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학대]⑤ 반복되는 아동학대, 해외는?…“국가가 대응해야”

입력 2022.02.16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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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KBS 창원총국 아동학대 특별취재팀(이형관, 차주하, 윤경재 기자)은 최근 2년간의 아동학대 형사 판결문 1,400여 건을 전수조사해 분석했습니다. 아동학대 범죄의 실태와 특수성,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을 살펴보는 다큐멘터리가 KBS '시사기획 창'(2월 6일)으로 보도되었습니다. 다큐멘터리에 담긴 핵심 내용과 다 담지 못한 이야기를 인터넷판 특별기사 시리즈로 정리했습니다.

다섯 번째 순서는 국가의 대응입니다. 아동학대 범죄는 피해 사실이 곧바로 외부로 잘 드러나지 않는 '암수성'이 짙은 것이 특징입니다. 이 때문에 국가의 개입은 필수적인데요. 정부는 피해 아동이 숨지는 등 중대 사건이 날 때마다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비극은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오늘은 국가가 아동학대 문제에 어떻게 대응하는지, 또 해외는 어떤 노력을 기울이는지 살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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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동학대 반복되는 이유는? "땜질식 대책, 문제"

2013년, 계모의 학대로 8살 여자 아이가 숨진 ‘서현이 사건'.

갈비뼈 16개가 부러지는 고통 속에서도 서현이는 소풍을 가고 싶어했지만, 끝내 갈 수 없었다. 당시, 서현이의 죽음은 아동학대에 허술하게 대처해온 우리 사회에 경종을 울렸다. 민간 차원의 국내 첫 아동학대 사망보고서가 나왔고, 아동학대 가해자에 대한 처벌도 강화됐다.

2014년 4월 발간된 이서현 보고서. 제도 개선 방안을 담은 민간 차원의 진상조사보고서다2014년 4월 발간된 이서현 보고서. 제도 개선 방안을 담은 민간 차원의 진상조사보고서다

서현이의 죽음이 이끈 변화, 아동학대가 조금은 줄어들 줄 알았다. 하지만 2년도 채 안 돼, 맨발로 가스 배관을 타고 나온 아이가 또다시 충격을 줬다. 인천 11살 아동학대 중상해 사건이다. 이후에도 아동학대 중대 사건은 계속됐고, 그때마다 정부 대책이 쏟아졌다.


하지만 비극은 멈추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내놓은 '땜질식 대책'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강미정/세이브더칠드런 권리옹호부장
"역대 정부가 여덟 차례 아동학대 대책 발표를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대부분 아이가 사망하고 한 달 후에, 혹은 석 달 후에, 긴급하게 법을 처리하고 대책도 발표했는데요. 그동안의 대책이 깊이 있는 고민과 근본적인 원인들을 파악하면서 냈는지를 한번 살펴봐야 합니다."

■ 해외는 어떻게?…"비극에서 교훈 얻어야"

미국은 우리와 비슷한 문제를 겪었다. 학대로부터 아이들을 지키는 건 쉽지 않았다. 숱한 대책에도 다치거나 숨지는 아이들이 오히려 늘어갔다.

미국 백악관 전경미국 백악관 전경

이에 미국은 아동학대 사망 사건에 대한 국가 차원의 진상 조사를 결정한다. 그동안 아이들을 구하지 못한 것에 대한 국가 차원의 반성이자, 기존 아동학대 대응 전략을 전면 재검토하려는 시도였다.

그렇게 만들어진 '아동학대 사망근절위원회(CECANF)'. 2013년 만들어진 백악관 직속 기구로, 미국 대통령과 의회가 선임한 상·하원 의원과 현직 교수, 관련 단체 종사자, 판사 등 12명으로 꾸려졌다. 운영비만 해마다 200만 달러가 법으로 보장된 핵심 조직이었다.

제니퍼 로드리게즈, 전 백악관 직속 아동학대 진상조사위원제니퍼 로드리게즈, 전 백악관 직속 아동학대 진상조사위원

제니퍼 로드리게즈/전 백악관 직속 아동학대 진상조사위원
"미국 정부는 그동안 아동학대를 근절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문제의 원인을 제대로 파악해 나온 대책이 아니었습니다. 숨진 아동이 누구이고, 어떤 상황 탓에 숨졌는지를 보여주는 조사조차 없었죠."

사망근절위원회는 활동 끝에 168쪽 분량의 국가전략보고서(Within Our Reach)를 내놓았다. 과거 5년 동안의 아동학대 사망 사건들을 국가 차원에서 진상 조사한 결과물이었다. 이 보고서에는 아이들은 어떻게 숨졌는지, 아동 보호망은 어떻게 운영돼야 하는지, 그리고 예산과 인력은 어느 정도 필요한지 등이 권고사항으로 담겼다.

