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관계 개선’에 왜 미국 대통령이 감사할까?

입력 2023.05.03 (18:15) 수정 2023.05.03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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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대통령의 담대하고 원칙이 있는 일본과의 외교적 결단에 감사합니다."
"(윤 대통령의) 일본과의 외교를 통한 정치적 용기와 개인적 헌신에 감사드립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4.27 한미정상회담)

동맹 70주년에 열린 이번 한미정상회담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한일 관계 개선 노력과 관련해 윤석열 대통령에게 거듭 "감사하다"고 했습니다. 윤 대통령은 일본 전범 기업이 아닌 우리 기업 돈으로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배상금을 지급하는 방안을 발표하고, 그 뒤에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서도 일본 정부에 구상권 청구는 안하겠다,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은 완전 정상화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이런 윤 대통령의 조치에 대해 미국이 '환영하고 지지한다'는 뜻을 공개적으로 밝힌 겁니다. 그런데 한일 관계를 풀겠다는데, 왜 일본 대통령도 아니고 미국 대통령이 거듭 감사하다는 걸까요?

■ 미국 입장에서 '중국 견제' 위한 핵심 국가는 한국·일본

그 이유는 미국이 추구하고 있는 대외 전략에서 한일 관계 개선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중국과 패권 경쟁을 벌이고 있는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인도 태평양 전략'을 세웠는데 이 전략에서 핵심 역할을 하는 국가는 한국과 일본입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미국의 입장에서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핵심 동맹국은 한국과 일본"이라고 짚었습니다. 박 교수는 "인도는 중국 견제에 한계가 있고, 호주는 너무 멀다"며 "군사적, 경제적 능력이 있는 확실한 국가는 한국과 일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미국, 인도, 일본, 호주 등 4개국이 참여하고 있는 안보협의체 '쿼드'라는게 있긴 하지만 실질적인 '중국 견제'에선 한국과 일본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설명입니다.


민주주의, 인권 등 가치를 공유하는 동맹끼리 똘똘 뭉쳐 패권에 도전하는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 입장에선 한국과 일본의 사이가 껄끄러우면 이 구상에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죠.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의 바이든 대통령의 공개적인 "감사" 인사는 이런 미국의 입장이 잘 드러난, 상징적인 장면입니다.

■ 한일→ 한미→ 한일→ 한미일…숨가쁜 외교전


이런 흐름 속에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이번 주말 한국을 방문합니다. 7일부터 1박 2일 일정으로 한국에 와서 윤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할 예정입니다. 지난 3월 16일 일본에서 만난 두 정상이 약 한 달 반만에 다시 만나는 겁니다. 일본 총리의 방한은 2018년 2월 아베 신조 당시 총리가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한국을 방문한 이후 5년 3개월 만이고, 상대방 국가를 오가는 '셔틀외교'로는 12년만입니다.

이번 한일 정상회담의 핵심 의제는 '안보 협력'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한미 정상이 북핵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확장억제 강화 방안을 담은 '워싱턴 선언'을 발표한 데 이어 이번엔 일본과의 공동 대응 강화 방안을 논의하고, 이를 토대로 다음달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리는 G7을 계기로 한미일 정상이 만나 한미일 3자 안보 협력을 위한 별도의 협의체를 신설할거란 관측도 나옵니다.


■ 7~8일 한국 방문하는 기시다 총리 '사과·호응 조치'는?

그러나 기시다 총리가 과거사 문제에 대해 '성의 있는 호응'을 내놓을지에 대해선 회의적인 시각이 많습니다.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지속적으로 요구한 건 ▲진정성 있는 사과 ▲전범 기업의 직접 배상 혹은 피해자 배상을 위한 기금 참여 이 2가지 였는데 일본은 아직까지 아무 조치를 내놓지 않았습니다. 일본 언론도 기시다 총리가 '한국 측 요청에 응하지 않을 것'이란 관측을 내놓고 있습니다.

