 납치된 어린이들 이름과 나이 하나하나를 부르며 하마스를 비난하고 반격의 정당성을 주장했습니다. 하마스의 공격으로 이스라엘에선 30명 가까운 아이들이 희생됐고 최소 20명의 아이가 인질로 잡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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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빵 파는 소녀와 ‘부수적 피해’…방아쇠는 누가 당기나? [특파원 리포트]
    • 입력 2023-11-01 08:12:44
    • 수정2023-11-01 08: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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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론을 이용해 테러 조직을 사살하려 합니다. 하지만 폭발 범위 안에 빵을 파는 소녀가 나타납니다. 발사 버튼을 눌러야 할 드론 조종사는 주저하고, 아이를 폭발 반경 안에서 대피시키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2016년 개봉한 '아이 인 더 스카이(EYE IN THE SKY)'의 일부 내용입니다. 하늘에 있는 눈은 영화에 등장하는 각종 드론의 카메라를 상징하는 거겠죠. 드론 공격의 비정함을 다룬 영화는 여럿 있었지만, 이 영화는 생계를 위해 빵을 팔아야 하는 어린 소녀의 목숨을 살리는 게 우선이냐, 테러의 사전 방지냐를 두고 논쟁 거리를 던져줍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의 전쟁을 두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논쟁이기도 합니다. 어디까지가 이스라엘의 자위권이며, 어디까지가 비례적 대응이냐는 겁니다.

필립 라자리니 팔레스타인 난민 구호기구 사무총장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팔레스타인의 현실을 전하고 있다.
현지 시각으로 10월 30일에 열린 긴급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는 팔레스타인 난민 구호기구 사무총장 필립 라자리니의 보고가 있었습니다. 이 자리에서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세이브더칠드런은 어제, 단 3주 사이에 3천2백 명의 아이들이 사망했다고 보고했습니다. 이는 2019년 이후 해마다 세계 분쟁 지역에 걸쳐 숨진 아이들의 숫자를 뛰어넘습니다. 부수적인 피해(Collateral Damage)라고 할 수 없습니다."

유니세프 소속의 캐서린 러셀도 이 자리에서 이렇게 밝혔습니다.

"3주 동안 3천4백 명 이상의 아이들이 죽었고, 6천3백 명 넘는 아이들이 다쳤습니다. 하루에 420명 이상의 아이들이 죽거나 다쳤다는 걸 의미합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가자 지구에 있는 21개 병원을 포함해 34개의 보건 시설이 공격받았습니다. 난민들의 피난처였는데 더는 기능을 할 수 없습니다."

영화에선 한 소녀의 생명을 두고 고민했는데, 현실에선 그렇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의 반격이 지나치다는 쪽의 의견은 이렇습니다. 10월 7일 하마스의 공격으로 1,400명 이상이 죽었고, 200 넘게 납치됐는데,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죽은 팔레스타인인들은 8천 명이 넘는다는 겁니다. 또 가자 지구 북부에서 남쪽으로 이주하라고 하고선 남부에도 공격을 가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즉각적으로 인도주의적 휴전을 해야 한다는 게 이들의 입장입니다.

즉각적인 인도주의적 휴전을 주장하는 쪽은 유엔 사무총장을 비롯해 세계보건기구 등 국제기구, 난민 구호 기구, 러시아, 중국, 중동 국가들입니다.

현지 시각 30일, 긴급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바실리 네벤쟈 러시아 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특히 미국에 대립각을 세우는 러시아의 발언은 이랬습니다.

"미국에 휴전을 반대하는 이유를 묻고 싶습니다. 우크라이나의 민간인 희생에 공감을 표하던 미국은 어디에 있습니까?"

하지만 미국의 입장은 움직일 기미를 보이지 않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금 휴전은 하마스만 이롭게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유엔에서의 입장도 마찬가지입니다. 휴전을 촉구하는 유엔 총회의 결의안에 대해서도 이런 의견을 밝혔습니다.

