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기자가 점심식사로 절반을 쓴 ‘이것’은?

입력 2021.04.26 (08:03) 수정 2021.08.12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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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적, 나의 '탄소 발자국'

'기후변화'. '환경오염'. 이런 말이 나오면 빠지지 않고 나오는 단어가 있죠. 네, '탄소'입니다.

급격한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세계 각 나라는 이 '탄소'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탄소를 줄이지 못하면 이제 배출한 만큼 돈을 물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 탄소, 우리는 생활 속에서 얼마나 쓰고 있을까요?

■ 하루 '탄소 배출' 절반이 점심 한 끼, 왜?

13kg. 제가 하루 동안 생활하면서 배출한 탄소량입니다. 기업들의 탄소 배출량을 계산해주는 컨설팅 회사의 도움을 받아 계산한 결과입니다.

결과표를 받고 의아했습니다. '하루에 13kg이나 배출했다고? 별로 쓴 게 없는 것 같은데….'

자세히 보니 반찬 하나가 문제였습니다. 소고기로 만든 햄버그스테이크. 여기서만 탄소 4.47kg이 나왔습니다. 밥과 나머지 반찬까지 더하니 점심으로만 탄소를 6.3kg을 배출했습니다. 하루 탄소배출량의 절반을 점심 한 끼에 쓴 셈입니다.


탄소 배출량 계산법은 이렇습니다. '탄소배출계수'란 걸 이용하는데요. 쓰고자 하는 물건을 만들고 사용하고 버리는 전 과정에서 사용한 에너지를 헤아려 탄소 배출량을 계산하는 방식입니다.

자가용 운전 등 화석연료를 직접 쓰는 행동 말고도 전기 등을 쓰는 행위마다 탄소가 계산되는 겁니다.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세수할 때 쓰는 물 자체는 탄소를 만들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씻는 물을 하천에서 직접 뜨진 않죠. 물을 정수하고 펌프로 집까지 끌어오는 데 전기가 필요합니다. 이때 전기 에너지는 화력 발전소에서 석탄을 태워서 만듭니다.

이런 식으로 생활 속에서 직접 탄소와 상관없어 보여도, 결국 곳곳에서 탄소가 배출되는 거죠.

제가 쓴 하루 탄소량을 1년으로 계산했더니 약 5.2톤이 됐습니다. 여름과 겨울철 냉난방을 하면 탄소 배출은 더 늘어난다는 게 탄소 배출량을 계산해 준 전문가의 설명입니다.

[연관기사] 1인당 연간 14톤 탄소배출…‘탄소 중립’ 어디로? (2021.4.22) http://news.kbs.co.kr/news/view.do?ncd=5169231

■ '기후 악당' 오명 쓴 한국… 1인당 탄소 배출 14.1톤

2018년 기준으로 한국의 1인당 탄소 배출은 14.1톤으로 집계됐습니다. 조사기관과 시기에 따라 순위는 조금씩 다르지만, 세계 6위 정도 됩니다. GDP(국내총생산) 기준으로 경제규모 세계 10위권보다 높은 건데, 좋아할 일은 아니겠죠?

문제는 추세입니다. 환경부 자료(2020년 국가 온실가스 인벤토리 보고서)를 보면, 1990년 1인당 탄소 배출량은 6.8톤이었는데 2017년에는 14.1톤으로 2배 증가했습니다. 같은 기간 탄소 배출을 23.5% 줄인 유럽연합(EU)과 비교되는 대목입니다.

전 세계 기후변화 단체로부터 사우디아라비아, 호주, 뉴질랜드와 함께 4대 '기후 악당국가'로 비판을 받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 탄소 '불량 국가' 한국, 왜?

정부는 정책마다 '그린뉴딜'이라는 이름을 붙여 '친환경'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가 '기후 악당', '탄소 불량 국가'로 평가받는 이유는 뭘까요?

전문가들은 개인의 소비도 문제지만, 근본적으로 산업 구조가 원인이라고 말합니다. 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에너지 다(多)소비 산업이 많기 때문이라는 거죠.

그래서 부문별로 어디서 탄소를 많이 배출하는지 찾아봤습니다. 주로 전기 생산과 더불어 철강, 석유화학 등에서 탄소 배출이 많았습니다. 문제는 이 산업들이 우리나라 경제를 이끄는 '국가 주력 산업'이라는 겁니다.


문제는 또 있습니다. 전기를 생산하는 '발전에너지'도 탄소 배출이 많은 석탄에 의존하고 있다는 겁니다. 정부의 '제9차 전력수급 기본계획'을 보면, 2019년 기준으로 전기 생산의 40.4%를 석탄 화력발전소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반면, 신재생 에너지 비율은 6.5%에 그치고 있습니다.

전기 생산도, 주요 산업도 화석연료에 의존하는 구조다 보니 경제가 성장할수록 탄소 배출은 계속 증가할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 탄소 감축, '소비자'가 할 수 있습니다!

