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광불급(不狂不及)’,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한다.
아마 이 단어가 뮤지컬 프로듀서, 박명성의 내면을 가장 압축적으로 표현한 말일지도 모른다.
무모하리만큼 자신감 넘치는 도전! 목표가 정해지면 그는 질주한다. 그것이 성공으로 끝나든 실패로 끝나든 괘념치 않고...
그의 과거 행적을 보면 미친 짓(?)을 많이 했다는 사실을 금방 알 수 있다.
국내 뮤지컬 프로듀서 1세대인 박명성은 지난 2003년 뮤지컬 ‘아이다’를 전격 수입한다. 무대 설치 기간만도 6주. 리허설도 해야 하니 공연 두 달 전부터 무대를 빌려야 했다. 총 제작비는 158억 원. 주변에선 하나같이 만류했다.
“저는 햄릿처럼 심사숙고하는 스타일이 아닙니다. 돈키호테처럼 일단 시작부터 하고 보죠. 미치지 않은 돈키호테는 아무런 매력이 없습니다. 프로듀서로 살고 있는 한 ‘박 감독, 또 일 저질렀네’라는 말을 듣고 싶습니다.”
그의 배짱은 2007년 제작한 뮤지컬 ‘댄싱 섀도우’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차범석의 희곡 ‘산불’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7년의 준비 기간, 45억 원의 제작비가 들었다.
극본과 연출, 음악, 무대, 의상 등 모든 작업을 해외 유명 제작진에게 맡겼다. 여기에는 외국의 선진 노하우를 익히려는 의도가 숨어 있었다.
하지만 결과는 암담했다. 흥행 참패였다. 25억 원이나 적자를 봤다.
박명성은 “나 자신에 대한 실망감, 이렇게 공을 들인 작품에 호응해주지 않는 관객들에 대한 섭섭함, 무대에 대한 회의감 등이 한꺼번에 몰려왔다”고 회상한다.
‘댄싱 섀도우’는 흥행에는 실패했지만 그해 <한국뮤지컬대상> 5개 부문에서 상을 받는다. 흥행성보다는 작품성을 인정받은 뮤지컬이었던 것이다.
쓴 잔만 마신 것은 아니다. 축배도 들었다.
뮤지컬 ‘맘마미아’와 ‘시카고’, ‘아이다’ 등이 대박을 터트리며 흥행 보증 수표가 된다. ‘맘마미아’의 경우 10년 동안 1,400회 넘게 공연하며 누적 관객 수 180만 명, 1,000억 원이 넘는 매출을 올렸다.
그는 흥행이 불투명한 창작 뮤지컬을 올릴 경우 ‘맘마미아’나 ‘시카고’를 대기시켜 놓는다. 그가 계속해서 ‘미친 짓’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이들 작품이 있었기 때문이다.
박명성은 다시 한번 대형 창작 뮤지컬에 도전했다. ‘댄싱 섀도우’ 실패 이후 8년 만인 2015년, 조정래의 소설 ‘아리랑’을 뮤지컬로 올렸다.
3년여 준비 기간에 50억 원의 제작비가 투입됐다. 주변에서는 무슨 ‘똥배짱’이냐고 걱정했지만 연일 만원 사례였다.
그는 연극 제작에도 적극적이다. 2008년 연극 ‘침향’을 제작한 것을 계기로 연극계에 본격적으로 뛰어든다. ‘푸르른 날에’, ‘엄마를 부탁해’, ‘가을 소나타’, ‘렛미인’ 그리고 최근의 ‘레드’까지...
소극장 연극에서 벗어나 주로 중대형 연극 제작에 힘을 쏟았다. 무대 메커니즘을 살린 격조 있고 감동적인 고급 연극으로 중장년층 이상의 관객을 끌어들여 연극 저변을 확대하기 위해서이다.
