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년의 100m 암흑기…험난했던 도전사

입력 2010.06.07 (15:16)

수정 2010.06.07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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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저히 깨질 것 같지 않던 서말구(55.해군사관학교 교수)의 남자 육상 100m 한국기록(10초34)이 7일 대구스타디움에서 31년 만에 수명을 다했다.

김국영(19.안양시청)이 오전 10시18분 예선에서 10초31을 찍어 신기록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고 낮 12시1분에 다시 0.08초 앞당긴 10초23을 기록하며 '10초34'를 완전히 역사에 묻어버렸다.

김국영의 라이벌인 임희남(26.광주광역시청)과 여호수아(23.인천시청)도 이에 뒤질세라 12시5분 준결승에서 각각 10초32와 10초33을 찍었다.

10초34라는 '천형'을 벗어던지는데 무려 31년이 필요했지만 한국 육상이 10초2대에 접어들기까지는 채 2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한국 기록을 안방에서 썼다는 의미도 각별했다.

한국의 스프린터라면 누구랄 것 없이 '한국기록을 꼭 깨야 한다'는 부담을 안고 트랙 출발선에 섰다. 그러나 이날 '선구자' 김국영이 마의 벽을 넘자 두려울 게 없다는 듯 임희남과 여호수아도 마침내 잠재했던 폭발력을 트랙에 쏟아붓고 10초34를 가볍게 넘었다.

10초34를 넘기 위한 도전은 지난하고도 처절했다.

대한육상경기연맹은 "1979년 서말구의 기록이 나오기 전까지는 모두 수작업으로 기록을 적었던 터라 공식기록으로 간주할 수 없다. 사실상의 공식기록은 10초34가 처음"이라고 말했다.

이후 기록을 살펴보면 장재근 현 연맹 트랙 기술위원장이 1985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열린 제6회 아시아육상경기선수권대회에서 10초35를 찍어 10초34에 근접한 기록을 냈다.

200m가 주종목인 장 위원장이 100m에서 한국 타이기록에 접근하면서 얼마든지 깰 수 있다는 자신감이 불어닥쳤지만 현실은 결코 녹록지 않았다.

1994년 진선국(40.당시 부산은행)이 전국체전에서 10초37을 기록했고 1996년에는 이형근(38.당시 상무)과 김상도(39.당시 경찰대)가 전국체전에서 각각 10초43과 10초45를 찍었지만 한국기록과는 해가 갈수록 멀어졌다.

암흑기가 오랫동안 이어지다 박평환(24.당시 조선대)이 전국남녀대학선수권대회에서 10초46을 찍어 다시 한국신기록에 대한 불을 지폈다.

그러다 임희남이 2007년 요르단 암만에서 열린 아시아육상선수권대회에서 10초42를 기록, 1985년 10초39를 찍은 심덕섭(47.당시 한국체대) 이후 22년 만에 최고의 성적을 냈지만 여전히 10초34와 격차는 0.08초에 달했다.

2011년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유치한 연맹은 지난해 말부터 안방에서 망신을 당할 수 없다는 각오로 선수와 지도자에 대한 대대적인 개혁에 착수했다.

10초34를 깨뜨리면 선수와 지도자에게 각각 포상금으로 1억원과 5천만원을 주겠다고 특별 한시 규정도 만들어 동기를 자극했다.

일본 단거리의 대부인 미야카와 지아키씨를 2004년 코치로 초빙하기도 했고 미국 유명 스프린터 출신 케런 콘라이트와 자메이카 유명 지도자 리오 알만도 코치를 데려왔지만 각각 실패로 돌아가자 결국 스스로 난국을 타개하기로 했고 스파르타 훈련에서 돌파구를 찾았다.

장 위원장과 이종윤 대표팀 감독은 전형적인 훈련 중심론자. 이들은 지난 1월부터 대표팀을 맡은 뒤 기술보다 뛰는 양을 늘리는 데 초점을 맞췄고 동시에 선수들의 투지를 자극하는 전술을 폈다.

그러자 임희남과 여호수아, 임희남에 전덕형(26.경찰대)까지 4명이 동시에 경쟁을 벌이는 구도가 형성됐고 이들은 올해 10초4대 기록을 집단적으로 찍어내며 기록 수립 가능성을 높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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