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위기]⑥ 17미터 해일의 ‘동해안 습격’…“재난 피해 복원력 키우자”

입력 2020.09.16 (06:00) 수정 2023.04.24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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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 2020년에는 6월 말부터 54일 동안 역대 가장 긴 장마가 이어졌습니다. 8월 말부터 9월 초까지 강력한 3개의 태풍(바비·마이삭·하이선)이 잇따라 한반도를 강타했습니다. 태풍 마이삭이 상륙한 9월 3일 강원도 삼척 임원항에는 보기 드문 해일까지 밀어닥쳤습니다(위 대문사진). 가공할 위력의 태풍과 해일, 집중호우 등 올해 풍수해 양상의 원인으로 전문가들은 심각한 기후 변화를 꼽고 있습니다. 재난의 강도와 양상이 달라진만큼 이에 대처하는 방식도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전문가 3명의 기고문을 연속으로 싣습니다. 본 기고문은 그 두번째로, 지진해일 전문가인 이호준 KBS 재난방송 전문위원(KIT 밸리 지진해일 전문위원)의 글입니다.]

■ 삼척 임원항 덮친 17미터 파도…."처음 보는 광경"

지난 3일, 제9호 태풍 마이삭은 동해안을 따라 북상하면서 동해안 각지에 해일을 일으켰습니다. 해일이 일면서 강원도 삼척 임원항과 경북 포항 구룡포항에서 특히 큰 피해가 잇따랐습니다. 임원항 인근 주민들은 6.5m 높이의 방파제 너머로 17m의 거대한 파도가 치는 모습을 "처음 보는 광경"이라고 했습니다.

태풍 마이삭이 지나간 지 불과 나흘 뒤인 9월 7일, 제10호 태풍 하이선은 마이삭과 거의 유사한 크기와 경로로 또다시 동해안을 내습했습니다. 해일은 또 주택과 상가를 덮쳤고, 주민들은 이번에도 속수무책이었습니다. 이전 태풍으로 입은 피해를 정리조차 못한 상태였습니다.

일반적으로 북상하는 태풍이 내륙에 상륙하면 편서풍의 영향으로 동해상으로 빠져나갑니다. 그러나 올해의 9호, 10호 태풍은 동해까지 진출한 태평양 고기압을 뚫지 못하고 계속 북진했고, 동해안에 강풍·호우와 함께 과거에 볼 수 없었던 '해일'을 동반했습니다. 이를 '태풍 해일'이라고 부릅니다. 주된 원인은 해수면에서의 기압 변화와 강한 바람입니다.


해수면의 높이는 '기압'과 바다에 작용하는 '수압'의 균형이 잡힌 상태로 유지됩니다. 평균 기압 약 1,013hPa에서 해수면 높이는 해발 0m입니다. 이보다 기압이 낮아지면 해수면을 끌어 올리는데, 1hPa 낮아질 때마다 해수면은 약 1cm씩 높아집니다. 예를 들어 태풍 중심기압이 950hPa이라면, 평균기압보다 64hPa 낮아서 태풍 진로에서의 해수면은 약 60㎝ 정도 상승합니다.

태풍에 따라오는 바람 또한 바닷물을 밀어 올리면서 너울에 의해 수위를 높여주는 효과를 냅니다. 바람에 의한 해수면 상승은 풍속의 제곱에 비례하므로 풍속이 2배가 되면 해수면 상승은 4배가 되는 겁니다. 이례적인 경로의 태풍 내습으로 발생한 해일과 너울은, 조석 간만의 차가 없는 동해안에서 해수면을 약 1m까지 높였을 것으로 보입니다.

태풍 해일은 긴 주기를 가진 파동에 의한 현상입니다. 장주기 파동은 해안으로 접근하면서 수심이 낮은 지역으로 굴절하고, 증폭됩니다. 동해안 인근 수심 분포를 보면 해저 급경사를 이루는 곳이 많지만, 삼척으로부터 울진에 이르는 해역에는 해저 산맥이 형성돼 수심이 낮습니다.


