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3월, 프로농구 동부와 KT의 경기입니다.
경기 전, 강동희 동부 감독의 말이 왠지 어색합니다.
<인터뷰> 강동희(동부 감독/경기 전 인터뷰) :"저쪽 팀은 목표가 있어서 열심히 해야 되는 입장이고, 저희는 순위가 확정됐기 때문에 좀 선수들의 정신 자세가..."
점수 차가 벌어져도 동부의 주 득점원들은 벤치를 지킵니다.
<녹취> 중계 멘트 : "역시 벤슨이 나와야 될 것 같습니다."
이 경기를 포함해 강 감독은 브로커로부터 4천 7백만 원을 받고 모두 4경기를 일부러 져준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인터뷰> 강동희(동부 감독/지난 7일) : "혐의가 없기 때문에 부인했습니다. (돈은 받으셨습니까?) 받지 않았습니다."
이런 항변에도 강 감독은 결국 구속 수감됐습니다.
현역 시절 최고의 가드로...
<녹취> "강동희의 현란한 코트 쇼에 팬들이 열광합니다."
이어 지도자로서도 승승장구해 왔습니다.
한국 농구를 대표한 '코트의 마법사', 강동희의 추락은 그야말로 한 순간이었습니다.
축구와 배구, 야구에 이어 승부 조작의 마수가 프로 농구계까지 뻗쳤습니다.
유명 선수들이 검은 돈의 유혹에 못 이겨 줄줄이 법의 심판을 받았고, 급기야는 현역 감독까지 구속됐습니다.
프로 스포츠계에 만연한 승부조작 세계의 이면을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강동희 감독이 구속된 뒤 처음으로 열린 동부의 홈 경기. (실크) 경기장을 찾은 관중은 올 시즌 평균치보다 30% 넘게 줄었습니다.
감독의 빈 자리에 관중석의 빈 자리까지....
강 감독에 대한 애정 만큼이나 팬들이 느끼는 아쉬움과 실망감도 컸습니다.
<인터뷰> 안소연(강원도 원주시 단구동) : "많이 다르죠. 관중도 적고 아무래도 사인받거나 이런 사람들도 적고 확실히 분위기가 다운된 것 같기는 해요."
<인터뷰> 양은모(강원도 원주시 무실동) : "돈을 받고 승부 조작을 한다는 거는 정말 창피한 일이죠. 그것도 우리나라 최고의 스타플레이어 감독님이 그렇게 하셨다는 게..."
승부조작 사건의 시발점은 프로 축구였습니다.
<녹취> 전남 VS. 울산 (2010년 9월18일) : "여기서 몸을 저렇게 틀면 안 되거든요. 지금 등을 보이면 안 됩니다. 지금 골 먹은 상황에서 저렇게 등을 보이면 되겠습니까?"
전.현직 국가대표 등 63명 적발 ...선수 3명 자살
<녹취> "(승부 조작 인정하십니까? 승부 조작 인정하십니까?) ..."
전.현직 선수 등 21명 적발 ...관련자 전원 영구제명
<녹취> 지난해 2월16일 LG 단장 : "이번 사건 전혀 관계없지?"
<녹취> 박현준 : "네, 전혀 관계없습니다."
<녹취> LG 단장 : "그래, 열심히 하자."
LG 투수 2명 경기조작 적발 ...야구계 영구 퇴출
4대 프로 스포츠를 뒤덮은 검은 그림자의 중심에는 해외에 주소를 둔 불법 도박 사이트가 있었습니다.
합법적인 스포츠토토는 두 경기 이상의 승패를 맞춰야 배당금을 받게 됩니다.
반면 불법 게임은 베팅 방식이 사실상 무한대에 가깝습니다.
현재 운영되고 있는 사설 토토 사이트에 들어가 봤습니다.
<녹취> 불법 토토사이트 이용자(음성변조) : "(농구의 경우) 쿼터별로, 특정 선수별로, 첫 자유투가 어디서 나오는 지, 첫 3점슛이 어느 팀에서 먼저 나오는 지 다양하게 게임을 세분화해서 베팅이 가능한 구조입니다."
