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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조성진의 스승’…미셸 베로프를 만나다(5)
입력 2018.05.20 (20:06) 수정 2018.05.21 (17:34) 취재K
출처: http://zeneiversenyek.hu/michel-beroff/출처: http://zeneiversenyek.hu/michel-beroff/

피아니스트 조성진은 올해 초 국내 첫 전국투어를 앞두고 가진 기자회견에서 앞으로의 포부를 묻는 질문에 이같이 밝혔다. "외국에서 연주활동을 하면서 인종차별을 당해본 적은 한 번도 없는 것 같아요. 그렇지만 아직까지 '동양인 연주자에 대한 선입견'은 있는 것 같아요. 제 윗세대 선배님들께서 너무 열심히 잘해주셨기 때문에 지금 저희가 수월하게 외국에서 활동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래도 '동양 연주자는 이럴 것이다'라는 선입견이 있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그런 선입견을 깨보고 싶은 목표가 있어요. 그래서 제가 기성세대가 되었을 때 후배들은 그런 선입견도 겪지 않고 연주활동을 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동양인 연주자를 바라보는 선입견'이라는 게 어떤 것인지 그에게 직접 물을 기회는 없었지만, 조성진의 스승인 미셸 베로프 교수로부터 관련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지난 편에서 이어집니다.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스승’…미셸 베로프를 만나다(1)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스승’…미셸 베로프를 만나다(2)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스승’…미셸 베로프를 만나다(3)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스승’…미셸 베로프를 만나다(4)


Q. 교수님은 다양한 나라에서 온 학생들을 만나보셨을 테고 또 한국의 피아니스트들과 음악 교육에 대해서도 호평을 해주셨는데요, 나라별로 다른 점이 있다고 느끼시나요?

차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프랑스나 유럽의 다른 나라들이 수천 년 동안 고유의 문화를 발전시켜오는 동안 다른 나라들은 그들만의 문화를 옛날부터 발전시켜온 거잖아요. 그런 만큼 사고방식도 다르게 발전돼왔을 것이고 음악도 마찬가지겠지요. 프랑스와 가까운 일본의 경우에도 그들만의 음악을 가지고 있다가 메이지 시대 말부터 서양 음악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으로 압니다. 그러니까 130년에서 150년 정도 되겠죠. 한국은 아마 그보다도 더 나중이겠고요. 아무리 많은 에너지와 애정을 쏟는다 해도 같을 수는 없을 거예요. 알아갈 수는 있겠죠. 어떤 한 문화를 소화하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하니까요. 일본의 경우도 오랜 기간 '카피 예술'의 경향이 있었고 그러다가 개인화되는 쪽으로 점차 발전해갔습니다. 동양에 비해 유럽은 훨씬 더 개인주의적인 경향이 강하고, 프랑스 사람의 경우만 봐도 알 수 있듯 라틴족들은 더욱 그런 경향이 강하죠. 일본과는 확연히 차이가 납니다. 한국은 또 좀 다르겠지요.

그리고 나라마다 역사가 다르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표현 방식'도 다를 수밖에 없죠. 오랜 기간 어떤 언어나 문화 속에서 살아오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그 문화에 속하는 무언가를 가지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문화에 관심이 있고 알고 싶어 하면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죠. 느끼는 방식도 나라마다 다를 테니까요. 언어를 배워서 책을 읽을 줄 알게 된다고 해도 느끼는 것까지 같지는 않을 겁니다. 사소한 것들은 말할 것도 없죠. 문화권을 바꿔서 익숙해지려면 10년, 20년 가지고는 안 되고 훨씬 더 많은 시간이 걸립니다. 가장 중요한 건 애정과 관심인데요, 제 경험으로 보면 서로 다른 문화가 접목될 때 가장 흥미롭습니다. 프랑스나 유럽, 미국으로 오는 동양의 젊은이들이 서로 다른 문화를 잘 조화시켜 소화하게 되면 항상 결과가 좋더라고요. 생각해보면 인간이라는 것도 '섞임'이 없었다면 존재할 수 없지 않았을까요? DNA 같은 것도 그렇죠. '섞임', '혼합'이 있었기 때문에 더욱 풍요해진 것이고 문화도 마찬가지예요. '섞임'과 '조화'가 필요하죠. 문화마다 상상력도 다르니까요.

