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멘트>
지난 한달 동안 정국은 ‘쌀 직불금’ 파문으로 소용돌이쳤습니다. 관련 보도가 쏟아졌지만 정작 피해 당사자인 농민의 관점에서 ‘쌀 직불금’ 문제를 깊이 있게 다룬 보도는 드물었습니다.
김영인 기자와 살펴보겠습니다.
<질문 1> 김 기자! ‘쌀 직불금’ 문제가 최근 언론의 최대 이슈 가운데 하나였는데, 먼저, ‘쌀 직불금’ 제도가 무엇인지부터 구체적으로 알아보죠.
<답변 1>
네, 정확한 명칭은 ‘쌀 소득 등 보전 직불제도’입니다. 쌀시장 개방에 따른 농민들의 소득 감소하는 부분을 정부가 현금으로 보전을 해준다는 제도입니다. ‘쌀 직불금’ 제도는 쌀 시장 개방을 앞두고, 벼 재배 농가의 줄어드는 소득을 보전해 주기 위해 지난 2005년 시행됐습니다.
<녹취> 노무현 (前 대통령) : “개방은 피할 수 없다 할지라도, 개방의 파고를 이겨낼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지원을 다 하겠습니다.”
‘쌀 직불금’은 두 가지입니다.
먼저, 쌀값이 오르든 떨어지든 상관없이 논 면적당 일정 금액을 지급하는 ‘고정 직불금’이 있습니다.
다음은 변동 직불금. 정부가 정해 놓은 쌀 목표 가격에서 산지 평균 쌀값을 뺀 액수의 85%, 여기서 다시 고정 직불금 단가를 뺀 금액을 지원하는 것입니다.
고정직불금은 10월에, 그리고 변동직불금은 다음해 3월에 지급됩니다.
모두 농사를 직접 짓는 사람에게 지급되는 것인데요.
이번에 파문이 커진 건 이 돈을 정치인이나 공직자, 언론인 등 농사를 짓지 않는 사람들이 받았다는 것인데, 이들은 논을 갖고 있어도 농사는 직접 짓지 않고 소작을 줘온 부재지주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러니까 실경작자가 아닌 비농업인들이 타 갔기 때문에 문제가 커진 것입니다.
한마디로 제도에 허점이 많았습니다.
<질문 2> 언론들은 쌀 직불금 제도나 실행의 문제점은 제대로 지적을 했나요?
<답변 2>
‘쌀 직불금’ 제도가 농민보다는 부재 지주의 배만 불렸다, 한 마디로 제대로 운영되지 못했다, 이게 핵심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언론이 제도적인 문제점을 심도 있게 파헤치고 대안을 모색해 주기를 실경작자인 농민들은 바랐습니다.
하지만 언론은 이런 농심을 충족시키진 못한 듯 합니다.
언론 보도가 봇물을 이룬 건 감사원이 쌀 직불금에 대한 감사 결과를 공식 발표하고 나섭니다.
실경작자로 보기 어려운 공무원과 전문직 종사자 등 무려 17만여 명이 쌀 직불금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직불금을 부당 수령한 이봉화 전 보건복지가족부 차관 문제에 더해 정치인 명단 일부가 공개되자 언론은 직불금 문제를 연일 대대적으로 보도했습니다.
<인터뷰> 김병용 (KBS 기자/지난해 6월 ‘쌀 직불금’ 문제 보도) : “이번에도 문제가 됐던 보건복지부 차관같은 경우에 그 사람이 돈 받았던 게 문제가 안 됐다면, 과연 지금의 언론들이나 신문, 방송이 이렇게 관심을 가졌을까, 그리고 정치권이나 청와대까지 이렇게 관심을 가졌을까, 거기에 대해서는 저희도 의문이 듭니다.”
<녹취> KBS 9시 뉴스 (2008.10.16) : “이렇게 계속되는 쌀 직불금 논란 속에 여야는 오늘도 철저한 조사를 촉구했습니다. 야권의 국정조사 요구에 한나라당은 당장 실시하는 데 반대하고 있습니다.”