박명성은 해마다 뮤지컬과 비슷한 수의 연극을 제작하고 있다. 그가 돈 안 되는 연극에 힘을 쏟는 건 연극을 잘 만드는 회사가 뮤지컬도 잘 만들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뮤지컬 ‘원스’를 들여올 때 국내 기획사들 간의 경쟁이 심했습니다. 그런 와중에 저희가 라이선스를 따낼 수 있었던 것은 저희 회사가 연극에도 강하다는 점, 다시 말해 우리가 ‘원스’의 연극적 요소를 섬세하게 살릴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을 높게 쳐줬기 때문입니다.”
박명성은 원래 연극쟁이였다. 극단에서 배우로 출발해 조연출, 기획 등 안 해본 것이 없다고 한다.
하지만 연기와 연출에 소질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 뒤로는 기획 제작자의 길로 들어 선다. 애당초 그의 DNA에는 연극이 자리잡고 있었다.
박명성은 최근 연극계 선배들을 모시고 큰 일을 치르고 있다. 한국 연극계의 발판을 마련한 고(故) 이해랑 선생(1916~1989)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연극 ‘햄릿’을 무대에 올린 것이다.
이름만으로도 쟁쟁한 전무송, 박정자, 손숙, 정동환, 김성녀, 유인촌, 윤석화, 손봉숙, 한명구 등이 함께 했다. 이들은 모두 ‘이해랑 연극상’ 수상자들로, 9명의 연극 인생을 더하면 4백 년이 넘는다.
이들을 한 자리에 모은 사람이 바로 박명성이다. 그는 프로듀서를 맡았다. 그도 ‘이해랑 연극상’ 프로듀서 부문 수상자이다.
박 감독은 “선생님들의 비위를 어떻게 다 맞추느냐”는 후배들의 질문에 웃으면서“모두가 다 장인들이라 알아서 잘 노시고, 알아서 다 연극하신다”며 “이번 무대가 침체되어 있는 연극계에 활기를 불어넣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내년에는 ‘빌리 엘리어트’를 무대에 올린다. 그의 말처럼 ‘간을 벌렁벌렁하게’ 만드는 명품 뮤지컬이다.
또 심청과 이중섭을 각각 소재로 하는 뮤지컬도 준비 중이다. 심청의 경우 용궁 장면에 영상과 홀로그램 등 한국이 자랑하는 IT기술을 활용할 계획이다.
미래의 문화 콘텐츠는 기술에 대한 감탄과 이야기에 대한 감동을 동시에 줄 수 있어야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뮤지컬 프로듀서는 단순히 공연만을 무대에 올리는 사람이 아니다. 재원 마련과 캐스팅, 극장 운영, 홍보까지 책임지는 ‘한 작품의 총사령관’이다. 한마디로 공연의 기획부터 쫑파티까지 챙기는 사람인 것이다.
그럼, 박명성에게 뮤지컬 프로듀서는 어떤 사람일까? ‘꿈을 꾸는 사람’이다. 그것도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먼 곳을 꿈꾸는 사람’이다.
그는 프로듀서가 꿈을 꾸지 않으면 한낱 장사꾼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고 염려한다. 그러면서 그 꿈도 혼자만 꾸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배우, 연출가, 안무가, 무대 디자이너, 작곡가 등 다른 사람과 함께 꿈을 꿔야 한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프로듀서는 꿈의 터전을 마련해주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박명성은 “사람이 기획이고 기획이 곧 사람이라며 모든 작품이나 콘텐츠는 사람에서 시작하여 사람으로 끝난다”고 강조한다. 사람이 전부라는 것이다.
‘뚝심’이라는 단어를 좋아하는 그는 오늘도 세상에 없는 무대를 만들기 위해, 사람에 대한 사랑으로 빛나는 무대를 향한 열정을 불태운다.
[문화人·In]
☞ ④ 잃어버린 언어를 그리는 ‘무진기행’ 김승옥
☞ ③ 아코디언 전설이 된 ‘대통령의 악사’
☞ ② 신명나게 ‘현실’을 비판한 작가, 오윤
☞ ① “서화에 생명 불어넣은 50년, 행복했어요”
아마 이 단어가 뮤지컬 프로듀서, 박명성의 내면을 가장 압축적으로 표현한 말일지도 모른다.
