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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는 없었다’ 258건 전체를 공개합니다
입력 2022.10.06 (06:00) 수정 2022.10.06 (08:38) 취재K

지난주 KBS는 심층 기획 「사과는 없었다」를 사흘에 걸쳐 연속 보도했습니다. 과거사에 대한 사과와 보상을 10년 넘게 뭉개고 있는 정부를 고발했습니다.

[연관 기사]
삼청교육대, 국가의 사과는 없었다…보상 권고도 무시 (9월 27일)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565756
‘미루고, 거짓 의혹도’…지연된 국가의 사과 (9월 28일)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566799
납치 공적엔 ‘보상’, 피해자 사과엔 ‘미적’ (9월 29일)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567893
국가 사과는 피해 회복 첫 걸음…‘의지’의 문제 (9월 29일)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567894

■ 진실화해위를 아십니까

정부에 여러 위원회가 있죠. 그중 하나로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가 있습니다. 1기(2005년~2010년)가 활동을 마쳤고, 지금은 2기(2020년~2024년 예정)가 활동 중입니다.

진실화해위를 둔 목적을 볼까요.

※과거사정리법 제1조(목적)
항일독립운동, 반민주적 또는 반인권적 행위에 의한 인권유린과 폭력ㆍ학살ㆍ의문사 사건 등을 조사하여 왜곡되거나 은폐된 진실을 밝혀냄으로써 민족의 정통성을 확립하고 과거와의 화해를 통해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국민통합에 기여함

간단히 줄이면, 진실을 밝혀 피해자의 한을 씻고 과거와 화해하자는 취지입니다.

1기 진실화해위는 이 목적을 위해 부단히 활동했고, 1,271건의 권고를 대한민국 정부에 전달하고 해산했습니다. 일종의 숙제를 준 셈입니다.

12년이 지났습니다. 12일도 아니고, 12달도 아니고, 12년. 아무리 어려운 숙제더라도 웬만큼은 끝냈을 시간입니다.

■ 258건, 12년 동안 꿈쩍도 안 했다

하지만 취재할수록 놀라웠습니다. 이렇게 무신경하고, 무책임할 수가 있나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정부의 권고 이행에 피해자들이 얼마나 만족스러워했는지는 둘째치고, 이행하기는 했는지부터 따졌습니다. 정부 스스로 '이행 완료가 안 됐다'고 분류한 건만 추렸습니다.

그랬더니, 258건.

258이라는 숫자에 숨어있는, 사과받지 못한 국가 범죄의 목록은 다음과 같습니다. 국회 행정안전위 천준호 의원실의 도움을 받아 KBS가 재정리했습니다. 누구나 내려받으실 수 있습니다.

[KBS공개] 1기 진실화해위원회 권고 미이행 현황.pdf
https://news.kbs.co.kr/datafile/2022/10/05/330741664951357881.pdf
(*참고1. 국민보도연맹 사건처럼 국가의 사과와 피해 회복, 국민 통합이 각각 권고된 경우 미이행 건을 3건으로 집계)
(*참고2. 국방부와 경찰청이 모두 권고 대상 기관에 해당되는 청계피복노조 인권침해 사건 등은 중복 집계)


■ 기자도 찾는데, 정부가 못 찾는다?

대체 얼마나 어려운 사정이 있길래, 12년 동안 못 끝낸 숙제가 이리 많을 것일까.

일단, 가장 잦은 미이행 사유는 피해자의 사망 또는 소재 불명입니다. 즉, 피해자와 연락이 닿을 길이 없으니, 권고를 이행하래야 할 방법이 없었다는 뜻입니다.

진실규명이 완료된 사건 중 피해자의 소재가 파악되지 않거나, 피해자의 사망 등의 이유로 권고를 이행할 수 없었던 사건은 총 56건입니다.

소재 불명이 가장 많이 기록된 사건은 '납북 귀환 어부 간첩 조작' 사건들이었습니다. 조업 중 북한의 경비정에 나포돼 북한에 억류됐다가 풀려난 뒤, 불법 구금과 고문에 못 이겨 간첩이었다고 자백한 사건들이었습니다.

