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 한복판 미세먼지 차단 숲?…검증없이 쓰인 8천억 원

입력 2025.03.16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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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고성군에 조성된 미세먼지 차단 숲경남 고성군에 조성된 미세먼지 차단 숲

"마치 이것은 서울시의 미세먼지를 차단하기 위해서, 강릉에다가 녹지를 조성한 그런 형태랑 별반 다르지 않은 거죠."

'미세먼지 차단 숲' 조성 사업을 분석한 홍석환 부산대 조경학과 교수의 말입니다.

정부와 자치단체는 2019년부터 도로와 공장, 발전소 등의 미세먼지가 주민 생활권으로 유입되는 걸 막겠다며 차단 숲을 만들고 있습니다. 6년간 전국 588곳의 숲을 조성하는 데는 기후대응기금과 지방비 등 8천200억 원이 들었습니다. 면적으로는 축구장 1200개 크기입니다.

KBS 취재진이 차단 숲이 조성된 지역을 둘러봤습니다. 한 마디로 당황스러웠습니다. 차단 효과가 없는 곳에 조성된 숲이 많았습니다.

산림청과 자치단체들은 전문가 의견 한 줄 없이 숲 대상지를 선정했고, 일부는 산림조합에 수십억 원짜리 공사를 몰아준 사실도 드러났습니다. 주민들 사이에서조차 "쓸데없이 돈을 쓴다"는 말이 나올 정도인데, 올해도 2천억 원 예산으로 200곳 가까운 곳에 숲이 추가로 조성될 계획입니다.

안내판에 적힌 미세먼지 차단 숲 효과안내판에 적힌 미세먼지 차단 숲 효과

취재 과정에서 자치단체로부터 가장 많이 들은 말은 "나무를 심으면 무조건 효과는 있다"였습니다. 산림청에서 승인받은 나무 심기를 하는데 '무엇이 문제냐'는 식입니다.

자기 돈이면 자기가 책임지니까, 그렇게 말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세금을 쓰는데, 효과가 큰 지를 따져봐야죠. 문제는 '숲을 만드는 데 드는 비용'입니다. 1ha의 차단 숲을 만드는 데 드는 비용은 10억 원에 이릅니다. 노후 경유차 300여 대의 폐차를 지원할 수 있는 돈입니다.

예산을 제대로 쓰기 위해서는 미세먼지 차단 역할을 할 수 있는 장소를 선정하는 일이지만, 검증은 허술했습니다.

■ '논 한복판' '폐건물 앞'에 미세먼지 차단 숲 조성

먼저 찾은 곳은 경남 합천군입니다. 한적한 왕복 2차로 도로 옆에 축구장 크기의 차단 숲이 조성된 곳입니다. 가까이서 보며 제법 숲의 모양새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드론을 띄우는 순간 '숲이 들어선 위치'에 의문이 드는 장면이 펼쳐졌습니다.

경남 합천군 미세먼지 차단 숲.경남 합천군 미세먼지 차단 숲.

차단 숲은 마을과 한참 떨어진 '논 한복판'에 들어섰습니다. 숲 양쪽에는 울창한 산입니다. 도로도 마을 안 길이라 통행량도 많지 않습니다. 숲 반경 수백 미터 안에는 미세먼지 취약층이 있는 초등학교와 경로당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정작 시설 주변에는 나무 없이 뻥 뚫려있었습니다. 2천 그루의 나무를 심는데 6억 원이 들었지만, 주민들은 숲의 존재를 모르고 있었습니다.

경남 함양군 미세먼지 차단 숲경남 함양군 미세먼지 차단 숲

경남 함양군의 차단 숲도 마찬가지입니다. 14억 원을 들인 숲은 주변 돼지농장의 냄새와 미세먼지를 막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지침까지 어기며 도로를 따라 길게 가로수도 심었지만, 도로 조성 계획이 바뀌면서 2년째 차가 다니지 않고 있습니다.

경남 남해군 미세먼지 차단 숲경남 남해군 미세먼지 차단 숲

매립장 주변 미세먼지를 막기 위한 10억 원짜리 차단 숲도 사정이 비슷합니다. 경남 남해군은 생활폐기물 매립장에서 나오는 먼지를 막기 위해 차단 숲 사업을 산림청에 신청했습니다.

취재진이 매립장 주변을 확인해 봤더니, 숲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심기로 한 만 그루의 나무는 매립장과 1km 떨어진 관광지에 조성돼 있었습니다.