Q. 문화가 섞이면 더 좋다는 말씀이세요?

우리가 이제까지 살아온 문화권과 완전히 다른 나라에서 살게 되면, 그것도 오랫동안 서로 거의 영향을 주고받은 적이 없는 곳에 살게 되면 판단을 하기보다는 각각의 나라마다 고유한 가치가 있고 문화가 '다를' 뿐이라고 생각하는 게 좋죠. 그리고 개인주의적인 측면이 아주 중요한데 그것도 단점은 있습니다. 너무 개인주의적으로 되다 보면 자기를 표현하는 데에 집중하게 돼서 음악을 하는 데는 좋지 않거든요.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모차르트, 베토벤, 쇼팽 등의 음악을 연주할 때는 작곡가들을 최대한 헤아리고 받든다는 생각으로 해야 하니까요. 따라서 너무 개인주의적인 건 좋지 않고 상상력은 아주 중요합니다.

예술에 있어서의 상상력을 여러 번 강조하시네요.

아시아의 예술은 조금 다른 방향으로 나아간 것 같은데요, 우선 개인주의적이지 않죠. 하지만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서양 나라들에서는 어떤 화가나 예술가의 경우 "이걸 만든 사람은 나다, 이것은 바로 내 작품이다"라고 내세우는 경우가 많았어요. 겸손과 겸양은 찾아보기 어려웠죠. 반면 아시아권에서는 예술가들이 자기를 덜 내세우면서도 서양 못잖게 훌륭한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좋은 거죠. 하지만 음악에 있어서는 오로지 상상력이 중요한데요, 악보를 읽고 해석할 때도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수 있잖아요? 그래서 상상을 할 때도 작곡가가 말하고자 한 것은 무엇인가에 초점을 맞추어 상상해보는 건데, 작곡가가 같은 문명이나 같은 문화권의 사람일 경우 일종의 생각하는 방식이나 예술적·문화적인 준거가 있을 수 있죠. 또 어떤 작곡가가 어떤 시인이나 예술가에 의해 영향을 받았다는 걸 이미 알 수도 있고요. 특정 문학 사조가 유행하던 시기에 악보 해석이 어땠는지 알아보는 건 그래서 아주 흥미로운 일이기도 합니다. 특정 시기에 문학과 음악이 서로 어떤 영향을 주고받았는지 말이죠. 물론 쉬운 작업은 아니에요. 아무리 노력해도 우리는 그 작곡가가 될 수는 없으니까요. 그래도 작품이 나오게 된 당시의 맥락은 아주 중요합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우리가 우리 자신의 상상력에만 국한된다면 다시 말해 자기가 알고 있는 것에만 국한된다면 그것도 충분하지 않아요. 왜냐면 나는 그냥 나 한 사람일 뿐이고 다른 사람은 아니니까요. 그래서 상상력이 필요하고 발휘해야만 하는 겁니다.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도 자기가 알고 있는 것을 기준으로만 말하고 남의 입장을 헤아리거나 차이점을 이해하려 하지 않으면 소통이 이뤄지기 힘들잖아요.