미국 아동학대 사망근절위원회(CECANF)가 펴낸 국가전략보고서미국 아동학대 사망근절위원회(CECANF)가 펴낸 국가전략보고서

보고서 권고에 따라, 미국은 아동보호체계를 바꿨다. 연방정부 아동보호국은 해마다 예산을 늘렸고, 아동학대 위험군에 따라 대응을 달리하는 ‘차등적 대응 시스템’도 도입했다. 지역 정부들 또한 보고서 권고사항을 핵심 전략으로 수용했다.

무엇보다 사후 처벌보다 사전 예방에 중점을 두는 변화를 택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가정 방문서비스다.

제인 스피낙/미국 콜롬비아대 로스쿨 교수제인 스피낙/미국 콜롬비아대 로스쿨 교수

제인 스피낙/콜롬비아대 로스쿨 교수
"가정 방문이라고 부르는 시스템이 있습니다. 간호사 방문이라고도 하는데요. 빈부 차이와 관계없이 간호사가 가정을 방문해 어린 자녀를 어떻게 양육하면 좋은지 얘기를 해줍니다."

"친밀한 방문자라 부르는데, 이들은 가족을 조사하러 가는 게 아니라 가족들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파악하기 위해 갑니다. 실제로 이 시스템은 아동 학대나 방임을 많이 줄였고, 사망하는 아동 수 역시 효과적으로 줄였습니다."

미국의 전문가들은 아동학대 근절에 지름길은 없다며, 우리가 놓친 것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돌아보는 길만이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제니퍼 로드리게즈/전 백악관 직속 아동학대 진상조사위원
"숨진 아이들을 다시 살릴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할 책임과 의무가 있습니다. 우리 사회가 그들을 사망하게 만든 부분에 대해 최대한 많은 것을 배워야 합니다. 그들을 기리며, 그들에게 일어난 일이 다른 아동에게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다고 약속해야 합니다."

■ 지금도 아파하는 아이들을 위해…“국가 차원 진상조사 필요해”

다시 우리나라로 돌아가 보자. 2020년 10월, 16개월 영아 정인이가 학대로 숨지자 한국 사회가 분노했다. 정부와 국회도 빠르게 움직였다. 국가가 나서서 아이들의 죽음을 샅샅이 되짚어보자는 목소리가 커졌다.

지난해 5월, 시민단체들이 아동학대특별법 통과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지난해 5월, 시민단체들이 아동학대특별법 통과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리고 지난해 2월, 여·야 국회의원 139명이 국가 차원의 진상조사를 위한 '아동학대 특별법'을 공동 발의했다. 아동학대 사망사건 진상조사위원회를 설치·운영하는 것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는데, 진상조사위원회가 아동학대 근절 대책을 포함한 조사 결과를 내면 국가기관이 조사위 권고에 따라야 하는 점 등이 적혔다.

김상희/국회 부의장
"그동안 국회에서 여러 노력을 기울였지만, 아동학대 사건이 계속 벌어졌습니다. 이에 즉자적 대응만으로는 안 되겠다는 판단을 의원님들이 하셨습니다. 제대로 된 진상규명으로, 제대로 된 근절 대책을 국회가 마련하자는 데에 공감한 것이죠."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해당 법안 통과를 위한 논의와 절차는 매번 늦어졌다. 법안 발의 뒤 현재까지 열린 소위원회는 고작 3차례, 모두 결론을 내지 못했다. 국회의원 절반 가까이가 공동으로 발의하고도 법안소위에서 심사조차 되지 않고 우선순위가 계속 밀렸다.

국회 제2차 보건복지위원회 제1법안심사소위국회 제2차 보건복지위원회 제1법안심사소위

현재 아동학대 사망 사건에 대한 진상조사 특별법은 국회에서 1년째 계류 중이다.

김상희/국회 부의장
"굉장히 안타깝게 생각하는데요. 딱 1년이 됐습니다. 빨리 통과될 거라고 생각을 했는데, 사실은 의원들 간에 합의가 잘 안 됐어요. 반대하시는 의원님들도 좀 있으셨어요. 우선 여·야가 합의된 것부터 빨리 처리하자, 이래서 자꾸 뒤로 처진 거죠."

지금도 비극은 끊이지 않고 있다. 아동학대 사망 사건은 2016년부터 해마다 서른 명을 넘어 꾸준히 늘고 있다. '한 달에 3~4명꼴로 숨진다'는 끔찍한 수치지만, 이조차 현실을 온전히 반영하지 못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정부 차원의 진상조사는 단 한 차례도 없다.