폐건물 앞 관광지에 조성한 경남 남해군 미세먼지 차단 숲폐건물 앞 관광지에 조성한 경남 남해군 미세먼지 차단 숲

이 숲을 통해 미세먼지로부터 보호받고 있는 건 20년째 방치된 폐건물이었습니다. 심지어 숲 조성의 근거가 된 폐기물 매립장은 용량이 다 차 올해 폐쇄를 앞두고 있었습니다.

경남 산청군 미세먼지 차단 숲경남 산청군 미세먼지 차단 숲

경남 산청군에서는 자연지역에 들어선 농공단지 주변에 4억 원을 들여 나무를 심었습니다. 하지만, 공단 절반 이상은 비었고, 그나마 들어선 공장들도 대부분 미세먼지와 관련 없는 식품업종들이었습니다.

■ 6년간 심의위원회 없이 숲 조성 '강행'

산림청은 "사업을 신청하는 자치단체들이 숲 조성 심의위원회를 열어 장소를 선정했고, 산림청에서 한 번 더 검토했다"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도시숲법에는 숲 대상지를 선정할 때 전문가와 주민, 시민단체가 추천하는 사람 등을 포함해 심의위원회를 구성하게 되어 있습니다. 조성될 숲이 미세먼지 발생원 주변인지, 규모는 적절한지, 주민이 생활하고 있는지 등을 확인하기 위해서입니다. 자치단체 마음대로 장소를 결정하지 말고, 조경이나 대기환경 전문가의 의견을 들어서 결정하라는 취지입니다.

경남 산청군 미세먼지 차단 숲경남 산청군 미세먼지 차단 숲

취재진이 찾은 7곳의 숲을 조성한 자치단체에 심의위원회를 열었는지 물었습니다. 모두 '위원회를 열지 않았다'고 답했습니다. 자치단체에서 사업 대상지를 넘겨받아 이를 검토하는 광역자치단체 역시 6년간 심의위원회를 열지 않고 사업대상지를 산림청에 올렸다고 했습니다.

차단 숲 사업은 위치를 선정하는 것이 가장 핵심인데, 이 과정에서 전문가나 지역 주민의 의견은 반영되지 않고 있었던 것입니다.

산림청에 전국 580여 곳 숲의 심의위원회 개최 현황을 요청했습니다. 산림청 관계자는 "보도 이후 숲 사업을 추진했던 자치단체에 자료를 요청해 놨다"고 밝혔습니다. 6년간 8천억 원 넘는 예산을 쓰면서도 심의위원회 개최 여부조차 확인하지 않고 있었던 셈입니다.


심의위원회 구성 주체를 두고 산림청 실무 지침과 도시숲법이 서로 충돌하는 문제도 드러났습니다. 지침에는 위원회 구성 주체를 광역자치단체에 두고 있는 반면, 도시숲법에는 '광역자치단체에는 위원회를 두지 않을 수 있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이같이 어긋난 조항을 근거로 위원회 구성 조례조차 두지 않고 있는 자치단체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미세먼지 숲이 주민 생활권과 동떨어져 만들어지는 이유는 또 있습니다. 취재진이 경남에서 2019년부터 조성된 차단 숲의 등기부 등본을 확인해 봤더니 모두 국유지 또는 자치단체 소유의 공유지였습니다. 미세먼지로부터 보호가 필요한 주민 밀집 지역은 대부분 사유지인데, 사유지에 숲을 조성할 경우 땅 주인의 동의가 어렵다는 이유로 모두 공유지에 조성한 것입니다.


'대상지가 없다면 숲을 조성하지 않으면 되지 않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자치단체 관계자들은 국비 확보를 위해 사업에 참여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숲 사업은 기후대응기금 50%, 도비 15%, 시군비 35%로 추진됩니다. 재정이 열악한 시군에서 국비 성격의 기금과 도비를 확보하기 위해 무리하게 사업이 추진되고 있는 것입니다.

사후관리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습니다. 산림청은 현재까지 조성된 580여 곳 가운데 서대구 산단과 인천 석남녹지도시숲 등 7곳에 대해서만 미세먼지 농도 측정 등 사업 전후 모니터링을 하고 있습니다. 숲이 조성된 장소와 주변 환경이 모두 다르지만, 예산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전체 사업지에 대한 모니터링은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 산림조합과 수십억 원 '수의계약'…"편법·특혜" 지적에도 손 놓은 산림청


수십억 원대 숲 공사를 산림조합에 수의계약으로 몰아준 사례도 드러났습니다. 경남 고성군은 숲 공사 4건, 35억 원어치를 조합과 수의계약으로 추진했습니다. 경남 하동군의 경우 2020년부터 추진된 차단 숲 공사 5건, 42억 원어치를 산림조합과 수의계약했습니다.