"나는 100년 전에 일어난 일 때문에 절대 할 수 없는 일이 있다거나, 일본이 100년 전 역사 때문에 (용서를 위해) 무릎을 꿇어야 한다는 생각을 받아들일 수 없다."

-윤 대통령 워싱턴포스트 인터뷰 (4/24)

"과거사가 정리되지 않으면 한발짝도 나아갈 수 없다는 생각에서는 벗어나야 한다"

-윤 대통령 하버드대 대담 (4/28)

어쩌면 일본은 윤 대통령의 이런 발언을 보며 '과거사 문제'에 대한 짐을 좀 덜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안보 협력은 민감한 정보 공유가 이뤄지기 때문에 양국 간 신뢰가 바탕이 돼야 하는데 기시다 총리가 이번에도 '성의 있는 호응' 조치를 전혀 내놓지 않는다면 양국이 추구하는 미래 협력은 그 동력을 확보하기 어렵습니다.

한국에선 일본 전범 기업의 참여가 빠진 강제동원 해법에 대한 비판 여론이 높은데다 한일 정상회담 이후에도 계속되는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 교과서 왜곡 문제는 뿌리 깊은 '반일 감정'까지 자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 한미일 안보 협력…"동맹은 국익을 위한 수단"

한일→ 한미→ 한일→ 한미일 회담으로 이어지는 정상 간 만남이 '안보 협력'이라는 큰 목표를 향해 가고 있지만 한미일 협력에 대한 세 나라의 입장이 조금씩 다르다는 점도 유념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합니다.

한국은 북핵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한미일 협력을 강조하지만, 미국은 북핵 대응 뿐만 아니라 중국 견제를 위해 한미일 협력을 활용하려 하고, 일본은 미국에 적극 호응하면서 이를 군사 대국화의 발판으로 삼으려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숨가쁘게 이어지는 외교전 속에 동맹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국익을 위한 수단일 뿐이라는 기본 원칙을 다시 생각해봅니다.

(그래픽: 김재은, 권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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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일관계 개선’에 왜 미국 대통령이 감사할까?
    • 입력 2023-05-03 18:15:42
    • 수정2023-05-03 18:16:15
    취재K

"윤 대통령의 담대하고 원칙이 있는 일본과의 외교적 결단에 감사합니다."
"(윤 대통령의) 일본과의 외교를 통한 정치적 용기와 개인적 헌신에 감사드립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4.27 한미정상회담)

동맹 70주년에 열린 이번 한미정상회담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한일 관계 개선 노력과 관련해 윤석열 대통령에게 거듭 "감사하다"고 했습니다. 윤 대통령은 일본 전범 기업이 아닌 우리 기업 돈으로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배상금을 지급하는 방안을 발표하고, 그 뒤에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서도 일본 정부에 구상권 청구는 안하겠다,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은 완전 정상화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이런 윤 대통령의 조치에 대해 미국이 '환영하고 지지한다'는 뜻을 공개적으로 밝힌 겁니다. 그런데 한일 관계를 풀겠다는데, 왜 일본 대통령도 아니고 미국 대통령이 거듭 감사하다는 걸까요?

■ 미국 입장에서 '중국 견제' 위한 핵심 국가는 한국·일본

그 이유는 미국이 추구하고 있는 대외 전략에서 한일 관계 개선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중국과 패권 경쟁을 벌이고 있는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인도 태평양 전략'을 세웠는데 이 전략에서 핵심 역할을 하는 국가는 한국과 일본입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미국의 입장에서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핵심 동맹국은 한국과 일본"이라고 짚었습니다. 박 교수는 "인도는 중국 견제에 한계가 있고, 호주는 너무 멀다"며 "군사적, 경제적 능력이 있는 확실한 국가는 한국과 일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미국, 인도, 일본, 호주 등 4개국이 참여하고 있는 안보협의체 '쿼드'라는게 있긴 하지만 실질적인 '중국 견제'에선 한국과 일본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설명입니다.