제 경험에 의하면 한국 학생들은 정말 열심히 하고 잘해요. 전반적으로 유럽 학생들에 비해 아시아계 학생들이 그렇죠. 그러니까 콩쿠르에서도 좋은 결과를 내는 게 아니겠어요. 하지만 예술적으로는 악기를 잘한다고 해서 예술가는 아닙니다. 일생이 걸린 일이고 인생은 아주 길기 때문이죠. 저는 여기서 '혼합' '섞임' '조화'를 다시 떠올려보게 되는데요, 한국 학생들의 경우 자발성이라든가 서양문화하고의 접목이 더 쉬운 것 같아요. 일본 학생들의 경우 말로 표현하는 것과 진짜 생각하는 걸 알아내기까지가 더 어려운 것 같거든요. 중국 학생들은 나라가 커서 그런지 지역에 따른 차이도 큰 것 같고요. 그리고 한국 학생들의 경우는 언제나 존경심을 가지고 있더라고요. 그러면서 자율성도 있고 그러면서도 비판적이고 상상력도 풍부하고요. 비판 정신 역시 중요하거든요, '이게 맞나? 왜 이렇게 하라는 거지?'라고 자문해볼 수 있어야죠. 그래야만 선생님도 학생에게 더 자세히 설명해줄 수 있고요. "잔 말 말고 이렇게 해"라는 건 교육이 아니니까요. 가르침이라는 건 학생에게 설명을 해주는 거죠. 따라서 비판 정신이 없다면, 다시 말해 더 알고자 하는 마음이 없다면 퇴보하게 돼요. 그런데 이런 비판 정신이 한국 학생들에게는 비교적 잘 발달되어 있는 것 같아요.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음악 작품에는 단 한 가지 해석이 아니라 많은 해석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음악은 말이 아니니까요. 연주장의 청중도 그걸 알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그냥 와서 티켓을 사고 힘든 하루를 보낸 후 무작정 감동을 기대하며 앉아 있는 경우도 있겠지만 소통은 양방향으로 되는 것이거든요. 그래서 각자가 음악과 갖는 관계도 다 다른 거고요.


Q. 동양인 연주자가 서양 음악을 하는 데 있어 더 어려운 점이 있을까요?

아시아 음악가들이 실력을 갖추고 서양 음악 시장에 진출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때로 '연주는 잘하지만 진정한 아티스트는 아니라'고 쉽게 매도돼버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비판은 그렇게 피상적이어서는 안 되고 지적이고 섬세해야죠. 물론 동양인들 가운데는 피아노를 그저 빠르고 강하게 기계처럼 연주하는 경우도 있어요. 그럴 경우는 음악이라 하기 어렵죠. 유럽 학생들보다 아시아 학생들에게 그런 경향이 자주 나타나는 것도 사실이고요. 왜냐면 유럽 학생들의 경우 그 정도로 학구열이 세지 않거든요, 반면 중국은 랑랑 같은 피아니스트를 따라 자녀가 하나인 가정에서 무조건 열심히만 시켜서 자신이 뭘 하는지도 모른 채 열심히만 하는 아이들도 있어요. 극단적인 예를 들었지만 워낙 오래 유럽이 세상의 중요한 축이었다 보니 중국과 한국 등이 새롭게 부상하면서 자연히 견제심 같은 것도 좀 작용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비단 음악에서만은 아니겠죠. 하지만 생각이 있는 지성인이라면 그런 편견을 갖지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성공은 우연이 아니잖아요, 많은 투자가 있었던 것이고 그럴만하니까 성공하게 되는 거죠. 오히려 저는 그런 사람들을 예로 들어 "저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성공하게 됐는지 한번 봐라, 우리는 그저 스스로 오랜 역사를 지닌 문명이라고 하면서 자연스럽게 성공할 것이라 기대하지만 그렇지 않다, 자신을 돌아보지 않으면 쇠퇴하게 될 것이다"라고 이야기합니다. 실제로도 그래요.

지성인이라면 추상적 이미지가 아니라 '진정성'과 '성실함'을 봅니다. 굳이 문화적으로 분류한다면 서양 음악에 예술적으로 좀 더 적합한 무언가를 가진 연주자가 유럽 사람 중에 일반적으로 더 많을 거라고 할 수는 있겠죠. 독일 사람이 작곡한 음악에 대해 인도네시아 사람보다는 독일인이 좀 더 민감하지 않을까요? 아무래도.