무모하리만큼 자신감 넘치는 도전! 목표가 정해지면 그는 질주한다. 그것이 성공으로 끝나든 실패로 끝나든 괘념치 않고...
뮤지컬 ‘아이다’
그의 과거 행적을 보면 미친 짓(?)을 많이 했다는 사실을 금방 알 수 있다.
국내 뮤지컬 프로듀서 1세대인 박명성은 지난 2003년 뮤지컬 ‘아이다’를 전격 수입한다. 무대 설치 기간만도 6주. 리허설도 해야 하니 공연 두 달 전부터 무대를 빌려야 했다. 총 제작비는 158억 원. 주변에선 하나같이 만류했다.
“저는 햄릿처럼 심사숙고하는 스타일이 아닙니다. 돈키호테처럼 일단 시작부터 하고 보죠. 미치지 않은 돈키호테는 아무런 매력이 없습니다. 프로듀서로 살고 있는 한 ‘박 감독, 또 일 저질렀네’라는 말을 듣고 싶습니다.”
뮤지컬 ‘댄싱 섀도우’
그의 배짱은 2007년 제작한 뮤지컬 ‘댄싱 섀도우’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차범석의 희곡 ‘산불’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7년의 준비 기간, 45억 원의 제작비가 들었다.
극본과 연출, 음악, 무대, 의상 등 모든 작업을 해외 유명 제작진에게 맡겼다. 여기에는 외국의 선진 노하우를 익히려는 의도가 숨어 있었다.
하지만 결과는 암담했다. 흥행 참패였다. 25억 원이나 적자를 봤다.
박명성은 “나 자신에 대한 실망감, 이렇게 공을 들인 작품에 호응해주지 않는 관객들에 대한 섭섭함, 무대에 대한 회의감 등이 한꺼번에 몰려왔다”고 회상한다.
‘댄싱 섀도우’는 흥행에는 실패했지만 그해 <한국뮤지컬대상> 5개 부문에서 상을 받는다. 흥행성보다는 작품성을 인정받은 뮤지컬이었던 것이다.
뮤지컬 ‘맘마미아’
쓴 잔만 마신 것은 아니다. 축배도 들었다.
뮤지컬 ‘맘마미아’와 ‘시카고’, ‘아이다’ 등이 대박을 터트리며 흥행 보증 수표가 된다. ‘맘마미아’의 경우 10년 동안 1,400회 넘게 공연하며 누적 관객 수 180만 명, 1,000억 원이 넘는 매출을 올렸다.
그는 흥행이 불투명한 창작 뮤지컬을 올릴 경우 ‘맘마미아’나 ‘시카고’를 대기시켜 놓는다. 그가 계속해서 ‘미친 짓’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이들 작품이 있었기 때문이다.
뮤지컬 ‘아리랑’
박명성은 다시 한번 대형 창작 뮤지컬에 도전했다. ‘댄싱 섀도우’ 실패 이후 8년 만인 2015년, 조정래의 소설 ‘아리랑’을 뮤지컬로 올렸다.
3년여 준비 기간에 50억 원의 제작비가 투입됐다. 주변에서는 무슨 ‘똥배짱’이냐고 걱정했지만 연일 만원 사례였다.
박명성이 기획 제작한 연극 제목
그는 연극 제작에도 적극적이다. 2008년 연극 ‘침향’을 제작한 것을 계기로 연극계에 본격적으로 뛰어든다. ‘푸르른 날에’, ‘엄마를 부탁해’, ‘가을 소나타’, ‘렛미인’ 그리고 최근의 ‘레드’까지...
소극장 연극에서 벗어나 주로 중대형 연극 제작에 힘을 쏟았다. 무대 메커니즘을 살린 격조 있고 감동적인 고급 연극으로 중장년층 이상의 관객을 끌어들여 연극 저변을 확대하기 위해서이다.
