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쇄적 집단문화가 체육계 폭력 부른다

입력 2016.01.04 (17:57) 수정 2016.01.06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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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도 선수 사재혁역도 선수 사재혁


2008년 베이징올림픽 남자 역도 금메달리스트인 사재혁(31)이 후배를 폭행한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았다. 폭행을 당한 후배는 2014년 세계청소년역도선수권대회에서 2위를 차지한 유망주다.

사재혁은 오늘(4일) 대한역도연맹이 자격정지 10년의 중징계를 내리면서 사실상 선수 생활을 마감하게 됐다.

현역 최고 스포츠 스타가 유망주를 폭행했다는 점에서 파장이 크지만 그동안 선후배간, 또는 코치-선수간 폭행 사건은 학교에서부터 국가대표팀까지 체육계 전반의 고질병이었다. 이 고질병은 체육계 특유의 폐쇄적인 집단 문화에서 출발한다.

최근 일부 체육대학교 학생들의 카카오톡 단체방 대화 사진이 인터넷에 공개되면서 논란이 일었다.

공개된 사진엔 모든 대화를 '다'나 '까'로 끝내고 휴대전화 메신저로 대화를 할 때는 반드시 문장 끝에 마침표를 찍으라는 지시사항이 담겼다.

체대 단체 대화방체대 단체 대화방


'단과대 건물 정문과 엘리베이터 사용을 금지한다'거나 '선배들과 밥 먹을 때 수저를 먼저 들지 말고 선배가 부르거나 뭘 시키면 뛰어다니라'는 등의 행동요령도 포함돼 있다. 또 선배들의 일을 도와야하고, 받은 술을 버리지 않아야 한다는 등의 세부적인 행동지침도 담겨있다. 이른바 '군기 잡기'다.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지난 2009년 KBS는 한 대학 농구부 감독이 선수를 폭행하는 동영상을 입수해 보도했다. 보도가 나간 뒤 비슷한 동영상이 또 인터넷에 올라왔다. 해당 감독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면서도 선수들을 위한 행동이었다고 항변했다.

☞ 피나는 제자 사랑?…동영상 또 공개

이같은 교육 현장에서의 군기 잡기는 고스란히 국가대표팀까지 이어진다.

지난해 9월에도 남자 쇼트트랙 훈련 도중 고참급 선수인 신다운이 후배를 폭행해 파문을 일으켰다. 대한빙상경기연맹은 2015-2016시즌 대회 출전 정지 징계를 내렸지만 올해 상반기부터 시작되는 대표 선발 경기부터는 바로 복귀가 가능하다.

최근 루지 대표팀에서도 선수가 코치의 폭행과 가혹행위에 시달리다 결국 올림픽 출전 꿈을 접은 사연이 알려졌다. 피해 선수는 짐을 제대로 챙기지 않았다는 이유로 코치에게 썰매 날로 허벅지와 엉덩이를 맞았다. 또 훈련 중 썰매가 전복돼 뇌내출혈 진단을 받은 상태에서도 코치에게 폭행을 당했다.

☞ 코치의 가혹행위에 올림픽 꿈 접은 유망주

이밖에도 2009년 남자 배구 국가대표팀에서 당시 이상열 코치가 박철우 선수를 구타해 무기한 자격정지 처분을 받았고, 2004년엔 여자 쇼트트랙 선수들이 코치의 잦은 폭언과 폭력에 시달리다가 선수촌을 집단으로 이탈하기도 했다.

하지만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관련 연맹이나 협회는 솜방망이 처벌로 논란을 덮으려 하는 경우가 많았다. 체육계 특유의 폐쇄적인 구조의 부작용이다. 무엇보다 선수와 지도자가 '체벌이 경기력 향상으로 이어진다'는 그릇된 생각도 폭력이 사라지지 않는 원인으로 꼽힌다.

한국 유도의 간판 왕기춘 선수는 지난 2014년 자신의 SNS에 정당한 이유라면 선배가 후배에게 폭력을 행사해도 무방하다는 식의 발언을 올려 누리꾼들의 뭇매를 맞았다.

유도 선수 왕기춘의 SNS유도 선수 왕기춘의 SNS


왕기춘 선수의 SNS 발언은 현 체육계 선수와 지도자들이 폭력 체벌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 지를 단적으로 보여준 사건으로 기록됐다.

대한체육회는 2014년 1월 폭력을 승부조작, 입시비리, 주직사유화와 함께 반드시 없어져야 할 스포츠 분야의 4대 악으로 지목했다.

