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트 주소를 모르거나 유해 차단 및 접속 에러 시 위 주소를 기억하시어 접속해 주시기 바랍니다"
한 온라인 불법 도박 사이트의 광고 문구입니다. 사이트 운영자는 불법 도박 사이트 주소를 모르거나, 접속이 막히더라도 언제나 안전하게 접속 가능하다고 안내합니다.
불법 도박 업계에서는 '평생 도메인'이라고 부르는데, 한글 인터넷 주소(IP)를 이용하는 방식입니다. 예를 들어 '홍길동.com'이라는 불법 도박 사이트를 만들고, 접속 가능한 IP를 여러 개 만들어 두는 겁니다.
정부가 이 사이트의 IP를 찾아내 접속을 차단하더라도, 또 다른 IP를 이용해 접속하면 되기 때문에 '접속 차단' 조치를 너무나 쉽게 무력화할 수 있습니다.
온라인 불법 도박 업자 A 씨는 취재진과의 통화에서 "2~3만 원만 주면 알아서 접속을 우회해 주는 서비스가 있다"면서 "지금까지 사이트를 운영하면서 정부의 접속 차단 조치는 신경 써 본 적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런 업자들이 두려워하는 건 바로 '계좌 지급 정지'입니다. 온라인 불법 도박 사이트 이용자들이 보낸 돈을 모아둔 계좌에서 수익금을 인출하지 못할 경우 타격이 크기 때문입니다.
이른바 '돈줄'을 자르는 건데, 시민단체 도박없는학교와 KBS는 이 방법을 이용해 청소년 불법 도박을 뿌리 뽑아야 한다고 강조해 왔습니다.
실제로 도박없는학교가 불법 도박 사이트에 올라온 계좌를 수집해 해당 은행에 불법 거래인지 확인해 달라고 요청하자, 불법 도박 업자들이 모인 텔레그램 대화방에는 "미성년자 절대로 가입 받으면 안 된다", "계좌가 노출되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긴급 공지가 올라왔습니다.
지난 6월 대통령 직속 국민통합위원회는 불법 도박 이용 계좌에 대한 지급 정지 조치를 할 수 있는 법안을 마련하라고 범정부 TF에 권고했고, 현재 입법 논의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불법 도박 사이트 운영자들도 발등에 불이 떨어졌습니다. A 씨는 "사용하던 계좌가 지급 정지가 될 경우 새로 구하기도 어렵다"면서 "계좌 지급 정지 이야기가 나오면서 업체들도 나름의 대응책을 찾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습니다.
지난 6일 ‘청소년 불법 도박 근절’ 긴급 정책간담회에 참석한 온라인 불법 도박 피해 학생 학부모들
■"청소년 도박에 악용되는 계좌는 흉기"…은행권도 '공감대' 형성
온라인 불법 도박에 사용된 계좌에 대한 지급정지 조치를 하기 위해선 법을 개정해야 합니다. 현행법은 전화금융사기(보이스피싱)에 대해서만 수사기관이 요청하면 은행이 계좌를 동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6일 국회에서 열린 '청소년 불법 도박 근절' 긴급 정책 간담회에선 이 주제가 논의 테이블에 올랐습니다. 법 개정되기 전이라도 온라인 불법 도박 업자들의 '돈줄'을 끊어 낼 방안을 찾아보기 위한 자리였습니다.
간담회를 주최한 김승수 국민의힘 의원(문화체육관광위원)은 " 청소년들의 불법 도박을 방지하기 위해선 불법 도박 사이트가 이용하는 불법 계좌 지급 정지가 필수적"이라면서 "은행권이 지혜를 모아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조호연 도박없는학교 교장은 "불법 도박에 사용된 계좌는 다수에게 입금을 받는 '앞방통장'과 사이트 이용자에게 환전해 주는 '중간통장', 수익금을 모아두는 '뒷방통장'이 존재하는데, 입출금 형태와 규모를 보면 쉽게 파악할 수 있다"고 은행 관계자들에게 설명했습니다.
간담회에 참석한 학부모 B 씨는 "청소년 도박에 사용되는 계좌는 흉기나 다름없다"면서 "은행권에서 사회적 책임을 갖고 불법 도박 사용 계좌를 차단하면, 아이들의 접근이 힘들어지고 도박 업자들도 돈이 안 되는 일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신한·하나·기업·국민·우리·농협·수협은행, 카카오뱅크 관계자 역시 "온라인 불법 도박은 심각한 사회적 이슈"라면서 "은행권도 문제 해결에 함께해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냈습니다.