Q. 마무리로 당부하고 싶은 게 있으세요?

훌륭한 음악가들에게 취약한 점이 있다면 대중에게 보여지는 이미지에 현혹되기 쉽다는 점입니다. 자신이 누구인지 확실히 알고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게 쉽지는 않죠. 하지만 때로 대중은 그 음악가 자신과는 매우 다른 이미지를 읽어내고 그게 그 음악가라고 생각해버리기도 합니다. 따라서 자기 자신이 누군지 아는 것은 매우 어렵지만 살면서 아주 중요한 일이죠. 내가 바라는 것과 최선의 길로 가기 위해 무엇이 중요한지 아는 것. 그걸 알아내야 합니다. 그리고 음악가는 인품이 그대로 배어 나온다는 말이 맞아요. 따라서 항상 스스로를 점검해봐야 합니다. 물론 음악을 최대한 잘 전달하기 위해 악보 읽기에 소홀하면 안 되고 작품을 '재현'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어떤 연주자는 "내가 이렇게 느끼기 때문에 이렇게 표현한다"는 경우도 있는데 자신이 느끼는 대로 하려면 직접 작곡해야지 다른 사람이 만든 음악을 연주하면서 자기가 느끼는 대로 연주한다는 건 맞지 않습니다. 그래서 음악가에게는 호기심이 필요한 것이기도 하고요. 호기심이 없다면 음악을 하지 말아야죠. 그리고 절대로 조언 구하는 걸 망설여서는 안 됩니다. 경험이 풍부하고 앞서 어려움을 겪어 본 사람들을 찾아가 묻고 대화하면서 마음을 여는 게 중요합니다. 내적 성찰이 중요한 만큼 이러기 힘들기도 하지만 균형을 맞춰야죠. 물론 사람을 잘 가려서요. 궁금한 점이 있을 때 새로운 시각을 열어줄 수 있는 사람, 지혜로운 사람들을 곁에 두는 게 중요합니다. 예술가라는 직업은 '공인'의 삶이고 늘 대중에게 보여지는 삶이기 때문에 어렵거든요. 객관성을 유지하기도 힘들고요.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없으면 현실감각을 잃기도 쉽습니다. 저는 조성진 같은 제자들이 그럴 때 저를 찾아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쁠 겁니다. 제자들을 위해 저는 항상 그 자리에 있을 거고요. 훌륭한 예술가를 키워내고 조언해주는 일만큼 큰 보람도 없지요.

출처 : 연합뉴스출처 : 연합뉴스

끝으로 동시대 레퍼토리를 섭렵하라고 꼭 당부하고 싶습니다. 오늘의 음악을 오늘 해야지 20년 후에 연주해야지 하면 안 돼요. 한국에도 훌륭한 작곡가들이 많죠? 그럼 연주자가 협주곡을 의뢰할 수도 있을 것이고 그런 식으로 동시대 음악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예술가에게 매우 중요한 일이죠. 많은 음악가들이 고전주의와 낭만주의 레퍼토리를 즐겨하는데, 20세기 이후 음악을 좀 더 연주해야 해요. 그게 얼마나 유용한지 모릅니다. 누구나 한 시대의 음악가잖아요, 그러면 자기 시대 음악을 연주해야 하죠. 18, 19세기에는 그 당시 음악만 연주했었어요. 이전 시대 음악이 아니라. 그러다 20세기 들어 과거 음악을 연주하기 시작했죠, 그래서 좋은 점도 많았지만 그런 변화가 매우 빠르게 일어나면서 동시대를 살아가는 대중과 유리되기 시작했어요. 동시대 음악을 연주하면 드뷔시나 베토벤 등 클래식 음악을 연주하는 데도 좋은데요, 그래서 반드시 권하고 싶습니다.
  •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스승’…미셸 베로프를 만나다(5)
    • 입력 2018-05-20 20:06:00
    • 수정2018-05-21 17:34:56
    취재K
출처: http://zeneiversenyek.hu/michel-beroff/출처: http://zeneiversenyek.hu/michel-beroff/

