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아있는 한 모든 골퍼는 백인, 모든 캐디는 흑인이어야 한다"
5일(현지시간)부터 제76회 마스터스 토너먼트가 열리는 미국 조지아주(州)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장의 설립자 중 한 명인 클리포드 로버츠가 1933년에 했던 말이다.
이후 오거스트 골프장에서는 흑인 캐디만 허용됐고 이는 곧 오거스트의 상징이었다.
로버츠가 사망한 지 20년 뒤인 1997년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가 백인 캐디를 데리고 경기에 나서 자신의 생애 첫 마스터스 챔피언에 등극했다.
로버츠가 남긴 지독한 인종차별의 거울이 산산조각이 나는 순간이었다.
메이저 대회에서 14차례나 우승한 타이거 우즈는 여러 방면에서 골프의 얼굴을 바꿔놨다.
우즈는 이 시대 최고의 골퍼가 백인이 아닐 수도 있음을 증명했다. 무엇보다 그의 성공은 캐디라는 직업에서 흑인을 밀어내는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올해 미국 남자프로골프(PGA) 투어에서 정규직으로 시즌을 시작한 흑인 캐디는 2명밖에 없었다면서 골프의 슬픈 역사인 `흑인 캐디의 시대'가 종언을 고하고 있다고 3일 보도했다.
잭 니클라우스 등 당대 최고의 선수들을 따라다녔던 흑인 캐디들은 모두 황혼기에 접어들었거나 세상을 떠났으며 이제 새로운 세대가 그들의 빈자리를 메우고 있다.
흑인들이 자신들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캐디 자리를 내놓을 밖에 없었던 요인은 다양하다.
우선 한때 `천한 직업'으로 여겨졌던 캐디가 지금은 대학을 졸업한 고학력자나 우즈의 성공에 자극받아 프로 골퍼의 길로 나섰다가 실패한 사람들의 직업으로 바뀌었다.
우즈가 프로로 전향한 1996년 평균 147만달러였던 PGA 투어의 상금이 올해는 평균 620만달러로 치솟았다.
흑인 캐디인 칼 잭슨은 "뛰어난 선수의 캐디가 되면 연간 10만달러 이상을 벌 수 있다"면서 "하지만 선수들은 이왕이면 가족 등 자신과 편한 사람을 캐디로 쓰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는 "흑인 캐디는 대부분 2부 격인 네이션와이드 투어에서 활동한다"며 "그것마저 없다면 그들은 실직자 신세가 될 것이다. 흑인 캐디는 죽어가는 종족"이라고 덧붙였다.
잭슨은 이번 마스터스 대회에서 골프백을 메는 몇 안 되는 흑인 캐디 중 한 명이다.
대부분의 골프장이 전동카트를 갖추고 있고 이로 인해 캐디 교육 프로그램도 명맥만 유지되고 있다는 점도 흑인 캐디의 퇴조를 몰고 온 요인으로 지목된다.
흑인 입장에서는 일자리가 다양화되면서 이전 세대에 비해 캐디라는 직업의 매력도 많이 줄었다.
타임스는 상금이 적을 때에는 자신들이 표준이다가 상금이 많아지니까 폐기 대상이 되어버린 흑인 캐디에게는 지금같은 상황이 씁쓸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