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돋보기] ‘SOS’ 외친 홍콩인들에게 화답한 트럼프…홍콩사태, ‘미·중 대결’로 가나

입력 2019.08.20 (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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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당국이 '배후에 미국이 있다'는 음모론을 제기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공기처럼 누려온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거리로 나온 홍콩인들에게 사실상 '지지' 메시지를 보냈다.

그는 중국을 향해 '천안문 사태'까지 언급하며 "폭력적으로 진압한다면 무역합의가 어려워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홍콩 사태와 미·중 전쟁의 핵심축인 무역 협상을 연계할 수 있음을 피력한 것이다.

미국 등 서방 국가들의 우려를 중국은 '내정 간섭'이라고 비난한다. 그럼에도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홍콩인들을 거들고 나선 것은 홍콩인들이 추구하는 가치가 '자유 진영'을 대표하는 미국이 지켜온 가치와 같기 때문이다. 홍콩 사태의 본질 역시 미·중 갈등의 원인과 다르지 않다.

■ 트럼프, '천안문 사태'까지 언급하며 중국 압박 ... 도움 청한 홍콩인들에 화답?

최근 '3,000억 달러 규모 제품에 10%' 추가 관세 폭탄에 '환율조작국' 카드까지 중국을 향해 내던진 트럼프 대통령. 중국을 궁지로 몰아넣은 그가 중국의 또 다른 뇌관을 건드렸다. 바로 홍콩 사태다. 현지시각 18일, 뉴저지주에서 휴가를 보낸 뒤 복귀하는 길에 기자들과 만나 "중국이 폭력을 행사한다면, 다시 말해 그것이 또 다른 천안문 광장이 된다면 대처하기 매우 힘들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중국은 우리보다 훨씬 더 합의를 필요로 한다"며 "그러나 홍콩사태가 합의의 일부가 아니라면 어떤 일이 이미 오래전에 일어났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고 강조했다. 홍콩 사태를 중국과의 협상과 연계하겠다는 방침을 강하게 나타낸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4일 트윗을 통해서도 "중국은 무역협상을 타결짓고 싶어 한다"며 "먼저 홍콩을 인도적으로 다루도록 하자"고 밝혔다.

다음날인 15일에는 "시진핑 주석이 시위대와 직접 만난다면 홍콩 문제에 대해 '행복한 결말'이 있을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며 시 주석이 시위대와 면담할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으로서는 금기어와도 같은 '천안문 광장'을 언급하며 중국에 대한 압박을 높이자 블룸버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홍콩에서 진행되는 상황과 무역 협상을 처음으로 연계시켰다"고 평가했다.

홍콩 시위 참가자들이 ‘트럼프 대통령! 제발 홍콩을 자유롭게 해주세요’라고 쓴 팻말을 들고 있다(지난 5일) 홍콩 시위 참가자들이 ‘트럼프 대통령! 제발 홍콩을 자유롭게 해주세요’라고 쓴 팻말을 들고 있다(지난 5일)

홍콩 시위 참가자가 미국 국기인 성조기를 들고 있다(지난 5일)홍콩 시위 참가자가 미국 국기인 성조기를 들고 있다(지난 5일)

중국을 향한 트럼프 대통령의 경고성 발언은 홍콩인들에게 '가뭄 속 단비'와도 같았을 것이다. 석 달 째 이어지고 있는 홍콩의 반중 시위 현장에서 이달 들어 유독 눈에 띄는 장면이 있다. '트럼프 대통령! 제발 홍콩을 자유롭게 해주세요'라는 영어 팻말을 든 사람들이다. 성조기를 든 시위대도 쉽게 볼 수 있다. 트럼프는 자신을 향한 홍콩인들의 절규에 화답한 것으로 보인다.

