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읽는 경제이야기] ⑦ 비정규직, 그들이 우주로 떠나기 전에

입력 2016.06.20 (16:21) 수정 2016.07.01 (09:48)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이 시가 묘사하고 있는 광경이 눈에 그려지시는지요? 때는 2월 늦겨울의 졸업식 날이겠고요, 장소는 어느 시골 중학교이거나 고등학교 강당이겠지요. 졸업하는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교가를 부릅니다. 더러는 감격에 겨워 목이 메는 학생도 있겠고, 교가가 낯설어 우물우물 가사를 얼버무리는 학생도 있겠지요.

부레옥잠이 되어 떠도는 기간제 교사



그런데 선생님들은 어떨까요? 평생 한 학교에서 가르치는 사립학교는 말할 것도 없고 4년 정도는 한 학교에 있게 되는 정규직 선생님들이야 여유 있게 교가를 부르겠지요. 문제는 1년, 길어야 2년 밖에 아이들을 가르치지 못하고 보따리를 싸야 하는 선생님들입니다.

이른바 '기간제 교사'라는 비정규직 선생님들은 난감합니다. 애써 교가를 외우고, 그 교가를 부르면서 학교에 대한 소속감, 학생에 대한 사랑을 마음속에 뿌리내려 보려 하지만 쉽지 않습니다. 구멍 뚫린 풍선에 바람을 불어넣는 것처럼, 치수가 잘 맞지 않는 옷을 입는 것처럼 어색하기 그지없습니다.

김민호 시인은 기간제 교사의 처지를 물에 떠다니는 부레옥잠에 비유했다. 김민호 시인은 기간제 교사의 처지를 물에 떠다니는 부레옥잠에 비유했다.


하여 시인은 이런 기간제 교사의 서글픈 처지를 부레옥잠이라는 수생식물에 비유합니다. 부레옥잠이라는 식물을 아시나요? 연못이나 돌확 따위에 둥둥 떠다니며 둥글게 몸통을 부풀리고,하얀꽃이나 보랏빛 꽃을 피우는 부유식물입니다. 자세히 보면 하얀 실뿌리를 물속에 내려 보려 애쓰지만 바닥에 닿지 않습니다. 물결 치는대로 바람 부는대로 둥둥 연못을 떠다닐밖에요.

시인의 눈에 비친 기간제 선생님들은 영락없는 부레옥잠입니다. 기간제 선생님은 자세를 낮추고 어떻게든 학교에 뿌리내리고 싶어 하지만 결국 학교를 떠나가야 합니다. 내년 졸업식에는 제대로 교가를 배워 흥얼거려 보고 싶다는 소박한 꿈은 여지없이 깨지고 젊은 기간제 교사는 또 새로운 연못을 찾아 떠나야 합니다.

부레옥잠처럼, 아무리 교육에 대한 열정과 실력이 있어도, 아무리 학생들에게 제 동생처럼, 자식처럼 애정을 듬뿍 쏟아주려 해도, 이들의 현실은 부레옥잠을 넘어설 수 없습니다. 임금도 근로 조건도 복지수준도 보잘 것 없습니다.

이 선생님들을 더욱 견딜 수 없게 만드는 것은 눈초립니다. 이들을 바라보는 동료 교사들의 눈초리에 담긴 우월과 경멸, 이들에게 수업을 받는 학생들의 눈초리에 담긴 조롱과 무례함이 이들을 좌절하게 만듭니다.

기간제 교사는 결코 작은 숫자가 아닙니다. 교육부의 통계를 보면, 2015년 말 현재 전국의 기간제 교사는 4만 7,000명으로 전체 교원의 10% 정도를 차지합니다. 특히 고등학교의 경우는 기간제 교사가 14%나 됩니다. 학생들에 꿈과 희망을 심어주고, 다양한 지식과 더불어 삶을 살아가는 지혜와 인성까지를 가르쳐주어야 하는 선생님들이, 정작 자신들은 해고의 위협과 불안한 미래와 찾을 수 없는 존재감으로 눈물짓고 있습니다. '교권'이라는 고상한 단어는 그저 입속에서만 맴돌 뿐입니다.

