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만 이야기①] 흑두루미 천마리 순천만에 깃들다

입력 2016.01.25 (16:47) 수정 2016.02.06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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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순천만에 가면 먼저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뚜루룩 뚜루록..." 새 소리가 들리면 주변을 살펴보세요. 바로 흑두루미 울음소리입니다. 두루미라는 이름도 '뚜루룩뚜룩' 혹은 '두루룩두룩'운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흑두루미는 멸종위기 2급, 천연기념물 228호로 겨울철 순천만에서 볼 수 있는 진객입니다.



새 소리는 나지만 잘 보이지는 않는다고요? 흑두루미는 키가 1미터에 이르는 큰 새입니다. 하지만 멀리 있으면 잘 보이질 않죠. 그러니 순천만에 갈 때는 작은 쌍안경이라도 가져 가는 게 좋습니다. 손안에 들어가는 쌍안경, 시중에서 3,4만원짜리로도 충분히 볼 수 있습니다. 망원경이 없는 분들을 위해 순천만 천문대에는 대형 망원경이 준비돼 있습니다. 천문대 앞에 펼쳐진 '대대들' 들판에 흑두루미를 비롯해 기러기와 각종 철새들이 노니는 걸 볼 수 있습니다.



아침이면 흑두루미를 좀 더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바다쪽 갯벌에서 밤새 잠을 잔 흑두루미들이 동이 트면 들판으로 먹이를 찾아 날아오기 때문입니다. 수십에서 수백 마리가 한꺼번에 날아옵니다. 일부는 흩어져서 먹이를 찾지만 수백 마리가 한꺼번에 한 곳에서 먹이를 먹는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순천만에 천 마리가 넘는 흑두루미가 월동하고 있기에 볼 수 있는 장관입니다. 이런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은 세계적으로도 희귀합니다.



예전에도 순천만에서 흑두루미를 쉽게 볼 수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지난 1996년 75마리의 흑두루미만 관찰됐습니다. 그전에는 순천만에서 흑두루미가 지속적으로 월동한다는 사실 자체도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2007년에는 229마리로 늘었고 지난해 겨울에는 천 마리를 넘었습니다. 올 겨울에도 천 백마리가 넘는 흑두루미가 왔고 지금은 천70여 마리가 월동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흑두루미가 늘어나게 된 데는 사연이 있습니다. 90년대 초반 순천시는 순천만에 흘러드는 동천 하구의 하도정비사업을 추진했습니다. 홍수 때 물이 빨리 바다로 빠져나가도록 하구를 직강화하고 골재를 채취할 계획이었습니다. 그럴 경우 순천만의 갈대밭과 굽이치는 갯벌 습지가 사라지게 될 운명이었습니다. 갈대습지를 지키자는 일부 시민단체의 반발이 있었지만 순천만의 미래는 암울했습니다.



그러던 중 뜻밖의 일이 벌어졌습니다. 1996년 11월 순천만 생태계 조사 때 갯벌 한쪽에서 흑두루미가 발견된 것입니다. 흑두루미 75마리와 재두루미, 황새, 저어새도 관찰됐습니다. 당시 생태조사에 나섰던 김인철 씨는 흑두루미를 발견한 순간 '순천만 지키기' 싸움이 극적인 전기를 맞이했다고 말합니다. 흑두루미가 월동한다는 것은 순천만 갈대 습지와 갯벌이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보전 가치가 높다는 점을 보여줬습니다. 2년 뒤 순천만 직강화와 골재채취 사업은 취소됐습니다.

[연관 글] ☞ '순천만 10년, 흑두루미의 生을 생각한다 _ 김인철'



순천만 습지를 살린 흑두루미는 그 뒤 순천을 대표하는 새가 됐습니다. 흑두루미를 보호하려는 활동이 잇따랐습니다. 2009년 4월, 대대들의 전봇대 제거는 그 상징이었습니다. 당시 흑두루미 월동 개체 수는 3백여 마리, 순천시는 전봇대를 제거하면서 천 마리 흑두루미가 찾는 '천학(千鶴)의 꿈'을 말했습니다. 당시는 누구도 그 꿈이 쉽게 이뤄지리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불과 6년 뒤인 지난 겨울, 천 마리가 넘는 흑두루미가 순천만에 찾아왔습니다. 마침내 '천학(千鶴)의 꿈'이 이뤄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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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학의 도시 순천, 흑두루미가 늘어나자 순천을 찾는 탐방객도 많아졌습니다. 5백만 명 가량이 갈대습지와 흑두루미 그리고 순천만 정원 등을 보기 위해 순천을 찾습니다. 순천만 생태공원 입장료 등 순천시의 직접 수입만도 150억 원에 이르고 지역 식당과 숙박업소 등 간접적 경제 효과는 2천억 원에 달합니다. 순천만을 살린 흑두루미가 지역경제도 살리는 겁니다. 순천만과 순천만정원은 지난 2015년 국토교통부로부터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으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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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순천은 철새 보호 영역을 점차 넓히고 있습니다. 지난 2015년 12월 순천만 대대들 위쪽의 동천하구 습지 5.394㎢를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했습니다. 천을 넘어서 2천, 3천의 흑두루미가 찾기에 기존의 보호구역만으로는 좁기 때문입니다. 주민들도 이제는 자연과 생명을 대하는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자연을 지키고 야생의 생명들과 함께 한 결과 사람들의 삶도 더불어 풍요로워진다는 것을 몸으로 체험한 겁니다. 자칫 개발 사업으로 사라질 뻔했던 순천만, 그 위기를 극복하고 철새의 낙원으로 거듭난 순천, 그래서 순천은 '대한민국 생태 수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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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순천만 이야기①] 흑두루미 천마리 순천만에 깃들다
    • 입력 2016-01-25 16:47:52
    • 수정2016-02-06 09:05:27
    취재K
겨울 순천만에 가면 먼저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뚜루룩 뚜루록..." 새 소리가 들리면 주변을 살펴보세요. 바로 흑두루미 울음소리입니다. 두루미라는 이름도 '뚜루룩뚜룩' 혹은 '두루룩두룩'운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흑두루미는 멸종위기 2급, 천연기념물 228호로 겨울철 순천만에서 볼 수 있는 진객입니다.