박명성은 해마다 뮤지컬과 비슷한 수의 연극을 제작하고 있다. 그가 돈 안 되는 연극에 힘을 쏟는 건 연극을 잘 만드는 회사가 뮤지컬도 잘 만들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뮤지컬 ‘원스’를 들여올 때 국내 기획사들 간의 경쟁이 심했습니다. 그런 와중에 저희가 라이선스를 따낼 수 있었던 것은 저희 회사가 연극에도 강하다는 점, 다시 말해 우리가 ‘원스’의 연극적 요소를 섬세하게 살릴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을 높게 쳐줬기 때문입니다.”
뮤지컬 프로듀서, 박명성
박명성은 원래 연극쟁이였다. 극단에서 배우로 출발해 조연출, 기획 등 안 해본 것이 없다고 한다.
하지만 연기와 연출에 소질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 뒤로는 기획 제작자의 길로 들어 선다. 애당초 그의 DNA에는 연극이 자리잡고 있었다.
연극 ‘햄릿’ 출연진들과 함께
박명성은 최근 연극계 선배들을 모시고 큰 일을 치르고 있다. 한국 연극계의 발판을 마련한 고(故) 이해랑 선생(1916~1989)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연극 ‘햄릿’을 무대에 올린 것이다.
이름만으로도 쟁쟁한 전무송, 박정자, 손숙, 정동환, 김성녀, 유인촌, 윤석화, 손봉숙, 한명구 등이 함께 했다. 이들은 모두 ‘이해랑 연극상’ 수상자들로, 9명의 연극 인생을 더하면 4백 년이 넘는다.
이들을 한 자리에 모은 사람이 바로 박명성이다. 그는 프로듀서를 맡았다. 그도 ‘이해랑 연극상’ 프로듀서 부문 수상자이다.
박 감독은 “선생님들의 비위를 어떻게 다 맞추느냐”는 후배들의 질문에 웃으면서“모두가 다 장인들이라 알아서 잘 노시고, 알아서 다 연극하신다”며 “이번 무대가 침체되어 있는 연극계에 활기를 불어넣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
내년에는 ‘빌리 엘리어트’를 무대에 올린다. 그의 말처럼 ‘간을 벌렁벌렁하게’ 만드는 명품 뮤지컬이다.
또 심청과 이중섭을 각각 소재로 하는 뮤지컬도 준비 중이다. 심청의 경우 용궁 장면에 영상과 홀로그램 등 한국이 자랑하는 IT기술을 활용할 계획이다.
미래의 문화 콘텐츠는 기술에 대한 감탄과 이야기에 대한 감동을 동시에 줄 수 있어야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뮤지컬 프로듀서는 단순히 공연만을 무대에 올리는 사람이 아니다. 재원 마련과 캐스팅, 극장 운영, 홍보까지 책임지는 ‘한 작품의 총사령관’이다. 한마디로 공연의 기획부터 쫑파티까지 챙기는 사람인 것이다.
그럼, 박명성에게 뮤지컬 프로듀서는 어떤 사람일까? ‘꿈을 꾸는 사람’이다. 그것도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먼 곳을 꿈꾸는 사람’이다.
그는 프로듀서가 꿈을 꾸지 않으면 한낱 장사꾼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고 염려한다. 그러면서 그 꿈도 혼자만 꾸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배우, 연출가, 안무가, 무대 디자이너, 작곡가 등 다른 사람과 함께 꿈을 꿔야 한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프로듀서는 꿈의 터전을 마련해주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박명성은 “사람이 기획이고 기획이 곧 사람이라며 모든 작품이나 콘텐츠는 사람에서 시작하여 사람으로 끝난다”고 강조한다. 사람이 전부라는 것이다.
‘뚝심’이라는 단어를 좋아하는 그는 오늘도 세상에 없는 무대를 만들기 위해, 사람에 대한 사랑으로 빛나는 무대를 향한 열정을 불태운다.
