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협 감독 선임, 흔들린 원칙 ‘씁쓸’

입력 2010.07.21 (14:07)

한국축구 사상 처음으로 원정 월드컵 16강 진출을 이룬 허정무 전 축구대표팀 감독의 후임으로 결국 조광래 경남FC 감독이 선임됐다.



다시 한국인 지도자가 대표팀을 지휘하게 됐고, 선수 조련에 일가견이 있는 감독이 새 사령탑으로 선임된 데 대한 축구팬들의 기대는 적지 않다.



하지만 대한축구협회의 대표팀 감독 인선 과정은 다시 한번 아쉬움을 남겼다.



축구협회 기술위원회는 대표팀 코치진 인선은 물론 각급 대표팀의 경기력 향상을 위한 지원 업무를 총괄하는 조직이다.



그러나 대표팀 감독을 새로 뽑을 때마다 혼선을 거듭했고, 이번도 비슷한 상황은 되풀이됐다.



이회택 협회 부회장이 위원장인 현 기술위는 2010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에서 16강 진출을 이룬 허정무 전 감독이 계약을 연장해 연임하는 것을 가장 좋은 시나리오로 꼽았다.



차순위가 정해성 대표팀 수석코치, 그다음이 전·현직 K-리그 지도자였다.



기술위원회는 허 감독이 연임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히자 지난 7일 첫 회의를 열어 차기 대표팀 사령탑 선임 건을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기술위원들은 차기 감독도 국내 지도자를 뽑자는데 의견을 모았고, 전·현직 K-리그 사령탑 12∼13명을 후보에 올렸다.



이후 정해성 코치와 조광래 감독, 최강희 전북 현대 감독, 김호곤 울산 현대 감독, 황선홍 부산 아이파크 감독 등 5명으로 후보군을 압축했다.



하지만 정해성 코치는 물론 최강희ㆍ황선홍ㆍ김호곤 감독 등이 차례로 대표팀 감독직 제의가 와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히면서 결국 조광

래 감독만 후보로 남게 됐다.



이런 가운데 조중연 대한축구협회장이 지난 16일 남아공 월드컵 16강 진출 기념 만찬 자리에서 "이회택 기술위원장에게 좀 더 폭넓은 후보를 찾으려면 국·내외 지도자를 망라해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부탁했다"면서 외국인 지도자로 방향을 틀 가능성까지 내비쳐 기술위원회는 더욱 우스워졌다.



조 회장이 못 박은 이달 말까지 외국인 감독을 선임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새 감독을 뽑았다는 명분을 쌓게 하려는 몸짓이라는 해석도 있었지만, 국내 지도자를 뽑겠다는 방침을 밝힌 기술위의 권위는 땅에 떨어졌다.



그러자 일부 젊은 기술위원들의 반발 분위기도 감지됐다.



기술위원들은 이전에도 대표팀 감독 교체기마다 소신을 지키지 못한 채 외풍에 흔들렸다는 비난을 받아왔던 터라 조 회장의 발언은 이번에도 결국 협회 윗선이 감독 선임 과정을 좌지우지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만했다.



게다가 조광래 감독의 선임은 기술위 회의 두 번 만에 결정됐다.



감독 선임 작업은 기술위 회의에서 전체 위원들의 의견을 수렴해 진행하는 것이 순리인데, 오히려 순서가 뒤바뀐 느낌이다. 기술위원장이 직접 후보자와 면담을 해 사실상 새 감독을 내정해 놓고, 결국 회의는 요식행위가 아니냐는 곱지 않은 시선도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21일 열린 기술위원회 이전 이미 기술위 관계자의 입을 통해 조광래 감독의 선임은 기정사실화됐다.



이를 의식한 듯 이회택 위원장은 "조광래 감독을 비롯해 2-3명의 지도자를 후보로 추가해 기술위원회를 열었고 기술위원들이 만장일치로 조광래 감독을 선택했다"고 밝혔지만, 믿음을 주기에는 모자랐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