'안전' 대신 '무한이윤' 채워넣는 사회

1998년 한국 경제를 강타한 IMF 금융위기는 노동계에도 엄청난 충격을 줬습니다. 구제금융을 제공하는 대신 글로벌 자본들은 한국에도 이른바 '고용시장의 유연화'라는 허울 아래 무자비한 구조조정을 요구했습니다.

IMF 외환위기 당시의 상황. 외환 위기 극복을 위한 금모으기 운동(왼쪽)과 대략 해고 실직자를 위한 취업 기회 직장 면담이 이뤄지고 있다. IMF 외환위기 당시의 상황. 외환 위기 극복을 위한 금모으기 운동(왼쪽)과 대략 해고 실직자를 위한 취업 기회 직장 면담이 이뤄지고 있다.


고용과 해고를 종전보다 아주 쉽게 하고, 기업이 업황이나 경기에 따라 다양한 형태의 고용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이 골자였습니다. 비정규직의 양산시대가 열리는 순간이었습니다. 갈수록 치열해지는 글로벌 경쟁에 노출된 기업으로서 불가피한 측면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노동자들이 치러야 하는 대가는 가혹했습니다.

올해 3월 기준으로 전체 비정규직 노동자는 615만 명, 전체 급여 노동자의 32%를 차지합니다. 일부 노동단체와 시민단체들은 실제 비정규직은 이보다 훨씬 많은 860만 명 정도이며 전체 노동자의 절반이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50-60대 퇴직한 정규직 근로자가 비정규직으로 재취업하면서 비정규직은 1년 전보다 14만 4,000명이나 늘었습니다.

이들이 받는 임금은 정규직의 절반 정도에 불과합니다. 정규직인 평균 283만원인데, 이들은 151만원을 받는데 그쳤습니다. 국민연금은 3명에 한 명 정도, 건강보험과 고용보험의 가입률도 50%가 되지 않습니다. 복지와 후생 같은 사회안전망이 정규직에 비해 부실하다는 얘깁니다.

저임금도 서러운데 사고의 위험까지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 취약한 안전망도 서러운데 정작 이들을 더욱 위협하는 것은 열악하기 이 없는 작업환경입니다. 상당수가 작업시간 내내 재해와 사고의 위험에 노출돼 있습니다.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 안전문 사망사고가 일어난 사고 현장. 승강장을 찾은 시민들이 붙여 놓은 추모 포스트잇이 안전문 유리벽을 가득 메우고 있다.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 안전문 사망사고가 일어난 사고 현장. 승강장을 찾은 시민들이 붙여 놓은 추모 포스트잇이 안전문 유리벽을 가득 메우고 있다.


온 나라를 분노와 안타까움으로 들끓게 했던 지난 5월 28일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망사고는 새삼 이 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얼마나 열악하고 위험한 상황에서 일을 하고 있는지 상징적으로 보여주었습니다.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면서도 정규직의 부푼 꿈 하나로 어둠의 공포와 고된 작업의 고달픔을 이겨보려 했던 꽃다운 젊은이는 거대하고 비정한 구조의 희생물이 되고 말았습니다.

해마다 사고는 되풀이되고 해마다 기업은 개선을 다짐하지만 전혀 변하는 것이 없습니다. 위험의 구조화, 착취의 구조화가 빚은 희생이니까 그 구조가 변하지 않고서는 백년하청인 셈이지요. 용역,외주, 하청에 재하청.... 끝도 없는 먹이사슬 속에서 임금은 쥐꼬리만해지고, 위험은 커져만 갑니다.

국민 권익위원회가 2014년 발표한 자료를 보면 우리나라의 산재사망자는 독일의 8배, 스웨덴의 10배에 이릅니다. 사망자의 대부분이 비정규직인 것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위험의 외주화는 도덕과 양심의 외주화이고 책임의 외주화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비정규직으로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은 '온몸이 캄캄한 하늘'이라고 임영석 시인은 절규합니다.



아직도 온 국민의 가슴속에 작아지지 않는 멍울로 남아 있는 세월호 사건도 결국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비정상 사회가 잉태한 괴물이었습니다.

세월호 참사 2주년인 2016년 4월 16일 오전 전남 진도군 팽목항에 거꾸로 뒤집인 배 모양의 조형물이 설치돼 있다.세월호 참사 2주년인 2016년 4월 16일 오전 전남 진도군 팽목항에 거꾸로 뒤집인 배 모양의 조형물이 설치돼 있다.