새 소리는 나지만 잘 보이지는 않는다고요? 흑두루미는 키가 1미터에 이르는 큰 새입니다. 하지만 멀리 있으면 잘 보이질 않죠. 그러니 순천만에 갈 때는 작은 쌍안경이라도 가져 가는 게 좋습니다. 손안에 들어가는 쌍안경, 시중에서 3,4만원짜리로도 충분히 볼 수 있습니다. 망원경이 없는 분들을 위해 순천만 천문대에는 대형 망원경이 준비돼 있습니다. 천문대 앞에 펼쳐진 '대대들' 들판에 흑두루미를 비롯해 기러기와 각종 철새들이 노니는 걸 볼 수 있습니다.



아침이면 흑두루미를 좀 더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바다쪽 갯벌에서 밤새 잠을 잔 흑두루미들이 동이 트면 들판으로 먹이를 찾아 날아오기 때문입니다. 수십에서 수백 마리가 한꺼번에 날아옵니다. 일부는 흩어져서 먹이를 찾지만 수백 마리가 한꺼번에 한 곳에서 먹이를 먹는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순천만에 천 마리가 넘는 흑두루미가 월동하고 있기에 볼 수 있는 장관입니다. 이런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은 세계적으로도 희귀합니다.



예전에도 순천만에서 흑두루미를 쉽게 볼 수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지난 1996년 75마리의 흑두루미만 관찰됐습니다. 그전에는 순천만에서 흑두루미가 지속적으로 월동한다는 사실 자체도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2007년에는 229마리로 늘었고 지난해 겨울에는 천 마리를 넘었습니다. 올 겨울에도 천 백마리가 넘는 흑두루미가 왔고 지금은 천70여 마리가 월동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흑두루미가 늘어나게 된 데는 사연이 있습니다. 90년대 초반 순천시는 순천만에 흘러드는 동천 하구의 하도정비사업을 추진했습니다. 홍수 때 물이 빨리 바다로 빠져나가도록 하구를 직강화하고 골재를 채취할 계획이었습니다. 그럴 경우 순천만의 갈대밭과 굽이치는 갯벌 습지가 사라지게 될 운명이었습니다. 갈대습지를 지키자는 일부 시민단체의 반발이 있었지만 순천만의 미래는 암울했습니다.



그러던 중 뜻밖의 일이 벌어졌습니다. 1996년 11월 순천만 생태계 조사 때 갯벌 한쪽에서 흑두루미가 발견된 것입니다. 흑두루미 75마리와 재두루미, 황새, 저어새도 관찰됐습니다. 당시 생태조사에 나섰던 김인철 씨는 흑두루미를 발견한 순간 '순천만 지키기' 싸움이 극적인 전기를 맞이했다고 말합니다. 흑두루미가 월동한다는 것은 순천만 갈대 습지와 갯벌이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보전 가치가 높다는 점을 보여줬습니다. 2년 뒤 순천만 직강화와 골재채취 사업은 취소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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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만 습지를 살린 흑두루미는 그 뒤 순천을 대표하는 새가 됐습니다. 흑두루미를 보호하려는 활동이 잇따랐습니다. 2009년 4월, 대대들의 전봇대 제거는 그 상징이었습니다. 당시 흑두루미 월동 개체 수는 3백여 마리, 순천시는 전봇대를 제거하면서 천 마리 흑두루미가 찾는 '천학(千鶴)의 꿈'을 말했습니다. 당시는 누구도 그 꿈이 쉽게 이뤄지리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불과 6년 뒤인 지난 겨울, 천 마리가 넘는 흑두루미가 순천만에 찾아왔습니다. 마침내 '천학(千鶴)의 꿈'이 이뤄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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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순천은 철새 보호 영역을 점차 넓히고 있습니다. 지난 2015년 12월 순천만 대대들 위쪽의 동천하구 습지 5.394㎢를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했습니다. 천을 넘어서 2천, 3천의 흑두루미가 찾기에 기존의 보호구역만으로는 좁기 때문입니다. 주민들도 이제는 자연과 생명을 대하는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자연을 지키고 야생의 생명들과 함께 한 결과 사람들의 삶도 더불어 풍요로워진다는 것을 몸으로 체험한 겁니다. 자칫 개발 사업으로 사라질 뻔했던 순천만, 그 위기를 극복하고 철새의 낙원으로 거듭난 순천, 그래서 순천은 '대한민국 생태 수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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