■ 홍콩 - 중국, '문명의 충돌'? ... 무력진압 위협에도 '저항' 택한 홍콩인들

홍콩인들은 왜 성조기를 흔들며 트럼프에게 손을 내밀고 있을까. 바로 이 지점이 홍콩 사태의 본질과 맞닿아 있다. 홍콩은 1997년 중국으로 반환됐다. 홍콩의 중국 반환은 홍콩 입장에서 보면, 체제가 바뀌는 것을 의미한다. 영국령으로 최고 수준의 '자유'·'민주주의' 가치와 '시장경제' 체제를 누려온 홍콩이지만, 공산당이 이끄는 중국은 사회주의·전체주의 국가다.

홍콩 반환식(1997년 1월 1일)홍콩 반환식(1997년 1월 1일)

이질적인 두 체제는 이론적으로도 결코 융합될 수 없는 시스템이다. 그래서 중국과 홍콩이 유지해온 원칙이 바로 일국양제(一國兩制·하나의 국가에 두 개의 체제를 허용)다. 홍콩 반환 당시 중국은 앞으로 50년간은 홍콩의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시스템을 건드리지 않겠다고 약속했었다. 하지만 중국은 홍콩에 대한 정치적·경제적 영향력을 키워왔고 자연스럽게 이 원칙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에 따른 홍콩인들의 불안감이 중국으로의 범죄인 송환이 가능하도록 한 이른바 '송환법' 추진을 계기로 폭발한 것이 지금의 홍콩 반중국·자유화 시위다.

[연관기사] [글로벌 돋보기] ‘백색테러’ 현장을 가다…‘중국 배후설’과 ‘조폭’ 그리고 ‘검은경찰’

'백색 테러'와 '중국 공안 개입설'로 대표되는 무력 진압에도 홍콩인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는 이유다. 홍콩 사태는 결국, 중국으로의 정치적 편입에 반발하는 홍콩인들의 몸부림, 즉 '문명 대 문명의 충돌'인 셈이다. 세계 각국에서 홍콩 시위를 지지하는 집회가 잇따르는 가운데 런던 집회 참가자들도 "1997년 홍콩 반환 당시 영국과 중국이 맺은 협정대로 홍콩 시민들의 자유와 고도의 자치권이 보장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중국은 홍콩이 중국의 영토라는 점을 강변하고 있다. 세계적인 경제학자 앨버트 허시먼은 저서 <떠날 것인가, 남을 것인가 (Exit, Voice and Loyalty)>에서 한 사회나 조직이 내리막길로 추락할 때 개인의 선택을 이탈(Exit), 저항(Voice), 순종(Loyalty) 세 유형으로 나눴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올해 들어 타이완 이민청에 홍콩인이 이민이나 체류를 신청한 건수(2,027건)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4.3% 급증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홍콩 시위의 양상을 보면 대부분 홍콩인은 '저항'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인민해방군 투입 가능성까지 흘리며 압박하는 중국에 홍콩인들은 "때릴 테면 때리라"며 맞서고 있다. 중국의 고민도 깊어질 수 밖에 없다. 홍콩을 이대로 두면 일국양제마저 위태로워질 수 있고, 아무리 법적 절차에 따라 진행한다 해도 무력 진압을 하면 국제사회가 용인하지 않을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이러기도 저러기도 어려운 문제인 것이다.

■ '딜레마' 빠진 중국, 장고 들어가나 ... 인민일보, '색깔론' 동원 시위대 때리기

지금의 중국은 1989년 천안문 사태 당시 중국과 경제력이나 국제적 위상 면에서 비교가 불가할 정도다. 세계무역기구 등 국제 질서에 편입돼 그 혜택을 가장 많이 누려온 중국이기에 이제는 국제 사회의 눈을 의식할 수밖에 없다. 하물며 그 상대가 세계적인 금융 중심지인 홍콩이다.

홍콩과 맞닿은 광둥성 선전을 홍콩 같은 글로벌 비즈니스 중심지로 키우겠다는 중국 정부의 계획은 그야말로 고육지책이다. "2025년까지 선전을 경제력과 질적인 발전 측면에서 세계 선두권에 세우겠다"는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의 '중국 특색사회주의 선행 시범구' 구상은 한마디로 선전을 홍콩의 대체지로 만들겠다는 홍콩인들에 대한 압박 메시지다.