그 많은 승객과 화물을 책임지고 있는 선장부터가 비정규직이었으니 다른 선원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송경동 시인은 '세월호'는 꽃다운 아이를 수장시킨 그 배의 이름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이름, 아니 우리나라의 이름이라고 고발합니다. 아프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한 푼이라도 돈을 더 벌겠다고 '안전'의 자리를 덜어내고 '무한 이윤'의 탐욕을 채워 넣는 기업과 사회에서 끔찍한 재해가 일어나는 것은 어쩌면 필연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철탑으로 올라가는 비정규직

지난 반세기 동안 한국은 가난의 운명을 벗어나고자 몸부림쳤습니다. 이런저런 부작용도 있었지만 온 국민이 허리띠를 졸라매고 이를 악물고 밤을 낮 삼아 뛰고 또 뛴 결과 세계 경제 12위 정도의 잘 사는 나라가 됐습니다. '한강의 기적'이라고도 했습니다.

그러나 기적에 도취돼 축배를 들고 축가를 부르기에 우리의 삶은 너무 많은 구멍이 뚫려 있습니다. 독일에서 철학을 가르치는 김덕영 교수는 '환원 근대'라는 용어를 통해 동원된 근대화로 되돌아가려는 최근의 퇴행적 경향에 일침을 가하면서 우리 사회가 결코 풍요롭지 않다고 비판합니다.

"경제 내적 측면으로 눈을 돌려보자. 빈부 격차가 점점 더 커지고 양극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수많은 사람이 비정규직으로 내몰리고 있고 생활고를 비관한 자살이 끊이지 않는다. 불안한 노후를 보내는 사람들이 많고 가난이 대물림되고 있다. 이런 사회를 가리켜 풍요롭다고 할 수 있나? 게다가 경제적·물질적 풍요의 산실인 산업 세계는 높은 산업재해, 열악한 노동조건, 장시간의 노동시간,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불공정한 거래, 노동자의 인권유린 등으로 점철되어 있다. 이런 사회를 풍요롭다고 할 수 있나?" (김덕영, '환원근대')

2015년 4월 26일, 서울 소공동 서울중앙우체국 옆 광고탑에서 80일간 고공농성을 벌인 장연의 SK브로드밴드 비정규직지부 연대팀장(왼쪽 두번째)과 강세웅 LGU+ 비정규직지부 조직부장(왼쪽 세번째)이 26일 오후 고공농성을 종료한 뒤 크레인을 타고 광고탑에서 내려오고 있다. 2015년 4월 26일, 서울 소공동 서울중앙우체국 옆 광고탑에서 80일간 고공농성을 벌인 장연의 SK브로드밴드 비정규직지부 연대팀장(왼쪽 두번째)과 강세웅 LGU+ 비정규직지부 조직부장(왼쪽 세번째)이 26일 오후 고공농성을 종료한 뒤 크레인을 타고 광고탑에서 내려오고 있다.


벼랑에 몰린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급기야 하늘로 올라갑니다. 자동차, 의료, 건설, 외판.... 어느 직종이랄 것도 없이 부당한 대우를 받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세상에서 호소할 곳은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결국 그들은 세상이 주목할 곳, 철탑으로 올라갑니다.



글쓰기의 탁월함도 탁월함이지만 작가로서의 예리한 눈으로 언제나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을 응시하고 있는 소설가 서해성은 현재의 한국 사회를 노동착취와 노동배제가 결합해서 만들어낸 강자를 위한 '악의 황금분할'이라고 성토합니다. 시장이라는 이름으로 무방비 상태에 놓인 비정규직을 외면하는 국가는 도대체 무엇을 하는 것인지, 그는 국가의 존재 이유를 묻습니다.

일자리뿐 아니라 인생 자체가 파견 인생, 사랑마저 파견근무로 전락시키는 이 나라에서 앞으로도, 옆으로도, 아래로도 갈 수 없어 비정규직은 하늘로 오릅니다. 이들을 다시 내려오게 할 사다리는 어디에 있는 것인지, 누가 건네야 하는 것인지요?