이번 두 차례 태풍 해일이 내습하는 동안, 수심이 낮은 지역으로 해일이 집중되고 증폭됐을 것으로 보입니다. 또 태풍 아래 강풍이 불 때 만(灣)이나 항 또는 포구 등에 해일이 발생하면 진입한 바닷물이 밖으로 빠지기 어렵고, V자형 만의 경우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바닷물이 쌓여, 파도는 높아지는 구조입니다.

항구 안쪽은 진입하는 바닷물과 나가려는 바닷물이 부딪치면서 소용돌이를 일으켜 항 내를 온통 어지럽히기도 합니다. 태풍에 동반된 폭우로 인해 육지가 침수되면, 하천 하구에서는 하천수가 바다로 빠지지 못하고 범람을 일으켜, 파도 높이를 더욱 상승시키는 요인이 되기도 합니다.

■ 수십년 동안 겨울철만 대비했는데...여름 태풍 어쩌나?

동해의 항·포구 시설은 겨울철 북동쪽에서 내려오는 파랑에 대비하기 위해 정비해 왔습니다. 이러다 보니 동해안 대부분의 항포구는 남측으로 열려 있습니다.

이번처럼 동해안을 따라 태풍이 똑바로 북진하면, 태풍의 우측 반원에서 북측을 향하는 강풍이 합세해 바닷물을 이동시키고, 해안가 항과 포구의 해수면은 높아지는데요. 남측에서 북상해 오는 태풍의 바람과 해일에 대한 대비는 미흡할 수밖에 없습니다.


해일을 일으키는 파도가 육지로 밀려오는 방향과 태풍의 풍향이 같을 때, 유속은 폭풍에 의해 훨씬 빨라집니다. 수심이 낮아질수록 해일 파고는 더욱 증폭돼 큰 파괴력을 갖게 됩니다.

이번에 해안에는 초속 30m가 넘는 폭풍이 계속되었고 파랑을 일으켰습니다. 주민들이 이런 일을 처음 겪었다는 건, 평소라면 방파제에 막혔던 파랑이 이번 태풍 때는 높아진 해수면에 의해 방파제를 넘어 월파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깊은 바다에서 10m가 넘는 파랑이 밀려와 해안으로 내습했고, 이미 1m 이상 높아진 해수면 상에서 다시 육지로 밀려 들면서 해안 가옥과 도로를 덮친 겁니다.

이처럼 이번의 동해안 태풍 해일은 이례적인 자연현상과 지형특성, 그리고 지역개발의 조건이 같이 만나 만든 복잡하고도 기이한 현상이었습니다.

겨울철 강풍에 의한 해일과 파랑을 막기 위해 수십 년간 개발하고 조성해 온 동해안 항·포구의 방파제들이 올해 태풍에는 제 역할을 하지 못했습니다. 앞으로 이런 일들이 또 있을지에 대한 예측은 불확실하지만, 우리는 새로운 대책을 구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 "확률은 낮지만 닥치면 알게된다"…블랙스완의 교훈
최근에 발생하는 재해, 재난은 이번 동해안을 따라 북진한 태풍처럼 경험하지 못한 이례적 현상이 많습니다. 태풍 이전부터 겪고 있던 코로나도 역시 유사한 사례라고 봐야 할 겁니다.

이런 현상들을 리스크(재난이라 불러도 무방합니다) 관리의 세계에서는 '블랙스완'이라고 부릅니다. 블랙스완 사태는 발생 확률이 0에 가깝지만, 그로 인한 피해가 막심하고, 현상이나 피해가 나타나는 원인에 대한 사전 예측이 어려워 사후에야 설명되는 특징을 갖습니다.

자연재해에 대비하기 위한 방재시스템은 주로 과거 통계를 기반으로 구조물을 설계하고, 과거 피해 경험을 바탕으로 대응 계획을 수립하는 방법으로 구축됩니다. 그러나 블랙스완 사태에는 모두 무용지물일 수 있습니다. 경험하지 못한 재난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불확실하고 치명적이며, 경험해 본 적 없는 재해 현상에 대비해 피해를 '제로(0)화'하겠다는 계획을 세우는 것도 정답은 아닙니다.