이들은 다만 "은행이 개별적으로 대응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면서 "은행연합회 등을 중심으로 공동 대응 방안을 마련하고,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조 교장은 "아직 법적 근거는 없지만 지급 정지 조치를 유연하게 적용하지 않는 은행의 계좌가 불법 도박 시장에서 대부분 유통되고 있다"면서 "청소년 온라인 불법 도박 문제는 충전부터 환전까지 모두 은행이 연관돼 있는 만큼 은행권이 적극적으로 나서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김승수 의원과 은행권 관계자들은 이번 논의 결과를 모아 정책 간담회를 이어 가기로 했습니다.
지난해 11월 출범한 범정부 TF의 결과물이 1년 가까이 나오지 않고 있고, 국회에선 의원 입법 형태로 '계좌 지급 정지' 논의가 막 시작된 상황에서 이번 간담회를 계기로 은행권이 선제적인 대책을 내놓을지 관심이 모입니다.
[연관 기사] ①‘총판’이 모으고 ‘불법OTT’가 뿌리고…‘청소년 도박’ 근절 언제? [탐사K]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7872360 ②교실 파고든 ‘학생 총판’…청소년 도박 근절, 언제쯤?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7876668 ③[단독] 불법 도박 통로된 ‘가상계좌’…금감원 조사 착수 [탐사K]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7882469 ④“간편한 무통장 송금”…청소년 불법 도박에 ‘악용’ [탐사K]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7898367 ⑤가상계좌 악용한 청소년 도박 확인…금감원 관리 강화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7916727 ⑥마음만 먹으면 중학생이 제작 ‘뚝딱’…불법 개설 업체도 활개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7956847 ⑦“‘불법 도박’ 이용 계좌 추적…은행에 ‘도박 방조상’ 수여할 것”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7958639 ⑧불법 온라인 도박 ‘자금줄’ 정조준…“‘계좌 동결’ 최우선 추진”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7999350 ⑨‘가상계좌’ 막히자 변칙 거래로 도박 유인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8004954 ⑩“은행들, 수익에 몰두해 불법 방조”…카뱅 “관리감독 강화”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8004955 ⑪“이 목소리는 누구?”…불법 도박 사이트 직원을 찾습니다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8011893 ⑫“어떤 방어도 불가”…불법 도박 사이트 ‘발칵’, 왜?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8023538 ⑬뛰는 ‘접속 차단’ 나는 ‘우회 접속’…“돈줄 차단 없인 무용지물”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8079937 ⑭“결국엔 다 잃는다”…성인도 청소년도 도박 중독 ‘심각’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80878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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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라인 불법 도박 ‘돈줄 차단’…“은행권이 먼저 나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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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24-11-09 09:00:19
"사이트 주소를 모르거나 유해 차단 및 접속 에러 시 위 주소를 기억하시어 접속해 주시기 바랍니다"
한 온라인 불법 도박 사이트의 광고 문구입니다. 사이트 운영자는 불법 도박 사이트 주소를 모르거나, 접속이 막히더라도 언제나 안전하게 접속 가능하다고 안내합니다.
불법 도박 업계에서는 '평생 도메인'이라고 부르는데, 한글 인터넷 주소(IP)를 이용하는 방식입니다. 예를 들어 '홍길동.com'이라는 불법 도박 사이트를 만들고, 접속 가능한 IP를 여러 개 만들어 두는 겁니다.
정부가 이 사이트의 IP를 찾아내 접속을 차단하더라도, 또 다른 IP를 이용해 접속하면 되기 때문에 '접속 차단' 조치를 너무나 쉽게 무력화할 수 있습니다.
온라인 불법 도박 업자 A 씨는 취재진과의 통화에서 "2~3만 원만 주면 알아서 접속을 우회해 주는 서비스가 있다"면서 "지금까지 사이트를 운영하면서 정부의 접속 차단 조치는 신경 써 본 적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런 업자들이 두려워하는 건 바로 '계좌 지급 정지'입니다. 온라인 불법 도박 사이트 이용자들이 보낸 돈을 모아둔 계좌에서 수익금을 인출하지 못할 경우 타격이 크기 때문입니다.
이른바 '돈줄'을 자르는 건데, 시민단체 도박없는학교와 KBS는 이 방법을 이용해 청소년 불법 도박을 뿌리 뽑아야 한다고 강조해 왔습니다.
실제로 도박없는학교가 불법 도박 사이트에 올라온 계좌를 수집해 해당 은행에 불법 거래인지 확인해 달라고 요청하자, 불법 도박 업자들이 모인 텔레그램 대화방에는 "미성년자 절대로 가입 받으면 안 된다", "계좌가 노출되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긴급 공지가 올라왔습니다.