하지만 홍콩이 여전히 중국과 다른 국가를 잇는 관문, 즉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는 세계 금융 허브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수많은 다국적 기업들이 홍콩에 본부를 두고 있는 이유다. 그런 만큼 홍콩의 정국 불안은 안 그래도 어려운 중국 경제에도 불리하게 작용할 수밖에 없다.

홍콩 도심에 모인 홍콩 시민들(지난 주말)홍콩 도심에 모인 홍콩 시민들(지난 주말)

홍콩인들은 이달 말에도 또 한 번 대규모 시위를 예고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만만치 않은 홍콩 사태에 대한 대응책을 놓고 장고에 들어간 듯한 분위기다. 중국 인민일보는 어제(19일)자 논평에서 "홍콩 시위가 안정세에 접어들었다"고 주장했다. 홍콩 시위에 지하철 등 운송업계와 항공업계 종사자, 종교인, 교사·중학생들까지 동참하며 각계각층으로 확산하고 있는 현실과 동떨어진 평가다.

인민일보는 "홍콩 시민들은 겉으로 웃지만 속으로 칼을 품은 서방 반중국 세력을 바르게 봐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홍콩 시위는 명확히 '색깔 혁명'의 특징이 나타나고 있다"며 '홍콩 사태의 막후에 서방 반중국 세력이 있다'든가 '이들과 홍콩 내부 세력을 연결하는 매국노가 있다'는 식의 주장을 폈다.

이처럼 색깔론까지 들이대 시위대 내부 분열을 조장하려 나서는 중국을 보면, 당장 무력 진압을 할 수 없는 답답함을 넘어 다급함마저 엿보인다. 어느새 11주차에 접어들면서, "중국 공산당에 맞서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킨다"는 홍콩 시위의 본질적 목표가 전 세계로 알려졌다. 지난 6월 100만 명 시위 때만 해도 '왜 저 많은 사람이 나왔을까?'하고 궁금해했던 사람들도 대부분 알게 됐다.

■ 흔들리는 '개혁·개방과 공산당'의 공존 ... 중국, 홍콩 사태도 '체제 위협'으로 느끼나

중국 당국이 홍콩인에 대한 위협 카드로 쓴 '인민해방군 투입설'은 역설적이게도 아무 생각 없이 중국산 제품을 쓰던 세계인들에게 '중국은 자유주의·시장경제체제가 아니였지 ...'라는 경각심을 주기에 충분했다. 미국의 중국법 전문가인 칼 민츠너 포드햄대 교수는 자신의 저서 <한 시대의 종언 : 중국의 권위주의적 부흥은 어떻게 중국의 부상을 저해하는가? (End of an Era : how china's authoritarian revival is undermining its rise?)>에서 "1990년대 이후 베이징의 지도자들은 수십 년 간 계속된 호황이 중국의 경제와 사회를 재편성시켰음에도 권위주의적 일당 정치 체제의 근본적인 개혁을 단호히 거부했다. 지난 30년 동안 얼어붙은 정치 체제가 공산당 내부에 고착된 이해 증가와 국가·사회 전반의 저개발을 부채질했다. 경제적 격차는 더 벌어졌고, 사회 불안도 심해졌다. 이념적 양극화가 심화됐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중국의 개혁 시대가 저물고 있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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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중국은 개혁·개방 이후 다음 단계인 '민주화' 대신 일당 체제를 고수하면서 빈부 격차와 부정부패 등으로 터져 나온 구조적 문제들을 국민에 대한 감시와 통제로 억눌러왔다. 미국이 트럼프 정부 들어 중국과의 오랜 밀월 관계를 접고 중국 때리기에 올인하고 있는데에도 이런 문제의식이 깔렸다. 마이크 펜스 부통령은 지난해 10월 허드슨 연구소 연설에서 "소련 붕괴 이후 미국인들은 중국도 결국 자유화되겠거니 생각했다. 21세기가 시작된다는 낙관에 취해 미국인들은 중국에 미국 시장을 개방했으며 중국을 WTO에 가입시켰다. 트럼프 이전 행정부들은 중국에서 자유가 확대될 것이라 믿었다. 경제적 자유뿐 아니라 정치적 자유가 확대될 것이라 믿었다. 고전적 자유 원칙에 따라 사유재산과 개인 자유·종교 자유 등을 포함한 인권 전체가 확대될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이 믿음은 충족되지 못했다" 지적했다.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이 허드슨 연구소에서 연설하고 있다(지난해 10월 4일)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이 허드슨 연구소에서 연설하고 있다(지난해 10월 4일)