[문화人·In]
☞ ④ 잃어버린 언어를 그리는 ‘무진기행’ 김승옥
☞ ③ 아코디언 전설이 된 ‘대통령의 악사’
☞ ② 신명나게 ‘현실’을 비판한 작가, 오윤
☞ ① “서화에 생명 불어넣은 50년, 행복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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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人·In] ⑤ ‘브로드웨이 朴’의 세상에 없는 무대
-
- 입력 2016-07-13 14:11:26
‘불광불급(不狂不及)’,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한다.
아마 이 단어가 뮤지컬 프로듀서, 박명성의 내면을 가장 압축적으로 표현한 말일지도 모른다.
무모하리만큼 자신감 넘치는 도전! 목표가 정해지면 그는 질주한다. 그것이 성공으로 끝나든 실패로 끝나든 괘념치 않고...
그의 과거 행적을 보면 미친 짓(?)을 많이 했다는 사실을 금방 알 수 있다.
국내 뮤지컬 프로듀서 1세대인 박명성은 지난 2003년 뮤지컬 ‘아이다’를 전격 수입한다. 무대 설치 기간만도 6주. 리허설도 해야 하니 공연 두 달 전부터 무대를 빌려야 했다. 총 제작비는 158억 원. 주변에선 하나같이 만류했다.
“저는 햄릿처럼 심사숙고하는 스타일이 아닙니다. 돈키호테처럼 일단 시작부터 하고 보죠. 미치지 않은 돈키호테는 아무런 매력이 없습니다. 프로듀서로 살고 있는 한 ‘박 감독, 또 일 저질렀네’라는 말을 듣고 싶습니다.”
그의 배짱은 2007년 제작한 뮤지컬 ‘댄싱 섀도우’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차범석의 희곡 ‘산불’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7년의 준비 기간, 45억 원의 제작비가 들었다.
극본과 연출, 음악, 무대, 의상 등 모든 작업을 해외 유명 제작진에게 맡겼다. 여기에는 외국의 선진 노하우를 익히려는 의도가 숨어 있었다.
하지만 결과는 암담했다. 흥행 참패였다. 25억 원이나 적자를 봤다.
박명성은 “나 자신에 대한 실망감, 이렇게 공을 들인 작품에 호응해주지 않는 관객들에 대한 섭섭함, 무대에 대한 회의감 등이 한꺼번에 몰려왔다”고 회상한다.
‘댄싱 섀도우’는 흥행에는 실패했지만 그해 <한국뮤지컬대상> 5개 부문에서 상을 받는다. 흥행성보다는 작품성을 인정받은 뮤지컬이었던 것이다.
쓴 잔만 마신 것은 아니다. 축배도 들었다.
뮤지컬 ‘맘마미아’와 ‘시카고’, ‘아이다’ 등이 대박을 터트리며 흥행 보증 수표가 된다. ‘맘마미아’의 경우 10년 동안 1,400회 넘게 공연하며 누적 관객 수 180만 명, 1,000억 원이 넘는 매출을 올렸다.
그는 흥행이 불투명한 창작 뮤지컬을 올릴 경우 ‘맘마미아’나 ‘시카고’를 대기시켜 놓는다. 그가 계속해서 ‘미친 짓’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이들 작품이 있었기 때문이다.
박명성은 다시 한번 대형 창작 뮤지컬에 도전했다. ‘댄싱 섀도우’ 실패 이후 8년 만인 2015년, 조정래의 소설 ‘아리랑’을 뮤지컬로 올렸다.
3년여 준비 기간에 50억 원의 제작비가 투입됐다. 주변에서는 무슨 ‘똥배짱’이냐고 걱정했지만 연일 만원 사례였다.
그는 연극 제작에도 적극적이다. 2008년 연극 ‘침향’을 제작한 것을 계기로 연극계에 본격적으로 뛰어든다. ‘푸르른 날에’, ‘엄마를 부탁해’, ‘가을 소나타’, ‘렛미인’ 그리고 최근의 ‘레드’까지...