재일동포 유학생들을 불법으로 가둔 뒤 허위 자백을 유도했던 '재일 교포 간첩조작·인권침해' 사건은 해외거주 이행 불가라고 기록돼있습니다.

그러나 취재진은 수소문에 나선 지 만 하루 만에 재일 교포 인권침해 사건의 피해자 김병진 씨를 만났습니다.

김병진 씨는 "일본에 살고 있지만 주소지는 바뀌지 않았다"며 "진실화해위의 결정문도 받았고, 연락이 가능하다"고 말했습니다.

삼청교육대 사건 역시 '신청인 사망 등 이행불가'라고 적혀있지만, 취재진이 만난 피해자들은 어떠한 연락도 받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기자도 며칠 만에 연락을 하는데, 정부가 연락하지 못했다? 연락을 안 했다고 보는 게 더 합리적일 겁니다.

■ 권고 '정상 추진'...피해자는 "금시초문"

정부가 '정상 추진' 이라고 기록해 놓은 사건들도 있습니다.

1970-80년대, 국가가 노조원들을 불법 체포하고 잡아 가둔 '청계피복노조' 사건이 있었습니다. 진실화해위는 국가 폭력 사건으로 규정하고, 경찰청에 사과 등을 권고했습니다.

경찰은 이 권고를 '정상 추진'으로 분류했습니다. 정상 추진했다는 취지로 읽힙니다.

하지만 피해자들은 경찰 차원의 사과를 받은 적이 없다고 취재진에게 말했습니다. '정상 추진'으로 분류돼있다는 소식을 전하는 처음 듣는 얘기라고 했습니다.

어찌 된 영문일까. 경찰은 '정상 추진'이라는 말이 권고를 '이행 중'이란 뜻이라고 해명했습니다. "지금까지 최선을 다해왔다"는 말도 더했습니다.

권고 이행 상황을 보면 '범정부 차원 검토 필요'라는 문구도 눈에 띕니다.

이리역 미군 폭격 사건처럼 6.25 전쟁 당시 미군에 의한 민간인 희생 사건의 경우 정부와 미국의 협상이 필요하니 개별 부처 수준에서 처리할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개별 부처 수준에서 처리할 수 없는 권고라는 점은 분명하지만, 10년 넘게 검토의 필요성을 논의만 하고 있다면? 의지가 없다고 해석하는 게 합리적입니다.

KBS가 전수 공개한 258건의 모두 이런 식입니다. 피해자들 입장에서는 분통이 터지고, 피눈물이 날 일이지만, 정부는 이렇게 느긋하고 무성의했습니다.

■ 피해자들이 원하는 건 '국가'의 사과

국정원은 지난해 7월 박지원 당시 국정원장의 명의로 된 사과 서한문과 보도자료를 배포했습니다. 27건의 국가 범죄 사건에 대해 국정원에서 일괄 사과를 했던 겁니다.

비슷한 사례로, 특정 지역의 경찰서장 명의로 사과에 나선 경우도 있습니다.

물론 사과를 안 하는 것보다는 백번 나은 일입니다. 하지만 피해자들이 원하는 것은 특정 기관장의 사과가 아닙니다. '국가'가 저지른 범죄인 만큼, '국가'의 사과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문인간첩단 사건의 피해자 임헌영 소장과 아람회 사건의 피해자 박해전 시인은 기관장의 사과 서한 대신 정부의 사과를 요청해왔지만, 10년 넘게 답을 듣지 못했습니다.

울산 국민보도연맹 사건의 경우, 2008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희생자 추모제에 영상 메시지를 보내 사과의 뜻을 전했습니다. 참고할 만한 선례일 수 있습니다.