산업구조가 가장 큰 문제라면 한 개인이 할 수 있는 게 있을까요? 네, 있습니다. 거대한 산업구조 앞에 무력해 보이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이 중요하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합니다.

대표적으로 'RE100' 운동이라는 게 있는데요. 기업이 쓰는 전기를 100% 재생에너지로 충당하자는 캠페인입니다. 영국 시민단체가 처음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세계적인 IT 회사인 구글과 애플 등이 동참하고 있는데, 납품 업체에 재생에너지로만 제품을 생산해달라고 요구하는 방식입니다.



안준관 / 기후변화 컨설팅 회사 상무
"개인들이 저탄소 제품을 많이 소비할 경우, 기업은 저탄소 제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할 거예요. 그러면 생산 단계에서도 에너지 사용량을 줄일 겁니다."
"그렇게 될 경우 우리의 행동이 결과적으로 산업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전혀 영향이 없다고 볼 순 없습니다. 사실 소비자의 선택이 중요한 몫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난 22일, '지구의 날'을 맞아 바이든 미 대통령은 '기후정상회의'를 열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을 포함해 각국 정상 40명이 참석했는데요. 각국이 강화된 탄소 감축 목표를 발표하는 자리에서 문 대통령은 올해 안으로 감축 목표를 기존 24.4%보다 높여 올해 안에 UN에 제출하겠다고 했습니다.

'탄소 감축'을 주제로 정상회담이 열릴 만큼, 탄소로 인한 기후 변화는 우리 모두의 일이 됐고 외교적 압박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15년 전 기후변화 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와 책 '불편한 진실'을 발표하고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앨 고어 전 미 부통령. 그는 기후변화 문제에 우리 모두의 참여를 이렇게 설득합니다.

앨 고어 / 전 미국 부통령(노벨평화상 수상자)
"아프리카에는 이런 속담이 있습니다. '빨리 가고 싶으면 혼자 가라. 멀리 가고 싶으면 함께 가라.' 우리는 지금 빨리 그리고 멀리 가야 할 때입니다."

'병 들어가는 지구'. '환경 오염'. '기후 변화'. 아직 이런 말들이 실감 나지 않는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우리 생각보다 더 가까이 와 있습니다. 당장 이번 달, 둘 째주에는 '한파주의보'가, 셋째 주에는 이른 더위에 '오존주의보'가 내려진 것도 분명 지구가 보내고 있는 그 '경고'입니다.

바로 지금. 우리가 빨리, 그리고 멀리 가야 하는 이유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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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기자가 점심식사로 절반을 쓴 ‘이것’은?
    • 입력 2021-04-26 08:03:16
    • 수정2021-08-12 15:02:55
    취재후·사건후

■ 추적, 나의 '탄소 발자국'

'기후변화'. '환경오염'. 이런 말이 나오면 빠지지 않고 나오는 단어가 있죠. 네, '탄소'입니다.

급격한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세계 각 나라는 이 '탄소'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탄소를 줄이지 못하면 이제 배출한 만큼 돈을 물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 탄소, 우리는 생활 속에서 얼마나 쓰고 있을까요?

■ 하루 '탄소 배출' 절반이 점심 한 끼, 왜?

13kg. 제가 하루 동안 생활하면서 배출한 탄소량입니다. 기업들의 탄소 배출량을 계산해주는 컨설팅 회사의 도움을 받아 계산한 결과입니다.

결과표를 받고 의아했습니다. '하루에 13kg이나 배출했다고? 별로 쓴 게 없는 것 같은데….'

자세히 보니 반찬 하나가 문제였습니다. 소고기로 만든 햄버그스테이크. 여기서만 탄소 4.47kg이 나왔습니다. 밥과 나머지 반찬까지 더하니 점심으로만 탄소를 6.3kg을 배출했습니다. 하루 탄소배출량의 절반을 점심 한 끼에 쓴 셈입니다.


탄소 배출량 계산법은 이렇습니다. '탄소배출계수'란 걸 이용하는데요. 쓰고자 하는 물건을 만들고 사용하고 버리는 전 과정에서 사용한 에너지를 헤아려 탄소 배출량을 계산하는 방식입니다.

자가용 운전 등 화석연료를 직접 쓰는 행동 말고도 전기 등을 쓰는 행위마다 탄소가 계산되는 겁니다.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세수할 때 쓰는 물 자체는 탄소를 만들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씻는 물을 하천에서 직접 뜨진 않죠. 물을 정수하고 펌프로 집까지 끌어오는 데 전기가 필요합니다. 이때 전기 에너지는 화력 발전소에서 석탄을 태워서 만듭니다.

이런 식으로 생활 속에서 직접 탄소와 상관없어 보여도, 결국 곳곳에서 탄소가 배출되는 거죠.

제가 쓴 하루 탄소량을 1년으로 계산했더니 약 5.2톤이 됐습니다. 여름과 겨울철 냉난방을 하면 탄소 배출은 더 늘어난다는 게 탄소 배출량을 계산해 준 전문가의 설명입니다.