그러면서 "아직도 중국인에게 자유는 요원한 꿈일 뿐이다. 중국 정부는 '개혁과 개방' 을 떠들지만,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구호는 이제 '속 빈 강정'일 뿐이다"라고 비판했다. 펜스 부통령의 허드슨 연구소 연설은 '중국에 대한 냉전 선언'으로, 미국이 무역 전쟁 등을 통해 중국 제압에 나선 이유를 집대성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공산당 주도의 국가자본주의를 바꾸겠다는 미국의 목표는 중국 지도층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권력을 포기하지 않는 한 수용할 수 없는 요구다. 미국의 공세가 단순 경제 전쟁이 아닌 국제질서에서 중국을 밀어내기 위한 차원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이후 중국도 미국을 향해 '결사 항전'을 외쳐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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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에서 터진 홍콩 사태는 중국에는 '체제 수호의 문제'일 수밖에 없다. 중국의 전·현직 수뇌부들이 모여 중대 현안의 방향과 노선을 논의하는 베이다이허 회의가 끝난 뒤 시진핑 주석이 내놓은 첫 메시지는 '대장정 정신'이었다고 한다. 시 주석의 '대장정' 언급은 1930년대 고난의 행군을 통해 공산당이 정권을 잡았듯이 홍콩 문제 등으로 동요하지 말고 단결하자는 메시지를 중국인들에게 던진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홍콩 사태와 무역 협상의 연계를 시사하며 홍콩 사태를 미·중 전쟁터의 한복판으로 끌어들였다. 경찰이 진압에 나서기 어려운 공항에서 세계인을 상대로 홍보전에 나서고 무력 진압의 빌미를 주지 않기 위해 비폭력 시위를 벌인 영리한 홍콩인들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도움을 호소하는 것을 보면, 미국의 전방위적 공세로 중국이 전례 없는 위기에 놓인 지금이 하늘이 준 기회라고 판단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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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당국이 '배후에 미국이 있다'는 음모론을 제기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공기처럼 누려온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거리로 나온 홍콩인들에게 사실상 '지지' 메시지를 보냈다.

그는 중국을 향해 '천안문 사태'까지 언급하며 "폭력적으로 진압한다면 무역합의가 어려워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홍콩 사태와 미·중 전쟁의 핵심축인 무역 협상을 연계할 수 있음을 피력한 것이다.

미국 등 서방 국가들의 우려를 중국은 '내정 간섭'이라고 비난한다. 그럼에도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홍콩인들을 거들고 나선 것은 홍콩인들이 추구하는 가치가 '자유 진영'을 대표하는 미국이 지켜온 가치와 같기 때문이다. 홍콩 사태의 본질 역시 미·중 갈등의 원인과 다르지 않다.

■ 트럼프, '천안문 사태'까지 언급하며 중국 압박 ... 도움 청한 홍콩인들에 화답?

최근 '3,000억 달러 규모 제품에 10%' 추가 관세 폭탄에 '환율조작국' 카드까지 중국을 향해 내던진 트럼프 대통령. 중국을 궁지로 몰아넣은 그가 중국의 또 다른 뇌관을 건드렸다. 바로 홍콩 사태다. 현지시각 18일, 뉴저지주에서 휴가를 보낸 뒤 복귀하는 길에 기자들과 만나 "중국이 폭력을 행사한다면, 다시 말해 그것이 또 다른 천안문 광장이 된다면 대처하기 매우 힘들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중국은 우리보다 훨씬 더 합의를 필요로 한다"며 "그러나 홍콩사태가 합의의 일부가 아니라면 어떤 일이 이미 오래전에 일어났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고 강조했다. 홍콩 사태를 중국과의 협상과 연계하겠다는 방침을 강하게 나타낸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4일 트윗을 통해서도 "중국은 무역협상을 타결짓고 싶어 한다"며 "먼저 홍콩을 인도적으로 다루도록 하자"고 밝혔다.