외계로 날아가려는 비정규직 잡아야

인간은 현실에서 행복할 가능성이 없을 때, 꿈의 세계로 도피하거나 피안의 세계로 빠져듭니다. 기독교의 천국 사상이나, 불교의 미륵신앙이나, 노장의 신선사상이나 따지고 보면 현실에서 이룰 수 없는 평화와 행복의 소망을 투명하는 측면이 강합니다. 동학의 지도자들이 손에 넣었다는 고창 선운사 마애불 배꼽의 '비밀 문서' 역시 현실에서 찾을 수 없는 유토피아에 대한 간절한 염원에 다름 아니었습니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하늘로 오르는 길 외엔 행복의 길을 찾을 수 없는 나라, 약육강식이 제도화된 나라에서 더 이상 일말의 개선 조짐도 찾을 수 없다면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어떤 길을 찾아야 할까요? 젊은이들 사이에 유행하고 있는 '헬 조선'이라는 단어가 맞다면 이 '지옥'에서 탈출하는 길은 어디에 있을까요? 한국을 떠나 외국으로 이민 가는 것은 대안이 될까요? 그 나라들은 정말 신자유주의의 정글에서 벗어나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일까요? 간단히 않는 얘깁니다. 하여 어떤 시인은 이 지구 상에서 자본의 탐욕이 관통하지 않는 나라 찾기를 포기하고, 어린 왕자가 놀러 왔던 먼 우주의 행복한 나라로의 도피를 꿈꿉니다.



전체 노동자의 3분 1이나 되는 노동자가 지구를 떠나고 싶어 하는 나라는 부끄럽습니다. 새로 구성된 20대 국회가, 그들이 입버릇처럼 외치는 '당리당략을 떠나' 머리를 맞대고, 정부와 의회가 지혜를 모으고, 노동자와 경영자가 한발씩 양보하고, 시민단체와 학계와 언론이 말뿐이 아닌 끝장토론을 통해서라도 해답을 찾아야겠습니다.

비정규직도 숨 쉴 수 있는 사회, 비정규직도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세상, 나아가 비정규직이 보다 여유롭게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어야겠습니다. 더 이상 초등학생의 꿈이 정규직인 나라로 이 나라를 방치할 수야 없지 않겠습니까?