[연관기사] 1인당 연간 14톤 탄소배출…‘탄소 중립’ 어디로? (2021.4.22) http://news.kbs.co.kr/news/view.do?ncd=5169231

■ '기후 악당' 오명 쓴 한국… 1인당 탄소 배출 14.1톤

2018년 기준으로 한국의 1인당 탄소 배출은 14.1톤으로 집계됐습니다. 조사기관과 시기에 따라 순위는 조금씩 다르지만, 세계 6위 정도 됩니다. GDP(국내총생산) 기준으로 경제규모 세계 10위권보다 높은 건데, 좋아할 일은 아니겠죠?

문제는 추세입니다. 환경부 자료(2020년 국가 온실가스 인벤토리 보고서)를 보면, 1990년 1인당 탄소 배출량은 6.8톤이었는데 2017년에는 14.1톤으로 2배 증가했습니다. 같은 기간 탄소 배출을 23.5% 줄인 유럽연합(EU)과 비교되는 대목입니다.

전 세계 기후변화 단체로부터 사우디아라비아, 호주, 뉴질랜드와 함께 4대 '기후 악당국가'로 비판을 받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 탄소 '불량 국가' 한국, 왜?

정부는 정책마다 '그린뉴딜'이라는 이름을 붙여 '친환경'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가 '기후 악당', '탄소 불량 국가'로 평가받는 이유는 뭘까요?

전문가들은 개인의 소비도 문제지만, 근본적으로 산업 구조가 원인이라고 말합니다. 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에너지 다(多)소비 산업이 많기 때문이라는 거죠.

그래서 부문별로 어디서 탄소를 많이 배출하는지 찾아봤습니다. 주로 전기 생산과 더불어 철강, 석유화학 등에서 탄소 배출이 많았습니다. 문제는 이 산업들이 우리나라 경제를 이끄는 '국가 주력 산업'이라는 겁니다.


문제는 또 있습니다. 전기를 생산하는 '발전에너지'도 탄소 배출이 많은 석탄에 의존하고 있다는 겁니다. 정부의 '제9차 전력수급 기본계획'을 보면, 2019년 기준으로 전기 생산의 40.4%를 석탄 화력발전소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반면, 신재생 에너지 비율은 6.5%에 그치고 있습니다.

전기 생산도, 주요 산업도 화석연료에 의존하는 구조다 보니 경제가 성장할수록 탄소 배출은 계속 증가할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 탄소 감축, '소비자'가 할 수 있습니다!

산업구조가 가장 큰 문제라면 한 개인이 할 수 있는 게 있을까요? 네, 있습니다. 거대한 산업구조 앞에 무력해 보이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이 중요하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합니다.

대표적으로 'RE100' 운동이라는 게 있는데요. 기업이 쓰는 전기를 100% 재생에너지로 충당하자는 캠페인입니다. 영국 시민단체가 처음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세계적인 IT 회사인 구글과 애플 등이 동참하고 있는데, 납품 업체에 재생에너지로만 제품을 생산해달라고 요구하는 방식입니다.



안준관 / 기후변화 컨설팅 회사 상무
"개인들이 저탄소 제품을 많이 소비할 경우, 기업은 저탄소 제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할 거예요. 그러면 생산 단계에서도 에너지 사용량을 줄일 겁니다."
"그렇게 될 경우 우리의 행동이 결과적으로 산업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전혀 영향이 없다고 볼 순 없습니다. 사실 소비자의 선택이 중요한 몫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난 22일, '지구의 날'을 맞아 바이든 미 대통령은 '기후정상회의'를 열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을 포함해 각국 정상 40명이 참석했는데요. 각국이 강화된 탄소 감축 목표를 발표하는 자리에서 문 대통령은 올해 안으로 감축 목표를 기존 24.4%보다 높여 올해 안에 UN에 제출하겠다고 했습니다.

'탄소 감축'을 주제로 정상회담이 열릴 만큼, 탄소로 인한 기후 변화는 우리 모두의 일이 됐고 외교적 압박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15년 전 기후변화 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와 책 '불편한 진실'을 발표하고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앨 고어 전 미 부통령. 그는 기후변화 문제에 우리 모두의 참여를 이렇게 설득합니다.

앨 고어 / 전 미국 부통령(노벨평화상 수상자)
"아프리카에는 이런 속담이 있습니다. '빨리 가고 싶으면 혼자 가라. 멀리 가고 싶으면 함께 가라.' 우리는 지금 빨리 그리고 멀리 가야 할 때입니다."

'병 들어가는 지구'. '환경 오염'. '기후 변화'. 아직 이런 말들이 실감 나지 않는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우리 생각보다 더 가까이 와 있습니다. 당장 이번 달, 둘 째주에는 '한파주의보'가, 셋째 주에는 이른 더위에 '오존주의보'가 내려진 것도 분명 지구가 보내고 있는 그 '경고'입니다.

바로 지금. 우리가 빨리, 그리고 멀리 가야 하는 이유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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