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블랙리스트’ 전공의 구속…개인정보 유포도 스토킹?

입력 2024.09.23 (09:55)

수정 2024.09.23 (09:58)


의료계의 집단 행동에 동참하지 않는 의사 명단을 작성·게재한 사직 전공의가 구속됐습니다.

의대 증원과 관련해 반년 넘게 이어진 정부와 의료계 갈등 속에서 나온 첫 번째 의사 구속 사례인데, 이른바 '의사 블랙리스트' 작성·게시자가 구속된 것 역시 처음입니다.

■ 집단행동 참여 안 한 의사들 "감사한 의사" 비꼬아

20일 서울중앙지법 남천규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의료계 집단행동에 동참하지 않는 의사들의 명단을 작성하고 게시한 혐의(스토킹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를 받는 사직 전공의 정 모 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발부했습니다.

발부 사유는 '증거인멸 우려'였습니다.

앞서 사직 전공의인 정 씨는 지난 7월 정부의 의대증원 정책에 반발한 전공의 집단행동 등에 참여하지 않는 의사들의 신상 정보를 담은 '의사 블랙리스트'를 만든 뒤 텔레그램과 의사·의대생 커뮤니티 메디스태프 등에 여러 차례 게시한 혐의를 받습니다.

정 씨는 의료 현장을 지키는 의사들을 이른바 '감사한 의사'라고 비꼬며 이름, 연락처, 출신 학교, 소속 병원·학과 등을 명단에 담아 게재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외에도 정 씨는 2020년 의료파업 당시 참여하지 않거나 복귀한 이들 명단도 작성해 공유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정 씨는 당초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등 혐의로 입건됐지만, 경찰은 정 씨가 당사자 의사에 반해 개인정보를 온라인에 게재하는 등 지속·반복적인 괴롭힘 행위를 했다고 보고 스토킹처벌법 위반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습니다.

이른바 ‘의사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배포한 혐의를 받는 사직 전공의 정모 씨가 20일 구속영장심사 후 법원에서 퇴정하고 있다.이른바 ‘의사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배포한 혐의를 받는 사직 전공의 정모 씨가 20일 구속영장심사 후 법원에서 퇴정하고 있다.

■ 법원, 텔레그램 등 '디지털 증거 인멸' 우려한 듯

우선 구속의 요건은 법원의 유·무죄 판단과 조금 다릅니다. 유죄를 선고하기 위해서는 법관이 확신을 가질 정도의 강한 증명이 필요합니다.

반면 구속영장 발부를 위해서는 △피의자가 죄를 범하였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을 것 △주거부정, 증거인멸의 염려, 도주 또는 도주할 염려 가운데 하나 이상의 요소가 있을 것이란 요건만 만족하면 됩니다.

쉽게 말해 피의자가 범죄를 저질렀다는 근거가 어느 정도 있고, 도망가거나 증거를 없앨 가능성이 있는 경우 구속영장을 발부할 수 있는 겁니다.

형사소송법 제70조(구속의 사유)
①법원은 피고인이 죄를 범하였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고 다음 각 호의 1에 해당하는 사유가 있는 경우에는 피고인을 구속할 수 있다.
1. 피고인이 일정한 주거가 없는 때
2. 피고인이 증거를 인멸할 염려가 있는 때
3. 피고인이 도망하거나 도망할 염려가 있는 때
②법원은 제1항의 구속사유를 심사함에 있어서 범죄의 중대성, 재범의 위험성, 피해자 및 중요 참고인 등에 대한 위해우려 등을 고려하여야 한다.

제201조(구속)
①피의자가 죄를 범하였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고 제70조제1항 각 호의 1에 해당하는 사유가 있을 때에는 검사는 관할지방법원판사에게 청구하여 구속영장을 받아 피의자를 구속할 수 있고 사법경찰관은 검사에게 신청하여 검사의 청구로 관할지방법원판사의 구속영장을 받아 피의자를 구속할 수 있다.

법원은 정 씨의 영장을 발부하면서 '증거 인멸 우려'를 구속의 주된 사유로 들었는데 △온라인 플랫폼, 특히 텔레그램과 같은 암호화된 메신저를 사용해 반복적으로 개인정보를 유포한 점 △디지털 증거의 특성상 게시물 내지 기록을 쉽게 삭제하거나 변경할 수 있는 점 등을 근거로 증거 인멸 가능성을 인정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또한 스토킹처벌법상 스토킹 행위에는 그 특성상 '반복성'이 요구되는데, 추가적으로 정보를 유포할 가능성 즉 재범 위험성을 판단하는 데 기존의 행위가 상당 부분 고려됐을 것으로 보입니다.

■ 올해부턴 개인정보 유포도 스토킹…법 개정

스토킹처벌법은 지난 2021년 시행된 이후 두 차례 개정됐습니다. 지난해 7월 가장 최근 개정에서는
'제2조 제1항 바목'이 신설됐는데요.