지방계약법상 전문 공사의 경우 2억 원이 넘으면 입찰로 사업자를 선정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 자치단체는 한 건 당 대부분 8~9억짜리 공사를 조합과 수의계약했습니다. 금액이 큰 것은 14억 원짜리도 있었습니다.


일반 건설공사에서 엄격하게 제한되는 수의계약이 산림사업에서는 예외가 적용되고 있었습니다. 자치단체들은 입찰이 비효율적인 경우 수의계약할 수 있다는 지방계약법에 이어, 산림사업을 조합에 '위탁'할 수 있다는 산림자원법 조항을 수의계약 근거로 내세우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수의계약은 편법이라는 것이 국민권익위원회의 해석입니다. 2017년 권익위는 산림자원법의 입법적 미비로 '위탁·대행'을 '수의계약'으로 악용해 산림조합에 특혜를 주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자치단체장과 조합장과의 친분으로 독점적 수의계약을 체결할 가능성이 있다며 산림청에 개선을 권고했습니다.


권고가 나온 지 8년이 지났지만, 산림청은 조합과 수의계약할 수 있는 금액과 계약 절차 등을 마련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산림청은 자치단체에 내려준 계약 지침에 조합과 수의계약 할 수 있다는 내용을 안내하고 있었습니다.

■ 산림청 "전문가 검토 강화·산림자원법 개정"


KBS의 연속 보도 이후 산림청이 대책을 내놨습니다. 우선, 광역자치단체가 심의위원회를 개최해 숲 대상지를 선정했는지 사업 평가에 반영하기로 했습니다. 자치단체가 전문가나 주민 의견 없이 마음대로 숲을 조성하는 걸 막겠다는 취지입니다. 이와 별개로 경상남도는 시군에서도 심의위원회를 열고, 도에서 한 번 더 위원회를 열어 대상지 검증을 강화하기로 했습니다.

또, 산림청은 자치단체가 편법적으로 산림조합과 수십억 원어치 공사를 수의계약하고 있다는 지적과 관련해 산림자원법을 개정하기로 했습니다. 산림조합과 할 수 있는 사업 범위와 사업자 선정 절차 등을 마련하겠다는 것입니다. 법 개정 전까지는 경쟁 입찰을 확대하는 내용을 사업 계획서에 반영하기로 했습니다.

다만, 산림청은 지난 6년간 심의위원회를 거치지 않고 추진된 차단 숲 사업에 문제가 없는지, 향후 조사 계획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입장을 밝히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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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논 한복판 미세먼지 차단 숲?…검증없이 쓰인 8천억 원
    • 입력 2025-03-16 10:00:32
    심층K
경남 고성군에 조성된 미세먼지 차단 숲
"마치 이것은 서울시의 미세먼지를 차단하기 위해서, 강릉에다가 녹지를 조성한 그런 형태랑 별반 다르지 않은 거죠."

'미세먼지 차단 숲' 조성 사업을 분석한 홍석환 부산대 조경학과 교수의 말입니다.

정부와 자치단체는 2019년부터 도로와 공장, 발전소 등의 미세먼지가 주민 생활권으로 유입되는 걸 막겠다며 차단 숲을 만들고 있습니다. 6년간 전국 588곳의 숲을 조성하는 데는 기후대응기금과 지방비 등 8천200억 원이 들었습니다. 면적으로는 축구장 1200개 크기입니다.

KBS 취재진이 차단 숲이 조성된 지역을 둘러봤습니다. 한 마디로 당황스러웠습니다. 차단 효과가 없는 곳에 조성된 숲이 많았습니다.

산림청과 자치단체들은 전문가 의견 한 줄 없이 숲 대상지를 선정했고, 일부는 산림조합에 수십억 원짜리 공사를 몰아준 사실도 드러났습니다. 주민들 사이에서조차 "쓸데없이 돈을 쓴다"는 말이 나올 정도인데, 올해도 2천억 원 예산으로 200곳 가까운 곳에 숲이 추가로 조성될 계획입니다.

안내판에 적힌 미세먼지 차단 숲 효과
취재 과정에서 자치단체로부터 가장 많이 들은 말은 "나무를 심으면 무조건 효과는 있다"였습니다. 산림청에서 승인받은 나무 심기를 하는데 '무엇이 문제냐'는 식입니다.

자기 돈이면 자기가 책임지니까, 그렇게 말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세금을 쓰는데, 효과가 큰 지를 따져봐야죠. 문제는 '숲을 만드는 데 드는 비용'입니다. 1ha의 차단 숲을 만드는 데 드는 비용은 10억 원에 이릅니다. 노후 경유차 300여 대의 폐차를 지원할 수 있는 돈입니다.

