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환경수업은 자도 된다?’…고3 자습과목 전락한 속사정

입력 2021.03.08 (08:00) 수정 2021.03.08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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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성 / 인천남고 3학년
"환경 교육을 하는 학교 학생들이 부러웠어요. 그런데 학생들은 (다른 의미로) 환경 수업이 좋다고 이야기해요. 왜냐면 '쉬는 시간, 자도 되는 시간, 자습해도 되는 시간'으로 환경 수업 시간이 사용되다 보니까…"

인천남고등학교 3학년 박현성 학생이 기자에게 한 말입니다. 입시 스트레스에 지친 학생들에게 환경 수업은 쉬거나 자거나 자습하는, 이른바 '편한' 시간으로 자리 잡았다고 합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의 선택과목인 '환경'이 처한 현실입니다.

다른 학교는 어떨까요. 환경 교과목을 채택한 학교들에 전화를 돌려봤습니다. 몇 가지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주로 고등학교 3학년에 환경 수업을 배치했다는 점. 또 담당 교사가 전부 환경 전공이 아닌 다른 과목 교사란 점이었습니다.

경기 A 고등학교
"고3 1, 2학기에 수업을 합니다. 환경 전공 선생님은 거의 없습니다. 어떤 과목 선생님도 (환경 과목을) 가르칠 수 있습니다."

부산 B 고등학교
"고3 교양과목으로 환경은 한 반 정도 있습니다. 상치 교사(비전공 교사)로 운영하고 있고, 교양과목은 교원 수급이 잘 안 됩니다.

■ 중·고교 8.4%만 '환경' 과목 채택…10년간 계속 줄어

환경 과목은 1996년부터 정식 교과로 채택됐습니다. 25년이 지났지만, 동료 교사들로부터 "어떤 선생님도 가르칠 수 있다."라는 답을 듣는 게 현실입니다.

사실, 환경 과목을 채택한 학교도 드뭅니다. 환경부 자료인 '대한민국 환경교육(2020)'을 보면, 전국 중·고교 5,591개 학교 중에 환경 교과를 선택한 학교는 2018년 기준 470개 곳, 비율은 8.4%에 그칩니다. 2007년에는 환경 과목을 선택한 학교가 1,077곳으로 20.6%였는데 점점 줄고 있습니다. 기후 위기와 환경 문제는 더 중요해졌지만, 환경 과목은 고사 위기입니다.

왜 그럴까요.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서울시의 '환경 전공' 교사가 딱 1명이라며, 입시에 환경 과목이 들어가지 않아 학부모들이 달가워하지 않은 분위기가 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연관 기사] [뉴스9] ‘그린’만 붙이면 기후 교육의 미래?…환경 과목도 찬밥 신세 (2021.3.5)
http://news.kbs.co.kr/news/view.do?ncd=5082131

■ 2009년부터 신규 환경 교사 없어…'학교 환경수업 침체'

 신경준 서울 숭문중학교 교사 신경준 서울 숭문중학교 교사

서울시에 딱 한 명뿐이라는 환경 교사를 만나 봤습니다. 신경준 서울 숭문중학교 교사입니다. 신 선생님은 전공과 무관한 교사들이 대부분 환경 수업을 맡고 있다며, 교육 당국이 환경 교사를 10년 넘게 뽑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신경준 / 서울 숭문중 환경 교사
"2009년부터 지난해까지 신규 채용이 없었어요. 이유는 교육과정이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2009년 개정 교육과정에서 집중이수제를 도입해 환경 과목 선택이 줄기 시작했고요. 2014년 자유학기제를 하면서 체험활동 위주 편성이 늘어 선택과목이 그만큼 줄었습니다."

정부도 이 같은 이유로 학교 환경교육이 침체했다고 인정합니다.

지난해 발표한 '녹색전환 촉진을 위한 국민환경역량 제고방안' 보고서를 보면, 환경 과목을 선택한 학교의 79%는 전공과 무관한 교사(상치 교사)가 가르치고, 전체 학교의 1.8%만 환경 전담 교사(전공, 부전공 포함)가 수업하고 있습니다.

환경 교사들은 환경을 전공한 교사들은 전국에 걸쳐 28명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또한, 전문 교원이 없으니 수업도 제대로 안 되는 게 당연하다고 말합니다.

