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명으로 살았어요”…생존 광복군이 전하는 처참한 ‘과거’
입력 2019.04.12 (09:39)
수정 2019.04.12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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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광복군 중에는 해방 뒤에도 한국에 정착하지 못하고 적국이었던 일본으로 간 경우도 있습니다.
살아남기 위해 본명을 숨기고 가명으로 긴 세월을 살아야만 했는데요,
이제는 100살을 바라보는, 거의 마지막 남은 생존 광복군이 말하는 처참했던 당시 상황과 김구 선생과의 운명적인 만남, 도쿄 이민영 특파원이 전해드립니다.
[리포트]
도쿄 외곽의 주택가.
'독립유공자의 집' 한글 문패가 걸려있습니다.
얼마 전 우리 정부가 달아준 겁니다.
올해 97살의 오성규 지사, 중학생이던 16살에 중국으로 가 충칭 광복군에 입대했습니다.
무기도 군복도 변변치 않았던 광복군 생활은 고난의 길이었습니다.
[오성규/지사/광복군 출신 : "작은 호떡 하나, 소금국에 배추 한두 장, 그러니까 영양부족으로 몸에 옴이 생깁디다."]
고된 생활을 견뎌낸 힘은 독립에 대한 열망이었고 김구 선생과도 운명적인 만남을 가졌습니다.
[오성규/지사/광복군 출신 : "김구 선생이 여러 가지 얘기를 했어요. 임시정부가 어떻게 생겼다는 얘기, 그 전에는 처음 상해에 있었다는 얘기..."]
서울 진격을 앞두고 낙하산 훈련을 받으러 가던 길, 광복 소식을 들었습니다.
조국에 돌아왔지만 혼란스런 정치 상황은 오 지사를 적국이었던 일본으로 내몰았습니다.
[오성규/지사/광복군 출신 : "자꾸 압력이 들어오고 잡혀 들어가고 잡혀 가면 행방불명이 됩니다."]
1990년에야 정부가 수여한 훈장에 적힌 이름은 주태석, 그의 가명이었습니다.
[오성규/지사/광복군 출신 : "주태석이라고 돼 있죠? 주태석 내 이름. 가명을 쓰고 살았다고 일본에서... 일본이 패전했지만, 광복군 관계된 명단은 다 가지고 있을 거다."]
아픈 역사를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게 100살을 바라보는 광복군의 당부입니다.
도쿄에서 KBS 뉴스 이민영입니다.
광복군 중에는 해방 뒤에도 한국에 정착하지 못하고 적국이었던 일본으로 간 경우도 있습니다.
살아남기 위해 본명을 숨기고 가명으로 긴 세월을 살아야만 했는데요,
이제는 100살을 바라보는, 거의 마지막 남은 생존 광복군이 말하는 처참했던 당시 상황과 김구 선생과의 운명적인 만남, 도쿄 이민영 특파원이 전해드립니다.
[리포트]
도쿄 외곽의 주택가.
'독립유공자의 집' 한글 문패가 걸려있습니다.
얼마 전 우리 정부가 달아준 겁니다.
올해 97살의 오성규 지사, 중학생이던 16살에 중국으로 가 충칭 광복군에 입대했습니다.
무기도 군복도 변변치 않았던 광복군 생활은 고난의 길이었습니다.
[오성규/지사/광복군 출신 : "작은 호떡 하나, 소금국에 배추 한두 장, 그러니까 영양부족으로 몸에 옴이 생깁디다."]
고된 생활을 견뎌낸 힘은 독립에 대한 열망이었고 김구 선생과도 운명적인 만남을 가졌습니다.
[오성규/지사/광복군 출신 : "김구 선생이 여러 가지 얘기를 했어요. 임시정부가 어떻게 생겼다는 얘기, 그 전에는 처음 상해에 있었다는 얘기..."]
서울 진격을 앞두고 낙하산 훈련을 받으러 가던 길, 광복 소식을 들었습니다.
조국에 돌아왔지만 혼란스런 정치 상황은 오 지사를 적국이었던 일본으로 내몰았습니다.
[오성규/지사/광복군 출신 : "자꾸 압력이 들어오고 잡혀 들어가고 잡혀 가면 행방불명이 됩니다."]
1990년에야 정부가 수여한 훈장에 적힌 이름은 주태석, 그의 가명이었습니다.
[오성규/지사/광복군 출신 : "주태석이라고 돼 있죠? 주태석 내 이름. 가명을 쓰고 살았다고 일본에서... 일본이 패전했지만, 광복군 관계된 명단은 다 가지고 있을 거다."]
아픈 역사를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게 100살을 바라보는 광복군의 당부입니다.