[시로 읽는 경제 이야기]
① 시 속의 경제, 경제 속의 시
② 한 방에 인생역전을 꿈꾸는 사람들
③ 밥벌이, 그 숭고한 비루함
④ 연탄, 검은 눈물로 빚은 붉은 희망
⑤ 최악의 종이자 최상의 군주‘돈
⑥ 짜장면, 검은 면발의 치명적인 유혹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시로 읽는 경제이야기] ⑦ 비정규직, 그들이 우주로 떠나기 전에
    • 입력 2016-06-20 16:21:45
    • 수정2016-07-01 09:48:40
    임병걸의 시로 보는 경제
이 시가 묘사하고 있는 광경이 눈에 그려지시는지요? 때는 2월 늦겨울의 졸업식 날이겠고요, 장소는 어느 시골 중학교이거나 고등학교 강당이겠지요. 졸업하는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교가를 부릅니다. 더러는 감격에 겨워 목이 메는 학생도 있겠고, 교가가 낯설어 우물우물 가사를 얼버무리는 학생도 있겠지요. 부레옥잠이 되어 떠도는 기간제 교사 그런데 선생님들은 어떨까요? 평생 한 학교에서 가르치는 사립학교는 말할 것도 없고 4년 정도는 한 학교에 있게 되는 정규직 선생님들이야 여유 있게 교가를 부르겠지요. 문제는 1년, 길어야 2년 밖에 아이들을 가르치지 못하고 보따리를 싸야 하는 선생님들입니다. 이른바 '기간제 교사'라는 비정규직 선생님들은 난감합니다. 애써 교가를 외우고, 그 교가를 부르면서 학교에 대한 소속감, 학생에 대한 사랑을 마음속에 뿌리내려 보려 하지만 쉽지 않습니다. 구멍 뚫린 풍선에 바람을 불어넣는 것처럼, 치수가 잘 맞지 않는 옷을 입는 것처럼 어색하기 그지없습니다. 김민호 시인은 기간제 교사의 처지를 물에 떠다니는 부레옥잠에 비유했다. 하여 시인은 이런 기간제 교사의 서글픈 처지를 부레옥잠이라는 수생식물에 비유합니다. 부레옥잠이라는 식물을 아시나요? 연못이나 돌확 따위에 둥둥 떠다니며 둥글게 몸통을 부풀리고,하얀꽃이나 보랏빛 꽃을 피우는 부유식물입니다. 자세히 보면 하얀 실뿌리를 물속에 내려 보려 애쓰지만 바닥에 닿지 않습니다. 물결 치는대로 바람 부는대로 둥둥 연못을 떠다닐밖에요. 시인의 눈에 비친 기간제 선생님들은 영락없는 부레옥잠입니다. 기간제 선생님은 자세를 낮추고 어떻게든 학교에 뿌리내리고 싶어 하지만 결국 학교를 떠나가야 합니다. 내년 졸업식에는 제대로 교가를 배워 흥얼거려 보고 싶다는 소박한 꿈은 여지없이 깨지고 젊은 기간제 교사는 또 새로운 연못을 찾아 떠나야 합니다. 부레옥잠처럼, 아무리 교육에 대한 열정과 실력이 있어도, 아무리 학생들에게 제 동생처럼, 자식처럼 애정을 듬뿍 쏟아주려 해도, 이들의 현실은 부레옥잠을 넘어설 수 없습니다. 임금도 근로 조건도 복지수준도 보잘 것 없습니다. 이 선생님들을 더욱 견딜 수 없게 만드는 것은 눈초립니다. 이들을 바라보는 동료 교사들의 눈초리에 담긴 우월과 경멸, 이들에게 수업을 받는 학생들의 눈초리에 담긴 조롱과 무례함이 이들을 좌절하게 만듭니다. 기간제 교사는 결코 작은 숫자가 아닙니다. 교육부의 통계를 보면, 2015년 말 현재 전국의 기간제 교사는 4만 7,000명으로 전체 교원의 10% 정도를 차지합니다. 특히 고등학교의 경우는 기간제 교사가 14%나 됩니다. 학생들에 꿈과 희망을 심어주고, 다양한 지식과 더불어 삶을 살아가는 지혜와 인성까지를 가르쳐주어야 하는 선생님들이, 정작 자신들은 해고의 위협과 불안한 미래와 찾을 수 없는 존재감으로 눈물짓고 있습니다. '교권'이라는 고상한 단어는 그저 입속에서만 맴돌 뿐입니다. '안전' 대신 '무한이윤' 채워넣는 사회 1998년 한국 경제를 강타한 IMF 금융위기는 노동계에도 엄청난 충격을 줬습니다. 구제금융을 제공하는 대신 글로벌 자본들은 한국에도 이른바 '고용시장의 유연화'라는 허울 아래 무자비한 구조조정을 요구했습니다. IMF 외환위기 당시의 상황. 외환 위기 극복을 위한 금모으기 운동(왼쪽)과 대략 해고 실직자를 위한 취업 기회 직장 면담이 이뤄지고 있다. 고용과 해고를 종전보다 아주 쉽게 하고, 기업이 업황이나 경기에 따라 다양한 형태의 고용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이 골자였습니다. 비정규직의 양산시대가 열리는 순간이었습니다. 갈수록 치열해지는 글로벌 경쟁에 노출된 기업으로서 불가피한 측면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노동자들이 치러야 하는 대가는 가혹했습니다. 올해 3월 기준으로 전체 비정규직 노동자는 615만 명, 전체 급여 노동자의 32%를 차지합니다. 