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금강송 고사는 기후변화의 경고입니다”

입력 2021.04.05 (07:00) 수정 2021.04.15 (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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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소나무숲 사이로 군데군데 갈색 지점들이 눈에 띕니다. 앙상한 흰 나무들도 볼 수 있습니다. 동영상 속 이 나무들은 단풍나무도, 잎이 떨어진 활엽수도 아닙니다. 말라죽은 소나무입니다.

남부지방산림청과 시민단체인 녹색연합이 경북 울진 일대 금강송 군락지를 촬영한 영상입니다.

■붉은 소나무는 '최근 고사', 하얀 소나무는 '오래전 고사'

황갈색으로 변한 소나무들은 최근 1~2년 사이에 죽은 금강송입니다. 수분이 부족해 나무 맨 위부터 누렇게 변하기 시작하고, 껍질과 가지도 차례로 떨어집니다. 하얀색 나무들은 이미 죽은 지 5년 이상 된 소나무입니다.

금강송(금강소나무)은 소나무의 한 종류로, 재질이 단단하고 곧게 자라 숭례문 등 문화재 복원 목재로 쓰입니다. 국내 최대 금강송 서식지인 경북 울진과 봉화 일대의 1만 7천여 헥타르(ha)는 '보호구역'으로 지정돼 있기도 합니다.

'국내 최대 금강송 서식지에서 소나무들이 말라 죽고 있고, 시간이 갈수록 더 늘고 있다.'라는 소식을 접하고 지난달 말, 현장을 찾았습니다.

[연관기사]금강송은 왜 말라죽었을까…소나무로 본 기후위기 (2021.4.4)
http://news.kbs.co.kr/news/view.do?ncd=5154664

■금강송은 왜 죽나?…겨울 온도 상승으로 호흡↑ 수분↓

왜 금강송들은 말라 죽고 있는 걸까요. 현장에서 만난 산림청 관계자들은 '기후변화'를 이유로 꼽았습니다.

기후변화로 겨울과 봄철 기온이 점점 오르면서, 겨울과 봄철 소나무의 호흡량도 이전보다 훨씬 늘어납니다. 반면, 예전보다 겨울철에 내리는 눈은 적어지고, 봄철 이상고온 현상도 잦아지면서 나무가 필요로 하는 수분은 점점 부족해지고 있습니다. 수분 등 영양 공급은 적은데, 호흡으로 에너지 소비가 많아지니 이렇게 말라 죽고 있다는 겁니다.

실제로 국립산림과학원의 조사 결과, 최근 20년간 경북 울진·봉화 지역의 1월 기온(아래 첫 번째 그래픽)은 계속 상승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습니다. 또 이 지역의 3~5월의 가뭄 스트레스 지수(아래 두 번째 그래픽)도 계속 올라간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금강송이 말라죽기 시작한 건 이미 10년이 넘었습니다. 처음 발견된 건 2010년 정도입니다. 이후 해마다 금강송 고사 지역이 늘고 있습니다. 남부지방산림청과 녹색연합이 조사해 보니, 지난해에 죽은 금강송 군락만 30곳이 넘습니다.

■주민들 피해는?…송이버섯 채취 못 하고, 산불 걱정↑

기후변화로 소나무가 말라죽고 있다는걸, 주민들도 체감하고 있을까요?

태어나서 지금까지 이 지역에만 살았다는 한원기 씨(87세)는 금강송 고사가 확실히 날씨와 관련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겨울에 너무 따뜻하고, 눈이 예전처럼 많이 오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로 인해 봄철 산불도 더 많이, 더 크게 난다고 걱정했습니다.

한원기 / 경북 울진군 금강송면 소광리 주민
"예전에는 산불이 나도 금방 껐는데, 요즘에는 헬기 떠도 금방 못 끄잖아요. 땅이 너무 말랐잖아요.
날씨가 너무 따뜻해. 진달래라고 하는데 우리말로는 참꽃이라고 하거든요. 아직 참꽃이 필 시기가 아닌데 다 피었다고. 10일 정도 빠른 거 같아. 지금도 약초 심으려면 10일에서 1주일 있어야 심는데 하마 다 심어버렸어요."

"눈도 안 옵니다. 전에는 많이 올 땐 1m 20~30cm 정도 왔는데, 요즘에는 15cm 정도 옵니다. 눈이 많이 안 오고 있다는 건 나무 밑에 습기가 없다는 이야기죠."

기후변화는 주민들의 생계에도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울진군 금강송면 소광2리 마을 이장인 최수목 씨는 금강송이 말라죽으면서, 마을 주민들의 주요 수입원이었던 송이버섯 채취가 어려워졌다고 말합니다. 소나무 밑에서 송이버섯이 번식하기 때문입니다. 최 씨 역시 금강송이 죽는 이유가 날씨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최수목 / 울진군 금강송면 소광2리
"(소나무 고사가) 버섯에 치명타죠. 송이 채취가 줄었고, 금액으로 3분의 2 이상 줄었어요. 죽은 소나무 지역을 보면 '아휴, 또 송이 산이 없어졌구나!'라고 말해요. 동네 주민들끼리 모이면 '몇 년생 정도 되는 소나무가 죽었더라.'라고 이야기하는데 마음이 상당히 슬퍼요."