피아니스트 조성진은 올해 초 국내 첫 전국투어를 앞두고 가진 기자회견에서 앞으로의 포부를 묻는 질문에 이같이 밝혔다. "외국에서 연주활동을 하면서 인종차별을 당해본 적은 한 번도 없는 것 같아요. 그렇지만 아직까지 '동양인 연주자에 대한 선입견'은 있는 것 같아요. 제 윗세대 선배님들께서 너무 열심히 잘해주셨기 때문에 지금 저희가 수월하게 외국에서 활동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래도 '동양 연주자는 이럴 것이다'라는 선입견이 있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그런 선입견을 깨보고 싶은 목표가 있어요. 그래서 제가 기성세대가 되었을 때 후배들은 그런 선입견도 겪지 않고 연주활동을 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동양인 연주자를 바라보는 선입견'이라는 게 어떤 것인지 그에게 직접 물을 기회는 없었지만, 조성진의 스승인 미셸 베로프 교수로부터 관련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지난 편에서 이어집니다.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스승’…미셸 베로프를 만나다(1)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스승’…미셸 베로프를 만나다(2)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스승’…미셸 베로프를 만나다(3)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스승’…미셸 베로프를 만나다(4)


Q. 교수님은 다양한 나라에서 온 학생들을 만나보셨을 테고 또 한국의 피아니스트들과 음악 교육에 대해서도 호평을 해주셨는데요, 나라별로 다른 점이 있다고 느끼시나요?

차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프랑스나 유럽의 다른 나라들이 수천 년 동안 고유의 문화를 발전시켜오는 동안 다른 나라들은 그들만의 문화를 옛날부터 발전시켜온 거잖아요. 그런 만큼 사고방식도 다르게 발전돼왔을 것이고 음악도 마찬가지겠지요. 프랑스와 가까운 일본의 경우에도 그들만의 음악을 가지고 있다가 메이지 시대 말부터 서양 음악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으로 압니다. 그러니까 130년에서 150년 정도 되겠죠. 한국은 아마 그보다도 더 나중이겠고요. 아무리 많은 에너지와 애정을 쏟는다 해도 같을 수는 없을 거예요. 알아갈 수는 있겠죠. 어떤 한 문화를 소화하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하니까요. 일본의 경우도 오랜 기간 '카피 예술'의 경향이 있었고 그러다가 개인화되는 쪽으로 점차 발전해갔습니다. 동양에 비해 유럽은 훨씬 더 개인주의적인 경향이 강하고, 프랑스 사람의 경우만 봐도 알 수 있듯 라틴족들은 더욱 그런 경향이 강하죠. 일본과는 확연히 차이가 납니다. 한국은 또 좀 다르겠지요.

그리고 나라마다 역사가 다르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표현 방식'도 다를 수밖에 없죠. 오랜 기간 어떤 언어나 문화 속에서 살아오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그 문화에 속하는 무언가를 가지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문화에 관심이 있고 알고 싶어 하면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죠. 느끼는 방식도 나라마다 다를 테니까요. 언어를 배워서 책을 읽을 줄 알게 된다고 해도 느끼는 것까지 같지는 않을 겁니다. 사소한 것들은 말할 것도 없죠. 문화권을 바꿔서 익숙해지려면 10년, 20년 가지고는 안 되고 훨씬 더 많은 시간이 걸립니다. 가장 중요한 건 애정과 관심인데요, 제 경험으로 보면 서로 다른 문화가 접목될 때 가장 흥미롭습니다. 프랑스나 유럽, 미국으로 오는 동양의 젊은이들이 서로 다른 문화를 잘 조화시켜 소화하게 되면 항상 결과가 좋더라고요. 생각해보면 인간이라는 것도 '섞임'이 없었다면 존재할 수 없지 않았을까요? DNA 같은 것도 그렇죠. '섞임', '혼합'이 있었기 때문에 더욱 풍요해진 것이고 문화도 마찬가지예요. '섞임'과 '조화'가 필요하죠. 문화마다 상상력도 다르니까요.