일본 이와테현 지역에 설치된 콘크리트 벽, 출처 : 산케이 신문일본 이와테현 지역에 설치된 콘크리트 벽, 출처 : 산케이 신문

30년 전 일본에서 지진해일 대책으로 해안가에 높게는 35m까지 콘크리트 벽을 건설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지진해일의 치명적인 위험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이후 30년간 바닷가에 서서 높이 35m의 제방을 바라보던 지역사회와 주민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삶의 가치' 측면에서 피해를 무시할 수 없는 막대한 손실을 동반했을 것입니다. 물리적 예방이 효과적인 것은 알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전부는 아니라는 교훈을 주는 사례입니다.

■ "어떻게 복원하고, 회복시킬 것인가"

전 세계 전문가들은 블랙스완에 대비하는 최선의 수단으로 '복원력(Resilience)'을 강조합니다.

피해 '제로(0)화'를 위해 노력하기보다 오히려 한정적인 지역과 사회의 방어능력 한도 내에서 인간의 뇌와 심장에 해당하는 핵심적인 기능을 보호하기 위한 적응(adaptation)능력과 평소 겪지 못한 비상사태에 능숙히 대처할 수 있는 유연성(agility)을 키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해일로 폐허가 된 삶의 터전에서 주민들은 하루속히 삶의 터전과 생산 활동을 재건하고, 원래의 삶을 회복(Resumption)해야 합니다. 이때 요구되는 신속성, 더불어 필요한 물자들의 투입 능력을 곧 핵심적인 복원 능력으로 평가합니다. 피해를 줄이는 데 역점을 두고 집행했던 한정적 예방 정책에 더해 신속히 원상회복할 수 있는 복원 정책 또한 필요한 것이 지금의 세상입니다.

코로나 시대로 우리의 활동 범위가 더욱 좁아져 있는 가운데 이번 태풍이 할퀴고 간 상처로부터 어떻게 삶과 세상의 가치를 복원하고, 유지할 수 있을지 국가 차원의 검토가 필요할 것입니다.

[외부 필자의 기고문은 KBS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호준 | KBS 재난방송 전문위원(KIT 밸리 지진해일 전문위원)이호준 | KBS 재난방송 전문위원(KIT 밸리 지진해일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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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9-16 06:00:10
    • 수정2023-04-24 15:35:07
    취재K
[편집자 주 : 2020년에는 6월 말부터 54일 동안 역대 가장 긴 장마가 이어졌습니다. 8월 말부터 9월 초까지 강력한 3개의 태풍(바비·마이삭·하이선)이 잇따라 한반도를 강타했습니다. 태풍 마이삭이 상륙한 9월 3일 강원도 삼척 임원항에는 보기 드문 해일까지 밀어닥쳤습니다(위 대문사진). 가공할 위력의 태풍과 해일, 집중호우 등 올해 풍수해 양상의 원인으로 전문가들은 심각한 기후 변화를 꼽고 있습니다. 재난의 강도와 양상이 달라진만큼 이에 대처하는 방식도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전문가 3명의 기고문을 연속으로 싣습니다. 본 기고문은 그 두번째로, 지진해일 전문가인 이호준 KBS 재난방송 전문위원(KIT 밸리 지진해일 전문위원)의 글입니다.]

■ 삼척 임원항 덮친 17미터 파도…."처음 보는 광경"

지난 3일, 제9호 태풍 마이삭은 동해안을 따라 북상하면서 동해안 각지에 해일을 일으켰습니다. 해일이 일면서 강원도 삼척 임원항과 경북 포항 구룡포항에서 특히 큰 피해가 잇따랐습니다. 임원항 인근 주민들은 6.5m 높이의 방파제 너머로 17m의 거대한 파도가 치는 모습을 "처음 보는 광경"이라고 했습니다.

태풍 마이삭이 지나간 지 불과 나흘 뒤인 9월 7일, 제10호 태풍 하이선은 마이삭과 거의 유사한 크기와 경로로 또다시 동해안을 내습했습니다. 해일은 또 주택과 상가를 덮쳤고, 주민들은 이번에도 속수무책이었습니다. 이전 태풍으로 입은 피해를 정리조차 못한 상태였습니다.