"터무니없으며 규탄받아 마땅합니다. 하마스 행동이 유엔 총회에서 비난받지 않은 것은 비양심적입니다. 몇몇 국가들이 하마스의 폭력행위를 암묵적으로 지지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충격적이고 소름 끼쳤습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미국의 입장은 소수입니다.

지금까지 유엔 안보리에서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의 전쟁과 관련해 가장 많은 지지를 받았던 결의안은 10월 의장국이 브라질이 제안한 것이었습니다. 현지시각으로 10월 18일에 투표에 올렸는데, 12개국이 찬성했습니다. 하지만 미국의 거부권 행사로 채택이 불발됐습니다. 이스라엘의 자위권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지 않다는 이유였습니다. 미국의 맹방인 영국도 거부권을 행사하지는 않았습니다.

현지 시각 30일 린다 토마스-그린필드 미국 유엔 대사가 유엔 안보리에서 미국의 입장을 밝히고 있다.
미국은 그러면서도 인도주의 국제법 준수를 간과하고 있는 건 아니라고 강변하고 있습니다.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에게 국제법 준수를 촉구했고, 구호 지원을 강화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또 하마스가 병원 지하에 군사 기지를 운영한다고 해서 이스라엘에 민간인 피해의 책임이 면제되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휴전은 안 되지만 일시적 전투 중단은 가능하다는 입장입니다.

하지만 미국 정부의 일관된 이스라엘 지지 때문일까요? 미국 내에선 이스라엘 지지에 대한 비판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미국 곳곳엔 하마스에 납치된 사람들의 사진이 들어간 포스터가 붙어 있습니다. 처음엔 그러려니 했는데, 이젠 이 포스터가 또 다른 갈등의 불씨를 가져오고 있습니다. 이 포스터를 훼손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SNS 영상> 하마스에 의한 납치 피해자를 알리는 포스터를 제거하는 모습과 이를 비판하는 촬영자의 목소리가 담겨 있다

포스터를 찢는 행위를 두고 '반유대주의'라는 비난이 터져 나오고, "포스터 자체가 갈등을 유발하니 제거할 뿐 하마스 지지는 아니"라는 반박도 있습니다. 때론 이스라엘을 지지하지 않으면 '하마스 지지'나 '반유대주의'로 받아들여 지기도 하는 분위기입니다. 포스터를 찢는 영상이 유포된 한 치과 의사는 병원에서 직장을 잃었습니다. 중립 지대는 없고 중립을 원하면 입 닫고 행동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현지 시각 24일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이 안전보장이사회에서 휴전을 촉구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이 유엔 안보리에 나와서 하마스와 이스라엘의 행동을 모두 비판하면서도 "이번 일은 진공 상태에서 일어난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가 이스라엘의 거센 반박에 해명해야 했던 일도 있습니다.

다시 전쟁에서의 민간인 피해에 대해서 말하자면, 마크 웰러 케임브리지대학교 국제법 교수는 이코노미스트지에서 기고문을 통해 인도주의 법의 첫 번째 원칙이 전투원과 민간인을 구별하고 민간인 보호를 보장할 의무를 갖는다고 설명했습니다.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공격 금지에는, 민간 지역에 대한 무차별 공중 폭격도 포함된다고 말했습니다. 또 예상되는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군사적 이익에 비해 우발적인 민간인 생명 손실이 과도할 경우 작전을 실시해서는 안된다고 명시돼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마크 웰러 교수의 이코노미스트지 기사 원문>

현지 시각 24일 엘리 코헨 이스라엘 외교장관이 유엔 안보리에서 납치된 어린이들의 사진이 담긴 팻말을 들고 있다.
이스라엘 외교장관은 유엔 안보리에 나와 납치된 어린이들 이름과 나이 하나하나를 부르며 하마스를 비난하고 반격의 정당성을 주장했습니다. 하마스의 공격으로 이스라엘에선 30명 가까운 아이들이 희생됐고 최소 20명의 아이가 인질로 잡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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