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춰진 산재 ‘화장실 직업병’

입력 2021.11.15 (21:27) 수정 2021.11.15 (22:24)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앵커]

일터에서 화장실을 제때 가기 어렵다면 얼마나 곤란할까요?

단순히 힘든 걸 넘어 방광염 등 만성 직업병으로 고통을 받기도 하는데, 화장실 문제여서 꺼내놓고 말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KBS 연중 기획, ‘안전한 일터, 건강한 노동을 위해’, 오늘(15일)은 ‘화장실’과 ‘산업재해’사이 연관성을 들여다 봅니다.

김지숙, 김준범 기자가 차례로 보도합니다.

[리포트]

여러분 가운데 혹시 일터에서 화장실 가기 어려운 분 계신가요?

아마 대부분 아닐 겁니다.

그런데 가끔이 아니라 매일, 화장실 문제로 거의 전쟁을 치르는 노동자들이 있습니다.

[“하루에 15가구 정도 가고요.”]

23년차 학습지 교사 유득규 씨.

하루 종일 말을 하지만, 물 마시는 건 금물입니다.

학생 집에서 준비한 음료수도 마시지 않습니다.

화장실 때문입니다.

[유득규/학습지 교사 : “(왜 그대로 가지고 나오셨어요?) 지금 마시면 다음 수업 때 화장실 문제도 있고 해서….”]

방문 가정에 화장실이 있지만 정말 급한 경우가 아니면 참는다고 합니다.

화장실을 쓰면 민원이 들어오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유득규 : “(화장실을) 보이는 걸 좀 꺼려하는 부분이 있잖아요. 그래서 그런 부분들을 어머니들도 꺼려하시는 부분이 (있어서).”]

유득규 씨의 하루 일과를 보면, 오후 2시부터 밤 10시까지 일하면서 화장실엔 거의 못 갑니다.

화장실을 참으면서 앓기 시작한 방광염은 만성이 됐고, 두 달에 한 번은 병원을 찾아야 합니다.

[유득규 : “병원에서는 ‘왜 참냐, 소변을 봐라’라고 얘기하지만 사실 그건 의사 선생님 말씀이고 우리의 생활 패턴은 그게 안 되니까...”]

이 때문에 업무 구역이 정해지면 유 씨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은 공중화장실 위치 파악이 됐습니다.

학교 급식실 조리사 김모 씨도 화장실이 문제입니다.

불과 20미터 거리에 화장실이 있지만, 오전 내내 한 번도 가기 힘듭니다.

조리사 7명이 4시간 동안 950인 분의 점심을 만들다 보면, 잠시의 여유도 없기 때문입니다.

특히 복장이 큰 걸림돌입니다.

[김○○/학교 급식실 조리사 : “(화장실이 바로 근처에 있는데 잠깐 다녀오는 게 힘든 일인가요?) 여러 가지를 많이 입고 있다보니까 그게 번거로운 거죠. 면장갑 끼고, 팔 토시 끼고, 고무장갑 끼고, 앞치마 하고 장화 신어요.”]

심지어 출근 전날은 저녁 식사량을 줄이기도 합니다.

[김○○ : "혈뇨가 심하게 나와 가지고 방광염 염증이 심하다고 그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김○○ : "몇 분 정도가 이런 비슷한 증상이 있다고 들어보셨어요?) 방광염 경험들이 다 여러번 있다고 말하더라고요."]

일터에서 얻은 직업병이지만, 두 사람 모두 산재 신청은 생각해 본 적도 없다고 말합니다.

지난 5년 동안 방광염이 산재로 인정받은 사례도 단 한 건 뿐입니다.

이런 어려움, 두 사람만의 얘기가 아닙니다.

화장실이라는 공간 특성상 카메라에 담기는 어려워 당사자들이 이렇게 직접 그린 일터의 화장실을 살펴보겠습니다.

김준범 기자입니다.

[리포트]

방금 김지숙 기자가 들고있던 그림 들여다 볼까요?

한 학교 급식실의 조리사가 그린 화장실 지도입니다.

변기와 세탁기가 한 방에 있죠.

세탁실 겸 화장실입니다.

하지만, 변기 앞엔 가림막도 없어 참 난감하다는 메모 눈에 들어옵니다.

‘대변 금지’는 무슨 의미일까요.