일반적으로 북상하는 태풍이 내륙에 상륙하면 편서풍의 영향으로 동해상으로 빠져나갑니다. 그러나 올해의 9호, 10호 태풍은 동해까지 진출한 태평양 고기압을 뚫지 못하고 계속 북진했고, 동해안에 강풍·호우와 함께 과거에 볼 수 없었던 '해일'을 동반했습니다. 이를 '태풍 해일'이라고 부릅니다. 주된 원인은 해수면에서의 기압 변화와 강한 바람입니다.


해수면의 높이는 '기압'과 바다에 작용하는 '수압'의 균형이 잡힌 상태로 유지됩니다. 평균 기압 약 1,013hPa에서 해수면 높이는 해발 0m입니다. 이보다 기압이 낮아지면 해수면을 끌어 올리는데, 1hPa 낮아질 때마다 해수면은 약 1cm씩 높아집니다. 예를 들어 태풍 중심기압이 950hPa이라면, 평균기압보다 64hPa 낮아서 태풍 진로에서의 해수면은 약 60㎝ 정도 상승합니다.

태풍에 따라오는 바람 또한 바닷물을 밀어 올리면서 너울에 의해 수위를 높여주는 효과를 냅니다. 바람에 의한 해수면 상승은 풍속의 제곱에 비례하므로 풍속이 2배가 되면 해수면 상승은 4배가 되는 겁니다. 이례적인 경로의 태풍 내습으로 발생한 해일과 너울은, 조석 간만의 차가 없는 동해안에서 해수면을 약 1m까지 높였을 것으로 보입니다.

태풍 해일은 긴 주기를 가진 파동에 의한 현상입니다. 장주기 파동은 해안으로 접근하면서 수심이 낮은 지역으로 굴절하고, 증폭됩니다. 동해안 인근 수심 분포를 보면 해저 급경사를 이루는 곳이 많지만, 삼척으로부터 울진에 이르는 해역에는 해저 산맥이 형성돼 수심이 낮습니다.


이번 두 차례 태풍 해일이 내습하는 동안, 수심이 낮은 지역으로 해일이 집중되고 증폭됐을 것으로 보입니다. 또 태풍 아래 강풍이 불 때 만(灣)이나 항 또는 포구 등에 해일이 발생하면 진입한 바닷물이 밖으로 빠지기 어렵고, V자형 만의 경우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바닷물이 쌓여, 파도는 높아지는 구조입니다.

항구 안쪽은 진입하는 바닷물과 나가려는 바닷물이 부딪치면서 소용돌이를 일으켜 항 내를 온통 어지럽히기도 합니다. 태풍에 동반된 폭우로 인해 육지가 침수되면, 하천 하구에서는 하천수가 바다로 빠지지 못하고 범람을 일으켜, 파도 높이를 더욱 상승시키는 요인이 되기도 합니다.

■ 수십년 동안 겨울철만 대비했는데...여름 태풍 어쩌나?

동해의 항·포구 시설은 겨울철 북동쪽에서 내려오는 파랑에 대비하기 위해 정비해 왔습니다. 이러다 보니 동해안 대부분의 항포구는 남측으로 열려 있습니다.

이번처럼 동해안을 따라 태풍이 똑바로 북진하면, 태풍의 우측 반원에서 북측을 향하는 강풍이 합세해 바닷물을 이동시키고, 해안가 항과 포구의 해수면은 높아지는데요. 남측에서 북상해 오는 태풍의 바람과 해일에 대한 대비는 미흡할 수밖에 없습니다.


해일을 일으키는 파도가 육지로 밀려오는 방향과 태풍의 풍향이 같을 때, 유속은 폭풍에 의해 훨씬 빨라집니다. 수심이 낮아질수록 해일 파고는 더욱 증폭돼 큰 파괴력을 갖게 됩니다.

이번에 해안에는 초속 30m가 넘는 폭풍이 계속되었고 파랑을 일으켰습니다. 주민들이 이런 일을 처음 겪었다는 건, 평소라면 방파제에 막혔던 파랑이 이번 태풍 때는 높아진 해수면에 의해 방파제를 넘어 월파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깊은 바다에서 10m가 넘는 파랑이 밀려와 해안으로 내습했고, 이미 1m 이상 높아진 해수면 상에서 다시 육지로 밀려 들면서 해안 가옥과 도로를 덮친 겁니다.