Q. 문화가 섞이면 더 좋다는 말씀이세요?

우리가 이제까지 살아온 문화권과 완전히 다른 나라에서 살게 되면, 그것도 오랫동안 서로 거의 영향을 주고받은 적이 없는 곳에 살게 되면 판단을 하기보다는 각각의 나라마다 고유한 가치가 있고 문화가 '다를' 뿐이라고 생각하는 게 좋죠. 그리고 개인주의적인 측면이 아주 중요한데 그것도 단점은 있습니다. 너무 개인주의적으로 되다 보면 자기를 표현하는 데에 집중하게 돼서 음악을 하는 데는 좋지 않거든요.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모차르트, 베토벤, 쇼팽 등의 음악을 연주할 때는 작곡가들을 최대한 헤아리고 받든다는 생각으로 해야 하니까요. 따라서 너무 개인주의적인 건 좋지 않고 상상력은 아주 중요합니다.

예술에 있어서의 상상력을 여러 번 강조하시네요.

아시아의 예술은 조금 다른 방향으로 나아간 것 같은데요, 우선 개인주의적이지 않죠. 하지만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서양 나라들에서는 어떤 화가나 예술가의 경우 "이걸 만든 사람은 나다, 이것은 바로 내 작품이다"라고 내세우는 경우가 많았어요. 겸손과 겸양은 찾아보기 어려웠죠. 반면 아시아권에서는 예술가들이 자기를 덜 내세우면서도 서양 못잖게 훌륭한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좋은 거죠. 하지만 음악에 있어서는 오로지 상상력이 중요한데요, 악보를 읽고 해석할 때도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수 있잖아요? 그래서 상상을 할 때도 작곡가가 말하고자 한 것은 무엇인가에 초점을 맞추어 상상해보는 건데, 작곡가가 같은 문명이나 같은 문화권의 사람일 경우 일종의 생각하는 방식이나 예술적·문화적인 준거가 있을 수 있죠. 또 어떤 작곡가가 어떤 시인이나 예술가에 의해 영향을 받았다는 걸 이미 알 수도 있고요. 특정 문학 사조가 유행하던 시기에 악보 해석이 어땠는지 알아보는 건 그래서 아주 흥미로운 일이기도 합니다. 특정 시기에 문학과 음악이 서로 어떤 영향을 주고받았는지 말이죠. 물론 쉬운 작업은 아니에요. 아무리 노력해도 우리는 그 작곡가가 될 수는 없으니까요. 그래도 작품이 나오게 된 당시의 맥락은 아주 중요합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우리가 우리 자신의 상상력에만 국한된다면 다시 말해 자기가 알고 있는 것에만 국한된다면 그것도 충분하지 않아요. 왜냐면 나는 그냥 나 한 사람일 뿐이고 다른 사람은 아니니까요. 그래서 상상력이 필요하고 발휘해야만 하는 겁니다.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도 자기가 알고 있는 것을 기준으로만 말하고 남의 입장을 헤아리거나 차이점을 이해하려 하지 않으면 소통이 이뤄지기 힘들잖아요.