예산을 제대로 쓰기 위해서는 미세먼지 차단 역할을 할 수 있는 장소를 선정하는 일이지만, 검증은 허술했습니다.

■ '논 한복판' '폐건물 앞'에 미세먼지 차단 숲 조성

먼저 찾은 곳은 경남 합천군입니다. 한적한 왕복 2차로 도로 옆에 축구장 크기의 차단 숲이 조성된 곳입니다. 가까이서 보며 제법 숲의 모양새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드론을 띄우는 순간 '숲이 들어선 위치'에 의문이 드는 장면이 펼쳐졌습니다.

경남 합천군 미세먼지 차단 숲.
차단 숲은 마을과 한참 떨어진 '논 한복판'에 들어섰습니다. 숲 양쪽에는 울창한 산입니다. 도로도 마을 안 길이라 통행량도 많지 않습니다. 숲 반경 수백 미터 안에는 미세먼지 취약층이 있는 초등학교와 경로당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정작 시설 주변에는 나무 없이 뻥 뚫려있었습니다. 2천 그루의 나무를 심는데 6억 원이 들었지만, 주민들은 숲의 존재를 모르고 있었습니다.

경남 함양군 미세먼지 차단 숲
경남 함양군의 차단 숲도 마찬가지입니다. 14억 원을 들인 숲은 주변 돼지농장의 냄새와 미세먼지를 막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지침까지 어기며 도로를 따라 길게 가로수도 심었지만, 도로 조성 계획이 바뀌면서 2년째 차가 다니지 않고 있습니다.

경남 남해군 미세먼지 차단 숲
매립장 주변 미세먼지를 막기 위한 10억 원짜리 차단 숲도 사정이 비슷합니다. 경남 남해군은 생활폐기물 매립장에서 나오는 먼지를 막기 위해 차단 숲 사업을 산림청에 신청했습니다.

취재진이 매립장 주변을 확인해 봤더니, 숲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심기로 한 만 그루의 나무는 매립장과 1km 떨어진 관광지에 조성돼 있었습니다.

폐건물 앞 관광지에 조성한 경남 남해군 미세먼지 차단 숲
이 숲을 통해 미세먼지로부터 보호받고 있는 건 20년째 방치된 폐건물이었습니다. 심지어 숲 조성의 근거가 된 폐기물 매립장은 용량이 다 차 올해 폐쇄를 앞두고 있었습니다.

경남 산청군 미세먼지 차단 숲
경남 산청군에서는 자연지역에 들어선 농공단지 주변에 4억 원을 들여 나무를 심었습니다. 하지만, 공단 절반 이상은 비었고, 그나마 들어선 공장들도 대부분 미세먼지와 관련 없는 식품업종들이었습니다.

■ 6년간 심의위원회 없이 숲 조성 '강행'

산림청은 "사업을 신청하는 자치단체들이 숲 조성 심의위원회를 열어 장소를 선정했고, 산림청에서 한 번 더 검토했다"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도시숲법에는 숲 대상지를 선정할 때 전문가와 주민, 시민단체가 추천하는 사람 등을 포함해 심의위원회를 구성하게 되어 있습니다. 조성될 숲이 미세먼지 발생원 주변인지, 규모는 적절한지, 주민이 생활하고 있는지 등을 확인하기 위해서입니다. 자치단체 마음대로 장소를 결정하지 말고, 조경이나 대기환경 전문가의 의견을 들어서 결정하라는 취지입니다.

경남 산청군 미세먼지 차단 숲
취재진이 찾은 7곳의 숲을 조성한 자치단체에 심의위원회를 열었는지 물었습니다. 모두 '위원회를 열지 않았다'고 답했습니다. 자치단체에서 사업 대상지를 넘겨받아 이를 검토하는 광역자치단체 역시 6년간 심의위원회를 열지 않고 사업대상지를 산림청에 올렸다고 했습니다.

차단 숲 사업은 위치를 선정하는 것이 가장 핵심인데, 이 과정에서 전문가나 지역 주민의 의견은 반영되지 않고 있었던 것입니다.

산림청에 전국 580여 곳 숲의 심의위원회 개최 현황을 요청했습니다. 산림청 관계자는 "보도 이후 숲 사업을 추진했던 자치단체에 자료를 요청해 놨다"고 밝혔습니다. 6년간 8천억 원 넘는 예산을 쓰면서도 심의위원회 개최 여부조차 확인하지 않고 있었던 셈입니다.