■앞으로 어떻게?…나무 스트레스 줄이고 면밀한 조사 해야


그렇다면 소나무 고사를 막을 방법은 없을까요?

임종환 국립산림과학원 기후변화생태연구과장은 "나무들이 빽빽한 경우 수분 등을 확보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해, 집단으로 고사하는 경우가 많다."라면서 "숲의 밀도 관리 등 노력이 필요하다."라고 말합니다.

실제로 국립산림과학원은 소나무들이 수분 경쟁 스트레스를 덜 받도록 '개체 수 조정' 등의 시범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고사 지역에서 살아남은 소나무들의 종자를 채취해 숲을 조성하는 계획도 세우고 있습니다.

기후변화가 장기적인 환경의 변화인 만큼, 좀 더 면밀한 관찰을 시작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서재철 녹색연합 전문위원은 "(금강송 고사 지역이) 높은 고도에서 낮은 곳으로 넓어지는 추세이기 때문에 전국적으로 고사 현상이 퍼질 가능성이 있다."라면서 "어느 단계에 이르면 고사가 급속도로 이뤄질 가능성이 있는 만큼, 정밀한 모니터링이 필요하다."라고 강조했습니다.

원래 소나무는 척박한 환경에서도 잘 자라는 나무로 알려져 있습니다. 소나무가 국내 산림의 25% 정도를 차지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지금 추세대로 기후 변화가 진행된다면, 언젠가 소나무를 보기 힘든 세상이 올지도 모릅니다.

신재수 / 남부지방산림청 산림생태관리센터 팀장

"저희가 기후변화 대표적인 사례로 '북극의 빙하가 녹는다, 북극곰 서식지역이 사라진다, 해수면이 상승한다, 한라산 구상나무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고 하지만, 저희가 직접 눈으로 보고 만질 수 없잖아요."

"그런데 우리나라에 많이 서식하는 소나무가 기후변화 영향으로 고사가 되어 간다는 것은 기후변화가 인류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에 대해 경고, 진지한 경고로 받아들이고 기후변화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하고 고민할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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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금강송 고사는 기후변화의 경고입니다”
    • 입력 2021-04-05 07:00:20
    • 수정2021-04-15 20:49:11
    취재후·사건후

푸른 소나무숲 사이로 군데군데 갈색 지점들이 눈에 띕니다. 앙상한 흰 나무들도 볼 수 있습니다. 동영상 속 이 나무들은 단풍나무도, 잎이 떨어진 활엽수도 아닙니다. 말라죽은 소나무입니다.

남부지방산림청과 시민단체인 녹색연합이 경북 울진 일대 금강송 군락지를 촬영한 영상입니다.

■붉은 소나무는 '최근 고사', 하얀 소나무는 '오래전 고사'

황갈색으로 변한 소나무들은 최근 1~2년 사이에 죽은 금강송입니다. 수분이 부족해 나무 맨 위부터 누렇게 변하기 시작하고, 껍질과 가지도 차례로 떨어집니다. 하얀색 나무들은 이미 죽은 지 5년 이상 된 소나무입니다.

금강송(금강소나무)은 소나무의 한 종류로, 재질이 단단하고 곧게 자라 숭례문 등 문화재 복원 목재로 쓰입니다. 국내 최대 금강송 서식지인 경북 울진과 봉화 일대의 1만 7천여 헥타르(ha)는 '보호구역'으로 지정돼 있기도 합니다.

'국내 최대 금강송 서식지에서 소나무들이 말라 죽고 있고, 시간이 갈수록 더 늘고 있다.'라는 소식을 접하고 지난달 말, 현장을 찾았습니다.

[연관기사]금강송은 왜 말라죽었을까…소나무로 본 기후위기 (2021.4.4)
http://news.kbs.co.kr/news/view.do?ncd=5154664

■금강송은 왜 죽나?…겨울 온도 상승으로 호흡↑ 수분↓

왜 금강송들은 말라 죽고 있는 걸까요. 현장에서 만난 산림청 관계자들은 '기후변화'를 이유로 꼽았습니다.

기후변화로 겨울과 봄철 기온이 점점 오르면서, 겨울과 봄철 소나무의 호흡량도 이전보다 훨씬 늘어납니다. 반면, 예전보다 겨울철에 내리는 눈은 적어지고, 봄철 이상고온 현상도 잦아지면서 나무가 필요로 하는 수분은 점점 부족해지고 있습니다. 수분 등 영양 공급은 적은데, 호흡으로 에너지 소비가 많아지니 이렇게 말라 죽고 있다는 겁니다.