잘못해놓고, 잘못했다고 말하지 않는 국가. 그 나라의 국격은 어디쯤에 있을까요.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 ‘사과는 없었다’ 258건 전체를 공개합니다
    • 입력 2022-10-06 06:00:10
    • 수정2022-10-06 08:38:42
    취재K

지난주 KBS는 심층 기획 「사과는 없었다」를 사흘에 걸쳐 연속 보도했습니다. 과거사에 대한 사과와 보상을 10년 넘게 뭉개고 있는 정부를 고발했습니다.

[연관 기사]
삼청교육대, 국가의 사과는 없었다…보상 권고도 무시 (9월 27일)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565756
‘미루고, 거짓 의혹도’…지연된 국가의 사과 (9월 28일)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566799
납치 공적엔 ‘보상’, 피해자 사과엔 ‘미적’ (9월 29일)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567893
국가 사과는 피해 회복 첫 걸음…‘의지’의 문제 (9월 29일)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567894

■ 진실화해위를 아십니까

정부에 여러 위원회가 있죠. 그중 하나로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가 있습니다. 1기(2005년~2010년)가 활동을 마쳤고, 지금은 2기(2020년~2024년 예정)가 활동 중입니다.

진실화해위를 둔 목적을 볼까요.

※과거사정리법 제1조(목적)
항일독립운동, 반민주적 또는 반인권적 행위에 의한 인권유린과 폭력ㆍ학살ㆍ의문사 사건 등을 조사하여 왜곡되거나 은폐된 진실을 밝혀냄으로써 민족의 정통성을 확립하고 과거와의 화해를 통해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국민통합에 기여함

간단히 줄이면, 진실을 밝혀 피해자의 한을 씻고 과거와 화해하자는 취지입니다.

1기 진실화해위는 이 목적을 위해 부단히 활동했고, 1,271건의 권고를 대한민국 정부에 전달하고 해산했습니다. 일종의 숙제를 준 셈입니다.

12년이 지났습니다. 12일도 아니고, 12달도 아니고, 12년. 아무리 어려운 숙제더라도 웬만큼은 끝냈을 시간입니다.

■ 258건, 12년 동안 꿈쩍도 안 했다

하지만 취재할수록 놀라웠습니다. 이렇게 무신경하고, 무책임할 수가 있나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정부의 권고 이행에 피해자들이 얼마나 만족스러워했는지는 둘째치고, 이행하기는 했는지부터 따졌습니다. 정부 스스로 '이행 완료가 안 됐다'고 분류한 건만 추렸습니다.

그랬더니, 258건.

258이라는 숫자에 숨어있는, 사과받지 못한 국가 범죄의 목록은 다음과 같습니다. 국회 행정안전위 천준호 의원실의 도움을 받아 KBS가 재정리했습니다. 누구나 내려받으실 수 있습니다.

[KBS공개] 1기 진실화해위원회 권고 미이행 현황.pdf
https://news.kbs.co.kr/datafile/2022/10/05/330741664951357881.pdf
(*참고1. 국민보도연맹 사건처럼 국가의 사과와 피해 회복, 국민 통합이 각각 권고된 경우 미이행 건을 3건으로 집계)
(*참고2. 국방부와 경찰청이 모두 권고 대상 기관에 해당되는 청계피복노조 인권침해 사건 등은 중복 집계)


■ 기자도 찾는데, 정부가 못 찾는다?

대체 얼마나 어려운 사정이 있길래, 12년 동안 못 끝낸 숙제가 이리 많을 것일까.

일단, 가장 잦은 미이행 사유는 피해자의 사망 또는 소재 불명입니다. 즉, 피해자와 연락이 닿을 길이 없으니, 권고를 이행하래야 할 방법이 없었다는 뜻입니다.

진실규명이 완료된 사건 중 피해자의 소재가 파악되지 않거나, 피해자의 사망 등의 이유로 권고를 이행할 수 없었던 사건은 총 56건입니다.