최동호 스포츠평론가는 "지난 3~4년 동안 비슷한 사건을 겪으면서 연맹과 협회가 제도적인 개선 등 많은 노력을 한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상명하복, 일사불란 등 '조폭식' 생활문화에 일종의 자부심을 느끼는 의식이 바뀌지 않으면 폭행 사건은 재발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단기적으로는 엄정한 처벌이 필요하지만 선수들이 체육 문화를 습득하기 시작하는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운동을 하지 않는 다른 학생들과 사회적 경험을 공유할 수 있도록 도와야 폐쇄적인 집단 문화가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연관 기사]
☞ 사재혁의 슬픈 금메달과 구조화된 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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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폐쇄적 집단문화가 체육계 폭력 부른다
    • 입력 2016-01-04 17:57:11
    • 수정2016-01-06 19:17:35
    취재K
역도 선수 사재혁
2008년 베이징올림픽 남자 역도 금메달리스트인 사재혁(31)이 후배를 폭행한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았다. 폭행을 당한 후배는 2014년 세계청소년역도선수권대회에서 2위를 차지한 유망주다. 사재혁은 오늘(4일) 대한역도연맹이 자격정지 10년의 중징계를 내리면서 사실상 선수 생활을 마감하게 됐다. 현역 최고 스포츠 스타가 유망주를 폭행했다는 점에서 파장이 크지만 그동안 선후배간, 또는 코치-선수간 폭행 사건은 학교에서부터 국가대표팀까지 체육계 전반의 고질병이었다. 이 고질병은 체육계 특유의 폐쇄적인 집단 문화에서 출발한다. 최근 일부 체육대학교 학생들의 카카오톡 단체방 대화 사진이 인터넷에 공개되면서 논란이 일었다. 공개된 사진엔 모든 대화를 '다'나 '까'로 끝내고 휴대전화 메신저로 대화를 할 때는 반드시 문장 끝에 마침표를 찍으라는 지시사항이 담겼다.
체대 단체 대화방
'단과대 건물 정문과 엘리베이터 사용을 금지한다'거나 '선배들과 밥 먹을 때 수저를 먼저 들지 말고 선배가 부르거나 뭘 시키면 뛰어다니라'는 등의 행동요령도 포함돼 있다. 또 선배들의 일을 도와야하고, 받은 술을 버리지 않아야 한다는 등의 세부적인 행동지침도 담겨있다. 이른바 '군기 잡기'다.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지난 2009년 KBS는 한 대학 농구부 감독이 선수를 폭행하는 동영상을 입수해 보도했다. 보도가 나간 뒤 비슷한 동영상이 또 인터넷에 올라왔다. 해당 감독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면서도 선수들을 위한 행동이었다고 항변했다. ☞ 피나는 제자 사랑?…동영상 또 공개 이같은 교육 현장에서의 군기 잡기는 고스란히 국가대표팀까지 이어진다. 지난해 9월에도 남자 쇼트트랙 훈련 도중 고참급 선수인 신다운이 후배를 폭행해 파문을 일으켰다. 대한빙상경기연맹은 2015-2016시즌 대회 출전 정지 징계를 내렸지만 올해 상반기부터 시작되는 대표 선발 경기부터는 바로 복귀가 가능하다. 최근 루지 대표팀에서도 선수가 코치의 폭행과 가혹행위에 시달리다 결국 올림픽 출전 꿈을 접은 사연이 알려졌다. 피해 선수는 짐을 제대로 챙기지 않았다는 이유로 코치에게 썰매 날로 허벅지와 엉덩이를 맞았다. 또 훈련 중 썰매가 전복돼 뇌내출혈 진단을 받은 상태에서도 코치에게 폭행을 당했다. ☞ 코치의 가혹행위에 올림픽 꿈 접은 유망주 이밖에도 2009년 남자 배구 국가대표팀에서 당시 이상열 코치가 박철우 선수를 구타해 무기한 자격정지 처분을 받았고, 2004년엔 여자 쇼트트랙 선수들이 코치의 잦은 폭언과 폭력에 시달리다가 선수촌을 집단으로 이탈하기도 했다. 하지만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관련 연맹이나 협회는 솜방망이 처벌로 논란을 덮으려 하는 경우가 많았다. 체육계 특유의 폐쇄적인 구조의 부작용이다. 무엇보다 선수와 지도자가 '체벌이 경기력 향상으로 이어진다'는 그릇된 생각도 폭력이 사라지지 않는 원인으로 꼽힌다. 한국 유도의 간판 왕기춘 선수는 지난 2014년 자신의 SNS에 정당한 이유라면 선배가 후배에게 폭력을 행사해도 무방하다는 식의 발언을 올려 누리꾼들의 뭇매를 맞았다.
유도 선수 왕기춘의 SNS
왕기춘 선수의 SNS 발언은 현 체육계 선수와 지도자들이 폭력 체벌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 지를 단적으로 보여준 사건으로 기록됐다. 대한체육회는 2014년 1월 폭력을 승부조작, 입시비리, 주직사유화와 함께 반드시 없어져야 할 스포츠 분야의 4대 악으로 지목했다. 최동호 스포츠평론가는 "지난 3~4년 동안 비슷한 사건을 겪으면서 연맹과 협회가 제도적인 개선 등 많은 노력을 한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상명하복, 일사불란 등 '조폭식' 생활문화에 일종의 자부심을 느끼는 의식이 바뀌지 않으면 폭행 사건은 재발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단기적으로는 엄정한 처벌이 필요하지만 선수들이 체육 문화를 습득하기 시작하는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운동을 하지 않는 다른 학생들과 사회적 경험을 공유할 수 있도록 도와야 폐쇄적인 집단 문화가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연관 기사] ☞ 사재혁의 슬픈 금메달과 구조화된 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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