실제로 국립산림과학원의 조사 결과, 최근 20년간 경북 울진·봉화 지역의 1월 기온(아래 첫 번째 그래픽)은 계속 상승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습니다. 또 이 지역의 3~5월의 가뭄 스트레스 지수(아래 두 번째 그래픽)도 계속 올라간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금강송이 말라죽기 시작한 건 이미 10년이 넘었습니다. 처음 발견된 건 2010년 정도입니다. 이후 해마다 금강송 고사 지역이 늘고 있습니다. 남부지방산림청과 녹색연합이 조사해 보니, 지난해에 죽은 금강송 군락만 30곳이 넘습니다.

■주민들 피해는?…송이버섯 채취 못 하고, 산불 걱정↑

기후변화로 소나무가 말라죽고 있다는걸, 주민들도 체감하고 있을까요?

태어나서 지금까지 이 지역에만 살았다는 한원기 씨(87세)는 금강송 고사가 확실히 날씨와 관련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겨울에 너무 따뜻하고, 눈이 예전처럼 많이 오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로 인해 봄철 산불도 더 많이, 더 크게 난다고 걱정했습니다.

한원기 / 경북 울진군 금강송면 소광리 주민
"예전에는 산불이 나도 금방 껐는데, 요즘에는 헬기 떠도 금방 못 끄잖아요. 땅이 너무 말랐잖아요.
날씨가 너무 따뜻해. 진달래라고 하는데 우리말로는 참꽃이라고 하거든요. 아직 참꽃이 필 시기가 아닌데 다 피었다고. 10일 정도 빠른 거 같아. 지금도 약초 심으려면 10일에서 1주일 있어야 심는데 하마 다 심어버렸어요."

"눈도 안 옵니다. 전에는 많이 올 땐 1m 20~30cm 정도 왔는데, 요즘에는 15cm 정도 옵니다. 눈이 많이 안 오고 있다는 건 나무 밑에 습기가 없다는 이야기죠."

기후변화는 주민들의 생계에도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울진군 금강송면 소광2리 마을 이장인 최수목 씨는 금강송이 말라죽으면서, 마을 주민들의 주요 수입원이었던 송이버섯 채취가 어려워졌다고 말합니다. 소나무 밑에서 송이버섯이 번식하기 때문입니다. 최 씨 역시 금강송이 죽는 이유가 날씨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최수목 / 울진군 금강송면 소광2리
"(소나무 고사가) 버섯에 치명타죠. 송이 채취가 줄었고, 금액으로 3분의 2 이상 줄었어요. 죽은 소나무 지역을 보면 '아휴, 또 송이 산이 없어졌구나!'라고 말해요. 동네 주민들끼리 모이면 '몇 년생 정도 되는 소나무가 죽었더라.'라고 이야기하는데 마음이 상당히 슬퍼요."

■앞으로 어떻게?…나무 스트레스 줄이고 면밀한 조사 해야


그렇다면 소나무 고사를 막을 방법은 없을까요?

임종환 국립산림과학원 기후변화생태연구과장은 "나무들이 빽빽한 경우 수분 등을 확보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해, 집단으로 고사하는 경우가 많다."라면서 "숲의 밀도 관리 등 노력이 필요하다."라고 말합니다.

실제로 국립산림과학원은 소나무들이 수분 경쟁 스트레스를 덜 받도록 '개체 수 조정' 등의 시범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고사 지역에서 살아남은 소나무들의 종자를 채취해 숲을 조성하는 계획도 세우고 있습니다.

기후변화가 장기적인 환경의 변화인 만큼, 좀 더 면밀한 관찰을 시작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서재철 녹색연합 전문위원은 "(금강송 고사 지역이) 높은 고도에서 낮은 곳으로 넓어지는 추세이기 때문에 전국적으로 고사 현상이 퍼질 가능성이 있다."라면서 "어느 단계에 이르면 고사가 급속도로 이뤄질 가능성이 있는 만큼, 정밀한 모니터링이 필요하다."라고 강조했습니다.

원래 소나무는 척박한 환경에서도 잘 자라는 나무로 알려져 있습니다. 소나무가 국내 산림의 25% 정도를 차지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지금 추세대로 기후 변화가 진행된다면, 언젠가 소나무를 보기 힘든 세상이 올지도 모릅니다.

신재수 / 남부지방산림청 산림생태관리센터 팀장

"저희가 기후변화 대표적인 사례로 '북극의 빙하가 녹는다, 북극곰 서식지역이 사라진다, 해수면이 상승한다, 한라산 구상나무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고 하지만, 저희가 직접 눈으로 보고 만질 수 없잖아요."

"그런데 우리나라에 많이 서식하는 소나무가 기후변화 영향으로 고사가 되어 간다는 것은 기후변화가 인류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에 대해 경고, 진지한 경고로 받아들이고 기후변화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하고 고민할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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