이처럼 이번의 동해안 태풍 해일은 이례적인 자연현상과 지형특성, 그리고 지역개발의 조건이 같이 만나 만든 복잡하고도 기이한 현상이었습니다.

겨울철 강풍에 의한 해일과 파랑을 막기 위해 수십 년간 개발하고 조성해 온 동해안 항·포구의 방파제들이 올해 태풍에는 제 역할을 하지 못했습니다. 앞으로 이런 일들이 또 있을지에 대한 예측은 불확실하지만, 우리는 새로운 대책을 구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 "확률은 낮지만 닥치면 알게된다"…블랙스완의 교훈
최근에 발생하는 재해, 재난은 이번 동해안을 따라 북진한 태풍처럼 경험하지 못한 이례적 현상이 많습니다. 태풍 이전부터 겪고 있던 코로나도 역시 유사한 사례라고 봐야 할 겁니다.

이런 현상들을 리스크(재난이라 불러도 무방합니다) 관리의 세계에서는 '블랙스완'이라고 부릅니다. 블랙스완 사태는 발생 확률이 0에 가깝지만, 그로 인한 피해가 막심하고, 현상이나 피해가 나타나는 원인에 대한 사전 예측이 어려워 사후에야 설명되는 특징을 갖습니다.

자연재해에 대비하기 위한 방재시스템은 주로 과거 통계를 기반으로 구조물을 설계하고, 과거 피해 경험을 바탕으로 대응 계획을 수립하는 방법으로 구축됩니다. 그러나 블랙스완 사태에는 모두 무용지물일 수 있습니다. 경험하지 못한 재난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불확실하고 치명적이며, 경험해 본 적 없는 재해 현상에 대비해 피해를 '제로(0)화'하겠다는 계획을 세우는 것도 정답은 아닙니다.

일본 이와테현 지역에 설치된 콘크리트 벽, 출처 : 산케이 신문
30년 전 일본에서 지진해일 대책으로 해안가에 높게는 35m까지 콘크리트 벽을 건설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지진해일의 치명적인 위험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이후 30년간 바닷가에 서서 높이 35m의 제방을 바라보던 지역사회와 주민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삶의 가치' 측면에서 피해를 무시할 수 없는 막대한 손실을 동반했을 것입니다. 물리적 예방이 효과적인 것은 알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전부는 아니라는 교훈을 주는 사례입니다.

■ "어떻게 복원하고, 회복시킬 것인가"

전 세계 전문가들은 블랙스완에 대비하는 최선의 수단으로 '복원력(Resilience)'을 강조합니다.

피해 '제로(0)화'를 위해 노력하기보다 오히려 한정적인 지역과 사회의 방어능력 한도 내에서 인간의 뇌와 심장에 해당하는 핵심적인 기능을 보호하기 위한 적응(adaptation)능력과 평소 겪지 못한 비상사태에 능숙히 대처할 수 있는 유연성(agility)을 키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해일로 폐허가 된 삶의 터전에서 주민들은 하루속히 삶의 터전과 생산 활동을 재건하고, 원래의 삶을 회복(Resumption)해야 합니다. 이때 요구되는 신속성, 더불어 필요한 물자들의 투입 능력을 곧 핵심적인 복원 능력으로 평가합니다. 피해를 줄이는 데 역점을 두고 집행했던 한정적 예방 정책에 더해 신속히 원상회복할 수 있는 복원 정책 또한 필요한 것이 지금의 세상입니다.

코로나 시대로 우리의 활동 범위가 더욱 좁아져 있는 가운데 이번 태풍이 할퀴고 간 상처로부터 어떻게 삶과 세상의 가치를 복원하고, 유지할 수 있을지 국가 차원의 검토가 필요할 것입니다.

[외부 필자의 기고문은 KBS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호준 | KBS 재난방송 전문위원(KIT 밸리 지진해일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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