일부 노동단체와 시민단체들은 실제 비정규직은 이보다 훨씬 많은 860만 명 정도이며 전체 노동자의 절반이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50-60대 퇴직한 정규직 근로자가 비정규직으로 재취업하면서 비정규직은 1년 전보다 14만 4,000명이나 늘었습니다. 이들이 받는 임금은 정규직의 절반 정도에 불과합니다. 정규직인 평균 283만원인데, 이들은 151만원을 받는데 그쳤습니다. 국민연금은 3명에 한 명 정도, 건강보험과 고용보험의 가입률도 50%가 되지 않습니다. 복지와 후생 같은 사회안전망이 정규직에 비해 부실하다는 얘깁니다. 저임금도 서러운데 사고의 위험까지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 취약한 안전망도 서러운데 정작 이들을 더욱 위협하는 것은 열악하기 이 없는 작업환경입니다. 상당수가 작업시간 내내 재해와 사고의 위험에 노출돼 있습니다.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 안전문 사망사고가 일어난 사고 현장. 승강장을 찾은 시민들이 붙여 놓은 추모 포스트잇이 안전문 유리벽을 가득 메우고 있다. 온 나라를 분노와 안타까움으로 들끓게 했던 지난 5월 28일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망사고는 새삼 이 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얼마나 열악하고 위험한 상황에서 일을 하고 있는지 상징적으로 보여주었습니다.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면서도 정규직의 부푼 꿈 하나로 어둠의 공포와 고된 작업의 고달픔을 이겨보려 했던 꽃다운 젊은이는 거대하고 비정한 구조의 희생물이 되고 말았습니다. 해마다 사고는 되풀이되고 해마다 기업은 개선을 다짐하지만 전혀 변하는 것이 없습니다. 위험의 구조화, 착취의 구조화가 빚은 희생이니까 그 구조가 변하지 않고서는 백년하청인 셈이지요. 용역,외주, 하청에 재하청.... 끝도 없는 먹이사슬 속에서 임금은 쥐꼬리만해지고, 위험은 커져만 갑니다. 국민 권익위원회가 2014년 발표한 자료를 보면 우리나라의 산재사망자는 독일의 8배, 스웨덴의 10배에 이릅니다. 사망자의 대부분이 비정규직인 것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위험의 외주화는 도덕과 양심의 외주화이고 책임의 외주화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비정규직으로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은 '온몸이 캄캄한 하늘'이라고 임영석 시인은 절규합니다. 아직도 온 국민의 가슴속에 작아지지 않는 멍울로 남아 있는 세월호 사건도 결국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비정상 사회가 잉태한 괴물이었습니다. 세월호 참사 2주년인 2016년 4월 16일 오전 전남 진도군 팽목항에 거꾸로 뒤집인 배 모양의 조형물이 설치돼 있다. 그 많은 승객과 화물을 책임지고 있는 선장부터가 비정규직이었으니 다른 선원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송경동 시인은 '세월호'는 꽃다운 아이를 수장시킨 그 배의 이름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이름, 아니 우리나라의 이름이라고 고발합니다. 아프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한 푼이라도 돈을 더 벌겠다고 '안전'의 자리를 덜어내고 '무한 이윤'의 탐욕을 채워 넣는 기업과 사회에서 끔찍한 재해가 일어나는 것은 어쩌면 필연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철탑으로 올라가는 비정규직 지난 반세기 동안 한국은 가난의 운명을 벗어나고자 몸부림쳤습니다. 이런저런 부작용도 있었지만 온 국민이 허리띠를 졸라매고 이를 악물고 밤을 낮 삼아 뛰고 또 뛴 결과 세계 경제 12위 정도의 잘 사는 나라가 됐습니다. '한강의 기적'이라고도 했습니다. 그러나 기적에 도취돼 축배를 들고 축가를 부르기에 우리의 삶은 너무 많은 구멍이 뚫려 있습니다. 독일에서 철학을 가르치는 김덕영 교수는 '환원 근대'라는 용어를 통해 동원된 근대화로 되돌아가려는 최근의 퇴행적 경향에 일침을 가하면서 우리 사회가 결코 풍요롭지 않다고 비판합니다. "경제 내적 측면으로 눈을 돌려보자. 빈부 격차가 점점 더 커지고 양극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수많은 사람이 비정규직으로 내몰리고 있고 생활고를 비관한 자살이 끊이지 않는다. 