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세척제’ 쓴 노동자들 왜 아팠나…“제조사 믿을 수밖에”

입력 2022.03.08 (07:00) 수정 2022.03.08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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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급성중독 사고의 가장 큰 책임은 유독물질이 함유된 세척제를 취급하면서도, 노동자들에게 제대로 된 보호구를 제공하지 않은 회사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회사 대표를 중대재해처벌법으로 처벌하고 나면, 과연 우리의 일터는 안전해질 수 있을까요?

‘급성중독’ 판정을 받은 A씨가 일하는 공정. 엔진 부품용 금속을 세척제로 표면처리하는 공정을 담당했다.‘급성중독’ 판정을 받은 A씨가 일하는 공정. 엔진 부품용 금속을 세척제로 표면처리하는 공정을 담당했다.

자동차 부품회사인 경남 김해 대흥알앤티에 입사해 7년 동안 일한 30대 A 씨, 금속 면의 오염 물질을 세척제로 씻어내는 작업을 담당해 왔습니다.

테슬라와 현대자동차 등 세계 굴지의 자동차 회사에 들어가는 부품을 내 손으로 만든다는 자부심도 컸습니다. 건강이라면 늘 자신 있었지만, 올해 초 갑자기 감당하기 힘든 피로와 무기력감이 몰려 왔습니다. 어떤 날은 출근 시각에 맞춰 일어나는 것조차 버거웠습니다.

그러던 중 우연히, 같은 공정에 있는 동료 몇몇이 '독성 간 질환'을 앓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황급히 병원을 찾았고, 검진 결과 A 씨의 간 수치는 기준치보다 20배나 높았습니다.

A씨 역시 동료들과 마찬가지로 '독성 간 질환'이라는 진단이 내려졌습니다. 무언가 잘못됐다는 걸 짐작했지만, 이유를 알 길이 없었습니다.

며칠 뒤인 지난달 18일, 우연히 창원 두성산업에서 급성중독이 발생했다는 뉴스를 보게 되었습니다.

'세척제'라는 말을 듣는 순간, 모든 것이 한순간에 이해되는 기분이었습니다.

■ 매일 사용한 세척제, '여중생 살인사건'에 쓰인 독성물질 80% 함유

창원 두성산업과 김해 대흥알앤티 노동자 29명의 급성중독을 일으킨 원인 물질은 세척제에 들어있던 '트리클로로메탄', 다른 명칭은 '클로로포름'입니다. 한때 마취제로도 쓰였지만, 간과 신장에 심한 독성을 유발해 현재는 마취제로도 사용이 중단됐습니다.

2015년 '봉천동 모텔 여중생 살인사건' 당시 피의자가 숨진 여중생을 기절시키는 데 사용한 물질이기도 합니다.

2010년도 초반까지는 세척력이 좋아 산업현장에서 많이 사용됐지만, 지금은 거의 퇴출되다시피 한 유독물질입니다.

세척제를 납품한 유성케미칼을 압수수색한 뒤, 분석을 위한 시료를 확보하고 있는 고용노동부.세척제를 납품한 유성케미칼을 압수수색한 뒤, 분석을 위한 시료를 확보하고 있는 고용노동부.

급성중독이 발생한 창원 두성산업 세척제에는 트리클로로메탄 80%가, 김해 대흥알앤티 세척제에는 38%가 함유되어 있었습니다.

환경부가 지정한 '유독물질' 지정기준인 트리클로로메탄 10%의 각각 8배, 4배에 가까운 수치입니다.

■ '허위 표기' 물질안전보건자료 '짜깁기' 수준…공단 제출조차 안 해

세척제를 납품한 회사는 김해 유성케미칼입니다.

유성케미칼은 지난해 말 두성산업에 세척제를 납품하면서 구성성분을 표시한 물질안전보건자료, 즉 MSDS를 함께 건넸습니다. 하지만 이 자료에는 급성중독을 일으킨 독성물질 '트리클로로메탄'은 적혀있지 않았습니다.

비슷한 시기 유성케미칼이 대흥알앤티에 납품한 물질안전보건자료도 마찬가지. '트리클로로메탄'은 아예 쓰여 있지 않았고, 80% 넘게 들어있다던 '다이메틸카르보네이트'라는 성분은 실제 3~40% 정도에 그쳤습니다.