 취재진이 만난 환경 교사. 안재정 경기 부천 송내고 교사, 고성원 전북 무주 푸른꿈고 교사, 신경준 서울 숭문중 교사(왼쪽부터) 취재진이 만난 환경 교사. 안재정 경기 부천 송내고 교사, 고성원 전북 무주 푸른꿈고 교사, 신경준 서울 숭문중 교사(왼쪽부터)

고성원 / 전북 무주 푸른꿈고 환경 교사
"제 생각엔 환경교사가 점점 신규임용이 되지 않으면서 뽑지도 않고, 가르칠 사람이 없어서 (환경 과목을) 선택한 학교가 줄어들지 않았나 싶어요. 가르치는 교사가 적어지다 보니까 아이들이 교육 기회를 점점 잃어가는 것 같고…"

안재정 / 경기 부천 송내고 환경 교사
"전문성이 없는 교사가 그 수업을 맡는다고 쳤을 때, 교사 입장에선 가르치는 게 괴롭고, 학생들에게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어요. 그러면 너도나도 피해를 안 보는 방식을 택하죠. 그게 자습인 거죠. 아이들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고, 나에게도 피해를 적게 받는…"

■ "자기와 환경 문제가 연결됐다고 생각하면, 행동으로 이어져요."

꼭 '과목' 하나에만 한정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교사들은 학교가 미래세대에게 환경 지식부터 실천까지 통합적으로 환경 교육을 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그래야 기후위기를 조금이나마 늦추고, 대응할 길이 열릴 거라는 겁니다. 특히 어렸을 때부터 시작해야 효과가 크다고 했습니다.

고성원 / 전북 무주 푸른꿈고 환경 교사
"분명히 환경교육을 받은 친구들은 환경에 대한 고민의 시간을 갖는 것 같아요. 자기와 연계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다음에 행동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해요."

안재정 / 경기 부천 송내고 환경 교사
"환경 교육을 받은 아이들과 안 받은 아이들의 차이는 존재하긴 해요. 생명을 다루는 게 좀 달라지는 것 같아요. 최소한 함부로 죽이진 말고, 내가 소비하는 게 누군가의 희생으로부터 온다는 인식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정부는 2050년까지 탄소의 실질 배출량을 '0'으로 맞추겠다는 탄소 중립 정책을 추진 중입니다. 부처별로 다양한 정책들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교육부도 마찬가지입니다. 낡은 학교 건물과 시설을 친환경, 에너지 고효율로 바꾸는 '그린스마트 스쿨' 사업을 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그 공간과 시설에서 어떤 콘텐츠를 갖고 '교육'할 것이냐에 대한 논의는 너무도 부족합니다. 정부가 목표한 대로 '탄소 중립'을 달성하려면, 앞으로 이 사회 를 이끌어 갈 미래세대의 교육 문제를 지금보다 훨씬 더 중요하게 여겨야 하는 것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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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환경수업은 자도 된다?’…고3 자습과목 전락한 속사정
    • 입력 2021-03-08 08:00:55
    • 수정2021-03-08 16:10:51
    취재후·사건후

박현성 / 인천남고 3학년
"환경 교육을 하는 학교 학생들이 부러웠어요. 그런데 학생들은 (다른 의미로) 환경 수업이 좋다고 이야기해요. 왜냐면 '쉬는 시간, 자도 되는 시간, 자습해도 되는 시간'으로 환경 수업 시간이 사용되다 보니까…"

인천남고등학교 3학년 박현성 학생이 기자에게 한 말입니다. 입시 스트레스에 지친 학생들에게 환경 수업은 쉬거나 자거나 자습하는, 이른바 '편한' 시간으로 자리 잡았다고 합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의 선택과목인 '환경'이 처한 현실입니다.

다른 학교는 어떨까요. 환경 교과목을 채택한 학교들에 전화를 돌려봤습니다. 몇 가지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주로 고등학교 3학년에 환경 수업을 배치했다는 점. 또 담당 교사가 전부 환경 전공이 아닌 다른 과목 교사란 점이었습니다.

경기 A 고등학교
"고3 1, 2학기에 수업을 합니다. 환경 전공 선생님은 거의 없습니다. 어떤 과목 선생님도 (환경 과목을) 가르칠 수 있습니다."

부산 B 고등학교
"고3 교양과목으로 환경은 한 반 정도 있습니다. 상치 교사(비전공 교사)로 운영하고 있고, 교양과목은 교원 수급이 잘 안 됩니다.

■ 중·고교 8.4%만 '환경' 과목 채택…10년간 계속 줄어

환경 과목은 1996년부터 정식 교과로 채택됐습니다. 25년이 지났지만, 동료 교사들로부터 "어떤 선생님도 가르칠 수 있다."라는 답을 듣는 게 현실입니다.

사실, 환경 과목을 채택한 학교도 드뭅니다. 환경부 자료인 '대한민국 환경교육(2020)'을 보면, 전국 중·고교 5,591개 학교 중에 환경 교과를 선택한 학교는 2018년 기준 470개 곳, 비율은 8.4%에 그칩니다. 2007년에는 환경 과목을 선택한 학교가 1,077곳으로 20.6%였는데 점점 줄고 있습니다. 기후 위기와 환경 문제는 더 중요해졌지만, 환경 과목은 고사 위기입니다.