제 경험에 의하면 한국 학생들은 정말 열심히 하고 잘해요. 전반적으로 유럽 학생들에 비해 아시아계 학생들이 그렇죠. 그러니까 콩쿠르에서도 좋은 결과를 내는 게 아니겠어요. 하지만 예술적으로는 악기를 잘한다고 해서 예술가는 아닙니다. 일생이 걸린 일이고 인생은 아주 길기 때문이죠. 저는 여기서 '혼합' '섞임' '조화'를 다시 떠올려보게 되는데요, 한국 학생들의 경우 자발성이라든가 서양문화하고의 접목이 더 쉬운 것 같아요. 일본 학생들의 경우 말로 표현하는 것과 진짜 생각하는 걸 알아내기까지가 더 어려운 것 같거든요. 중국 학생들은 나라가 커서 그런지 지역에 따른 차이도 큰 것 같고요. 그리고 한국 학생들의 경우는 언제나 존경심을 가지고 있더라고요. 그러면서 자율성도 있고 그러면서도 비판적이고 상상력도 풍부하고요. 비판 정신 역시 중요하거든요, '이게 맞나? 왜 이렇게 하라는 거지?'라고 자문해볼 수 있어야죠. 그래야만 선생님도 학생에게 더 자세히 설명해줄 수 있고요. "잔 말 말고 이렇게 해"라는 건 교육이 아니니까요. 가르침이라는 건 학생에게 설명을 해주는 거죠. 따라서 비판 정신이 없다면, 다시 말해 더 알고자 하는 마음이 없다면 퇴보하게 돼요. 그런데 이런 비판 정신이 한국 학생들에게는 비교적 잘 발달되어 있는 것 같아요.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음악 작품에는 단 한 가지 해석이 아니라 많은 해석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음악은 말이 아니니까요. 연주장의 청중도 그걸 알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그냥 와서 티켓을 사고 힘든 하루를 보낸 후 무작정 감동을 기대하며 앉아 있는 경우도 있겠지만 소통은 양방향으로 되는 것이거든요. 그래서 각자가 음악과 갖는 관계도 다 다른 거고요.


Q. 동양인 연주자가 서양 음악을 하는 데 있어 더 어려운 점이 있을까요?

아시아 음악가들이 실력을 갖추고 서양 음악 시장에 진출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때로 '연주는 잘하지만 진정한 아티스트는 아니라'고 쉽게 매도돼버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비판은 그렇게 피상적이어서는 안 되고 지적이고 섬세해야죠. 물론 동양인들 가운데는 피아노를 그저 빠르고 강하게 기계처럼 연주하는 경우도 있어요. 그럴 경우는 음악이라 하기 어렵죠. 유럽 학생들보다 아시아 학생들에게 그런 경향이 자주 나타나는 것도 사실이고요. 왜냐면 유럽 학생들의 경우 그 정도로 학구열이 세지 않거든요, 반면 중국은 랑랑 같은 피아니스트를 따라 자녀가 하나인 가정에서 무조건 열심히만 시켜서 자신이 뭘 하는지도 모른 채 열심히만 하는 아이들도 있어요. 극단적인 예를 들었지만 워낙 오래 유럽이 세상의 중요한 축이었다 보니 중국과 한국 등이 새롭게 부상하면서 자연히 견제심 같은 것도 좀 작용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비단 음악에서만은 아니겠죠. 하지만 생각이 있는 지성인이라면 그런 편견을 갖지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성공은 우연이 아니잖아요, 많은 투자가 있었던 것이고 그럴만하니까 성공하게 되는 거죠. 오히려 저는 그런 사람들을 예로 들어 "저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성공하게 됐는지 한번 봐라, 우리는 그저 스스로 오랜 역사를 지닌 문명이라고 하면서 자연스럽게 성공할 것이라 기대하지만 그렇지 않다, 자신을 돌아보지 않으면 쇠퇴하게 될 것이다"라고 이야기합니다. 실제로도 그래요.

지성인이라면 추상적 이미지가 아니라 '진정성'과 '성실함'을 봅니다. 굳이 문화적으로 분류한다면 서양 음악에 예술적으로 좀 더 적합한 무언가를 가진 연주자가 유럽 사람 중에 일반적으로 더 많을 거라고 할 수는 있겠죠. 독일 사람이 작곡한 음악에 대해 인도네시아 사람보다는 독일인이 좀 더 민감하지 않을까요? 아무래도.