유성케미칼이 두성산업에 세척제를 납품할 당시 제공한 물질안전보건자료(MSDS)에는 트리클로로메탄이 표기돼 있지 않다.유성케미칼이 두성산업에 세척제를 납품할 당시 제공한 물질안전보건자료(MSDS)에는 트리클로로메탄이 표기돼 있지 않다.

고용노동부는 이 같은 유독물질 허위 표기를 막기 위해 지난해 1월부터 ‘물질안전보건자료(MSDS) 제출 및 대체자료 심사제도’를 시행했습니다.

유독물질 성분에 대해 안전보건공단에 사전 심사를 받도록 했습니다.

사용 물질을 투명하게 공개해 노동자들을 보호하겠다는 취지입니다.

하지만 유성케미칼은 이 자료를 거의 짜깁기 수준으로 허위 표기했을 뿐 아니라, 이 자료를 공단에 제출조차 하지 않았던 사실이 KBS 취재 결과 확인됐습니다.

■ 1kg당 2천100원선, 친환경 세척제 1/4 수준 가격…비결은 독성물질?

그렇다면 독성이 강한 물질을 세척제에 왜 사용했을까?

최종 수사 결과가 나와봐야겠지만, 지금으로선 단가를 낮추기 위한 이유가 가장 큰 것으로 추정됩니다.

해마다 세척제 성분들이 추가로 유독물로 지정되면서 대형 세척제 제조사들을 중심으로 독성물질이 거의 없는 친환경 제품 생산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일부 영세 제조업체를 중심으로 독성물질을 다량으로 넣어 세척제를 제조하는 관행이 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독성이 강할수록 단가가 싸고 세정력이 좋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유성케미칼이 납품한 세척제의 kg당 단가는 2천160원선입니다. 독성물질이 거의 없는 친환경 세척제의 경우 kg당 9천원선에 판매되고 있다고 보면 거의 1/4 수준입니다.


■ "독성물질 KF94 마스크로 견뎌"…회사의 부실한 안전관리 드러나

물론 회사가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조치만 했더라도 일어나지 않았을 사고였습니다.하지만, 두성산업은 유독물질을 빼내기 위한 국소 배기장치를 설치하지 않았습니다.

대흥알앤티는 국소배기장치가 설치되어 있지만, 제대로 가동되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또 이들 회사는 노동자들이 사용할 적정량의 방독 마스크를 마련해두지 않았고, 이를 쓰도록 감독하지 않은 정황도 추가로 확인되고 있습니다.

두성산업의 한 노동자는 "방독마스크 대신 코로나19 예방을 위한 KF94 마스크를 쓰고 세척작업을 했다"라고 진술했습니다.

■ "유독물질 분석할 장비도, 인력도 없어"…중소기업 노동자들에게 전가되는 위험

유성케미칼이 납품한 세척제를 쓰는 사업장은 노동부가 확인한 곳만 전국 89곳입니다.

금속용 세척제를 쓰는 공정 특성상 이들 사업장 모두 두성산업 등과 마찬가지로 대기업에 납품하는 부품 협력업체들로 추정됩니다.

과연 두성산업과 대흥알앤티만의 문제일까요?

직원 50인 미만 중소 제조업체들은 산업용 세척제 사용이 잦지만, 성분을 확인할 안전보건 전담 인력조차 확보 못 하는 실정이다.직원 50인 미만 중소 제조업체들은 산업용 세척제 사용이 잦지만, 성분을 확인할 안전보건 전담 인력조차 확보 못 하는 실정이다.

