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혈 이라크 청년’ 동계오륜 도전기

입력 2006.01.25 (13:59) 수정 2006.01.25 (14:05)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동계올림픽 출전을 위해 다섯 차례나 출전종목을 바꾼 이라크 \'열혈청년\'의 눈물겨운 도전기가 전 세계 스포츠 팬들의 심금을 울리고 있다.
25일 로이터통신은 \'이라크 학생의 사라진 올림픽 꿈\'이라는 기사를 통해 이라크 스켈레톤 선수 파이잘 파이잘[25]을 집중 조명했다.
파이잘은 지난 22일 독일 쾨니히세에서 막을 내린 2006 국제봅슬레이연맹[FIBT] 챌린지컵 남자 스켈레턴에 출전해 종합 14위를 차지하면서 8위까지 주어지는 토리노 동계올림픽 출전권을 따내는 데 실패했다.
파이잘은 1차 시기에서 최고 시속 120㎞를 넘는 스피드로 9위에 올라 내심 올림픽 티켓 확보를 꿈꿨지만 갑작스레 내린 눈으로 나머지 시기에서 스피드 조절에 실패, 결국 14위로 레이스를 끝냈다.
파이잘은 지난 2004 아테네 하계올림픽 때 일부 이라크 선수들이 받았던 \'와일드카드\'에 마지막 희망을 걸고 있지만 그 역시 가능성이 희박한 상태다.
조국 이라크를 떠나 호주 시드니대학에서 유학 중인 파이잘이 동계올림픽 출전의 꿈을 키우게 된 계기는 1998년 TV를 통해 나가노 동계올림픽 개막식을 지켜본 뒤부터다.
파이잘은 \"나가노 동계올림픽 개막식을 보면서 이라크의 입장을 기다리고 있었지만 출전선수가 아무도 없다는 것을 알고 놀랐었다\"며 \"이후 이라크가 동계올림픽 출전권을 얻는 게 나의 인생목표가 됐다\"고 밝혔다.
이후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토목기사로 일하는 아버지의 후원을 받아 1998년부터 최근까지 약 5만 유로[약 6천만 원]을 들여 올림픽 진출의 꿈을 키워왔다.
파이잘의 첫 올림픽 도전 종목은 스켈레톤이 아닌 알파인 스키였다.
2001년 파이잘은 시드니에서 7시간 떨어진 스키 리조트에서 스키를 시작했지만 실력이 늘지 않자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스노보드로 종목을 바꾸는 첫 모험을 단행했다.
그러나 기준기록에 못미치는 엉성한 실력 때문에 올림픽 출전에 실패한 파이잘은 스피드스케이팅 선수로 세 번째 변신을 시도했다.
하지만 국제빙상연맹[ISU]이 이라크에 지난 5년 동안 아이스링크가 한 곳도 없다는 이유로 파이잘에게 선수자격을 주지 않아 이 또한 포기해야 했다.
여기에 지난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으로 생활비를 송금받지 못해 파이잘은 호주에서 잠시동안 노숙자 생활까지 해야 했다.
파이잘은 2004년 스피드스케이팅의 꿈을 접고 스키점프 선수로 네 번째 변신을 노렸지만 스켈레톤에 도전해보라는 주변의 권유를 받고 마침내 마지막 종착역을 찾게 됐다.
스켈레톤에 입문한 파이잘은 2004년 미국스켈레톤협회 도움으로 오스트리아에서 4주간 훈련을 받은 뒤 호주로 돌아가 체력훈련과 스타트 훈련에 열중했다.
결국 올시즌 월드컵과 챌린지컵에서 올림픽 출전자격을 얻지 못한 파이잘은 지난 5년에 걸친 혼신을 바친 올림픽 출전의 꿈을 날리고 말았다.
