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하나은행 FA컵 전국축구선수권대회 8강 네 경기 중 가장 관심이 쏠렸던 포항 스틸러스와 성남 일화의 맞대결이 미숙한 경기 운영과 심판판정 불신 등으로 오점을 남겼다.
5일 오후 포항스틸야드에서 열린 포항-성남전은 90분 경기에서 1-1로 비긴 뒤 승부차기에서 아홉 명씩의 키커가 나선 혈투 끝에 포항이 8-7로 이겼다.
결과만 보면 예상대로 명승부였다. 하지만 사정은 그렇지 않다.
일단 하프타임에 어이없는 촌극이 빚어졌다. 성남 선수들이 후반전 수비를 하게 될 진영의 스프링클러 세 곳에서 갑자기 물줄기가 터져 나온 것이다.
스프링클러는 3분여 동안 그라운드에 물을 뿌려댔다. 하지만 반대편에서는 아무 일도 없었다. 대회를 주최한 대한축구협회에서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라커룸에 있다 후반전 시작을 앞두고 경기장에 나와 이 사실을 알게 된 성남 코칭스태프와 구단 직원들은 경기감독관 등 대회 주최측인 대한축구협회 관계자들에게 강하게 항의했다.
협회에서는 오작동에 의한 것이라는 홈팀 포항 측의 말을 전하며 경기를 속개하려 했지만 성남의 반발은 누그러지지 않았다. 최근 포항과 8차례 맞대결에서 1무7패로 단 한 번 이겨보지 못했던 성남은 오작동이라는 말이 쉽게 받아들여질 리 만무했다.
결국 성남 측의 요구대로 똑같이 3분간 포항 쪽 그라운드에도 물을 뿌린 뒤 예정보다 8분여 늦게 후반전을 시작했다.
후반 15분 김영철이 두 번째 경고를 받고 퇴장당하면서 그라운드는 더욱 어수선해졌고 13분 가량 경기가 중단됐다.
김학범 감독 등 성남 관계자의 판정에 대한 항의로 10분 가까이 경기 재개가 이뤄지지 못했다. 협회에서 가까스로 진정시켜 경기를 시작하려는 순간 주심이 김 감독의 퇴장을 명령하며 다시 3분여 험악한 분위기가 계속됐다.
협회 관계자는 "대회 규정상 5분 이상 경기를 지연시키면 실격패를 선언해야 하다. 하지만 서로 상황을 이해시키고 재개하려는데 감독에 대해 퇴장 명령이 내려지며 다시 마찰이 있었다"고 말했다.
벤치를 지키지 못한 김 감독은 경기 후 일관되지 못한 심판판정과 축구협회의 미숙한 운영에 대해 강한 어조로 불만을 드러냈다.
김 감독은 "한국축구를 어떻게 하라는 건지 축구협회에 묻고 싶다. 페어플레이를 하라고 어떻게 부르짖을 수 있는지 되묻고 싶다"면서 "FA컵은 협회 주관 대회가 맞다. 하지만 K-리그를 대표하는 프로팀 간 경기에서 수준이 낮은 주심이 투입돼 이런 상황을 만든 것은 협회도 책임이 있다. 관중을 끌어모으고 온 힘을 합해야 할 때인데 승패를 떠나 너무 아쉽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상대는 손으로 공을 건들고 스터드가 보일 정도로 발을 들이대는데도 주심은 가만히 있었다. 경기 규칙을 스스로 어긴 셈이다. 잣대는 똑같이 적용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협회에 제소하겠다"고 밝혔다.
FA컵은 협회 주관 대회라 이날 경기에는 프로축구 무대에서는 서지 않고 아마추어 대회를 진행해왔던 협회 1급 심판들이 나섰다.
경기 전부터 이 점을 걱정했던 세르지오 파리아스 포항 감독도 경기가 끝난 뒤 "상대 선수의 퇴장 이후 경기가 15분 가까이 지연됐다. 관중과 축구팬에게는 좋지 않은 일이다. 우리 경기에서, 그리고 홈구장에서 이런 일이 생겨 대신 사과드린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