업무 중엔 대변을 참으라는 지시라고 합니다.

이건 여성 기관사가 그린 그림입니다.

기차에는 화장실이 많지 않나?

많기는 합니다.

그런데, 기관차와 발전차에는 화장실이 없고, 객차로는 건너가지 못하게 막혀 있습니다.

그러면 화장실을 어떻게 해결하느냐?

역에 정차하는 1분에서 4분 사이에, 전력 질주, 화장실, 볼 일, 또 전력 질주… 뛰고 또 뛴다는 겁니다.

어느 역에서 화장실을 가야하나 항상 생각한다, 강박증까지 생긴다는 고백도 있습니다.

일터, 화장실, 그리고 직업병.

낯선 주제지만, 이제는 차분히 생각해 볼 때입니다.

[정민주/관람객 : "개인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하지만 모두가 겪고 있다는 점에서 다 같이 생각해 봐야 되는 문제가 아닌가 싶었어요."]

KBS 뉴스 김준범입니다.

촬영기자:강희준 김상민 조은경/영상편집:안영아/그래픽:이근희

조사도 통계도 없지만…조금씩 시도되는 해법들

[앵커]

그럼 이 문제 취재한 김지숙 기자와 이야기 점 더 나눠보겠습니다.

김 기자, 여성 노동자들 위주로 취재했던데, 꼭 여성만의 문제는 아니죠?

[기자]

맞습니다.

다만, 화장실을 잘 못가서 생기는 대표적 질환이 방광염인데, 지난 5년 동안 방광염 때문에 진료받은 노동자 10명 중 9명이 여성입니다.

여성들이 화장실 이용에 제약이 많은 것도 분명한 현실이기 때문에 더 주목했던 거고요.

버스나 택시기사, 배달라이더 같은 직업들도 화장실 이용이 쉽지 않은 대표적 업종인데, 남성들이 훨씬 많죠.

성별을 가릴 문제가 아닙니다.

[앵커]

방광염 외의 다른 질병은 어떻습니까?

[기자]

신우신염이나 요로감염 등에 걸릴 수도 있습니다.

남성 같은 경우는 전립선염도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직업 연관성이 있다고 판단돼서 산재 인정 받은 사례는 지난해 딱 1건 있었습니다.

[앵커]

1건 밖에 없다는 건, 우리 사회가 이런 문제를 직업병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거겠죠?

[기자]

그러니까 실태 조사도 안하고, 연구도 거의 없습니다.

제가 들고 나온 이 보고서, ‘여성 노동자 일터 화장실 이용 실태 연구’.

이 연구가 거의 유일한데요.

설문 응답자의 절반이 화장실 제때 못 가서 건강에 불편함을 느낀다는 조사 결과가 담겨있습니다.

또 리포트에서 조리사 김 모 씨 소개해드렸잖아요,

같이 일하는 7명 모두가 방광염 경험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노동자들조차 ‘이게 산재가 되느냐’ 되물을 정도로 인식 자체가 약했습니다.

[앵커]

그럼 어떤 해법이 있을까요?

[기자]

일단은 서로 꺼내놓고 얘기를 하는 게 출발일 것 같고요.

보기 드물게 울산시가 이런 정책을 냈어요.

노동자들이 공중화장실을 쉽게 찾을 수 있게 휴대전화 내비게이션 앱에 표시를 했습니다.

간단한 거지만 노동자들은 큰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이렇게 화장실 문제에 공감하는 일터 문화를 만드는 게 중요하겠죠.

물론 당국 차원의 실태조사도 이뤄질 필요가 있어보입니다.

[앵커]

조금 전에도 ​버스 기사 얘기를 잠깐 했는데요.

서울 은평구와 서초구를 오가는 742번 시내버스의 경우 ​길게는 다섯 시간 가까이 운전을 해야 한다고 합니다.

지난 4월엔 이 시내버스를 운전하는 기사가 화장실도 맘대로 못가 ‘물 한 모금 못 마시고 일한다’고 국민청원도 했는데요.

뒤늦었지만 서울시가 기사들이 조금이라도 쉴 수 있도록 새 정류소도 만들고 배차 간격도 조정했습니다.