다음날인 15일에는 "시진핑 주석이 시위대와 직접 만난다면 홍콩 문제에 대해 '행복한 결말'이 있을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며 시 주석이 시위대와 면담할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으로서는 금기어와도 같은 '천안문 광장'을 언급하며 중국에 대한 압박을 높이자 블룸버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홍콩에서 진행되는 상황과 무역 협상을 처음으로 연계시켰다"고 평가했다.

홍콩 시위 참가자들이 ‘트럼프 대통령! 제발 홍콩을 자유롭게 해주세요’라고 쓴 팻말을 들고 있다(지난 5일)
홍콩 시위 참가자가 미국 국기인 성조기를 들고 있다(지난 5일)
중국을 향한 트럼프 대통령의 경고성 발언은 홍콩인들에게 '가뭄 속 단비'와도 같았을 것이다. 석 달 째 이어지고 있는 홍콩의 반중 시위 현장에서 이달 들어 유독 눈에 띄는 장면이 있다. '트럼프 대통령! 제발 홍콩을 자유롭게 해주세요'라는 영어 팻말을 든 사람들이다. 성조기를 든 시위대도 쉽게 볼 수 있다. 트럼프는 자신을 향한 홍콩인들의 절규에 화답한 것으로 보인다.

■ 홍콩 - 중국, '문명의 충돌'? ... 무력진압 위협에도 '저항' 택한 홍콩인들

홍콩인들은 왜 성조기를 흔들며 트럼프에게 손을 내밀고 있을까. 바로 이 지점이 홍콩 사태의 본질과 맞닿아 있다. 홍콩은 1997년 중국으로 반환됐다. 홍콩의 중국 반환은 홍콩 입장에서 보면, 체제가 바뀌는 것을 의미한다. 영국령으로 최고 수준의 '자유'·'민주주의' 가치와 '시장경제' 체제를 누려온 홍콩이지만, 공산당이 이끄는 중국은 사회주의·전체주의 국가다.

홍콩 반환식(1997년 1월 1일)
이질적인 두 체제는 이론적으로도 결코 융합될 수 없는 시스템이다. 그래서 중국과 홍콩이 유지해온 원칙이 바로 일국양제(一國兩制·하나의 국가에 두 개의 체제를 허용)다. 홍콩 반환 당시 중국은 앞으로 50년간은 홍콩의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시스템을 건드리지 않겠다고 약속했었다. 하지만 중국은 홍콩에 대한 정치적·경제적 영향력을 키워왔고 자연스럽게 이 원칙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에 따른 홍콩인들의 불안감이 중국으로의 범죄인 송환이 가능하도록 한 이른바 '송환법' 추진을 계기로 폭발한 것이 지금의 홍콩 반중국·자유화 시위다.

[연관기사] [글로벌 돋보기] ‘백색테러’ 현장을 가다…‘중국 배후설’과 ‘조폭’ 그리고 ‘검은경찰’

'백색 테러'와 '중국 공안 개입설'로 대표되는 무력 진압에도 홍콩인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는 이유다. 홍콩 사태는 결국, 중국으로의 정치적 편입에 반발하는 홍콩인들의 몸부림, 즉 '문명 대 문명의 충돌'인 셈이다. 세계 각국에서 홍콩 시위를 지지하는 집회가 잇따르는 가운데 런던 집회 참가자들도 "1997년 홍콩 반환 당시 영국과 중국이 맺은 협정대로 홍콩 시민들의 자유와 고도의 자치권이 보장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중국은 홍콩이 중국의 영토라는 점을 강변하고 있다. 세계적인 경제학자 앨버트 허시먼은 저서 <떠날 것인가, 남을 것인가 (Exit, Voice and Loyalty)>에서 한 사회나 조직이 내리막길로 추락할 때 개인의 선택을 이탈(Exit), 저항(Voice), 순종(Loyalty) 세 유형으로 나눴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올해 들어 타이완 이민청에 홍콩인이 이민이나 체류를 신청한 건수(2,027건)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4.3% 급증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홍콩 시위의 양상을 보면 대부분 홍콩인은 '저항'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인민해방군 투입 가능성까지 흘리며 압박하는 중국에 홍콩인들은 "때릴 테면 때리라"며 맞서고 있다. 중국의 고민도 깊어질 수 밖에 없다. 홍콩을 이대로 두면 일국양제마저 위태로워질 수 있고, 아무리 법적 절차에 따라 진행한다 해도 무력 진압을 하면 국제사회가 용인하지 않을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이러기도 저러기도 어려운 문제인 것이다.