Q. 마무리로 당부하고 싶은 게 있으세요?

훌륭한 음악가들에게 취약한 점이 있다면 대중에게 보여지는 이미지에 현혹되기 쉽다는 점입니다. 자신이 누구인지 확실히 알고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게 쉽지는 않죠. 하지만 때로 대중은 그 음악가 자신과는 매우 다른 이미지를 읽어내고 그게 그 음악가라고 생각해버리기도 합니다. 따라서 자기 자신이 누군지 아는 것은 매우 어렵지만 살면서 아주 중요한 일이죠. 내가 바라는 것과 최선의 길로 가기 위해 무엇이 중요한지 아는 것. 그걸 알아내야 합니다. 그리고 음악가는 인품이 그대로 배어 나온다는 말이 맞아요. 따라서 항상 스스로를 점검해봐야 합니다. 물론 음악을 최대한 잘 전달하기 위해 악보 읽기에 소홀하면 안 되고 작품을 '재현'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어떤 연주자는 "내가 이렇게 느끼기 때문에 이렇게 표현한다"는 경우도 있는데 자신이 느끼는 대로 하려면 직접 작곡해야지 다른 사람이 만든 음악을 연주하면서 자기가 느끼는 대로 연주한다는 건 맞지 않습니다. 그래서 음악가에게는 호기심이 필요한 것이기도 하고요. 호기심이 없다면 음악을 하지 말아야죠. 그리고 절대로 조언 구하는 걸 망설여서는 안 됩니다. 경험이 풍부하고 앞서 어려움을 겪어 본 사람들을 찾아가 묻고 대화하면서 마음을 여는 게 중요합니다. 내적 성찰이 중요한 만큼 이러기 힘들기도 하지만 균형을 맞춰야죠. 물론 사람을 잘 가려서요. 궁금한 점이 있을 때 새로운 시각을 열어줄 수 있는 사람, 지혜로운 사람들을 곁에 두는 게 중요합니다. 예술가라는 직업은 '공인'의 삶이고 늘 대중에게 보여지는 삶이기 때문에 어렵거든요. 객관성을 유지하기도 힘들고요.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없으면 현실감각을 잃기도 쉽습니다. 저는 조성진 같은 제자들이 그럴 때 저를 찾아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쁠 겁니다. 제자들을 위해 저는 항상 그 자리에 있을 거고요. 훌륭한 예술가를 키워내고 조언해주는 일만큼 큰 보람도 없지요.

출처 : 연합뉴스출처 : 연합뉴스

끝으로 동시대 레퍼토리를 섭렵하라고 꼭 당부하고 싶습니다. 오늘의 음악을 오늘 해야지 20년 후에 연주해야지 하면 안 돼요. 한국에도 훌륭한 작곡가들이 많죠? 그럼 연주자가 협주곡을 의뢰할 수도 있을 것이고 그런 식으로 동시대 음악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예술가에게 매우 중요한 일이죠. 많은 음악가들이 고전주의와 낭만주의 레퍼토리를 즐겨하는데, 20세기 이후 음악을 좀 더 연주해야 해요. 그게 얼마나 유용한지 모릅니다. 누구나 한 시대의 음악가잖아요, 그러면 자기 시대 음악을 연주해야 하죠. 18, 19세기에는 그 당시 음악만 연주했었어요. 이전 시대 음악이 아니라. 그러다 20세기 들어 과거 음악을 연주하기 시작했죠, 그래서 좋은 점도 많았지만 그런 변화가 매우 빠르게 일어나면서 동시대를 살아가는 대중과 유리되기 시작했어요. 동시대 음악을 연주하면 드뷔시나 베토벤 등 클래식 음악을 연주하는 데도 좋은데요, 그래서 반드시 권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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