이처럼 베팅액이 크고, 조작도 수월하기 때문에 전주는 브로커를 통해 감독과 선수, 심판 등에 뒷돈을 대고, 조작이 이뤄지면 브로커는 성공 수당, 전주는 거액의 배당을 챙기게 됩니다.
2011년 3월, 동부의 경기.
동부가 꼴찌 오리온스에 이길 것이란 확률이 8대 2 정도로 높게 예상됐습니다.
하지만, 양상은 전혀 딴판이었습니다.
<녹취> 중계 멘트 : "자, 29점 차가 됐습니다. 최다 점수차 기록이 동부와 SK와의 경기에서 나왔던 33점차인데요."
<인터뷰> 기영노(스포츠평론가) : "강동희 감독이 김주성 선수와 윤호영, 두 주축 선수를 빼고 경기를 했기 때문에 원주 동부가 대구 오리온스에게 72대 93, 21점차로 졌기 때문에 대구 쪽에 걸었던 사람들이 많은 돈을 챙겼던 경기였습니다."
대세와는 반대로 가는 이른바 '역배당'입니다.
<녹취> 불법 토토 사이트 이용자(음성변조) : "불법 사이트는 토토와 다르게 경기 결과가 끝남과 동시에 배당금이 나오기 때문에 더 짜릿하고 중독성이 있는것 같아요."
이런 불법 스포츠토토 시장 추정액은 한 해 7조 6천억 원. 지난해 정부가 발행한 스포츠토토 판매액의 3배에 달합니다.
<인터뷰> 장인종(스포츠토토 감사팀장) : "불법사이트 우리한테 신고가 들어오는 게 월에 2천 건이 들어오는데 저희가 작년에 신고해서 사법처리된 게 고작 12건이거든요. 이런 걸로 미뤄봐서 해외에 서버도 있고, (수사기관에) 정확한 정보를 저희가 주기도 어렵고..."
그렇다면 선수들은 왜 이렇게 승부조작 유혹에 쉽게 넘어가는 걸까.
바로 검은 돈 때문입니다.
유명 프로야구 선수였던 A씨,
신변 노출을 우려한 그는 인터뷰 대신 자신이 겪었던 일을 취재파일팀에 자세히 적어 보내왔습니다.
경제적 어려움을 겪던 지난 2010년, 알고 지내던 한 중국 동포가 자신을 서울의 한 호텔 객실로 불러내 거액의 돈을 내보이며 은밀한 제안을 해 왔다는 겁니다.
<녹취> 전 프로야구 선수(음성대역) : "30억 원인데 10억 원은 내가 갖고, 나머지 20억 원으로 프로야구 4개 팀에서 작업할 친구들을 모아달라고 하더라고요."
브로커는 구체적인 선수 포섭 방법까지 제시했습니다.
<녹취> 전 프로야구 선수(음성대역) : "절대 승부조작 대가로 돈 준다고 하지 말라. 도박으로 급전이 필요한 애들하고 친하게 지내면서 '용돈이나 해라', '프로 선수인데 좋은 차 몰고 다녀야 되지 않겠냐, 내가 스폰(지원) 할께' 이런 식으로 돈 빌려준 걸 가지고 빌미로 잡아서 압력하라고 하더라고요."
제안을 거부한 A 씨에게 돌아온 대답은 더욱 충격적이었습니다.
<녹취> 전 프로야구 선수(음성대역) : "축구, 배구, 경륜 같은 거는 이미 승부조작 하고 있고, 특히 축구 같은 경우는 게네들이 다섯개 구단 구단주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이 말이 사실일까.
지난 2010년 이뤄진 프로축구 승부조작 사건에 대한 수사 기록입니다.
검찰이 압수한 브로커의 수첩에 승부조작과 관련해 돈이 전달된 선수들로만 구성된 포메이션, 즉 전술 구상이 적혀 있습니다.
브로커가 감독을 대신해 선수 기용에까지 개입했음을 암시하는 대목입니다.
실제 중간 브로커로 활동한 전직 축구선수의 설명도 비슷합니다.