■ '딜레마' 빠진 중국, 장고 들어가나 ... 인민일보, '색깔론' 동원 시위대 때리기

지금의 중국은 1989년 천안문 사태 당시 중국과 경제력이나 국제적 위상 면에서 비교가 불가할 정도다. 세계무역기구 등 국제 질서에 편입돼 그 혜택을 가장 많이 누려온 중국이기에 이제는 국제 사회의 눈을 의식할 수밖에 없다. 하물며 그 상대가 세계적인 금융 중심지인 홍콩이다.

홍콩과 맞닿은 광둥성 선전을 홍콩 같은 글로벌 비즈니스 중심지로 키우겠다는 중국 정부의 계획은 그야말로 고육지책이다. "2025년까지 선전을 경제력과 질적인 발전 측면에서 세계 선두권에 세우겠다"는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의 '중국 특색사회주의 선행 시범구' 구상은 한마디로 선전을 홍콩의 대체지로 만들겠다는 홍콩인들에 대한 압박 메시지다.

하지만 홍콩이 여전히 중국과 다른 국가를 잇는 관문, 즉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는 세계 금융 허브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수많은 다국적 기업들이 홍콩에 본부를 두고 있는 이유다. 그런 만큼 홍콩의 정국 불안은 안 그래도 어려운 중국 경제에도 불리하게 작용할 수밖에 없다.

홍콩 도심에 모인 홍콩 시민들(지난 주말)
홍콩인들은 이달 말에도 또 한 번 대규모 시위를 예고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만만치 않은 홍콩 사태에 대한 대응책을 놓고 장고에 들어간 듯한 분위기다. 중국 인민일보는 어제(19일)자 논평에서 "홍콩 시위가 안정세에 접어들었다"고 주장했다. 홍콩 시위에 지하철 등 운송업계와 항공업계 종사자, 종교인, 교사·중학생들까지 동참하며 각계각층으로 확산하고 있는 현실과 동떨어진 평가다.

인민일보는 "홍콩 시민들은 겉으로 웃지만 속으로 칼을 품은 서방 반중국 세력을 바르게 봐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홍콩 시위는 명확히 '색깔 혁명'의 특징이 나타나고 있다"며 '홍콩 사태의 막후에 서방 반중국 세력이 있다'든가 '이들과 홍콩 내부 세력을 연결하는 매국노가 있다'는 식의 주장을 폈다.

이처럼 색깔론까지 들이대 시위대 내부 분열을 조장하려 나서는 중국을 보면, 당장 무력 진압을 할 수 없는 답답함을 넘어 다급함마저 엿보인다. 어느새 11주차에 접어들면서, "중국 공산당에 맞서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킨다"는 홍콩 시위의 본질적 목표가 전 세계로 알려졌다. 지난 6월 100만 명 시위 때만 해도 '왜 저 많은 사람이 나왔을까?'하고 궁금해했던 사람들도 대부분 알게 됐다.

