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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다잉] ④ 호스피스는 ‘죽음 대기소’가 아닙니다
입력 2016.05.10 (08:48) 수정 2016.05.12 (09:19) 취재K
"야, 너 호스피스 가면 죽어"
3년째 피부암으로 투병 중인 박성렬(33) 씨가 호스피스에 가기로 했다는 말을 했을 때 친구들이 보인 반응입니다. 박 씨는 12차례 넘게 항암 치료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더 이상 치료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 용인의 한 호스피스 병동에 들어가기로 결심했습니다.



친구들은 물론 어머니도 호스피스를 선택한 박 씨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박 씨의 어머니 장금순 씨는 "호스피스라는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철렁했어요. 호스피스라는 단어만 떠올려도 걸을 때든 버스에 있을 때든 계속 눈물만 났다"고 털어놨습니다.

호스피스는 정말 '죽음 대기소'인가?

호스피스 병동으로 옮긴 지 2달이 지나자 가족들의 반응부터 달라졌다. 어머니 장금순 씨는 "성렬이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너무 좋다. 호스피스에 들어오길 잘했다. 앞으로 내가 이 곳에 도움을 줄 수 있다면 힘 닿는 데까지 봉사하고 싶다"고 까지 말했습니다. 박성렬 씨 역시 "호스피스에 있으면 가끔 내가 말기암 환자라는 사실조차 잊어버릴 때가 있다"고 선택에 대한 만족감을 드러냈습니다.



우리나라는 암 환자를 중심으로 호스피스 완화의료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7만 6,000여 명에 이르는 국내 암 사망자 중 완화의료 서비스를 이용한 비율은 13.8%에 불과합니다. (2014년 통계청·완화의료 진료현황 자료) 말기암 환자의 호스피스 이용률이 95%에 이르는 영국과 큰 차이가 납니다.

이는 '호스피스 = 죽으러 가는 곳'으로 여기는 편견때문입니다. 라정란 서울성모병원 완화의료 팀장은 "우리나라는 호스피스는 움직이지 못할 때, 침대에 누워있어야만 할 정도가 되면 가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의사가 가망없다고 하고, 환자가 호스피스에 가길 원해도 주변에서 '아직 때가 아니다'하고 말리는 경우가 많다"며 안타까워했습니다.

호스피스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더라도, 이를 권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지난 해 뇌종양 말기 판정을 받은 남석현(80) 씨의 부인 유순자(72) 씨는 "남편에게 선뜻 호스피스에 가자는 얘기를 못했어요.기회를 봐서 천천히 이야기해보려고 했어요"라며 망설였던 기억을 떠올렸습니다.



하지만 지금 남석현 씨는 강남 성모병원 호스피스 병동에서 '행복하게' 마지막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유 씨는 "남편이 농담을 자주 해서 울 시간도 없어요"라고 웃어 보입니다. 지난 달 봄볕에 이끌려 침상째 산책을 나선 부부는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다시 태어나도 여기 어머님이랑 결혼하실 거죠?"라는 자원봉사자의 물음에 남편은 "그때 가봐야 알지!"라며 유쾌하게 받아넘깁니다. 기분이 좋을 때면 합창단 활동 때 실력으로 노래도 몇 곡조 뽑습니다.

박성렬 씨 가족과 남석현 씨 부부. 그저 죽음을 기다리기 위해 호스피스에 들어간 것일까요? 호스피스에서 그들은 주어진 오늘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인력·재정 부족...병상 수 늘려야

전문가들은 이 같은 호스피스의 순기능이 사회 전반으로 퍼지기 위해선 아직 갈 길이 멀다고 입을 모읍니다.

먼저 환자를 돌볼 인력이 충분치 않은 것이 문제입니다. 김대균 인천성모병원 완화의료 센터장은 "간호사 1명이 돌보는 환자가 8명을 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지만 병상 12개를 간호사 1명이 전부 맡는 경우도 봤다"라고 호스피스의 인력난을 설명했습니다. 인력이 부족한 이유에 대해 "충분한 교육을 받은 전문 인력이 부족하고, 건강보험 수가와 보조금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밝혔습니다.

호스피스 병상도 부족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운영되는 호스피스 전문 기관은 69개, 병상은 1,143개입니다. 선진국 기준으로 인구 100만 명당 50개의 병상이 필요하다고 볼 때 우리나라는 2500여개가 필요한 실정입니다. 윤영호 교수(서울대 의과대학)는 "기존 요양 병원 서비스가 아니라 '변신'을 한다는 생각으로 호스피스 의료를 제공해야 한다. 또한 정부도 충분한 예산을 투입해 호스피스를 발전시키고 긍정적인 이미지로 변화시킬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죽음을 기다리는 곳이 아닌 '맞이하는 곳' 호스피스. 호스피스에 대한 편견을 깨고 보다 많은 사람들이 '존엄한 죽음'을 준비할 시간을 갖기 위해선 해결할 숙제가 많습니다.