이 조항의 내용은 '정보통신망을 이용해 △개인정보 △개인위치정보 △위 둘을 편집·합성해 가공한 정보를 제3자에게 제공하거나 배포 또는 게시하는 행위'를 스토킹 행위에 추가하는 것으로, 올해 1월 12일부터 시행됐습니다.

즉 타인의 개인정보를 의사에 반해 정당한 이유 없이 정보통신망을 이용해 반복·지속적으로 게시한 경우, 올해부터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습니다.

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2조(정의)
1. "스토킹행위"란 상대방의 의사에 반(反)하여 정당한 이유 없이 다음 각 목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행위를 하여 상대방에게 불안감 또는 공포심을 일으키는 것을 말한다.
바. 다음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상대방등의 정보를 정보통신망을 이용하여 제3자에게 제공하거나 배포 또는 게시하는 행위
1) 「개인정보 보호법」 제2조제1호의 개인정보
2) 「위치정보의 보호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 제2조제2호의 개인위치정보
3) 1) 또는 2)의 정보를 편집ㆍ합성 또는 가공한 정보(해당 정보주체를 식별할 수 있는 경우로 한정한다)
2. "스토킹범죄"란 지속적 또는 반복적으로 스토킹행위를 하는 것을 말한다

제18조(스토킹범죄)
① 스토킹범죄를 저지른 사람은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이 조항 신설 이전에는 피해자의 인적 사항, 사진 등의 개인정보를 수집해 인터넷 또는 SNS 상에 유포하거나, SNS 주소나 이메일 주소, 전화번호 등을 공개해 불특정 다수인이 연락하도록 하는 행위 등을 규제할 방법이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정도였는데, 이젠 스토킹 범죄로도 처벌할 수 있게 된 겁니다.

다만 이 조항은 올해 초부터 시행돼 아직까지 유의미한 선행 판례가 언론에 알려지지 않은 상황입니다. 만약 정 씨에게 이 조항이 적용됐다면, 유죄가 확정될 경우 개인정보 유포를 스토킹으로 처벌하는 첫 사례가 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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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외도 개인정보 유포 스토킹 처벌 법제화

'개인정보 유포'를 온라인 스토킹으로 처벌하려는 움직임은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독일은 스토킹 앱 등으로 피해자의 이메일이나 SNS 계정에 접근해 사생활을 감시하거나, 피해자를 가장해 사칭 계정을 만들고 경멸적 발언을 하거나, 사진 등을 무단 게시하는 사례가 빈발하자 2021년 형법 개정을 통해 온라인 스토킹 대응에 나섰습니다.

독일 형법 제238조 제1항 제6호는 타인, 그의 친족이나 그와 친밀한 관계가 있는 사람의 도화(사진, 그림)·모사(Abbildung)를 유포하거나 일반에 공개하는 행위를 스토킹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정보통신망을 이용한 유포, 공개의 경우도 해당됩니다.

■ 스토킹 처벌 관련 양형은?

그렇다면 스토킹처벌법상 이러한 개인정보 유포 혐의 유죄가 인정될 경우, 실제 어느 정도의 형이 선고될까요.

대법원 양형기준에 따르면 일반 스토킹 범죄 하나만 저지른 경우, 기본적으로 6월 내지 1년의 징역형 또는 2천만 원 이하의 벌금형이 선고됩니다.

만약 △범행의 수단과 방법을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한 경우나 고도의 지능적인 방법을 동원하여 범행한 경우 △불특정 또는 다수의 피해자를 대상으로 하거나 장기간에 걸쳐 범행한 경우 △피해자에 대한 혐오 또는 증오감에서 범행을 저지른 경우 등 여러 가중요소가 중첩될 경우 가중영역으로 들어갈 수 있고, 이 경우 스토킹처벌법 위반 혐의로만 최대 2년 6개월의 징역형이 선고될 수 있습니다.

비교 사안을 찾아보면 온라인 메신저인 텔레그램 그룹방 등을 이용해 성착취물을 유포한 사람의 성명, 사진, 연락처 등 62명의 개인정보를 수집해 인스타그램 계정을 통해 공개한 사건이 있습니다. 다만 범행 시점은 스토킹처벌법이 시행(2021년 10월)되기 전이었습니다.

해당 피고인은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및 정보통신망이용촉진및정보보호등에관한법률 위반(명예훼손) 등 여러 혐의로 기소됐는데, 2021년 대구지방법원은 대부분 혐의를 유죄로 판단해 경합범 조항(여러 범죄를 저지른 경우 형이 가장 무거운 혐의에서 최대 50%까지 형량을 가중)을 적용했고, 1심에서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했습니다.

백인성 변호사·법조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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