취재진은 영세 제조업체가 밀집해 있는 창원의 한 공단을 찾아가 보았습니다. 노동자들은 대부분 방독 마스크 대신 의료용 마스크를 쓰고 있었습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한 회사 관계자는 급성중독 사고와 관련안 불안을 호소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척제 제조사가 주는 MSDS를 믿을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왜일까요? "유독물질을 분석할 장비도, 인력도 없기" 때문입니다.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화학물질 전문 인력은커녕 최소한의 안전보건 업무를 담당할 전담 인력조차 확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20세기 후진국형 급성중독 사고가 왜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잇따라 발생했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큰 실수는 굵은 밧줄처럼 여러 겹의 섬유로 만들어진다." (레미제라블, 빅토르위고)

불행의 최초 시작은 세척제 제조사의 거짓말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거짓말을 공모했거나 혹은 거짓말에 속아 최소한의 안전조치를 하지 않은 회사 역시 책임을 피해가기 힘듭니다.

이들 뿐만이 아닙니다.

성분 허위 표기, 환기 장치 미설치, 방독마스크, 낮은 단가, 열악한 안전보건 전문 인력 등 일일이 나열하기 힘든 과오가 거듭되는 동안 이를 사전에 제재하지 못한 당국의 허술한 감시망 역시 어쩌면 이 사고의 공범자들입니다.

위반사항들 대부분 산업안전보건법과 화학물질관리법 등 현행법의 테두리 안에서 과태료와 벌금, 징역 1년 이하에 처벌에만 그치고 있습니다.

‘급성중독’ 사고 뒤 노동부 산하 안전보건공단이 해당 사업장을 찾아 작업환경 유해인자를 측정하고 있다.‘급성중독’ 사고 뒤 노동부 산하 안전보건공단이 해당 사업장을 찾아 작업환경 유해인자를 측정하고 있다.

두성산업은 올해 처음 시행되는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을 받게 됩니다. 고용노동부는 중대재해처벌법의 도입 취지가 '처벌'이 아닌 '사고 예방'에 있다고 거듭 강조해 왔습니다.

하지만 이번 사고를 통해 드러난 문제점들을 우리 사회가 여전히 사소한 과오로 치부하는 한, 비슷한 사고는 반복될 수밖에 없습니다.

취재 중에 만난 대흥알앤티 노동자는 사고 전에도 자신들이 여러 번 회사 측에 환기 개선을 요구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중대법도 좋지만, 왜 사고가 난 뒤에야 우리의 이야기를 들어주느냐"고 호소했습니다.

이번 사고를 계기로, 화학물질을 취급하는 사업장에 적용되는 산업안전보건법은 물론 유독물 제조와 유통에 관한 법 전반에 사각지대가 없는지를 면밀히 들여다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치료를 받고 돌아온 노동자들이 보다 안전한 일터에서 일할 수 있을 때까지, KBS가 끝까지 취재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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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세척제’ 쓴 노동자들 왜 아팠나…“제조사 믿을 수밖에”
    • 입력 2022-03-08 07:00:05
    • 수정2022-03-08 07:00:13
    취재후·사건후
급성중독 사고의 가장 큰 책임은 유독물질이 함유된 세척제를 취급하면서도, 노동자들에게 제대로 된 보호구를 제공하지 않은 회사에 있습니다.<br /><br />그렇다면 회사 대표를 중대재해처벌법으로 처벌하고 나면, 과연 우리의 일터는 안전해질 수 있을까요?
‘급성중독’ 판정을 받은 A씨가 일하는 공정. 엔진 부품용 금속을 세척제로 표면처리하는 공정을 담당했다.
자동차 부품회사인 경남 김해 대흥알앤티에 입사해 7년 동안 일한 30대 A 씨, 금속 면의 오염 물질을 세척제로 씻어내는 작업을 담당해 왔습니다.

테슬라와 현대자동차 등 세계 굴지의 자동차 회사에 들어가는 부품을 내 손으로 만든다는 자부심도 컸습니다. 건강이라면 늘 자신 있었지만, 올해 초 갑자기 감당하기 힘든 피로와 무기력감이 몰려 왔습니다. 어떤 날은 출근 시각에 맞춰 일어나는 것조차 버거웠습니다.

그러던 중 우연히, 같은 공정에 있는 동료 몇몇이 '독성 간 질환'을 앓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황급히 병원을 찾았고, 검진 결과 A 씨의 간 수치는 기준치보다 20배나 높았습니다.

A씨 역시 동료들과 마찬가지로 '독성 간 질환'이라는 진단이 내려졌습니다. 무언가 잘못됐다는 걸 짐작했지만, 이유를 알 길이 없었습니다.