소극장 연극에서 벗어나 주로 중대형 연극 제작에 힘을 쏟았다. 무대 메커니즘을 살린 격조 있고 감동적인 고급 연극으로 중장년층 이상의 관객을 끌어들여 연극 저변을 확대하기 위해서이다.
박명성은 해마다 뮤지컬과 비슷한 수의 연극을 제작하고 있다. 그가 돈 안 되는 연극에 힘을 쏟는 건 연극을 잘 만드는 회사가 뮤지컬도 잘 만들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뮤지컬 ‘원스’를 들여올 때 국내 기획사들 간의 경쟁이 심했습니다. 그런 와중에 저희가 라이선스를 따낼 수 있었던 것은 저희 회사가 연극에도 강하다는 점, 다시 말해 우리가 ‘원스’의 연극적 요소를 섬세하게 살릴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을 높게 쳐줬기 때문입니다.”
박명성은 원래 연극쟁이였다. 극단에서 배우로 출발해 조연출, 기획 등 안 해본 것이 없다고 한다.
하지만 연기와 연출에 소질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 뒤로는 기획 제작자의 길로 들어 선다. 애당초 그의 DNA에는 연극이 자리잡고 있었다.
박명성은 최근 연극계 선배들을 모시고 큰 일을 치르고 있다. 한국 연극계의 발판을 마련한 고(故) 이해랑 선생(1916~1989)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연극 ‘햄릿’을 무대에 올린 것이다.
이름만으로도 쟁쟁한 전무송, 박정자, 손숙, 정동환, 김성녀, 유인촌, 윤석화, 손봉숙, 한명구 등이 함께 했다. 이들은 모두 ‘이해랑 연극상’ 수상자들로, 9명의 연극 인생을 더하면 4백 년이 넘는다.
이들을 한 자리에 모은 사람이 바로 박명성이다. 그는 프로듀서를 맡았다. 그도 ‘이해랑 연극상’ 프로듀서 부문 수상자이다.
박 감독은 “선생님들의 비위를 어떻게 다 맞추느냐”는 후배들의 질문에 웃으면서“모두가 다 장인들이라 알아서 잘 노시고, 알아서 다 연극하신다”며 “이번 무대가 침체되어 있는 연극계에 활기를 불어넣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내년에는 ‘빌리 엘리어트’를 무대에 올린다. 그의 말처럼 ‘간을 벌렁벌렁하게’ 만드는 명품 뮤지컬이다.
또 심청과 이중섭을 각각 소재로 하는 뮤지컬도 준비 중이다. 심청의 경우 용궁 장면에 영상과 홀로그램 등 한국이 자랑하는 IT기술을 활용할 계획이다.
미래의 문화 콘텐츠는 기술에 대한 감탄과 이야기에 대한 감동을 동시에 줄 수 있어야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뮤지컬 프로듀서는 단순히 공연만을 무대에 올리는 사람이 아니다. 재원 마련과 캐스팅, 극장 운영, 홍보까지 책임지는 ‘한 작품의 총사령관’이다. 한마디로 공연의 기획부터 쫑파티까지 챙기는 사람인 것이다.
그럼, 박명성에게 뮤지컬 프로듀서는 어떤 사람일까? ‘꿈을 꾸는 사람’이다. 그것도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먼 곳을 꿈꾸는 사람’이다.
그는 프로듀서가 꿈을 꾸지 않으면 한낱 장사꾼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고 염려한다. 그러면서 그 꿈도 혼자만 꾸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배우, 연출가, 안무가, 무대 디자이너, 작곡가 등 다른 사람과 함께 꿈을 꿔야 한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프로듀서는 꿈의 터전을 마련해주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박명성은 “사람이 기획이고 기획이 곧 사람이라며 모든 작품이나 콘텐츠는 사람에서 시작하여 사람으로 끝난다”고 강조한다. 사람이 전부라는 것이다.
‘뚝심’이라는 단어를 좋아하는 그는 오늘도 세상에 없는 무대를 만들기 위해, 사람에 대한 사랑으로 빛나는 무대를 향한 열정을 불태운다.