한번에 달라지긴 어렵겠지만 한번만 더 생각하면 지금과는 다른 노동환경, 어렵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감춰진 산재 ‘화장실 직업병’
    • 입력 2021-11-15 21:27:13
    • 수정2021-11-15 22:24:47
    뉴스 9
[앵커]

일터에서 화장실을 제때 가기 어렵다면 얼마나 곤란할까요?

단순히 힘든 걸 넘어 방광염 등 만성 직업병으로 고통을 받기도 하는데, 화장실 문제여서 꺼내놓고 말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KBS 연중 기획, ‘안전한 일터, 건강한 노동을 위해’, 오늘(15일)은 ‘화장실’과 ‘산업재해’사이 연관성을 들여다 봅니다.

김지숙, 김준범 기자가 차례로 보도합니다.

[리포트]

여러분 가운데 혹시 일터에서 화장실 가기 어려운 분 계신가요?

아마 대부분 아닐 겁니다.

그런데 가끔이 아니라 매일, 화장실 문제로 거의 전쟁을 치르는 노동자들이 있습니다.

[“하루에 15가구 정도 가고요.”]

23년차 학습지 교사 유득규 씨.

하루 종일 말을 하지만, 물 마시는 건 금물입니다.

학생 집에서 준비한 음료수도 마시지 않습니다.

화장실 때문입니다.

[유득규/학습지 교사 : “(왜 그대로 가지고 나오셨어요?) 지금 마시면 다음 수업 때 화장실 문제도 있고 해서….”]

방문 가정에 화장실이 있지만 정말 급한 경우가 아니면 참는다고 합니다.

화장실을 쓰면 민원이 들어오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유득규 : “(화장실을) 보이는 걸 좀 꺼려하는 부분이 있잖아요. 그래서 그런 부분들을 어머니들도 꺼려하시는 부분이 (있어서).”]

유득규 씨의 하루 일과를 보면, 오후 2시부터 밤 10시까지 일하면서 화장실엔 거의 못 갑니다.

화장실을 참으면서 앓기 시작한 방광염은 만성이 됐고, 두 달에 한 번은 병원을 찾아야 합니다.

[유득규 : “병원에서는 ‘왜 참냐, 소변을 봐라’라고 얘기하지만 사실 그건 의사 선생님 말씀이고 우리의 생활 패턴은 그게 안 되니까...”]

이 때문에 업무 구역이 정해지면 유 씨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은 공중화장실 위치 파악이 됐습니다.

학교 급식실 조리사 김모 씨도 화장실이 문제입니다.

불과 20미터 거리에 화장실이 있지만, 오전 내내 한 번도 가기 힘듭니다.

조리사 7명이 4시간 동안 950인 분의 점심을 만들다 보면, 잠시의 여유도 없기 때문입니다.

특히 복장이 큰 걸림돌입니다.

[김○○/학교 급식실 조리사 : “(화장실이 바로 근처에 있는데 잠깐 다녀오는 게 힘든 일인가요?) 여러 가지를 많이 입고 있다보니까 그게 번거로운 거죠. 면장갑 끼고, 팔 토시 끼고, 고무장갑 끼고, 앞치마 하고 장화 신어요.”]

심지어 출근 전날은 저녁 식사량을 줄이기도 합니다.

[김○○ : "혈뇨가 심하게 나와 가지고 방광염 염증이 심하다고 그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김○○ : "몇 분 정도가 이런 비슷한 증상이 있다고 들어보셨어요?) 방광염 경험들이 다 여러번 있다고 말하더라고요."]

일터에서 얻은 직업병이지만, 두 사람 모두 산재 신청은 생각해 본 적도 없다고 말합니다.

지난 5년 동안 방광염이 산재로 인정받은 사례도 단 한 건 뿐입니다.

이런 어려움, 두 사람만의 얘기가 아닙니다.

화장실이라는 공간 특성상 카메라에 담기는 어려워 당사자들이 이렇게 직접 그린 일터의 화장실을 살펴보겠습니다.

김준범 기자입니다.

[리포트]

방금 김지숙 기자가 들고있던 그림 들여다 볼까요?

한 학교 급식실의 조리사가 그린 화장실 지도입니다.

변기와 세탁기가 한 방에 있죠.

세탁실 겸 화장실입니다.

하지만, 변기 앞엔 가림막도 없어 참 난감하다는 메모 눈에 들어옵니다.

‘대변 금지’는 무슨 의미일까요.

