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이 없어졌어요” 태풍이 삼켰던 마을 사람들 이야기

입력 2022.09.09 (08:12) 수정 2022.09.10 (17:32)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73가구, 130여 명의 주민이 살고 있는 경북 경주의 한 작은 마을.

시간당 100mm가 넘는 폭우에 마을 옆을 흐르는 하천 둑 일부가 터지면서, 거센 강물이 마을을 휩쓸었습니다.

마을을 메웠던 물이 다 빠지자 현장은 말 그대로 아수라장을 방불케 했습니다. 주민들이 오가던 다리 위에 어디선가 떠내려온 커다란 컨테이너가 아슬아슬하게 걸쳐 있었고, 전봇대에 올라서 있는 자동차, 마당 중앙엔 벽돌들과 나뭇가지들이 흙더미와 뒤엉켜있었습니다.



장정연/경주시 암곡동
“내가 시집온 이후로 50년을 이 동네에 살았는데, 이런 물난리는 처음 본다니까? 우리 남편이 안 보여서 떠내려간 줄 알고 얼마나 마음 졸였는지 몰라. 지붕 위에 올라가서 겨우 살았다더라고.

냉장고고 뭐고 다 망가졌지. 아무것도 못 챙기고 몸만 빠져나왔지. 그래도 얼마나 다행이야, 살아서.”


주민들은 취재진에게 "집이 없어졌다"고 특정 장소를 연신 가리켰습니다. 위 사진에서 취재진이 서 있는 터엔 불과 며칠 전만 해도 주택 한 채가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불어난 하천에 휩쓸리면서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물살이 얼마나 빠르고 거셌는지 짐작할 수 있게 합니다. 주민들에 따르면 수년 전부터 비어있는 집이라 그나마 인명피해는 없었다고 합니다.



특히 하천 바로 옆에 있는 집들의 피해가 컸습니다. 이 주택은 한쪽 벽이 완전히 뜯겨나가 집 안이 훤히 보입니다. 집 안까지 들이닥친 나무기둥과 흙탕물은 그때의 아찔한 상황을 보여주는 듯 합니다.

이태호/경주시 암곡동
"아내와 새벽 기도를 하고 있는데 흙탕물이 집안으로 들어오는 거예요. 이상해서 창문을 바라보니 이미 창문의 절반이 물로 잠겨있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집안으로도 물이 들어오는데 금방 허리까지 차올랐습니다.

이러다 죽겠다 싶어 물이 빠져나가도록 반대쪽 창문을 다 깨버렸죠. 아내는 저체온증 때문에 지금 병원에 입원해있습니다. 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면 아찔하죠."

주민들은 상수도관이 파손돼 집안에서 물을 이용할 수 없게 되자, 끊어진 관로에서 흐르는 물로 빨래하기도 합니다. 하루아침에 정든 보금자리를 잃은 주민들은 망연자실한 모습입니다.


주민들은 마음을 다잡고 소형 굴착기와 트럭을 동원해 직접 흙과 돌더미를 치워 보지만 언제쯤 완전히 복구할 수 있을지 막막하기만 합니다.

박태화/경주시 암곡동
"아이고, 말도 마세요. 한 두어 시간은 떨려서 말도 못해요, 그 심정을요. 올해 마음먹고 샀던 농기계들도 다 버려야 하고, 힘들게 농사지어서 창고에 쌓아뒀던 쌀들도 다 버려야 해요. 복구는 한 달, 두 달 하더라도 되겠습니까? 아무리 시에서 해주더라도...."

이 마을의 모든 주민은 고령자라고 합니다. 추석을 코앞에 두고, 부모님의 피해 소식을 접한 자녀들은 걱정을 한가득 안고 고향을 미리 찾기도 했습니다.

A 씨는 "부모님 댁이 하천 바로 옆에 있어서 비 소식이 있을 때마다 마음 졸였는데, 결국 이 사달이 났다"며 "전화를 받자마자 헐레벌떡 내려왔는데, 집안이 다 부서져서 어디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르겠다"고 전했습니다.