[잘 죽는 법 ‘웰다잉’]시리즈
☞ ① 죽음은 갑자기 찾아옵니다
☞ ② 죽을 때 비참한 나라 한국
☞ ③ ‘호스피스’를 아시나요
☞ ④ 호스피스는 ‘죽음 대기소’가 아닙니다
☞ ⑤ ‘죽음의 질’ 1위 비결은?
☞ ⑥ 스스로 선택하는 죽음 ‘존엄사’
  • [웰다잉] ④ 호스피스는 ‘죽음 대기소’가 아닙니다
    • 입력 2016-05-10 08:48:41
    • 수정2016-05-12 09:19:38
    취재K
"야, 너 호스피스 가면 죽어"
3년째 피부암으로 투병 중인 박성렬(33) 씨가 호스피스에 가기로 했다는 말을 했을 때 친구들이 보인 반응입니다. 박 씨는 12차례 넘게 항암 치료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더 이상 치료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 용인의 한 호스피스 병동에 들어가기로 결심했습니다.



친구들은 물론 어머니도 호스피스를 선택한 박 씨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박 씨의 어머니 장금순 씨는 "호스피스라는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철렁했어요. 호스피스라는 단어만 떠올려도 걸을 때든 버스에 있을 때든 계속 눈물만 났다"고 털어놨습니다.

호스피스는 정말 '죽음 대기소'인가?

호스피스 병동으로 옮긴 지 2달이 지나자 가족들의 반응부터 달라졌다. 어머니 장금순 씨는 "성렬이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너무 좋다. 호스피스에 들어오길 잘했다. 앞으로 내가 이 곳에 도움을 줄 수 있다면 힘 닿는 데까지 봉사하고 싶다"고 까지 말했습니다. 박성렬 씨 역시 "호스피스에 있으면 가끔 내가 말기암 환자라는 사실조차 잊어버릴 때가 있다"고 선택에 대한 만족감을 드러냈습니다.



우리나라는 암 환자를 중심으로 호스피스 완화의료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7만 6,000여 명에 이르는 국내 암 사망자 중 완화의료 서비스를 이용한 비율은 13.8%에 불과합니다. (2014년 통계청·완화의료 진료현황 자료) 말기암 환자의 호스피스 이용률이 95%에 이르는 영국과 큰 차이가 납니다.

이는 '호스피스 = 죽으러 가는 곳'으로 여기는 편견때문입니다. 라정란 서울성모병원 완화의료 팀장은 "우리나라는 호스피스는 움직이지 못할 때, 침대에 누워있어야만 할 정도가 되면 가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의사가 가망없다고 하고, 환자가 호스피스에 가길 원해도 주변에서 '아직 때가 아니다'하고 말리는 경우가 많다"며 안타까워했습니다.

호스피스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더라도, 이를 권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지난 해 뇌종양 말기 판정을 받은 남석현(80) 씨의 부인 유순자(72) 씨는 "남편에게 선뜻 호스피스에 가자는 얘기를 못했어요.기회를 봐서 천천히 이야기해보려고 했어요"라며 망설였던 기억을 떠올렸습니다.



하지만 지금 남석현 씨는 강남 성모병원 호스피스 병동에서 '행복하게' 마지막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유 씨는 "남편이 농담을 자주 해서 울 시간도 없어요"라고 웃어 보입니다. 지난 달 봄볕에 이끌려 침상째 산책을 나선 부부는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다시 태어나도 여기 어머님이랑 결혼하실 거죠?"라는 자원봉사자의 물음에 남편은 "그때 가봐야 알지!"라며 유쾌하게 받아넘깁니다. 기분이 좋을 때면 합창단 활동 때 실력으로 노래도 몇 곡조 뽑습니다.

박성렬 씨 가족과 남석현 씨 부부. 그저 죽음을 기다리기 위해 호스피스에 들어간 것일까요? 호스피스에서 그들은 주어진 오늘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인력·재정 부족...병상 수 늘려야

전문가들은 이 같은 호스피스의 순기능이 사회 전반으로 퍼지기 위해선 아직 갈 길이 멀다고 입을 모읍니다.

먼저 환자를 돌볼 인력이 충분치 않은 것이 문제입니다. 김대균 인천성모병원 완화의료 센터장은 "간호사 1명이 돌보는 환자가 8명을 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지만 병상 12개를 간호사 1명이 전부 맡는 경우도 봤다"라고 호스피스의 인력난을 설명했습니다. 인력이 부족한 이유에 대해 "충분한 교육을 받은 전문 인력이 부족하고, 건강보험 수가와 보조금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밝혔습니다.

호스피스 병상도 부족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운영되는 호스피스 전문 기관은 69개, 병상은 1,143개입니다. 선진국 기준으로 인구 100만 명당 50개의 병상이 필요하다고 볼 때 우리나라는 2500여개가 필요한 실정입니다. 윤영호 교수(서울대 의과대학)는 "기존 요양 병원 서비스가 아니라 '변신'을 한다는 생각으로 호스피스 의료를 제공해야 한다. 또한 정부도 충분한 예산을 투입해 호스피스를 발전시키고 긍정적인 이미지로 변화시킬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죽음을 기다리는 곳이 아닌 '맞이하는 곳' 호스피스. 호스피스에 대한 편견을 깨고 보다 많은 사람들이 '존엄한 죽음'을 준비할 시간을 갖기 위해선 해결할 숙제가 많습니다.



[잘 죽는 법 ‘웰다잉’]시리즈
☞ ① 죽음은 갑자기 찾아옵니다
☞ ② 죽을 때 비참한 나라 한국
☞ ③ ‘호스피스’를 아시나요
☞ ④ 호스피스는 ‘죽음 대기소’가 아닙니다
☞ ⑤ ‘죽음의 질’ 1위 비결은?
☞ ⑥ 스스로 선택하는 죽음 ‘존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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