며칠 뒤인 지난달 18일, 우연히 창원 두성산업에서 급성중독이 발생했다는 뉴스를 보게 되었습니다.

'세척제'라는 말을 듣는 순간, 모든 것이 한순간에 이해되는 기분이었습니다.

■ 매일 사용한 세척제, '여중생 살인사건'에 쓰인 독성물질 80% 함유

창원 두성산업과 김해 대흥알앤티 노동자 29명의 급성중독을 일으킨 원인 물질은 세척제에 들어있던 '트리클로로메탄', 다른 명칭은 '클로로포름'입니다. 한때 마취제로도 쓰였지만, 간과 신장에 심한 독성을 유발해 현재는 마취제로도 사용이 중단됐습니다.

2015년 '봉천동 모텔 여중생 살인사건' 당시 피의자가 숨진 여중생을 기절시키는 데 사용한 물질이기도 합니다.

2010년도 초반까지는 세척력이 좋아 산업현장에서 많이 사용됐지만, 지금은 거의 퇴출되다시피 한 유독물질입니다.

세척제를 납품한 유성케미칼을 압수수색한 뒤, 분석을 위한 시료를 확보하고 있는 고용노동부.
급성중독이 발생한 창원 두성산업 세척제에는 트리클로로메탄 80%가, 김해 대흥알앤티 세척제에는 38%가 함유되어 있었습니다.

환경부가 지정한 '유독물질' 지정기준인 트리클로로메탄 10%의 각각 8배, 4배에 가까운 수치입니다.

■ '허위 표기' 물질안전보건자료 '짜깁기' 수준…공단 제출조차 안 해

세척제를 납품한 회사는 김해 유성케미칼입니다.

유성케미칼은 지난해 말 두성산업에 세척제를 납품하면서 구성성분을 표시한 물질안전보건자료, 즉 MSDS를 함께 건넸습니다. 하지만 이 자료에는 급성중독을 일으킨 독성물질 '트리클로로메탄'은 적혀있지 않았습니다.

비슷한 시기 유성케미칼이 대흥알앤티에 납품한 물질안전보건자료도 마찬가지. '트리클로로메탄'은 아예 쓰여 있지 않았고, 80% 넘게 들어있다던 '다이메틸카르보네이트'라는 성분은 실제 3~40% 정도에 그쳤습니다.

유성케미칼이 두성산업에 세척제를 납품할 당시 제공한 물질안전보건자료(MSDS)에는 트리클로로메탄이 표기돼 있지 않다.
고용노동부는 이 같은 유독물질 허위 표기를 막기 위해 지난해 1월부터 ‘물질안전보건자료(MSDS) 제출 및 대체자료 심사제도’를 시행했습니다.

유독물질 성분에 대해 안전보건공단에 사전 심사를 받도록 했습니다.

사용 물질을 투명하게 공개해 노동자들을 보호하겠다는 취지입니다.

하지만 유성케미칼은 이 자료를 거의 짜깁기 수준으로 허위 표기했을 뿐 아니라, 이 자료를 공단에 제출조차 하지 않았던 사실이 KBS 취재 결과 확인됐습니다.

■ 1kg당 2천100원선, 친환경 세척제 1/4 수준 가격…비결은 독성물질?

그렇다면 독성이 강한 물질을 세척제에 왜 사용했을까?

최종 수사 결과가 나와봐야겠지만, 지금으로선 단가를 낮추기 위한 이유가 가장 큰 것으로 추정됩니다.

해마다 세척제 성분들이 추가로 유독물로 지정되면서 대형 세척제 제조사들을 중심으로 독성물질이 거의 없는 친환경 제품 생산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일부 영세 제조업체를 중심으로 독성물질을 다량으로 넣어 세척제를 제조하는 관행이 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독성이 강할수록 단가가 싸고 세정력이 좋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유성케미칼이 납품한 세척제의 kg당 단가는 2천160원선입니다. 독성물질이 거의 없는 친환경 세척제의 경우 kg당 9천원선에 판매되고 있다고 보면 거의 1/4 수준입니다.


