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은행채 매입…대출금리 낮아질까

입력 2008.10.27 (11:00)

한국은행이 27일 은행채를 환매조건부채권(RP) 방식으로 사들이기로 한 것은 은행들의 원활한 자금 수급을 통해 시중 금리를 낮추려는 조치로 풀이된다.
9월 리먼 브러더스 사태 이후 은행채 발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서 은행채 금리 상승→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 상승 →주택담보대출 및 신용대출, 중소기업대출 금리 상승 →이자부담 가중 등의 악순환이 이어져 왔다.
은행들의 도덕적 해이를 유발한다는 우려와 비판에도 한은이 이러한 선택을 한 것은 은행권 자금난의 숨통을 터주는 동시에 이자부담에 허덕이는 가계와 중소기업들의 고통을 덜어주려는 조치로 풀이된다.

◇ 은행 유동성 위기 해소 고육책
은행채는 예금과 함께 은행들의 주요 자금조달 수단 중 하나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은행들은 예금이 증시로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머니무브' 현상이 발생하자 대출 재원을 마련하려고 앞다퉈 은행채를 찍어냈다. 그 결과 올해 연말까지 만기가 돌아오는 은행채는 25조 5천억 원에 이른다.
그러나 9월 리먼브러더스 사태 이후 투자자들의 심리가 꽁꽁 얼어붙으면서 은행채 발행이 이뤄지지 않았다. 글로벌 신용경색으로 은행채의 주요 매수처였던 증권사, 자산운용사 등 기관투자자들이 자금난을 겪자 은행채 매입은커녕 오히려 들고 있던 채권마저 내다 팔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은행에 대한 신용위험이 커지고 안전자산 선호 현상이 나타나면서 아무리 싼 값(높은 금리)에 내놓아도 은행채가 팔리지 않자 은행채 금리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여기까지만 해도 은행들의 사정이지만 문제는 대출 금리와 저축은행, 증권사 등 2금융권의 자금난으로 불똥이 튀고 있다는 점이다.
은행채 금리가 오르면서 3개월짜리 CD금리도 은행채 금리와 격차를 좁히려고 덩달아 뜀박질한 것. CD도 은행에서 발행하기 때문에 은행채와 비슷한 금리 수준을 유지하지 않으면 시장에서 외면받을 수밖에 없다. CD금리는 지난 24일 연 6.18%로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내린 지난 9일부터 0.22%포인트나 올랐다.
이에 따라 CD금리와 연동한 시중 은행들의 주택담보대출 금리, 가계신용대출, 중소기업대출 금리도 줄줄이 상승하고 있다.
변동형 주택담보대출의 최고 금리는 8%대 중반에 이른다. 8월 말 현재 은행권의 주택담보대출 잔액은 232조9천억원으로, 이 중 95%가량은 변동금리형이어서 CD금리 상승분을 고스란히 반영할 수밖에 없다.
가뜩 경기둔화와 부동산 시장 침체로 가계 살림살이가 팍팍한 가운데 대출금리마저 올라가면 연체율이 늘어나는 등 부실화할 가능성이 크고 이는 은행의 수익성과 건전성 악화라는 부메랑이 될 수 있다.
게다가 은행들이 채권 발행 대신 7%대 고금리로 시중 자금을 빨아들이면서 저축은행, 자산운용사 등이 연쇄적으로 자금난에 처한 것. 한은의 은행채 매입 결정은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를 끊으려는 조치로 풀이된다.
◇ RP방식으로 은행채 매입
한은은 일정 기간이 지나고서 일정가격으로 되사는 채권인 환매조건부채권(RP) 방식으로 은행채를 매입하기로 했다. 현재 한은의 RP대상 증권에는 국채, 정부가 원리금 상환을 보증한 증권, 통화안정증권에 한정돼 있는데 관련 규정을 고쳐 은행채를 포함하기로 한 것이다.
또 주택금융공사가 발행한 모기지채권, 토공, 주택공사 채권 등도 RP대상에 포함시키기로 했다.
한은의 RP대상 증권에 은행채가 포함되면 증권사, 자산운용사 등의 이 채권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 금리가 떨어진다.
올해 4분기 도래하는 은행채 25조5천억원 가운데 산업은행, 기업은행을 제외하고 시중은행과 지방은행 채권 규모는 13조원 가량으로 추정된다.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는 최근 국정감사에서 "25조원은 4분기 만기 도래하는 전체 은행채 규모인데 이를 전부 중앙은행이 인수할 필요는 없다"며 일부 매입을 시사한 바 있다. 따라서 일각에서는 한은이 10조원 안팎의 채권을 매입해줄 것을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한은의 결정으로 부작용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은행채뿐 아니라 회사채나 기업어음(CP) 등 다른 채권들의 자금 수요도 부족한 상황이어서 매입 요구가 봇물처럼 터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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