도쿄에서 KBS 뉴스 이민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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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명으로 살았어요”…생존 광복군이 전하는 처참한 ‘과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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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9-04-12 09:43:45
- 수정2019-04-12 13:29:38
[앵커]
광복군 중에는 해방 뒤에도 한국에 정착하지 못하고 적국이었던 일본으로 간 경우도 있습니다.
살아남기 위해 본명을 숨기고 가명으로 긴 세월을 살아야만 했는데요,
이제는 100살을 바라보는, 거의 마지막 남은 생존 광복군이 말하는 처참했던 당시 상황과 김구 선생과의 운명적인 만남, 도쿄 이민영 특파원이 전해드립니다.
[리포트]
도쿄 외곽의 주택가.
'독립유공자의 집' 한글 문패가 걸려있습니다.
얼마 전 우리 정부가 달아준 겁니다.
올해 97살의 오성규 지사, 중학생이던 16살에 중국으로 가 충칭 광복군에 입대했습니다.
무기도 군복도 변변치 않았던 광복군 생활은 고난의 길이었습니다.
[오성규/지사/광복군 출신 : "작은 호떡 하나, 소금국에 배추 한두 장, 그러니까 영양부족으로 몸에 옴이 생깁디다."]
고된 생활을 견뎌낸 힘은 독립에 대한 열망이었고 김구 선생과도 운명적인 만남을 가졌습니다.
[오성규/지사/광복군 출신 : "김구 선생이 여러 가지 얘기를 했어요. 임시정부가 어떻게 생겼다는 얘기, 그 전에는 처음 상해에 있었다는 얘기..."]
서울 진격을 앞두고 낙하산 훈련을 받으러 가던 길, 광복 소식을 들었습니다.
조국에 돌아왔지만 혼란스런 정치 상황은 오 지사를 적국이었던 일본으로 내몰았습니다.
[오성규/지사/광복군 출신 : "자꾸 압력이 들어오고 잡혀 들어가고 잡혀 가면 행방불명이 됩니다."]
1990년에야 정부가 수여한 훈장에 적힌 이름은 주태석, 그의 가명이었습니다.
[오성규/지사/광복군 출신 : "주태석이라고 돼 있죠? 주태석 내 이름. 가명을 쓰고 살았다고 일본에서... 일본이 패전했지만, 광복군 관계된 명단은 다 가지고 있을 거다."]
아픈 역사를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게 100살을 바라보는 광복군의 당부입니다.
도쿄에서 KBS 뉴스 이민영입니다.
광복군 중에는 해방 뒤에도 한국에 정착하지 못하고 적국이었던 일본으로 간 경우도 있습니다.
살아남기 위해 본명을 숨기고 가명으로 긴 세월을 살아야만 했는데요,
이제는 100살을 바라보는, 거의 마지막 남은 생존 광복군이 말하는 처참했던 당시 상황과 김구 선생과의 운명적인 만남, 도쿄 이민영 특파원이 전해드립니다.
[리포트]
도쿄 외곽의 주택가.
'독립유공자의 집' 한글 문패가 걸려있습니다.
얼마 전 우리 정부가 달아준 겁니다.
올해 97살의 오성규 지사, 중학생이던 16살에 중국으로 가 충칭 광복군에 입대했습니다.
무기도 군복도 변변치 않았던 광복군 생활은 고난의 길이었습니다.
[오성규/지사/광복군 출신 : "작은 호떡 하나, 소금국에 배추 한두 장, 그러니까 영양부족으로 몸에 옴이 생깁디다."]
고된 생활을 견뎌낸 힘은 독립에 대한 열망이었고 김구 선생과도 운명적인 만남을 가졌습니다.
[오성규/지사/광복군 출신 : "김구 선생이 여러 가지 얘기를 했어요. 임시정부가 어떻게 생겼다는 얘기, 그 전에는 처음 상해에 있었다는 얘기..."]
서울 진격을 앞두고 낙하산 훈련을 받으러 가던 길, 광복 소식을 들었습니다.
조국에 돌아왔지만 혼란스런 정치 상황은 오 지사를 적국이었던 일본으로 내몰았습니다.
[오성규/지사/광복군 출신 : "자꾸 압력이 들어오고 잡혀 들어가고 잡혀 가면 행방불명이 됩니다."]
1990년에야 정부가 수여한 훈장에 적힌 이름은 주태석, 그의 가명이었습니다.
[오성규/지사/광복군 출신 : "주태석이라고 돼 있죠? 주태석 내 이름. 가명을 쓰고 살았다고 일본에서... 일본이 패전했지만, 광복군 관계된 명단은 다 가지고 있을 거다."]
아픈 역사를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게 100살을 바라보는 광복군의 당부입니다.
도쿄에서 KBS 뉴스 이민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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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영 기자 mylee@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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