민주주의, 인권 등 가치를 공유하는 동맹끼리 똘똘 뭉쳐 패권에 도전하는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 입장에선 한국과 일본의 사이가 껄끄러우면 이 구상에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죠.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의 바이든 대통령의 공개적인 "감사" 인사는 이런 미국의 입장이 잘 드러난, 상징적인 장면입니다.

■ 한일→ 한미→ 한일→ 한미일…숨가쁜 외교전


이런 흐름 속에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이번 주말 한국을 방문합니다. 7일부터 1박 2일 일정으로 한국에 와서 윤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할 예정입니다. 지난 3월 16일 일본에서 만난 두 정상이 약 한 달 반만에 다시 만나는 겁니다. 일본 총리의 방한은 2018년 2월 아베 신조 당시 총리가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한국을 방문한 이후 5년 3개월 만이고, 상대방 국가를 오가는 '셔틀외교'로는 12년만입니다.

이번 한일 정상회담의 핵심 의제는 '안보 협력'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한미 정상이 북핵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확장억제 강화 방안을 담은 '워싱턴 선언'을 발표한 데 이어 이번엔 일본과의 공동 대응 강화 방안을 논의하고, 이를 토대로 다음달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리는 G7을 계기로 한미일 정상이 만나 한미일 3자 안보 협력을 위한 별도의 협의체를 신설할거란 관측도 나옵니다.


■ 7~8일 한국 방문하는 기시다 총리 '사과·호응 조치'는?

그러나 기시다 총리가 과거사 문제에 대해 '성의 있는 호응'을 내놓을지에 대해선 회의적인 시각이 많습니다.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지속적으로 요구한 건 ▲진정성 있는 사과 ▲전범 기업의 직접 배상 혹은 피해자 배상을 위한 기금 참여 이 2가지 였는데 일본은 아직까지 아무 조치를 내놓지 않았습니다. 일본 언론도 기시다 총리가 '한국 측 요청에 응하지 않을 것'이란 관측을 내놓고 있습니다.

"나는 100년 전에 일어난 일 때문에 절대 할 수 없는 일이 있다거나, 일본이 100년 전 역사 때문에 (용서를 위해) 무릎을 꿇어야 한다는 생각을 받아들일 수 없다."

-윤 대통령 워싱턴포스트 인터뷰 (4/24)

"과거사가 정리되지 않으면 한발짝도 나아갈 수 없다는 생각에서는 벗어나야 한다"

-윤 대통령 하버드대 대담 (4/28)

어쩌면 일본은 윤 대통령의 이런 발언을 보며 '과거사 문제'에 대한 짐을 좀 덜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안보 협력은 민감한 정보 공유가 이뤄지기 때문에 양국 간 신뢰가 바탕이 돼야 하는데 기시다 총리가 이번에도 '성의 있는 호응' 조치를 전혀 내놓지 않는다면 양국이 추구하는 미래 협력은 그 동력을 확보하기 어렵습니다.

한국에선 일본 전범 기업의 참여가 빠진 강제동원 해법에 대한 비판 여론이 높은데다 한일 정상회담 이후에도 계속되는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 교과서 왜곡 문제는 뿌리 깊은 '반일 감정'까지 자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 한미일 안보 협력…"동맹은 국익을 위한 수단"

한일→ 한미→ 한일→ 한미일 회담으로 이어지는 정상 간 만남이 '안보 협력'이라는 큰 목표를 향해 가고 있지만 한미일 협력에 대한 세 나라의 입장이 조금씩 다르다는 점도 유념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합니다.

한국은 북핵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한미일 협력을 강조하지만, 미국은 북핵 대응 뿐만 아니라 중국 견제를 위해 한미일 협력을 활용하려 하고, 일본은 미국에 적극 호응하면서 이를 군사 대국화의 발판으로 삼으려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숨가쁘게 이어지는 외교전 속에 동맹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국익을 위한 수단일 뿐이라는 기본 원칙을 다시 생각해봅니다.

(그래픽: 김재은, 권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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