불안한 노후를 보내는 사람들이 많고 가난이 대물림되고 있다. 이런 사회를 가리켜 풍요롭다고 할 수 있나? 게다가 경제적·물질적 풍요의 산실인 산업 세계는 높은 산업재해, 열악한 노동조건, 장시간의 노동시간,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불공정한 거래, 노동자의 인권유린 등으로 점철되어 있다. 이런 사회를 풍요롭다고 할 수 있나?" (김덕영, '환원근대') 2015년 4월 26일, 서울 소공동 서울중앙우체국 옆 광고탑에서 80일간 고공농성을 벌인 장연의 SK브로드밴드 비정규직지부 연대팀장(왼쪽 두번째)과 강세웅 LGU+ 비정규직지부 조직부장(왼쪽 세번째)이 26일 오후 고공농성을 종료한 뒤 크레인을 타고 광고탑에서 내려오고 있다. 벼랑에 몰린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급기야 하늘로 올라갑니다. 자동차, 의료, 건설, 외판.... 어느 직종이랄 것도 없이 부당한 대우를 받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세상에서 호소할 곳은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결국 그들은 세상이 주목할 곳, 철탑으로 올라갑니다. 글쓰기의 탁월함도 탁월함이지만 작가로서의 예리한 눈으로 언제나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을 응시하고 있는 소설가 서해성은 현재의 한국 사회를 노동착취와 노동배제가 결합해서 만들어낸 강자를 위한 '악의 황금분할'이라고 성토합니다. 시장이라는 이름으로 무방비 상태에 놓인 비정규직을 외면하는 국가는 도대체 무엇을 하는 것인지, 그는 국가의 존재 이유를 묻습니다. 일자리뿐 아니라 인생 자체가 파견 인생, 사랑마저 파견근무로 전락시키는 이 나라에서 앞으로도, 옆으로도, 아래로도 갈 수 없어 비정규직은 하늘로 오릅니다. 이들을 다시 내려오게 할 사다리는 어디에 있는 것인지, 누가 건네야 하는 것인지요? 외계로 날아가려는 비정규직 잡아야 인간은 현실에서 행복할 가능성이 없을 때, 꿈의 세계로 도피하거나 피안의 세계로 빠져듭니다. 기독교의 천국 사상이나, 불교의 미륵신앙이나, 노장의 신선사상이나 따지고 보면 현실에서 이룰 수 없는 평화와 행복의 소망을 투명하는 측면이 강합니다. 동학의 지도자들이 손에 넣었다는 고창 선운사 마애불 배꼽의 '비밀 문서' 역시 현실에서 찾을 수 없는 유토피아에 대한 간절한 염원에 다름 아니었습니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하늘로 오르는 길 외엔 행복의 길을 찾을 수 없는 나라, 약육강식이 제도화된 나라에서 더 이상 일말의 개선 조짐도 찾을 수 없다면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어떤 길을 찾아야 할까요? 젊은이들 사이에 유행하고 있는 '헬 조선'이라는 단어가 맞다면 이 '지옥'에서 탈출하는 길은 어디에 있을까요? 한국을 떠나 외국으로 이민 가는 것은 대안이 될까요? 그 나라들은 정말 신자유주의의 정글에서 벗어나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일까요? 간단히 않는 얘깁니다. 하여 어떤 시인은 이 지구 상에서 자본의 탐욕이 관통하지 않는 나라 찾기를 포기하고, 어린 왕자가 놀러 왔던 먼 우주의 행복한 나라로의 도피를 꿈꿉니다. 전체 노동자의 3분 1이나 되는 노동자가 지구를 떠나고 싶어 하는 나라는 부끄럽습니다. 새로 구성된 20대 국회가, 그들이 입버릇처럼 외치는 '당리당략을 떠나' 머리를 맞대고, 정부와 의회가 지혜를 모으고, 노동자와 경영자가 한발씩 양보하고, 시민단체와 학계와 언론이 말뿐이 아닌 끝장토론을 통해서라도 해답을 찾아야겠습니다. 비정규직도 숨 쉴 수 있는 사회, 비정규직도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세상, 나아가 비정규직이 보다 여유롭게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어야겠습니다. 더 이상 초등학생의 꿈이 정규직인 나라로 이 나라를 방치할 수야 없지 않겠습니까? [시로 읽는 경제 이야기] ① 시 속의 경제, 경제 속의 시 ② 한 방에 인생역전을 꿈꾸는 사람들 ③ 밥벌이, 그 숭고한 비루함 ④ 연탄, 검은 눈물로 빚은 붉은 희망 ⑤ 최악의 종이자 최상의 군주‘돈⑥ 짜장면, 검은 면발의 치명적인 유혹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