[문화人·In]
☞ ④ 잃어버린 언어를 그리는 ‘무진기행’ 김승옥
☞ ③ 아코디언 전설이 된 ‘대통령의 악사’
☞ ② 신명나게 ‘현실’을 비판한 작가, 오윤
☞ ① “서화에 생명 불어넣은 50년, 행복했어요”
아마 이 단어가 뮤지컬 프로듀서, 박명성의 내면을 가장 압축적으로 표현한 말일지도 모른다.
무모하리만큼 자신감 넘치는 도전! 목표가 정해지면 그는 질주한다. 그것이 성공으로 끝나든 실패로 끝나든 괘념치 않고...
그의 과거 행적을 보면 미친 짓(?)을 많이 했다는 사실을 금방 알 수 있다.
국내 뮤지컬 프로듀서 1세대인 박명성은 지난 2003년 뮤지컬 ‘아이다’를 전격 수입한다. 무대 설치 기간만도 6주. 리허설도 해야 하니 공연 두 달 전부터 무대를 빌려야 했다. 총 제작비는 158억 원. 주변에선 하나같이 만류했다.
“저는 햄릿처럼 심사숙고하는 스타일이 아닙니다. 돈키호테처럼 일단 시작부터 하고 보죠. 미치지 않은 돈키호테는 아무런 매력이 없습니다. 프로듀서로 살고 있는 한 ‘박 감독, 또 일 저질렀네’라는 말을 듣고 싶습니다.”
그의 배짱은 2007년 제작한 뮤지컬 ‘댄싱 섀도우’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차범석의 희곡 ‘산불’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7년의 준비 기간, 45억 원의 제작비가 들었다.
극본과 연출, 음악, 무대, 의상 등 모든 작업을 해외 유명 제작진에게 맡겼다. 여기에는 외국의 선진 노하우를 익히려는 의도가 숨어 있었다.
하지만 결과는 암담했다. 흥행 참패였다. 25억 원이나 적자를 봤다.
박명성은 “나 자신에 대한 실망감, 이렇게 공을 들인 작품에 호응해주지 않는 관객들에 대한 섭섭함, 무대에 대한 회의감 등이 한꺼번에 몰려왔다”고 회상한다.
‘댄싱 섀도우’는 흥행에는 실패했지만 그해 <한국뮤지컬대상> 5개 부문에서 상을 받는다. 흥행성보다는 작품성을 인정받은 뮤지컬이었던 것이다.
쓴 잔만 마신 것은 아니다. 축배도 들었다.
뮤지컬 ‘맘마미아’와 ‘시카고’, ‘아이다’ 등이 대박을 터트리며 흥행 보증 수표가 된다. ‘맘마미아’의 경우 10년 동안 1,400회 넘게 공연하며 누적 관객 수 180만 명, 1,000억 원이 넘는 매출을 올렸다.
그는 흥행이 불투명한 창작 뮤지컬을 올릴 경우 ‘맘마미아’나 ‘시카고’를 대기시켜 놓는다. 그가 계속해서 ‘미친 짓’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이들 작품이 있었기 때문이다.
박명성은 다시 한번 대형 창작 뮤지컬에 도전했다. ‘댄싱 섀도우’ 실패 이후 8년 만인 2015년, 조정래의 소설 ‘아리랑’을 뮤지컬로 올렸다.
3년여 준비 기간에 50억 원의 제작비가 투입됐다. 주변에서는 무슨 ‘똥배짱’이냐고 걱정했지만 연일 만원 사례였다.
그는 연극 제작에도 적극적이다. 2008년 연극 ‘침향’을 제작한 것을 계기로 연극계에 본격적으로 뛰어든다. ‘푸르른 날에’, ‘엄마를 부탁해’, ‘가을 소나타’, ‘렛미인’ 그리고 최근의 ‘레드’까지...