심의위원회 구성 주체를 두고 산림청 실무 지침과 도시숲법이 서로 충돌하는 문제도 드러났습니다. 지침에는 위원회 구성 주체를 광역자치단체에 두고 있는 반면, 도시숲법에는 '광역자치단체에는 위원회를 두지 않을 수 있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이같이 어긋난 조항을 근거로 위원회 구성 조례조차 두지 않고 있는 자치단체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미세먼지 숲이 주민 생활권과 동떨어져 만들어지는 이유는 또 있습니다. 취재진이 경남에서 2019년부터 조성된 차단 숲의 등기부 등본을 확인해 봤더니 모두 국유지 또는 자치단체 소유의 공유지였습니다. 미세먼지로부터 보호가 필요한 주민 밀집 지역은 대부분 사유지인데, 사유지에 숲을 조성할 경우 땅 주인의 동의가 어렵다는 이유로 모두 공유지에 조성한 것입니다.


'대상지가 없다면 숲을 조성하지 않으면 되지 않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자치단체 관계자들은 국비 확보를 위해 사업에 참여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숲 사업은 기후대응기금 50%, 도비 15%, 시군비 35%로 추진됩니다. 재정이 열악한 시군에서 국비 성격의 기금과 도비를 확보하기 위해 무리하게 사업이 추진되고 있는 것입니다.

사후관리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습니다. 산림청은 현재까지 조성된 580여 곳 가운데 서대구 산단과 인천 석남녹지도시숲 등 7곳에 대해서만 미세먼지 농도 측정 등 사업 전후 모니터링을 하고 있습니다. 숲이 조성된 장소와 주변 환경이 모두 다르지만, 예산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전체 사업지에 대한 모니터링은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 산림조합과 수십억 원 '수의계약'…"편법·특혜" 지적에도 손 놓은 산림청


수십억 원대 숲 공사를 산림조합에 수의계약으로 몰아준 사례도 드러났습니다. 경남 고성군은 숲 공사 4건, 35억 원어치를 조합과 수의계약으로 추진했습니다. 경남 하동군의 경우 2020년부터 추진된 차단 숲 공사 5건, 42억 원어치를 산림조합과 수의계약했습니다.

지방계약법상 전문 공사의 경우 2억 원이 넘으면 입찰로 사업자를 선정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 자치단체는 한 건 당 대부분 8~9억짜리 공사를 조합과 수의계약했습니다. 금액이 큰 것은 14억 원짜리도 있었습니다.


일반 건설공사에서 엄격하게 제한되는 수의계약이 산림사업에서는 예외가 적용되고 있었습니다. 자치단체들은 입찰이 비효율적인 경우 수의계약할 수 있다는 지방계약법에 이어, 산림사업을 조합에 '위탁'할 수 있다는 산림자원법 조항을 수의계약 근거로 내세우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수의계약은 편법이라는 것이 국민권익위원회의 해석입니다. 2017년 권익위는 산림자원법의 입법적 미비로 '위탁·대행'을 '수의계약'으로 악용해 산림조합에 특혜를 주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자치단체장과 조합장과의 친분으로 독점적 수의계약을 체결할 가능성이 있다며 산림청에 개선을 권고했습니다.


권고가 나온 지 8년이 지났지만, 산림청은 조합과 수의계약할 수 있는 금액과 계약 절차 등을 마련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산림청은 자치단체에 내려준 계약 지침에 조합과 수의계약 할 수 있다는 내용을 안내하고 있었습니다.

■ 산림청 "전문가 검토 강화·산림자원법 개정"


KBS의 연속 보도 이후 산림청이 대책을 내놨습니다. 우선, 광역자치단체가 심의위원회를 개최해 숲 대상지를 선정했는지 사업 평가에 반영하기로 했습니다. 자치단체가 전문가나 주민 의견 없이 마음대로 숲을 조성하는 걸 막겠다는 취지입니다. 이와 별개로 경상남도는 시군에서도 심의위원회를 열고, 도에서 한 번 더 위원회를 열어 대상지 검증을 강화하기로 했습니다.

또, 산림청은 자치단체가 편법적으로 산림조합과 수십억 원어치 공사를 수의계약하고 있다는 지적과 관련해 산림자원법을 개정하기로 했습니다. 산림조합과 할 수 있는 사업 범위와 사업자 선정 절차 등을 마련하겠다는 것입니다. 법 개정 전까지는 경쟁 입찰을 확대하는 내용을 사업 계획서에 반영하기로 했습니다.

다만, 산림청은 지난 6년간 심의위원회를 거치지 않고 추진된 차단 숲 사업에 문제가 없는지, 향후 조사 계획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입장을 밝히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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