파이잘은 \"비록 동계올림픽 개막식에 이라크 국기를 들고 입장하는 꿈은 이루지 못했지만 이라크의 어린이들에게 \'불가능은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열혈 이라크 청년’ 동계오륜 도전기
    • 입력 2006-01-25 13:59:30
    • 수정2006-01-25 14:05:30
    연합뉴스
동계올림픽 출전을 위해 다섯 차례나 출전종목을 바꾼 이라크 \'열혈청년\'의 눈물겨운 도전기가 전 세계 스포츠 팬들의 심금을 울리고 있다. 25일 로이터통신은 \'이라크 학생의 사라진 올림픽 꿈\'이라는 기사를 통해 이라크 스켈레톤 선수 파이잘 파이잘[25]을 집중 조명했다. 파이잘은 지난 22일 독일 쾨니히세에서 막을 내린 2006 국제봅슬레이연맹[FIBT] 챌린지컵 남자 스켈레턴에 출전해 종합 14위를 차지하면서 8위까지 주어지는 토리노 동계올림픽 출전권을 따내는 데 실패했다. 파이잘은 1차 시기에서 최고 시속 120㎞를 넘는 스피드로 9위에 올라 내심 올림픽 티켓 확보를 꿈꿨지만 갑작스레 내린 눈으로 나머지 시기에서 스피드 조절에 실패, 결국 14위로 레이스를 끝냈다. 파이잘은 지난 2004 아테네 하계올림픽 때 일부 이라크 선수들이 받았던 \'와일드카드\'에 마지막 희망을 걸고 있지만 그 역시 가능성이 희박한 상태다. 조국 이라크를 떠나 호주 시드니대학에서 유학 중인 파이잘이 동계올림픽 출전의 꿈을 키우게 된 계기는 1998년 TV를 통해 나가노 동계올림픽 개막식을 지켜본 뒤부터다. 파이잘은 \"나가노 동계올림픽 개막식을 보면서 이라크의 입장을 기다리고 있었지만 출전선수가 아무도 없다는 것을 알고 놀랐었다\"며 \"이후 이라크가 동계올림픽 출전권을 얻는 게 나의 인생목표가 됐다\"고 밝혔다. 이후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토목기사로 일하는 아버지의 후원을 받아 1998년부터 최근까지 약 5만 유로[약 6천만 원]을 들여 올림픽 진출의 꿈을 키워왔다. 파이잘의 첫 올림픽 도전 종목은 스켈레톤이 아닌 알파인 스키였다. 2001년 파이잘은 시드니에서 7시간 떨어진 스키 리조트에서 스키를 시작했지만 실력이 늘지 않자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스노보드로 종목을 바꾸는 첫 모험을 단행했다. 그러나 기준기록에 못미치는 엉성한 실력 때문에 올림픽 출전에 실패한 파이잘은 스피드스케이팅 선수로 세 번째 변신을 시도했다. 하지만 국제빙상연맹[ISU]이 이라크에 지난 5년 동안 아이스링크가 한 곳도 없다는 이유로 파이잘에게 선수자격을 주지 않아 이 또한 포기해야 했다. 여기에 지난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으로 생활비를 송금받지 못해 파이잘은 호주에서 잠시동안 노숙자 생활까지 해야 했다. 파이잘은 2004년 스피드스케이팅의 꿈을 접고 스키점프 선수로 네 번째 변신을 노렸지만 스켈레톤에 도전해보라는 주변의 권유를 받고 마침내 마지막 종착역을 찾게 됐다. 스켈레톤에 입문한 파이잘은 2004년 미국스켈레톤협회 도움으로 오스트리아에서 4주간 훈련을 받은 뒤 호주로 돌아가 체력훈련과 스타트 훈련에 열중했다. 결국 올시즌 월드컵과 챌린지컵에서 올림픽 출전자격을 얻지 못한 파이잘은 지난 5년에 걸친 혼신을 바친 올림픽 출전의 꿈을 날리고 말았다. 파이잘은 \"비록 동계올림픽 개막식에 이라크 국기를 들고 입장하는 꿈은 이루지 못했지만 이라크의 어린이들에게 \'불가능은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2024 파리 올림픽 배너 이미지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