전문가들은 비극을 막기 위해선, 아동학대 사망 사건에 대한 국가 차원의 진상조사가 가장 우선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말한다.

강미정/세이브더칠드런 권리옹호부장
"아이를 구하는 일에 다른 것이 우선일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아이를 구하지 못했던 아이들의 죽음을 정말 많이 들여다보고 그 아이들의 죽음에서 교훈을 얻은 뒤, 또 다른 아이의 죽음을 막아야 합니다. 국가 차원의 진상조사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 본 기획물은 한국언론학회-SNU 팩트체크센터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KBS 시사기획 창 '암수범죄, 아동학대를 부검하다' 다시보기
https://www.youtube.com/watch?v=j7Qp3Lb0G60

아동학대 심층취재 인터랙티브 페이지 보기
https://news.KBS.co.kr/special/childabuse/index.html

아동학대 판결문 전수분석 아카이브 보기
http://lab.KBS.co.kr/2022/chi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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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동학대]⑤ 반복되는 아동학대, 해외는?…“국가가 대응해야”
    • 입력 2022-02-16 08:00:20
    취재K
KBS 창원총국 아동학대 특별취재팀(이형관, 차주하, 윤경재 기자)은 최근 2년간의 아동학대 형사 판결문 1,400여 건을 전수조사해 분석했습니다. 아동학대 범죄의 실태와 특수성,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을 살펴보는 다큐멘터리가 KBS '시사기획 창'(2월 6일)으로 보도되었습니다. 다큐멘터리에 담긴 핵심 내용과 다 담지 못한 이야기를 인터넷판 특별기사 시리즈로 정리했습니다.<br /><br />다섯 번째 순서는 국가의 대응입니다. 아동학대 범죄는 피해 사실이 곧바로 외부로 잘 드러나지 않는 '암수성'이 짙은 것이 특징입니다. 이 때문에 국가의 개입은 필수적인데요. 정부는 피해 아동이 숨지는 등 중대 사건이 날 때마다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비극은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br /><br />오늘은 국가가 아동학대 문제에 어떻게 대응하는지, 또 해외는 어떤 노력을 기울이는지 살펴봅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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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비극은 멈추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내놓은 '땜질식 대책'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강미정/세이브더칠드런 권리옹호부장
"역대 정부가 여덟 차례 아동학대 대책 발표를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대부분 아이가 사망하고 한 달 후에, 혹은 석 달 후에, 긴급하게 법을 처리하고 대책도 발표했는데요. 그동안의 대책이 깊이 있는 고민과 근본적인 원인들을 파악하면서 냈는지를 한번 살펴봐야 합니다."

■ 해외는 어떻게?…"비극에서 교훈 얻어야"

미국은 우리와 비슷한 문제를 겪었다. 학대로부터 아이들을 지키는 건 쉽지 않았다. 숱한 대책에도 다치거나 숨지는 아이들이 오히려 늘어갔다.

미국 백악관 전경
이에 미국은 아동학대 사망 사건에 대한 국가 차원의 진상 조사를 결정한다. 그동안 아이들을 구하지 못한 것에 대한 국가 차원의 반성이자, 기존 아동학대 대응 전략을 전면 재검토하려는 시도였다.

그렇게 만들어진 '아동학대 사망근절위원회(CECANF)'. 2013년 만들어진 백악관 직속 기구로, 미국 대통령과 의회가 선임한 상·하원 의원과 현직 교수, 관련 단체 종사자, 판사 등 12명으로 꾸려졌다. 운영비만 해마다 200만 달러가 법으로 보장된 핵심 조직이었다.

제니퍼 로드리게즈, 전 백악관 직속 아동학대 진상조사위원
제니퍼 로드리게즈/전 백악관 직속 아동학대 진상조사위원
"미국 정부는 그동안 아동학대를 근절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문제의 원인을 제대로 파악해 나온 대책이 아니었습니다. 숨진 아동이 누구이고, 어떤 상황 탓에 숨졌는지를 보여주는 조사조차 없었죠."

사망근절위원회는 활동 끝에 168쪽 분량의 국가전략보고서(Within Our Reach)를 내놓았다. 과거 5년 동안의 아동학대 사망 사건들을 국가 차원에서 진상 조사한 결과물이었다. 이 보고서에는 아이들은 어떻게 숨졌는지, 아동 보호망은 어떻게 운영돼야 하는지, 그리고 예산과 인력은 어느 정도 필요한지 등이 권고사항으로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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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서 권고에 따라, 미국은 아동보호체계를 바꿨다. 연방정부 아동보호국은 해마다 예산을 늘렸고, 아동학대 위험군에 따라 대응을 달리하는 ‘차등적 대응 시스템’도 도입했다. 지역 정부들 또한 보고서 권고사항을 핵심 전략으로 수용했다.