■ 흔들리는 '개혁·개방과 공산당'의 공존 ... 중국, 홍콩 사태도 '체제 위협'으로 느끼나

중국 당국이 홍콩인에 대한 위협 카드로 쓴 '인민해방군 투입설'은 역설적이게도 아무 생각 없이 중국산 제품을 쓰던 세계인들에게 '중국은 자유주의·시장경제체제가 아니였지 ...'라는 경각심을 주기에 충분했다. 미국의 중국법 전문가인 칼 민츠너 포드햄대 교수는 자신의 저서 <한 시대의 종언 : 중국의 권위주의적 부흥은 어떻게 중국의 부상을 저해하는가? (End of an Era : how china's authoritarian revival is undermining its rise?)>에서 "1990년대 이후 베이징의 지도자들은 수십 년 간 계속된 호황이 중국의 경제와 사회를 재편성시켰음에도 권위주의적 일당 정치 체제의 근본적인 개혁을 단호히 거부했다. 지난 30년 동안 얼어붙은 정치 체제가 공산당 내부에 고착된 이해 증가와 국가·사회 전반의 저개발을 부채질했다. 경제적 격차는 더 벌어졌고, 사회 불안도 심해졌다. 이념적 양극화가 심화됐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중국의 개혁 시대가 저물고 있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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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중국은 개혁·개방 이후 다음 단계인 '민주화' 대신 일당 체제를 고수하면서 빈부 격차와 부정부패 등으로 터져 나온 구조적 문제들을 국민에 대한 감시와 통제로 억눌러왔다. 미국이 트럼프 정부 들어 중국과의 오랜 밀월 관계를 접고 중국 때리기에 올인하고 있는데에도 이런 문제의식이 깔렸다. 마이크 펜스 부통령은 지난해 10월 허드슨 연구소 연설에서 "소련 붕괴 이후 미국인들은 중국도 결국 자유화되겠거니 생각했다. 21세기가 시작된다는 낙관에 취해 미국인들은 중국에 미국 시장을 개방했으며 중국을 WTO에 가입시켰다. 트럼프 이전 행정부들은 중국에서 자유가 확대될 것이라 믿었다. 경제적 자유뿐 아니라 정치적 자유가 확대될 것이라 믿었다. 고전적 자유 원칙에 따라 사유재산과 개인 자유·종교 자유 등을 포함한 인권 전체가 확대될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이 믿음은 충족되지 못했다" 지적했다.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이 허드슨 연구소에서 연설하고 있다(지난해 10월 4일)
그러면서 "아직도 중국인에게 자유는 요원한 꿈일 뿐이다. 중국 정부는 '개혁과 개방' 을 떠들지만,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구호는 이제 '속 빈 강정'일 뿐이다"라고 비판했다. 펜스 부통령의 허드슨 연구소 연설은 '중국에 대한 냉전 선언'으로, 미국이 무역 전쟁 등을 통해 중국 제압에 나선 이유를 집대성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공산당 주도의 국가자본주의를 바꾸겠다는 미국의 목표는 중국 지도층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권력을 포기하지 않는 한 수용할 수 없는 요구다. 미국의 공세가 단순 경제 전쟁이 아닌 국제질서에서 중국을 밀어내기 위한 차원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이후 중국도 미국을 향해 '결사 항전'을 외쳐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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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에서 터진 홍콩 사태는 중국에는 '체제 수호의 문제'일 수밖에 없다. 중국의 전·현직 수뇌부들이 모여 중대 현안의 방향과 노선을 논의하는 베이다이허 회의가 끝난 뒤 시진핑 주석이 내놓은 첫 메시지는 '대장정 정신'이었다고 한다. 시 주석의 '대장정' 언급은 1930년대 고난의 행군을 통해 공산당이 정권을 잡았듯이 홍콩 문제 등으로 동요하지 말고 단결하자는 메시지를 중국인들에게 던진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홍콩 사태와 무역 협상의 연계를 시사하며 홍콩 사태를 미·중 전쟁터의 한복판으로 끌어들였다. 경찰이 진압에 나서기 어려운 공항에서 세계인을 상대로 홍보전에 나서고 무력 진압의 빌미를 주지 않기 위해 비폭력 시위를 벌인 영리한 홍콩인들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도움을 호소하는 것을 보면, 미국의 전방위적 공세로 중국이 전례 없는 위기에 놓인 지금이 하늘이 준 기회라고 판단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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