왜 그럴까요.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서울시의 '환경 전공' 교사가 딱 1명이라며, 입시에 환경 과목이 들어가지 않아 학부모들이 달가워하지 않은 분위기가 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연관 기사] [뉴스9] ‘그린’만 붙이면 기후 교육의 미래?…환경 과목도 찬밥 신세 (2021.3.5)
http://news.kbs.co.kr/news/view.do?ncd=5082131

■ 2009년부터 신규 환경 교사 없어…'학교 환경수업 침체'

 신경준 서울 숭문중학교 교사
서울시에 딱 한 명뿐이라는 환경 교사를 만나 봤습니다. 신경준 서울 숭문중학교 교사입니다. 신 선생님은 전공과 무관한 교사들이 대부분 환경 수업을 맡고 있다며, 교육 당국이 환경 교사를 10년 넘게 뽑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신경준 / 서울 숭문중 환경 교사
"2009년부터 지난해까지 신규 채용이 없었어요. 이유는 교육과정이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2009년 개정 교육과정에서 집중이수제를 도입해 환경 과목 선택이 줄기 시작했고요. 2014년 자유학기제를 하면서 체험활동 위주 편성이 늘어 선택과목이 그만큼 줄었습니다."

정부도 이 같은 이유로 학교 환경교육이 침체했다고 인정합니다.

지난해 발표한 '녹색전환 촉진을 위한 국민환경역량 제고방안' 보고서를 보면, 환경 과목을 선택한 학교의 79%는 전공과 무관한 교사(상치 교사)가 가르치고, 전체 학교의 1.8%만 환경 전담 교사(전공, 부전공 포함)가 수업하고 있습니다.

환경 교사들은 환경을 전공한 교사들은 전국에 걸쳐 28명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또한, 전문 교원이 없으니 수업도 제대로 안 되는 게 당연하다고 말합니다.

 취재진이 만난 환경 교사. 안재정 경기 부천 송내고 교사, 고성원 전북 무주 푸른꿈고 교사, 신경준 서울 숭문중 교사(왼쪽부터)
고성원 / 전북 무주 푸른꿈고 환경 교사
"제 생각엔 환경교사가 점점 신규임용이 되지 않으면서 뽑지도 않고, 가르칠 사람이 없어서 (환경 과목을) 선택한 학교가 줄어들지 않았나 싶어요. 가르치는 교사가 적어지다 보니까 아이들이 교육 기회를 점점 잃어가는 것 같고…"

안재정 / 경기 부천 송내고 환경 교사
"전문성이 없는 교사가 그 수업을 맡는다고 쳤을 때, 교사 입장에선 가르치는 게 괴롭고, 학생들에게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어요. 그러면 너도나도 피해를 안 보는 방식을 택하죠. 그게 자습인 거죠. 아이들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고, 나에게도 피해를 적게 받는…"

■ "자기와 환경 문제가 연결됐다고 생각하면, 행동으로 이어져요."

꼭 '과목' 하나에만 한정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교사들은 학교가 미래세대에게 환경 지식부터 실천까지 통합적으로 환경 교육을 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그래야 기후위기를 조금이나마 늦추고, 대응할 길이 열릴 거라는 겁니다. 특히 어렸을 때부터 시작해야 효과가 크다고 했습니다.

고성원 / 전북 무주 푸른꿈고 환경 교사
"분명히 환경교육을 받은 친구들은 환경에 대한 고민의 시간을 갖는 것 같아요. 자기와 연계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다음에 행동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해요."

안재정 / 경기 부천 송내고 환경 교사
"환경 교육을 받은 아이들과 안 받은 아이들의 차이는 존재하긴 해요. 생명을 다루는 게 좀 달라지는 것 같아요. 최소한 함부로 죽이진 말고, 내가 소비하는 게 누군가의 희생으로부터 온다는 인식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정부는 2050년까지 탄소의 실질 배출량을 '0'으로 맞추겠다는 탄소 중립 정책을 추진 중입니다. 부처별로 다양한 정책들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교육부도 마찬가지입니다. 낡은 학교 건물과 시설을 친환경, 에너지 고효율로 바꾸는 '그린스마트 스쿨' 사업을 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그 공간과 시설에서 어떤 콘텐츠를 갖고 '교육'할 것이냐에 대한 논의는 너무도 부족합니다. 정부가 목표한 대로 '탄소 중립'을 달성하려면, 앞으로 이 사회 를 이끌어 갈 미래세대의 교육 문제를 지금보다 훨씬 더 중요하게 여겨야 하는 것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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