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치 공적엔 ‘보상’, 피해자 사과엔 ‘미적’

입력 2022.09.29 (21:31) 수정 2022.09.30 (09:13)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앵커]

가해자인 국가가 피해자에게 보상도, 사과도 없었던 사건 연속 보도.

오늘(29일) 마지막 순서로 우리 군 첩보 부대가 납치한 북한 주민에 대한 얘기입니다.

끌려온 북한 주민은 사과조차 못받고 있는 반면 이들을 납치했다는 사람들은 보상금까지 받았는데, 이마저도 거짓 청구한 것이었습니다.

최혜림 기자의 보돕니다.

[리포트]

1956년, 북한 황해도.

19살 김주삼 씨 집에 총 든 군인 3명이 들이닥쳤습니다.

그들은, 북한 군인이 아닌 대한민국 군인이었습니다.

김 씨는 영문도 모르고 납치돼, 그 길로, 남녘 땅에 끌려왔습니다.

[김주삼/납치 피해자 : "동생들하고 조그마한 방에서 자고 있었는데 밤에 군인들이 총 들고 들어와서 나만 그냥 끌고 나온 것이지 뭐. 아무 소리 못 했어 나는."]

우리 군 첩보 부대가 수행한 일종의 '납치 공작'이었습니다.

김주삼 씨는 신문을 받고 풀려난 뒤 어쩔 수 없이 국내에 정착했지만, 북녘의 가족과 생이별한 아픔을 평생 안고 살아야 했습니다.

그렇게 반세기가 지나고, 2012년의 어느 날...

'총리실 소속'이라는 사람들이 찾아오더니, 다짜고짜 56년 전 그 일을 캐물었습니다.

[김주삼/납치 피해자 : "그 부대의 어떤 사람들이 갔다 왔냐? 국군이 총 들고 들어왔다 얘기한 거지."]

알고 보니 이 조사는, 김주삼 씨의 '피해'를 살피려는 것이 아니었고, 당시 김 씨를 '납치'했던 군인들의 '공적'을 조사하는 것이었습니다.

첩보 부대원 2명이 납치의 공을 들어 보상금을 신청했고 국가가 1억 5천만 원을 지급한 뒤 적절성을 따지는 절차였습니다.

하지만 최종 조사 결과 그들은 해당 임무를 수행한 적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두 사람을 비롯해 총 12명이 보상금을 부정 청구했던 사실, 군이 뒤늦게 파악했고, 그 액수만 12억 원이 넘습니다.

이렇게 '납치 공적'을 포상하고 바로잡는 일에는 적극적이면서, 군은 정작 김 씨의 '납치 피해' 자체에 대해선, 계속 눈을 감았습니다.

[홍익표/더불어민주당 의원 : "다양한 형태로 특수임무가 수행된 것을 감안할 때에는 제2의 김주삼 제3의 김주삼 이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좀 더 세밀한 조사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을 합니다."]

올해 들어서야 진실화해위원회가 김주삼 씨를 '피해자'로 인정했습니다.

납치된 지 66년 만입니다.

국가가 사과하고 북한 가족과의 상봉을 추진하라는 권고가 뒤따랐지만, 그마저도 이행될 기미가 잘 안 보입니다.

[김주삼/납치 피해자 : "사과하고 그런 것 없었어요. 아직까지. 내가 그런 걸 모르니까 내가 배운 게 없어서 뭘 물어보고 그러지 못해."]

행정안전부는 2기 진실화해위 활동이 종료되고 종합보고서가 발간되면 그때 가서, 권고 공문을 정식 접수하겠다는 입장입니다.

그 시점은 2024년 12월, 지금으로부터 2년 뒤입니다.

KBS 뉴스 최혜림입니다.

촬영기자:황종원 송혜성/영상편집:김선영/그래픽:김지훈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납치 공적엔 ‘보상’, 피해자 사과엔 ‘미적’
    • 입력 2022-09-29 21:31:49
    • 수정2022-09-30 09:13:54
    뉴스 9
[앵커]

가해자인 국가가 피해자에게 보상도, 사과도 없었던 사건 연속 보도.

오늘(29일) 마지막 순서로 우리 군 첩보 부대가 납치한 북한 주민에 대한 얘기입니다.

끌려온 북한 주민은 사과조차 못받고 있는 반면 이들을 납치했다는 사람들은 보상금까지 받았는데, 이마저도 거짓 청구한 것이었습니다.

최혜림 기자의 보돕니다.

[리포트]

1956년, 북한 황해도.

19살 김주삼 씨 집에 총 든 군인 3명이 들이닥쳤습니다.

그들은, 북한 군인이 아닌 대한민국 군인이었습니다.

김 씨는 영문도 모르고 납치돼, 그 길로, 남녘 땅에 끌려왔습니다.

[김주삼/납치 피해자 : "동생들하고 조그마한 방에서 자고 있었는데 밤에 군인들이 총 들고 들어와서 나만 그냥 끌고 나온 것이지 뭐. 아무 소리 못 했어 나는."]

우리 군 첩보 부대가 수행한 일종의 '납치 공작'이었습니다.

김주삼 씨는 신문을 받고 풀려난 뒤 어쩔 수 없이 국내에 정착했지만, 북녘의 가족과 생이별한 아픔을 평생 안고 살아야 했습니다.

그렇게 반세기가 지나고, 2012년의 어느 날...

'총리실 소속'이라는 사람들이 찾아오더니, 다짜고짜 56년 전 그 일을 캐물었습니다.

[김주삼/납치 피해자 : "그 부대의 어떤 사람들이 갔다 왔냐? 국군이 총 들고 들어왔다 얘기한 거지."]

알고 보니 이 조사는, 김주삼 씨의 '피해'를 살피려는 것이 아니었고, 당시 김 씨를 '납치'했던 군인들의 '공적'을 조사하는 것이었습니다.

첩보 부대원 2명이 납치의 공을 들어 보상금을 신청했고 국가가 1억 5천만 원을 지급한 뒤 적절성을 따지는 절차였습니다.

하지만 최종 조사 결과 그들은 해당 임무를 수행한 적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두 사람을 비롯해 총 12명이 보상금을 부정 청구했던 사실, 군이 뒤늦게 파악했고, 그 액수만 12억 원이 넘습니다.

이렇게 '납치 공적'을 포상하고 바로잡는 일에는 적극적이면서, 군은 정작 김 씨의 '납치 피해' 자체에 대해선, 계속 눈을 감았습니다.

[홍익표/더불어민주당 의원 : "다양한 형태로 특수임무가 수행된 것을 감안할 때에는 제2의 김주삼 제3의 김주삼 이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좀 더 세밀한 조사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을 합니다."]

올해 들어서야 진실화해위원회가 김주삼 씨를 '피해자'로 인정했습니다.

납치된 지 66년 만입니다.

국가가 사과하고 북한 가족과의 상봉을 추진하라는 권고가 뒤따랐지만, 그마저도 이행될 기미가 잘 안 보입니다.

[김주삼/납치 피해자 : "사과하고 그런 것 없었어요. 아직까지. 내가 그런 걸 모르니까 내가 배운 게 없어서 뭘 물어보고 그러지 못해."]

행정안전부는 2기 진실화해위 활동이 종료되고 종합보고서가 발간되면 그때 가서, 권고 공문을 정식 접수하겠다는 입장입니다.

그 시점은 2024년 12월, 지금으로부터 2년 뒤입니다.

KBS 뉴스 최혜림입니다.

촬영기자:황종원 송혜성/영상편집:김선영/그래픽:김지훈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