지난 6월 대통령 직속 국민통합위원회는 불법 도박 이용 계좌에 대한 지급 정지 조치를 할 수 있는 법안을 마련하라고 범정부 TF에 권고했고, 현재 입법 논의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불법 도박 사이트 운영자들도 발등에 불이 떨어졌습니다. A 씨는 "사용하던 계좌가 지급 정지가 될 경우 새로 구하기도 어렵다"면서 "계좌 지급 정지 이야기가 나오면서 업체들도 나름의 대응책을 찾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습니다.
■"청소년 도박에 악용되는 계좌는 흉기"…은행권도 '공감대' 형성
온라인 불법 도박에 사용된 계좌에 대한 지급정지 조치를 하기 위해선 법을 개정해야 합니다. 현행법은 전화금융사기(보이스피싱)에 대해서만 수사기관이 요청하면 은행이 계좌를 동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6일 국회에서 열린 '청소년 불법 도박 근절' 긴급 정책 간담회에선 이 주제가 논의 테이블에 올랐습니다. 법 개정되기 전이라도 온라인 불법 도박 업자들의 '돈줄'을 끊어 낼 방안을 찾아보기 위한 자리였습니다.
간담회를 주최한 김승수 국민의힘 의원(문화체육관광위원)은 " 청소년들의 불법 도박을 방지하기 위해선 불법 도박 사이트가 이용하는 불법 계좌 지급 정지가 필수적"이라면서 "은행권이 지혜를 모아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조호연 도박없는학교 교장은 "불법 도박에 사용된 계좌는 다수에게 입금을 받는 '앞방통장'과 사이트 이용자에게 환전해 주는 '중간통장', 수익금을 모아두는 '뒷방통장'이 존재하는데, 입출금 형태와 규모를 보면 쉽게 파악할 수 있다"고 은행 관계자들에게 설명했습니다.
간담회에 참석한 학부모 B 씨는 "청소년 도박에 사용되는 계좌는 흉기나 다름없다"면서 "은행권에서 사회적 책임을 갖고 불법 도박 사용 계좌를 차단하면, 아이들의 접근이 힘들어지고 도박 업자들도 돈이 안 되는 일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신한·하나·기업·국민·우리·농협·수협은행, 카카오뱅크 관계자 역시 "온라인 불법 도박은 심각한 사회적 이슈"라면서 "은행권도 문제 해결에 함께해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냈습니다.
이들은 다만 "은행이 개별적으로 대응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면서 "은행연합회 등을 중심으로 공동 대응 방안을 마련하고,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조 교장은 "아직 법적 근거는 없지만 지급 정지 조치를 유연하게 적용하지 않는 은행의 계좌가 불법 도박 시장에서 대부분 유통되고 있다"면서 "청소년 온라인 불법 도박 문제는 충전부터 환전까지 모두 은행이 연관돼 있는 만큼 은행권이 적극적으로 나서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김승수 의원과 은행권 관계자들은 이번 논의 결과를 모아 정책 간담회를 이어 가기로 했습니다.
지난해 11월 출범한 범정부 TF의 결과물이 1년 가까이 나오지 않고 있고, 국회에선 의원 입법 형태로 '계좌 지급 정지' 논의가 막 시작된 상황에서 이번 간담회를 계기로 은행권이 선제적인 대책을 내놓을지 관심이 모입니다.
[연관 기사] ①‘총판’이 모으고 ‘불법OTT’가 뿌리고…‘청소년 도박’ 근절 언제? [탐사K]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7872360 ②교실 파고든 ‘학생 총판’…청소년 도박 근절, 언제쯤?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7876668 ③[단독] 불법 도박 통로된 ‘가상계좌’…금감원 조사 착수 [탐사K]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7882469 ④“간편한 무통장 송금”…청소년 불법 도박에 ‘악용’ [탐사K]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7898367 ⑤가상계좌 악용한 청소년 도박 확인…금감원 관리 강화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7916727 ⑥마음만 먹으면 중학생이 제작 ‘뚝딱’…불법 개설 업체도 활개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7956847 ⑦“‘불법 도박’ 이용 계좌 추적…은행에 ‘도박 방조상’ 수여할 것”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7958639 ⑧불법 온라인 도박 ‘자금줄’ 정조준…“‘계좌 동결’ 최우선 추진”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7999350 ⑨‘가상계좌’ 막히자 변칙 거래로 도박 유인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8004954 ⑩“은행들, 수익에 몰두해 불법 방조”…카뱅 “관리감독 강화”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8004955 ⑪“이 목소리는 누구?”…불법 도박 사이트 직원을 찾습니다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8011893 ⑫“어떤 방어도 불가”…불법 도박 사이트 ‘발칵’, 왜?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8023538 ⑬뛰는 ‘접속 차단’ 나는 ‘우회 접속’…“돈줄 차단 없인 무용지물”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8079937 ⑭“결국엔 다 잃는다”…성인도 청소년도 도박 중독 ‘심각’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80878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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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민 기자 youngmin@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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