‘쌀 직불금’ 사태는 시간이 가며 정치적 공방에 휩싸이기 시작합니다.
언론의 관심도 국회로 옮겨졌고, 정치공방의 소재로 삼았습니다.
‘봉화 대 봉하’, 국정감사에서 이봉화 전 차관의 쌀 직불금 부당 수령을 추궁하려는 야당과,노무현 전 대통령의 봉하마을 사저 문제를 이슈로 삼으려는 여당의 신경전에 대해 일부 신문들이 붙인 제목입니다.
대부분의 언론은 전-현 정부의 직불금 책임을 따지는 여야의 공방을 크게 실었습니다.
여야의 주장을 그대로 나열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직불금 파문은 감사원 은폐 의혹과 전 정권의 은폐 개입 의혹으로까지 번졌습니다.
<녹취> SBS 8시 뉴스 (2008.10.17) : “지난해 감사원이 부당 수령자 명단 비공개를 결정하기 한 달 전에 노무현 당시 대통령에게 보고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감사원은 쌀 직불금 관련 감사 결과를 1년 넘게 공개하지 않은데다, 부당 수령한 것으로 의심되는 17만 명의 명단까지 삭제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부재지주가 실경작자의 돈을 가로챘다는 사건이 정치적 ‘의혹’ 사건으로 번진 것입니다.
<녹취> “작년 감사 6개월 앞당기고, 추가 감사 포기, 결국 비공개”, “‘노 정부 입김’ 곳곳 개입 흔적”, “‘12월 대선 염두에 뒀다’ 의심 증폭”
<녹취> “직불금 감사 결과가 공개될 경우 농민이 분노하고 그 분노가 농민 표를 어디로 움직여갈 것인가를 염두에도 두지 않았다면 당시 청와대엔 정치적 지능이 모자라는 사람들만 모여 있었다고 할 수 밖에 없다. 정치 아닌 것도 정치화하던 당시 청와대가 그랬을 리가 없다.”
시간이 갈수록 감사원, 전임 대통령과 관련한 기사는 많아졌고, 직불금 제도 문제에 심층적으로 접근하거나 농심을 전하는 기사는 상대적으로 줄었습니다.
<인터뷰> 박상희 (한농연 정책실 차장) : “17만 가구가 수령한다고 하는데, 농민들이 특히 농민 단체라든가 농민들이 얼마나 얘기를 했겠습니까. 그런데도 언론에서는 전혀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이제 와서 가십거리가 생겼다고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그것을 또 이제 쟁점화해서 보수 언론과 진보 언론이 이념에 맞는 것에 따라서 보도하는 것에 대해서 많이 우려를 하고 있습니다.”
감사원이 노 전 대통령의 눈치를 보느라 감사 결과를 비공개한 것 아니냐고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나, 쌀 직불금을 부당 수령한 사람들이 누구인지 밝혀내는 것, 이 모두가 언론의 사명일 겁니다.
언론의 집중적인 취재와 의혹 제기가 있었기 때문에 감사원이 삭제한 명단 복구에 나선 것 아니겠습니까.
다만, 언론이 이번 사태를 보도하면서, ‘쌀 직불금’, 또 ‘농민의 생존권’이라는 핵심 주제를 잊을 때가 많았던 것 아니냐는 지적을 하는 겁니다.
<질문 3> 그렇지만 언론이 ‘쌀 직불금’의 제도적 문제점이라든가, 농민의 입장 같은 것을 전혀 다루지 않은 것은 아닐 텐데요. 어떤 점이 문제인가요.