<녹취> 승부조작 가담 선수(음성변조) : "1군 멤버, 2군 멤버를 꿰차고 있더라고요. 리그는 누가 누가 나가고, 컵 대회는 누가 누가 나가고. 누가 누가 앞에 서겠네요. 이 친구들한테 얘기를 좀 해서 섭외를 해 주십시오."
브로커들은 약점을 잡은 뒤에 말이 먹히지 않으면 폭력 조직까지 동원했다고 합니다.
<녹취> 승부조작 가담 선수(음성변조) : "조작이 성공이 되지 않고 만약 실패가 이뤄졌을 때는 감금당하고 매달아 놓고 협박도 했다고 그런 얘기도 들었어요. 솔직히. (협박당한 선수들이) 무릎 꿇고 와서 한번 만 도와달라고..."
프로리그 연맹 사과 구성
<녹취> 정몽규(프로축구연맹 당시 총재/2011년 5월) : "심려를 끼쳐드린 데 대해 머리 숙여 사과 드립니다."
<녹취> 최태웅(프로배구 현대캐피탈 선수/지난해 2월) : "어떠한 부정 행위도 하지 않겠습니다."
<녹취> 구본능(한국야구위원회 총재/지난해 3월) : "있어서는 안될 일이 생겨서 정말 죄송스럽습니다."
<녹취> 한선교(한국농구연맹 총재/지난 12일) : "깊이 머리숙여 사죄의 말씀을 드립니다."
사건이 터지자 각 연맹은 앞다퉈 가담자를 영구 제명하고, 구단은 자정을 결의했습니다.
특히 지난해 3월, 프로리그 단체와 스포츠토토 등은 경기 조작을 뿌리뽑겠다며 '부정행위방지위원회'도 구성했습니다.
하지만, 분기별로 하겠다는 위원회 회의는 지금까지 1년이 다 되도록 단 한 차례도 열리지 않았습니다.
<녹취> 프로리그 단체 관계자(음성 변조) : "작년에 발족을 했으니까 작년에 한번 정도 참석을 했었고... (발족할 때 3월인가 말씀하시나보죠?) 네, 그렇습니다."
이 때문에 당장은 승부 조작의 온상인 불법 스포츠 도박 사이트부터 뿌리뽑고, 근본적으로는 상급 학교 진학을 위해 뒷거래가 횡횡하는 학원 스포츠에 대한 대수술이 시급하다는 지적입니다.
<인터뷰> 곽균열(스포츠 전문 변호사) : "져주기 게임을 한다든가, 아니면 승패를 약간 감독 코치들이 조율한다든가, 이런 것들을 항상 어렸을 때부터 봐 오다 보니까 선수들 입장에서는 '저게 나쁜게 아니구나, 어떻게 보면 서로 좋은 거구나' 이런 잘못된 가치관을 가질 수 있다는 거죠."
2011년 5월, 한때 촉망받던 프로축구 미드필더가 승부조작에 연루돼 30년의 짧은 삶을 마감했습니다.
정종관 선수.
비극적인 선택을 하기 전 남긴 유서에는 흔들리는 글씨체로 "정말 부끄럽다", "가장 자신있던 축구를 더 이상 못하겠다" 는 내용을 남겼습니다.
<녹취> 승부조작 가담 선수(음성변조) : "축구의 '축'자도 듣기도 싫고, 너무 창피하고, 심지어 진짜 막 다 알아보는 것 같고. 동생들, 후배들 보면 제명이 풀려서 복귀하는 선수들도 있거든요. 동생들 보면 부럽고..."
검찰 수사로 최근 승부조작이 다소 위축됐다지만, 범죄 집단은 언제든 모든 종목, 모든 경기를 다시 범죄에 악용할 수 있습니다.
<녹취> 승부조작 가담 선수(음성변조) :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뿌리뽑자, 뭘 어떻게 하자' 그건 자기네들 생각이고. 운동했던 사람들 다 뭔지 모릅니다. 다 순진합니다. 10명 중에 한.두명이 사탕발림, 속삭임에 안 넘어갈 것 같습니까?"
스포츠의 예기치 못한 승부는 '각본 없는 드라마'로 불립니다.
하지만 감동과 흥분이 각본에 의해 조작된 것이라면 그것은 추악한 범죄일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