소재 불명이 가장 많이 기록된 사건은 '납북 귀환 어부 간첩 조작' 사건들이었습니다. 조업 중 북한의 경비정에 나포돼 북한에 억류됐다가 풀려난 뒤, 불법 구금과 고문에 못 이겨 간첩이었다고 자백한 사건들이었습니다.

재일동포 유학생들을 불법으로 가둔 뒤 허위 자백을 유도했던 '재일 교포 간첩조작·인권침해' 사건은 해외거주 이행 불가라고 기록돼있습니다.

그러나 취재진은 수소문에 나선 지 만 하루 만에 재일 교포 인권침해 사건의 피해자 김병진 씨를 만났습니다.

김병진 씨는 "일본에 살고 있지만 주소지는 바뀌지 않았다"며 "진실화해위의 결정문도 받았고, 연락이 가능하다"고 말했습니다.

삼청교육대 사건 역시 '신청인 사망 등 이행불가'라고 적혀있지만, 취재진이 만난 피해자들은 어떠한 연락도 받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기자도 며칠 만에 연락을 하는데, 정부가 연락하지 못했다? 연락을 안 했다고 보는 게 더 합리적일 겁니다.

■ 권고 '정상 추진'...피해자는 "금시초문"

정부가 '정상 추진' 이라고 기록해 놓은 사건들도 있습니다.

1970-80년대, 국가가 노조원들을 불법 체포하고 잡아 가둔 '청계피복노조' 사건이 있었습니다. 진실화해위는 국가 폭력 사건으로 규정하고, 경찰청에 사과 등을 권고했습니다.

경찰은 이 권고를 '정상 추진'으로 분류했습니다. 정상 추진했다는 취지로 읽힙니다.

하지만 피해자들은 경찰 차원의 사과를 받은 적이 없다고 취재진에게 말했습니다. '정상 추진'으로 분류돼있다는 소식을 전하는 처음 듣는 얘기라고 했습니다.

어찌 된 영문일까. 경찰은 '정상 추진'이라는 말이 권고를 '이행 중'이란 뜻이라고 해명했습니다. "지금까지 최선을 다해왔다"는 말도 더했습니다.

권고 이행 상황을 보면 '범정부 차원 검토 필요'라는 문구도 눈에 띕니다.

이리역 미군 폭격 사건처럼 6.25 전쟁 당시 미군에 의한 민간인 희생 사건의 경우 정부와 미국의 협상이 필요하니 개별 부처 수준에서 처리할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개별 부처 수준에서 처리할 수 없는 권고라는 점은 분명하지만, 10년 넘게 검토의 필요성을 논의만 하고 있다면? 의지가 없다고 해석하는 게 합리적입니다.

KBS가 전수 공개한 258건의 모두 이런 식입니다. 피해자들 입장에서는 분통이 터지고, 피눈물이 날 일이지만, 정부는 이렇게 느긋하고 무성의했습니다.

■ 피해자들이 원하는 건 '국가'의 사과

국정원은 지난해 7월 박지원 당시 국정원장의 명의로 된 사과 서한문과 보도자료를 배포했습니다. 27건의 국가 범죄 사건에 대해 국정원에서 일괄 사과를 했던 겁니다.

비슷한 사례로, 특정 지역의 경찰서장 명의로 사과에 나선 경우도 있습니다.

물론 사과를 안 하는 것보다는 백번 나은 일입니다. 하지만 피해자들이 원하는 것은 특정 기관장의 사과가 아닙니다. '국가'가 저지른 범죄인 만큼, '국가'의 사과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문인간첩단 사건의 피해자 임헌영 소장과 아람회 사건의 피해자 박해전 시인은 기관장의 사과 서한 대신 정부의 사과를 요청해왔지만, 10년 넘게 답을 듣지 못했습니다.

울산 국민보도연맹 사건의 경우, 2008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희생자 추모제에 영상 메시지를 보내 사과의 뜻을 전했습니다. 참고할 만한 선례일 수 있습니다.

잘못해놓고, 잘못했다고 말하지 않는 국가. 그 나라의 국격은 어디쯤에 있을까요.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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