<답변 3>
관련 보도는 있었습니다. 하지만, 언론사마다 그야말로 ‘찔끔찔끔’ 다뤄줬다고 할까요. 대체적으로 미흡했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제가 이번 프로그램을 준비하면서, 중앙 일간지 9개와 지상파 방송 3사 기사를 A4 용지로 뽑아서 대략 천 페이지 정도를 봤는데요. 여기서 직불금 제도의 허점을 지적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기사, 억울한 농민의 심정을 대변하는 기사 같은, 이번 ‘쌀 직불금’ 파문의 본질에 해당되는 문제를 별도로 다룬 기사는 50여 페이지 정도에 불과했습니다. 큰 파문이나 논쟁이 일 때마다 흔히 볼 수 있는 시리즈물을 내보내는데 이번에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쌀 직불금’ 파문과 관련해 농민단체와 농업 전문가들이 언론에 기대하는 보도 방향입니다.
<인터뷰> 이창한 (전농 정책위원장) : “노력한 것에 비해 소득이 부족하고 생산비는 폭등하는데 농축산물 가격은 정부에 의해서 통제하고 하락시키고, 먹고 사는 문제를 중심으로 농민들의 문제를 파헤치다 보면, 줄줄이 그물처럼 엮어 있게 되어 있습니다. 어떤 문제가 현재 한국 농업의 문제이고, 한국 농민의 문제인지”
<인터뷰> 박상희 (한농연 정책실 차장) : “농민들이 바라는 것은 직불금에 대한 근원적인 문제는 무엇이고, 이에 따라 농민들이 어떤 피해를 받는지, 그런데 정부가 대책을 내놨는데도 불구하고 현장 농민들이 왜 반발하고 불만을 가지고 있는지, 그럼 대안은 무엇인지 이에 대해서 보도가 이뤄져야 하는데...”
<인터뷰> 박동규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박사) : “농업 뿐만 아니라 사회 모든 전반의 여러가지 정책 프로그램들이 있는데, 다들 그런 목적에 제대로 다 사용하고 있는 것인지를 한번 검토를 해보고 앞으로 도입될 제도에 있어서도 뭔가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들, 미리 한번 점검해보고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최소화하고”
<질문 4> 김 기자! 이번에 쌀 직불금을 부당 수령한 것으로 의심되는 17만 명 가운데 언론인도 수백명 포함돼 있지 않습니까? 이런 데 대한 취재나 보도는 제대로 이뤄졌습니까?
<답변 4>
네, 언론계 쪽이 463명 포함돼 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언론계 종사자 94명, 가족이 369명입니다.
하지만 언론은 자신들의 치부를 드러내는 것에는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습니다.
<녹취> KBS 9시 뉴스 (2008.10.14): “회사원이 9만 9천여 명, 금융계 종사자가 8천여 명, 전문직 종사자가 2천여 명이고…”
직불금을 받은 사람들의 직업군에서 언론계 부분은 빠져 있습니다.
감사원의 감사 결과가 공개되고 언론계 종사자 명수가 구체적으로 나왔지만 방송 뉴스에서 ‘언론계’ 부분은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신문들도 언론인이 쌀 직불금을 부당 수령했다는 사실을 밝히지 않은 경우가 많았습니다.
자성의 목소리를 내는 사설이나 칼럼은 어떤 신문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었고, 쌀 직불금을 탄 공직자들이 주 비판 대상이 됐습니다.
<인터뷰> 최상재 (전국언론노조 위원장) : “그런 편법, 불법적인 행위를 한 언론인들이 있다면 스스로 해명하고 또 스스로 국민들에게 용서를 구하는 것이 바른 길이라고 보고 설사 불법적인 방법이 아니었다면 먼저 밝히고 스스로 해명하는 것이 언론인들이 택해야 될 정도라고 생각합니다.”
정치권은 ‘쌀 직불금’ 국정조사를 하기로 합의했습니다.
언론인이나 정치인 고위공직자 등의 명단을 우선 공개하기로 하겠다는 방침인데요. 그렇게 되면 또 한번 우리 사회에 ‘쌀 직불금’ 후폭풍이 불 것으로 보이는데, 언론이 명단이 공개된 뒤 괜한 오해를 받지 않으려면, ‘쌀 직불금’ 문제에 대해 지금보다 더 깊이 있고 적극적인 보도를 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