무엇보다 사후 처벌보다 사전 예방에 중점을 두는 변화를 택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가정 방문서비스다.

제인 스피낙/미국 콜롬비아대 로스쿨 교수
제인 스피낙/콜롬비아대 로스쿨 교수
"가정 방문이라고 부르는 시스템이 있습니다. 간호사 방문이라고도 하는데요. 빈부 차이와 관계없이 간호사가 가정을 방문해 어린 자녀를 어떻게 양육하면 좋은지 얘기를 해줍니다."

"친밀한 방문자라 부르는데, 이들은 가족을 조사하러 가는 게 아니라 가족들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파악하기 위해 갑니다. 실제로 이 시스템은 아동 학대나 방임을 많이 줄였고, 사망하는 아동 수 역시 효과적으로 줄였습니다."

미국의 전문가들은 아동학대 근절에 지름길은 없다며, 우리가 놓친 것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돌아보는 길만이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제니퍼 로드리게즈/전 백악관 직속 아동학대 진상조사위원
"숨진 아이들을 다시 살릴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할 책임과 의무가 있습니다. 우리 사회가 그들을 사망하게 만든 부분에 대해 최대한 많은 것을 배워야 합니다. 그들을 기리며, 그들에게 일어난 일이 다른 아동에게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다고 약속해야 합니다."

■ 지금도 아파하는 아이들을 위해…“국가 차원 진상조사 필요해”

다시 우리나라로 돌아가 보자. 2020년 10월, 16개월 영아 정인이가 학대로 숨지자 한국 사회가 분노했다. 정부와 국회도 빠르게 움직였다. 국가가 나서서 아이들의 죽음을 샅샅이 되짚어보자는 목소리가 커졌다.

지난해 5월, 시민단체들이 아동학대특별법 통과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리고 지난해 2월, 여·야 국회의원 139명이 국가 차원의 진상조사를 위한 '아동학대 특별법'을 공동 발의했다. 아동학대 사망사건 진상조사위원회를 설치·운영하는 것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는데, 진상조사위원회가 아동학대 근절 대책을 포함한 조사 결과를 내면 국가기관이 조사위 권고에 따라야 하는 점 등이 적혔다.

김상희/국회 부의장
"그동안 국회에서 여러 노력을 기울였지만, 아동학대 사건이 계속 벌어졌습니다. 이에 즉자적 대응만으로는 안 되겠다는 판단을 의원님들이 하셨습니다. 제대로 된 진상규명으로, 제대로 된 근절 대책을 국회가 마련하자는 데에 공감한 것이죠."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해당 법안 통과를 위한 논의와 절차는 매번 늦어졌다. 법안 발의 뒤 현재까지 열린 소위원회는 고작 3차례, 모두 결론을 내지 못했다. 국회의원 절반 가까이가 공동으로 발의하고도 법안소위에서 심사조차 되지 않고 우선순위가 계속 밀렸다.

국회 제2차 보건복지위원회 제1법안심사소위
현재 아동학대 사망 사건에 대한 진상조사 특별법은 국회에서 1년째 계류 중이다.

김상희/국회 부의장
"굉장히 안타깝게 생각하는데요. 딱 1년이 됐습니다. 빨리 통과될 거라고 생각을 했는데, 사실은 의원들 간에 합의가 잘 안 됐어요. 반대하시는 의원님들도 좀 있으셨어요. 우선 여·야가 합의된 것부터 빨리 처리하자, 이래서 자꾸 뒤로 처진 거죠."

지금도 비극은 끊이지 않고 있다. 아동학대 사망 사건은 2016년부터 해마다 서른 명을 넘어 꾸준히 늘고 있다. '한 달에 3~4명꼴로 숨진다'는 끔찍한 수치지만, 이조차 현실을 온전히 반영하지 못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정부 차원의 진상조사는 단 한 차례도 없다.

전문가들은 비극을 막기 위해선, 아동학대 사망 사건에 대한 국가 차원의 진상조사가 가장 우선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말한다.

강미정/세이브더칠드런 권리옹호부장
"아이를 구하는 일에 다른 것이 우선일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아이를 구하지 못했던 아이들의 죽음을 정말 많이 들여다보고 그 아이들의 죽음에서 교훈을 얻은 뒤, 또 다른 아이의 죽음을 막아야 합니다. 국가 차원의 진상조사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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