업무 중엔 대변을 참으라는 지시라고 합니다.

이건 여성 기관사가 그린 그림입니다.

기차에는 화장실이 많지 않나?

많기는 합니다.

그런데, 기관차와 발전차에는 화장실이 없고, 객차로는 건너가지 못하게 막혀 있습니다.

그러면 화장실을 어떻게 해결하느냐?

역에 정차하는 1분에서 4분 사이에, 전력 질주, 화장실, 볼 일, 또 전력 질주… 뛰고 또 뛴다는 겁니다.

어느 역에서 화장실을 가야하나 항상 생각한다, 강박증까지 생긴다는 고백도 있습니다.

일터, 화장실, 그리고 직업병.

낯선 주제지만, 이제는 차분히 생각해 볼 때입니다.

[정민주/관람객 : "개인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하지만 모두가 겪고 있다는 점에서 다 같이 생각해 봐야 되는 문제가 아닌가 싶었어요."]

KBS 뉴스 김준범입니다.

촬영기자:강희준 김상민 조은경/영상편집:안영아/그래픽:이근희

조사도 통계도 없지만…조금씩 시도되는 해법들

[앵커]

그럼 이 문제 취재한 김지숙 기자와 이야기 점 더 나눠보겠습니다.

김 기자, 여성 노동자들 위주로 취재했던데, 꼭 여성만의 문제는 아니죠?

[기자]

맞습니다.

다만, 화장실을 잘 못가서 생기는 대표적 질환이 방광염인데, 지난 5년 동안 방광염 때문에 진료받은 노동자 10명 중 9명이 여성입니다.

여성들이 화장실 이용에 제약이 많은 것도 분명한 현실이기 때문에 더 주목했던 거고요.

버스나 택시기사, 배달라이더 같은 직업들도 화장실 이용이 쉽지 않은 대표적 업종인데, 남성들이 훨씬 많죠.

성별을 가릴 문제가 아닙니다.

[앵커]

방광염 외의 다른 질병은 어떻습니까?

[기자]

신우신염이나 요로감염 등에 걸릴 수도 있습니다.

남성 같은 경우는 전립선염도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직업 연관성이 있다고 판단돼서 산재 인정 받은 사례는 지난해 딱 1건 있었습니다.

[앵커]

1건 밖에 없다는 건, 우리 사회가 이런 문제를 직업병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거겠죠?

[기자]

그러니까 실태 조사도 안하고, 연구도 거의 없습니다.

제가 들고 나온 이 보고서, ‘여성 노동자 일터 화장실 이용 실태 연구’.

이 연구가 거의 유일한데요.

설문 응답자의 절반이 화장실 제때 못 가서 건강에 불편함을 느낀다는 조사 결과가 담겨있습니다.

또 리포트에서 조리사 김 모 씨 소개해드렸잖아요,

같이 일하는 7명 모두가 방광염 경험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노동자들조차 ‘이게 산재가 되느냐’ 되물을 정도로 인식 자체가 약했습니다.

[앵커]

그럼 어떤 해법이 있을까요?

[기자]

일단은 서로 꺼내놓고 얘기를 하는 게 출발일 것 같고요.

보기 드물게 울산시가 이런 정책을 냈어요.

노동자들이 공중화장실을 쉽게 찾을 수 있게 휴대전화 내비게이션 앱에 표시를 했습니다.

간단한 거지만 노동자들은 큰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이렇게 화장실 문제에 공감하는 일터 문화를 만드는 게 중요하겠죠.

물론 당국 차원의 실태조사도 이뤄질 필요가 있어보입니다.

[앵커]

조금 전에도 ​버스 기사 얘기를 잠깐 했는데요.

서울 은평구와 서초구를 오가는 742번 시내버스의 경우 ​길게는 다섯 시간 가까이 운전을 해야 한다고 합니다.

지난 4월엔 이 시내버스를 운전하는 기사가 화장실도 맘대로 못가 ‘물 한 모금 못 마시고 일한다’고 국민청원도 했는데요.

뒤늦었지만 서울시가 기사들이 조금이라도 쉴 수 있도록 새 정류소도 만들고 배차 간격도 조정했습니다.

한번에 달라지긴 어렵겠지만 한번만 더 생각하면 지금과는 다른 노동환경, 어렵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