■ "독성물질 KF94 마스크로 견뎌"…회사의 부실한 안전관리 드러나

물론 회사가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조치만 했더라도 일어나지 않았을 사고였습니다.하지만, 두성산업은 유독물질을 빼내기 위한 국소 배기장치를 설치하지 않았습니다.

대흥알앤티는 국소배기장치가 설치되어 있지만, 제대로 가동되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또 이들 회사는 노동자들이 사용할 적정량의 방독 마스크를 마련해두지 않았고, 이를 쓰도록 감독하지 않은 정황도 추가로 확인되고 있습니다.

두성산업의 한 노동자는 "방독마스크 대신 코로나19 예방을 위한 KF94 마스크를 쓰고 세척작업을 했다"라고 진술했습니다.

■ "유독물질 분석할 장비도, 인력도 없어"…중소기업 노동자들에게 전가되는 위험

유성케미칼이 납품한 세척제를 쓰는 사업장은 노동부가 확인한 곳만 전국 89곳입니다.

금속용 세척제를 쓰는 공정 특성상 이들 사업장 모두 두성산업 등과 마찬가지로 대기업에 납품하는 부품 협력업체들로 추정됩니다.

과연 두성산업과 대흥알앤티만의 문제일까요?

직원 50인 미만 중소 제조업체들은 산업용 세척제 사용이 잦지만, 성분을 확인할 안전보건 전담 인력조차 확보 못 하는 실정이다.
취재진은 영세 제조업체가 밀집해 있는 창원의 한 공단을 찾아가 보았습니다. 노동자들은 대부분 방독 마스크 대신 의료용 마스크를 쓰고 있었습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한 회사 관계자는 급성중독 사고와 관련안 불안을 호소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척제 제조사가 주는 MSDS를 믿을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왜일까요? "유독물질을 분석할 장비도, 인력도 없기" 때문입니다.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화학물질 전문 인력은커녕 최소한의 안전보건 업무를 담당할 전담 인력조차 확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20세기 후진국형 급성중독 사고가 왜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잇따라 발생했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큰 실수는 굵은 밧줄처럼 여러 겹의 섬유로 만들어진다." (레미제라블, 빅토르위고)

불행의 최초 시작은 세척제 제조사의 거짓말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거짓말을 공모했거나 혹은 거짓말에 속아 최소한의 안전조치를 하지 않은 회사 역시 책임을 피해가기 힘듭니다.

이들 뿐만이 아닙니다.

성분 허위 표기, 환기 장치 미설치, 방독마스크, 낮은 단가, 열악한 안전보건 전문 인력 등 일일이 나열하기 힘든 과오가 거듭되는 동안 이를 사전에 제재하지 못한 당국의 허술한 감시망 역시 어쩌면 이 사고의 공범자들입니다.

위반사항들 대부분 산업안전보건법과 화학물질관리법 등 현행법의 테두리 안에서 과태료와 벌금, 징역 1년 이하에 처벌에만 그치고 있습니다.

‘급성중독’ 사고 뒤 노동부 산하 안전보건공단이 해당 사업장을 찾아 작업환경 유해인자를 측정하고 있다.
두성산업은 올해 처음 시행되는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을 받게 됩니다. 고용노동부는 중대재해처벌법의 도입 취지가 '처벌'이 아닌 '사고 예방'에 있다고 거듭 강조해 왔습니다.

하지만 이번 사고를 통해 드러난 문제점들을 우리 사회가 여전히 사소한 과오로 치부하는 한, 비슷한 사고는 반복될 수밖에 없습니다.

취재 중에 만난 대흥알앤티 노동자는 사고 전에도 자신들이 여러 번 회사 측에 환기 개선을 요구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중대법도 좋지만, 왜 사고가 난 뒤에야 우리의 이야기를 들어주느냐"고 호소했습니다.

이번 사고를 계기로, 화학물질을 취급하는 사업장에 적용되는 산업안전보건법은 물론 유독물 제조와 유통에 관한 법 전반에 사각지대가 없는지를 면밀히 들여다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치료를 받고 돌아온 노동자들이 보다 안전한 일터에서 일할 수 있을 때까지, KBS가 끝까지 취재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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