소극장 연극에서 벗어나 주로 중대형 연극 제작에 힘을 쏟았다. 무대 메커니즘을 살린 격조 있고 감동적인 고급 연극으로 중장년층 이상의 관객을 끌어들여 연극 저변을 확대하기 위해서이다.
박명성은 해마다 뮤지컬과 비슷한 수의 연극을 제작하고 있다. 그가 돈 안 되는 연극에 힘을 쏟는 건 연극을 잘 만드는 회사가 뮤지컬도 잘 만들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뮤지컬 ‘원스’를 들여올 때 국내 기획사들 간의 경쟁이 심했습니다. 그런 와중에 저희가 라이선스를 따낼 수 있었던 것은 저희 회사가 연극에도 강하다는 점, 다시 말해 우리가 ‘원스’의 연극적 요소를 섬세하게 살릴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을 높게 쳐줬기 때문입니다.”
박명성은 원래 연극쟁이였다. 극단에서 배우로 출발해 조연출, 기획 등 안 해본 것이 없다고 한다.
하지만 연기와 연출에 소질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 뒤로는 기획 제작자의 길로 들어 선다. 애당초 그의 DNA에는 연극이 자리잡고 있었다.
박명성은 최근 연극계 선배들을 모시고 큰 일을 치르고 있다. 한국 연극계의 발판을 마련한 고(故) 이해랑 선생(1916~1989)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연극 ‘햄릿’을 무대에 올린 것이다.
이름만으로도 쟁쟁한 전무송, 박정자, 손숙, 정동환, 김성녀, 유인촌, 윤석화, 손봉숙, 한명구 등이 함께 했다. 이들은 모두 ‘이해랑 연극상’ 수상자들로, 9명의 연극 인생을 더하면 4백 년이 넘는다.
이들을 한 자리에 모은 사람이 바로 박명성이다. 그는 프로듀서를 맡았다. 그도 ‘이해랑 연극상’ 프로듀서 부문 수상자이다.
박 감독은 “선생님들의 비위를 어떻게 다 맞추느냐”는 후배들의 질문에 웃으면서“모두가 다 장인들이라 알아서 잘 노시고, 알아서 다 연극하신다”며 “이번 무대가 침체되어 있는 연극계에 활기를 불어넣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내년에는 ‘빌리 엘리어트’를 무대에 올린다. 그의 말처럼 ‘간을 벌렁벌렁하게’ 만드는 명품 뮤지컬이다.
또 심청과 이중섭을 각각 소재로 하는 뮤지컬도 준비 중이다. 심청의 경우 용궁 장면에 영상과 홀로그램 등 한국이 자랑하는 IT기술을 활용할 계획이다.
미래의 문화 콘텐츠는 기술에 대한 감탄과 이야기에 대한 감동을 동시에 줄 수 있어야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뮤지컬 프로듀서는 단순히 공연만을 무대에 올리는 사람이 아니다. 재원 마련과 캐스팅, 극장 운영, 홍보까지 책임지는 ‘한 작품의 총사령관’이다. 한마디로 공연의 기획부터 쫑파티까지 챙기는 사람인 것이다.
그럼, 박명성에게 뮤지컬 프로듀서는 어떤 사람일까? ‘꿈을 꾸는 사람’이다. 그것도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먼 곳을 꿈꾸는 사람’이다.
그는 프로듀서가 꿈을 꾸지 않으면 한낱 장사꾼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고 염려한다. 그러면서 그 꿈도 혼자만 꾸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배우, 연출가, 안무가, 무대 디자이너, 작곡가 등 다른 사람과 함께 꿈을 꿔야 한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프로듀서는 꿈의 터전을 마련해주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박명성은 “사람이 기획이고 기획이 곧 사람이라며 모든 작품이나 콘텐츠는 사람에서 시작하여 사람으로 끝난다”고 강조한다. 사람이 전부라는 것이다.
‘뚝심’이라는 단어를 좋아하는 그는 오늘도 세상에 없는 무대를 만들기 위해, 사람에 대한 사랑으로 빛나는 무대를 향한 열정을 불태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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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용 기자 pjyrep@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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