태풍이 지나간 길목마다 주민들의 커다란 상처가 남아있는 것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삶의 터전에 대한 신속한 복구 작업이 이뤄져 하루빨리 이전 모습을 찾기를 바라봅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집이 없어졌어요” 태풍이 삼켰던 마을 사람들 이야기
    • 입력 2022-09-09 08:12:15
    • 수정2022-09-10 17:32:29
    취재K

73가구, 130여 명의 주민이 살고 있는 경북 경주의 한 작은 마을.

시간당 100mm가 넘는 폭우에 마을 옆을 흐르는 하천 둑 일부가 터지면서, 거센 강물이 마을을 휩쓸었습니다.

마을을 메웠던 물이 다 빠지자 현장은 말 그대로 아수라장을 방불케 했습니다. 주민들이 오가던 다리 위에 어디선가 떠내려온 커다란 컨테이너가 아슬아슬하게 걸쳐 있었고, 전봇대에 올라서 있는 자동차, 마당 중앙엔 벽돌들과 나뭇가지들이 흙더미와 뒤엉켜있었습니다.



장정연/경주시 암곡동
“내가 시집온 이후로 50년을 이 동네에 살았는데, 이런 물난리는 처음 본다니까? 우리 남편이 안 보여서 떠내려간 줄 알고 얼마나 마음 졸였는지 몰라. 지붕 위에 올라가서 겨우 살았다더라고.

냉장고고 뭐고 다 망가졌지. 아무것도 못 챙기고 몸만 빠져나왔지. 그래도 얼마나 다행이야, 살아서.”


주민들은 취재진에게 "집이 없어졌다"고 특정 장소를 연신 가리켰습니다. 위 사진에서 취재진이 서 있는 터엔 불과 며칠 전만 해도 주택 한 채가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불어난 하천에 휩쓸리면서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물살이 얼마나 빠르고 거셌는지 짐작할 수 있게 합니다. 주민들에 따르면 수년 전부터 비어있는 집이라 그나마 인명피해는 없었다고 합니다.



특히 하천 바로 옆에 있는 집들의 피해가 컸습니다. 이 주택은 한쪽 벽이 완전히 뜯겨나가 집 안이 훤히 보입니다. 집 안까지 들이닥친 나무기둥과 흙탕물은 그때의 아찔한 상황을 보여주는 듯 합니다.

이태호/경주시 암곡동
"아내와 새벽 기도를 하고 있는데 흙탕물이 집안으로 들어오는 거예요. 이상해서 창문을 바라보니 이미 창문의 절반이 물로 잠겨있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집안으로도 물이 들어오는데 금방 허리까지 차올랐습니다.

이러다 죽겠다 싶어 물이 빠져나가도록 반대쪽 창문을 다 깨버렸죠. 아내는 저체온증 때문에 지금 병원에 입원해있습니다. 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면 아찔하죠."

주민들은 상수도관이 파손돼 집안에서 물을 이용할 수 없게 되자, 끊어진 관로에서 흐르는 물로 빨래하기도 합니다. 하루아침에 정든 보금자리를 잃은 주민들은 망연자실한 모습입니다.


주민들은 마음을 다잡고 소형 굴착기와 트럭을 동원해 직접 흙과 돌더미를 치워 보지만 언제쯤 완전히 복구할 수 있을지 막막하기만 합니다.

박태화/경주시 암곡동
"아이고, 말도 마세요. 한 두어 시간은 떨려서 말도 못해요, 그 심정을요. 올해 마음먹고 샀던 농기계들도 다 버려야 하고, 힘들게 농사지어서 창고에 쌓아뒀던 쌀들도 다 버려야 해요. 복구는 한 달, 두 달 하더라도 되겠습니까? 아무리 시에서 해주더라도...."

이 마을의 모든 주민은 고령자라고 합니다. 추석을 코앞에 두고, 부모님의 피해 소식을 접한 자녀들은 걱정을 한가득 안고 고향을 미리 찾기도 했습니다.

A 씨는 "부모님 댁이 하천 바로 옆에 있어서 비 소식이 있을 때마다 마음 졸였는데, 결국 이 사달이 났다"며 "전화를 받자마자 헐레벌떡 내려왔는데, 집안이 다 부서져서 어디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르겠다"고 전했습니다.

태풍이 지나간 길목마다 주민들의 커다란 상처가 남아있는 것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삶의 터전에 대한 신속한 복구 작업이 이뤄져 하루빨리 이전 모습을 찾기를 바라봅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